대통령 탄핵안 가결 엇갈리는 여야 지도부 명암
대통령 탄핵안 가결 엇갈리는 여야 지도부 명암
  • 엄광석 
  • 입력 2004-12-03 09:00
  • 승인 2004.12.0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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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안이 국회의 압도적 지지로 가결되자, 여당 의원들은 절규하며 ‘의회 쿠데타’라고 성토했다. 그러나 본회의장 밖에 있던 야당 의원들의 보좌관들과 당료들은 ‘의회민주주의의 승리’라면서 만세를 부른다. 그러나 이 상반된 가치관은 단번에 승부가 나버렸다. 탄핵을 가결시킨 세력이 집단적으로 성토의 대상으로 몰리면서, 탄핵 반대가 대세를 휘어잡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총선의 결과로 나타났다.50년 전통 야당이라는 민주당은 궤멸 직전이고, 거대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마지막까지 아슬아슬하게 난관을 건너 겨우 살아남았다. 120석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박근혜 바람이 아니었다면 결과는 비참했을 것이다. 결국 1당 자리도 내주고 말았다. 자민련은 존재 자체도 힘들게 됐다.

방송이 여론을 호도했다
야당은 이 모든 결과가 방송 때문이라고 주장한다.국회의장도 이 주장에 동조한다.“적법한 절차를 통해 결의된 탄핵안을 탄핵 순간의 장면만을 반복해 내보내면서 일방적으로 쿠데타라고 보도한 것은 국민 여론을 호도한 것입니다. 방송의 이런 일방 매도는 엄청난 유감입니다. 국민들도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어떻게 민주정치, 대의정치 아래서 적법한 절차를 거친 것을 혼란을 야기시킨 것으로 이야기합니까? 언젠가는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야당은, 특히 한나라당은 방송이 일방적으로, 반복적으로, 조직적으로, 집중적으로 탄핵 세력을 음해하면서 국민의 여론을 호도했다고 원망한다. 최병렬 대표의 말부터 들어보자.“실제로 탄핵안을 의결하면 어느 정도의 후(後)폭풍을 맞을 것이라는 의견들은 당내에서도 많이 개진됐었습니다. 따라서 정도의 문제이지, 각오는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끌려나가는 것을 방송이 집요하게 이용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이렇게까지 사태가 악화된 후폭풍에 대해서는 전혀 예측을 못했습니다.”사실 본회의장 난장판은 헌정 몇 십 년 만의 일이다.

그러면서 방송의 여론 호도 내용을 구체적으로 열거한다.“탄핵안이 가결되자 방송은 3, 4일간을 계속해서 특집으로 다뤘고, 본회의장 격돌 장면을 마치 동물들이 싸우는 것처럼 묘사하면서 반복적으로 내보냈습니다. 그 때문에 국민들에게는 국회 경위들이 여당 의원들을 끌어냈는데, 한나라당 의원들이 끌어낸 것으로 보이게 했습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끌려나가면서 통곡하고, 절규하고,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이 국민들에게 강한 임팩트를 준 것입니다. 한나라당 의원들, 자기들은 800억 차떼기 한 주제에 동료 의원을 개 끌어내듯 끌어낸다는 게 말이 되느냐, 에이 나쁜 놈들, 이렇게 느끼게 한 것입니다. 또 TV가 온갖 형태의 특집으로 탄핵 의결 행위를 폭거에, 헌정 파괴, 헌정 유린으로 몰면서, 한나라당이 몹쓸 짓을 했고, 나라의 근본 질서를 깨뜨리는 작태를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국민들에게 한나라당은 부패 세력이라는 것을 각인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규탄의 목소리만 반복해서 집중적으로 방송하는 바람에 속된말로 국민들이 ‘꼭지가 돌게’(그는 곧 ‘분노한 것’이라고 수정)된 것입니다. 이것이 후폭풍입니다.”

방송의 광기(?) 예상 못했다
홍사덕 총무도 방송의 광기(?)를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여권이 언론을 동원해 역공을 취하리라는 것까지는 논의했으나, 그런 광기로까지 몰고 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KBS는 탄핵안이 가결되던 날 무려 12시간이나 생방송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해외 특파원을 돌리는데 특파원들도 할말이 없으니까 그저 교민들이 불안해하더라는 정도로만 리포트를 했습니다.”홍 총무는 이어서 방송이 허위정보로 국민들을 위협했다고 주장한다.“그때 방송이 뭐라고 했습니까? 국가 신용도가 떨어지고, 해외에서 불안해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당일 외평채 가산 금리도 오르지 않았고, 뉴욕시장에 상장된 포스코의 주가도 변동이 없었습니다. S&P와 피치도 모두 한국의 국가 신인도에 변화가 없다고 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특별한 코멘트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방송은 계속 탄핵안 가결 때문에 국가 신용도가 떨어지고, 해외에서 걱정한다고 반복해 불어댔습니다. 방송은 또 촛불 시위도 집중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일방적으로 불안을 조성한 것입니다. SBS가 그나마 공정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KBS와 MBC는 선동 수준이었습니다.”홍사덕 총무는 필자가 SBS대기자(大記者)라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이번엔 이원창 의원.“KBS는 탄핵 발의 2주 전부터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발의가 된 순간부터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습니다. 순발력 있게 조직적으로 탄핵 세력을 비난했는데, 사실 이런 것은 준비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탄핵안이 가결된 순간부터는 폭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좌담에 불러내 ‘국회의원들을 의사당에서 끌어내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흥분시키고 선동했습니다. 이것은 언론의 사명을 망각한 처사입니다.”그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기왕 말이 나왔으니 해봅시다. 방송이 뭐랬습니까?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을 국회의원들이 탄핵할 수 있느냐 하는 건데, 그렇다면 국회의원은 국민들이 뽑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한나라당을 부패 세력이라고 몰아세운 것도 그렇습니다. 노 대통령은 빈손으로 대통령이 됐습니까? 측근들과 당시 민주당 선거관계자들이 감옥에 간 이유는 뭡니까? 경제가 어려운데 웬 탄핵이냐는 말도 따지고 보면 경제를 망친 게 누굽니까? 집권 1년 동안 경제는 챙기지 않고, 야당 죽이기에만 골몰했기 때문 아닙니까? 노 대통령은 방송이 자기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런 도발을 한 것입니다. 또한 송두율을 귀국시키라고 한 정연주라는 오른팔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방송이 활자매체보다 몇 배 위력이 있다는 걸 이번에 국민들에게 각인 시켰습니다.”한나라당과 공조한 민주당 사람들도 방송 때문이라면서 열불을 낸다.

유용태 원내총무.“MBC는 말할 것도 없고, KBS가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이후 계획적으로 대응해 여론이 급격하게 탄핵 반대로 돌아선 것입니다. 이것은 누가 봐도 방송이 여론을 호도했음을 알게 해줍니다.”김경재 의원은 구체적으로 KBS의 정연주 사장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이번 사태는 KBS 정연주 사장의 책임이 큽니다. 정 사장은 한때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으로 있으면서 자유 지식인의 순결한 입장을 지켰는데, 막판에 KBS라는 공영 방송을 통해 정권홍보에 앞장을 섰고, 집권당의 정치적 상징 도구로서 솔선해 나섰습니다. 이것은 후에 마땅히 비판받아야 할 큰 죄를 지은 것입니다. 정 사장은 자기 책임이 없다면서 젊은 PD들이 했다고 말하는데 사장이 중지시키면 되는 것 아닙니까? 정 사장은 그동안 가꾼 깨끗한 이미지를 이번 사태를 계기로 결정적으로 뒤집었습니다.”그러나 다른 것은 몰라도 김경재 의원은 요즘 방송사의 분위기는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알 권리 충족이다
한편 여당은, 물론 전혀 다른 의견이다. 천정배 의원.“언론이 그렇게 보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너무나 중요하고 또 비정상적인 이 사태를 언론으로서 당연히 보도한 것입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알 권리를 충족시켜준 것이라고 봅니다.”이해찬 의원은 야당 주장에 더 공격적이다.“야당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의사당 밖으로 끌려나가는 장면을 방송이 반복적, 집중적으로 보도해 국민 여론을 호도했다고 주장하는데,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헌정사상 초유의 일을 어떻게 사건 기사 처리하듯 할 수 있습니까. 국민을 안정시키도록 해야 한다? 그건 정신나간 사람들이 하는 얘기입니다.”그러면서 헌정 중단 사태라고 강조한다.

“대통령은 국군 통수권자입니다. 그런데 그 권한을 정지시킨 것입니다. 대통령은 헌법상 중대한 직무상의 위법 행위를 했을 때만 탄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앙선관위가 유권 해석한 선거법 위반 하나만 가지고 탄핵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런 걸 어떻게 TV가 심각하게 보도를 안 할 수 있다는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결국 야당은 노무현 정권의 홍보 수단이 된 공영 방송이 여론을 호도함으로써 대 역풍을 일으켰다는 주장이다. 탄핵에 따르는 모든 오명(汚名)을 공영방송이 야당에 뒤집어 씌우는 바람에 억울하게 당했다는 하소연이다. 그러나 여당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 차원에서 충실히 보도했을 뿐, 여론 호도와는 상관이 없다는 주장이다.그렇다면 언론 학자들은 이런 방송의 탄핵 보도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들도 두 패로 나뉜다. 서로가 상대의 논리를 정치적 판단이라고 해석하는 것도 같다. 결국 판단은 독자 여러분들의 몫이다. 누구의 논리가 더 합리적인지 따져 보는 길밖에 없겠다.

엄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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