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이낙연 의원의 증언이다.“발의 직전 청와대 고위 인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빅3(비서실장, 경호실장, 안기부장) 중의 한 사람인데,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이분이 다짜고짜로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걸 왜 나한테 묻느냐’고 말했지요. 그랬더니 ‘이 형 말고 누구한테 얘기하느냐’는 거예요. 세상에, 채널이 없었던 겁니다.”그래서 이낙연 의원은 상황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이렇게 되면 발의가 되고, 발의가 되면 표결로 가는데, 위급한 상황이 되니 대통령이 나서는 게 좋겠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사과 사유가 안 되지 않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사과 사유가 되고 안 되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국민들이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사과하면 야당에서 시비를 걸고 있는 세 가지가 한꺼번에 해결된다. 먼저 선거법 시비에 대해서는 선관위의 지적이 있는 만큼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 공명선거 보장하겠다.
두 번째, ‘십분의 일’ 발언은 대통령 선거를 상대적으로 깨끗이 치렀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런 표현이 적절치 못한 점 깨끗이 사과한다.세 번째, 측근 비리 문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사과한다고만 하면 된다. 그러면 더 이상 국민들도 시비를 안 걸 테고, 탄핵도 진전되지 못할 테고, 발의로만 끝난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그런데도 청와대의 이 관계자는 이해를 못하더라는 것이다.“그렇게 말했는데도 계속 사유가 되느니, 안 되느니 하길래 노태우씨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6·29 때 여권의 강경파는 직선제를 수용하는 것이 야당에 대한 굴복이어서 반대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노태우씨는 야당이 아닌 국민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국민들에겐 백번이라도 승복한다면서 직선제를 수용했다’고 했더니 또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당신 의견은 당신 의견이라고 보고하고, 이낙연 의견은 이것이 이낙연 의견이다라고 대통령에게 말하라’면서 쏘아주었습니다.”이낙연 의원은 그러면서 청와대가 민주당에 대고 항의를 하고 싶었는데, 채널이 없어 자기에게 전화했을 것이라고 부언했다.
청와대가 여·야나 국회와 채널이 없었다는 것은 한마디로 충격적이다. 이 부분 역시 뒤에서 또 한번 다루겠지만 노 대통령의 통치 철학이 그렇다 하더라도 참모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신속한 대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 현실이다.채널이 없었다는 것은 이어서 소개하는 일화에서도 그대로 증명된다. 오히려 채널을 만들고자 했던 것은 야당이라는 사실이 더욱 충격적이다. 홍사덕 의원의 증언이다.
문희상에게 최후 통첩
“김근태 원내대표에게 아무리 사인을 보내는 데도 청와대의 반응이 없기에 최종적으로 탄핵안 추진을 결정하고 문희상 전비서실장을 접촉했습니다. 3월 7일이었는데요. 서울과 의정부의 경계선상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그 날은 문희상씨가 대통령 정치특보로 결정된 날이었습니다. 문희상씨를 만나자고 했던 것은 그가 대통령에게 직보할 수 있는 채널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희상 씨를 보고 ‘꼭 사과하기보다는 불법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만 하면 된다. 대통령이 그걸 직접 말하기가 어려우면 당 대표를 부르든지 아니면 국회의장이 주선하는 어떤 모임이라도 좋다.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불법을 하지 않겠다고만 말하라. 그러면 된다’라고 했더니 ‘비서실장이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것으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직접 불법 재발 방지 약속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성사가 안 됐습니다. 이것이 사실상의 최후 통첩이었습니다.”이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필자는 문희상(현국회의원) 특보 측과 접촉했으나 그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국회 밖에서는?
한편 국회 밖에서는 이 날 무슨 일이 있었을까? 독자 여러분은 탄핵안이 발의되자 의사당 앞 한나라당사 정문에서 촛불 집회가 개최됐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노사모 비상대책위원장인 정수근(인터넷 ID 수정, 학원강사) 씨의 증언이다.“사실 탄핵이 발의되기 1주 전부터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노사모 회원들이 개별적으로 탄핵 반대 1인 시위를 벌였습니다. 어떤 날은 낮부터 3명 정도가 패널을 들고 시위했습니다. 그런데 탄핵안이 발의되자 안 되겠다 싶어 한나라당사 앞에서 촛불 집회를 갖기로 했습니다. 이 촛불 집회를 주관한 것은 미키루크(부산, 사업가), 소운(강사), 영원한 미소(사업가) 세 사람이 공동 대표로 있는 ‘국민의 힘’이었습니다. 발의가 된 날 저녁에는 수백 명이 모였습니다. 직장에 다니던 노사모 회원들은 40∼50명씩 퇴근 후 가세했는데, 첫 날은 천만 원, 둘째 날은 천칠백만 원을 거둬 행사비용으로 사용했습니다.”그런데 특이한 사실은 문성근씨 등이 이미 야당의 탄핵 강행을 예견했다는 점이다.“노사모는 3월 1일, 독립기념관에서 조선일보 윤전기 철수를 성공시킨 1주년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 기념식에 참석한 문성근씨(당시 문씨는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상태였고 국참 0415의 본부장이기도 했다)가 와서 ‘이번 총선에서 노사모가 거들어 줘야 한다.
한나라당이 탄핵할 것 같다. 결코 낭만적으로 볼 게 아니다. 이것은 냉엄한 현실이다. 선거는 불과 45일 남았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사모는 그때까지도 총선에서 어떻게 거들어야 할지를 판단하지 못했고, 문성근씨가 말한 야당의 탄핵 강행 운운도 의심스러웠습니다. 사실 작년 12월 19일 노 대통령이 ‘시민혁명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을 때도 노사모는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탄핵안이 발의되는 걸 보니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이에 대해 문성근씨는 ‘당시 분위기가 탄핵으로 몰고 가지 않았습니까? 무슨 특별한 정보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런 판단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한다.그러나 노사모의 얘기는 탄핵 발의 이후부터 위기 의식이 들었다는 말인데, 노사모 초대 호남 지역 사무국장인 임병택의 증언도 일치한다.“탄핵이 발의되자 마치 반민 특위가 해산되는 것 같은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너무나 어이없는 사태였습니다. 불과 한 주 전까지만 해도 탄핵안이 발의될지 반신반의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사모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문성근, 명계남, 유시민씨 등은 정말 탄핵 사태로 간다고 경고하면서 막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사모 회원들은 대부분이 ‘그렇다면 막아야 되겠지만, 설마 탄핵으로 갈 리가 있겠느냐’는 생각이었습니다.”노사모도 탄핵 발의를 의심했다는 말이다. 노사모는 그래서 국회의사당 촛불 집회를 시작으로 광화문 촛불 시위를 계획하고, 탄핵안이 가결되자 총선에서도 뛰기로 했다고 증언한다.
탄핵 발의를 막을 수 있었던 두번의 기회
두 거대 야당이 합작한 3월 9일의 탄핵 소추안 발의는, 그러나 굳이 말한다면, 막을 수 있었던 두 번의 기회가 있었다. 한 번은 국회의장이 주선했던 여·야 총무 모임이었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야당이 여·야의 몸싸움을 두려워해 실제로 탄핵안 발의를 주춤거렸다는 사실이다. 하나하나 짚어보자.먼저 여·야 총무회담에 대해서다. 야당의 탄핵안 발의 강행 의지를 읽은 박관용 국회의장은 발의 하루 전인 3월 8일, 여·야 원내총무를 마포에 있는 홀리데이인서울 호텔로 부른다. 기자들에게는 극비에 부치고 말이다. 박관용 의장의 증언.“최병렬 대표로부터 경호권을 발동해 달라는 요청을 듣고 선거를 앞두고 그런 짓 하는 게 아니라고 말은 해주었지만, 이때부터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야당의 탄핵안 통과 의지는 강경한데 경호권 발동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생각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수가 원하는데 어떻게 안 할 수가 있나, 정말 고민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곧 발의를 할 움직임이어서 선거는 다가오고 이것 참 큰일났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해법을 생각하다가 8일 저녁, 3당 총무를 저녁이나 먹자고 홀리데이인서울로 불렀습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총무들에게 이런 식으로 갈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을 붙였는데, 전혀 대화가 안 됐습니다. 도대체가 아무도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민주당의 유용태 총무와 한나라당의 홍사덕 총무에게 ‘계속해서 선거법을 위반하면 용서하지 않는다는 대통령 경고 결의안을 내도록 하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꿀 먹은 벙어리인 거예요. 함께 있던 열린우리당의 김근태 총무라도 반응을 보였어야 했는데, 그 사람도 냉랭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발의 하루 전 총무회담은 무산된 겁니다.”그러면 탄핵안 발의를 막을 수 있었던 또 한 번의 기회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홍사덕 총무가 여·야의 몸싸움을 예상하고, 그 책임을 한나라당이 뒤집어쓰는 게 아닐까 우려하면서 주춤거렸다는 사실이다. 역시 발의 하루 전인 8일의 상황이다. 그 날 홍사덕 총무는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실제로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당의 일부 의원들이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교묘한 함정, 즉 16대 국회의 마지막 모습을 난장판, 몸싸움으로 보여 주려는 계획에 대해 깊은 우려를 보이고 있습니다. 제가 진짜 우려하는 것은 3분의 2미달 사태가 아니라 국민이 가장 싫어하는 국회 모습, 즉 몸싸움을 보여줄 때 그 책임을 다시 한나라당이 뒤집어쓰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홍사덕 총무의 우려는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만일 그때 야권이 국회의장의 권고대로 대통령 경고 결의안을 냈거나, 한나라당이 깊이 우려한 대로 여·야 몸싸움이 불가피한 탄핵안 발의 대신 다른 정치적 전술을 구사했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야당의 총선 참패라는 어이없는 결과는 없었을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엄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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