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안 발의 때 가결수 확보
탄핵안 발의 때 가결수 확보
  • 엄광석 
  • 입력 2004-09-03 09:00
  • 승인 2004.09.0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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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케이스는 김태식 게리맨더링
탄핵 공조의 테스트케이스가 ‘김태식 게리맨더링’이라는 결정적 증언이 있다. 한나라당 전용학 의원이다.“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3월 2일 밤 회기 종료를 불과 40분 남긴 시점에서 양승부 민주당 의원의 선거구 획정 수정안이 기습적으로 제출됐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무주·진안·장수에서 진안을 떼어내 완주·임실에 갖다 붙이고, 장수·무주를 남원·순창에 합친다는 건데 그렇게 되면 열린우리당은 현역 2석(정세균, 이강래)이 하나로 줄고, 민주당 몫 2석(김태식, 장성원)은 고스란히 유지됩니다.누가 봐도 납득하기가 어려웠고, 또 한나라당 의원들은 대부분 이런 내용을 알지 못한 상태였는데, 홍사덕 총무가 ‘양승부 의원 수정안을 찬성토록 권고함’이라는 쪽지를 돌렸습니다. 결국 무산됐지만 민주당과의 공조가 국민들에게 좋지 않게 비쳐졌습니다. 나중에 여론도 나빠졌고요. 그래서 수도권 소장파 의원들이 홍 총무를 찾아가 따졌더니 ‘2석을 (민주당에) 내주지만 탄핵을 얻는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그렇다면 최종결심은? 역시 조순형 대표는 3월 5일이었다고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이 날은 중앙선관위가 대통령의 선거 중립 위반을 판정하고 청와대에 통지한 날이다.

“선관위 판정을 보고 탄핵을 최종 결심했습니다. 민주당은 2월 28일, 선관위에 대통령을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한 상태였습니다. 헌법 기관인 선관위는 그것에 대해 정식으로 논의했고, 6시간의 격론 끝에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는 판정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법률에 근거해 탄핵의 사유가 된다고 보았기에 최종 결심을 한 것입니다.”그러나 가결은 커녕, 발의도 힘들 줄 알았다고 말했다.“우선 재적 과반수 발의에 3분지 2의 찬성으로 가결이 되는데 각 당에서 반대가 컸고, 여론도 반대가 우세했으며, 여당이 실력 저지하면 안 된다고 보았습니다. 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해야 하는데, 그것은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민주당은 ‘발의 의지만 보이면 된다, 그것으로 족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한나라당은 차떼기에 불출마 선언, 공천 탈락자 등으로 상황이 어려울 것으로 보아서 설득하지도 않았습니다.그런데 한나라당이 바짝 달겨들었습니다.”조순형 대표의 말처럼 민주당이 탄핵 의지를 분명히 밝히자 한나라당은 적극 임했다. 이 날 이후 두 당의 총무는 발등에 불이 붙었다.탄핵 소추안 발의를 주도했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원내사령탑들의 실제적인 증언을 들어보자.

먼저 홍사덕 원내대표.“마치 동원예비군 소집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해외에 나간 의원들을 부르고, 분위기를 잡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차례차례 서명을 받아 나갔습니다.”이번엔 유용태 총무.“한 사람 한 사람 크로스체크를 해 나가면서 확인에 확인을 거듭했습니다. 홍사덕 총무도 엄청나게 치밀히 체크를 했습니다. 오죽하면 공천과 연계시키겠다고까지 했겠습니까. 탄핵안에 동조하지 않으면 공천에서 배제시키겠다고 한 것 말입니다. 최병렬 대표도 저에게 여러 번 전화를 걸어와 ‘정말 할 의사가 있느냐’고 묻기에 ‘조순형 대표가 쇼를 할 사람이냐, 그의 의지는 확고하다’라고 답변해 주었습니다.”유용태 총무는 홍사덕 총무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전화를 주고받으며 ‘우리는 이렇다, 너희가 문제다’라면서 서로 확인을 거듭했다고 덧붙였다.야당 총무들의 이 말을 종합하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치밀한 작전하에 긴밀하게 공조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또한 탄핵안에 관한 한, 한·민 공조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박관용 국회의장도 이 부분에 관한 중요한 증언을 하고 있다.

이 사람아, 선거 앞두고 그런 짓 하는 게 아니야!
“탄핵안 발의 직전 정확한 날짜는 기억하지 못하겠습니다만, 최병렬 대표가 두 번 전화를 해왔습니다. 한 번은 밤중에 집으로 걸어왔고, 또 한 번은 집무실(의장실)로 걸어왔습니다. 그러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최 대표가 하는 말이 ‘탄핵안을 내야겠는데 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하느냐, 안 하느냐에 성패가 걸려 있다. 해줘야 될 것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야, 이 사람아, 선거를 앞두고 그런 짓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두 사람은 반말을 하는 친구 사이다.이후 박관용 의장은 탄핵안 발의를 막아보기 위해 여·야 총무들을 8일 불러냈는데, 이 부분도 잠시 뒤에 다루기로 한다. 국회는 드디어 오후 6시 26분 개의를 선언했고, 1분 뒤 「탄핵 소추에 대한 본회의 보고」를 한 뒤 정개법을 통과시키고 7시 39분 산회한다. 그리고 이 시간 이후부터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은 이해찬 의원이 농성 제의와 함께 탄핵안 저지를 위해 본회의장에서 농성을 시작한다.공천 탈락자가 문제였다거대 여당인 한나라당이 탄핵안을 발의하는 과정에서 정말 애를 먹었던 것은 알려진 것처럼 수도권 소장파들보다는 다수의 공천 탈락자들 때문이었다.

최병렬 대표의 증언을 들어보자.“탄핵결의 4, 5일 전(발의 1, 2일 전)까지만 해도 발의는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가결도 안 시킬 것이라면 발의할 필요도 없다고 보고, 가결에 필요한 181표(3분의 2)를 확보하는 일이 어려웠는데, 공천 탈락자가 워낙 많았고, 불출마 선언을 한 사람들도 자의적이 아닌 반 타의에 의해서 물러났기 때문에 이들을 설득하는 일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발의 하루 전인가 홍사덕 총무가 기자회견을 하면서 181표가 확보됐다고 하기에 정의화 수석 부총무를 불러 과연 3분의 2선이 가능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한나라당에서 124표, 민주당에서 51표가 확보됐다고 보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나머지 6표는 어떻게 확보했느냐고 추궁하니까 무소속에서 3표, 자민련에서 3표가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최병렬 대표의 증언은 이어진다.“그러나 가능한 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승부를 걸었다가 부결되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으로 확실히 하자고 탄핵에 동조하지 않는 의원들을 상대로 설득하는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불출마자와 공천 탈락자들을 설득하는 일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어떤 의원은 30분을 설득해도 안 돼 원로인 양정규 의원에게 부탁하기도 했고, 어떤 의원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운 목사까지 동원했는데도 요지부동인 경우가 있었습니다. 물론 단 1분 만에 설득된 분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발의 때까지 가까스로 181표를 확보했다고 생각했는데, 소추안에 서명한 의원들 중에도 반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그런데 일사불란하게 탄핵안을 추진한 것 같은 민주당도 내부적으로는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

이른바 쇄신파 의원들이 탄핵 불가론을 폈기 때문이다. 추미애 의원을 중심으로 설훈, 정범구, 이낙연, 조성준, 박종완 의원 등 쇄신파들은 조순형 대표를 찾아가 여러 차례 탄핵 불가를 주장했고, 탄핵안이 솔솔 나오던 2월 초에는 소장파 의원 16명이 당 쇄신안을 조 대표에게 전하면서 역시 탄핵 불가를 건의했다고 한다. 특히 탄핵으로 최종 결심을 굳히던 3월 4일 의총에서는 설훈 의원이 ‘탄핵을 하면 월드컵 때 뭉쳤던 20, 30대가 또 다시 결집할 것이고, 그래서 열린우리당이 압승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경고했다는 것이다.이 발언이 있자 잠시 분위기가 숙연해졌는데, 곧 다시 누군가가 찬성 쪽으로 분위기를 전환하자 모두 탄핵 쪽으로 돌았다고 한다.

발의 때 이미 탄핵 가결산 확보
그런데 앞에서 인용한 최병렬 대표의 말 속에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하나는 발의 시점에 이미 탄핵 가결선을 확보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나라당에서 탄핵안을 주도한 것이 자신이라기보다는 홍사덕 총무라는 것이다. 그러나 후자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을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쉽게 말해서 탄핵안을 주도한 사람은 바로 최 대표라는 것이다. 이 부분은 뒤에 다시 다루기로 하고 여·야 총무들의 말부터 들어보자. 먼저 한나라당 홍사덕 총무의 증언.“탄핵안을 발의하는데 있어, 민주당은 빨리하자고 계속 앞서나갔고, 나는 속도조절을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발의 시점에서는 3분의 2이상 찬성으로 통과시킬 자신이 있었습니다. 한나라당의 의석이 147석인데 외국에 나간 2명, 국회에 안 나오는 강삼재 의원을 빼고 144명 가운데 수도권 일부를 빼고, 정말 걱정되는 사람들은 공천 탈락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모두 설득했습니다. 그래서 구속돼 있는 7명을 빼고 131표 이상 자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공천 탈락자들은 저를 신뢰하고 있었고, 제가 ‘뭔가 해낼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믿음이 그분들에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다음은 민주당의 유용태 총무.“일부 의원들은 발의 때 가결선을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그건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이미 탄핵안 가결선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총무가 하는 일이 뭡니까. 당론을 만들어 내고, 그것이 확정되면 실천하는 게 총무의 임무입니다. 가결선 확보 사실은 당 대표(조순형)에게만 보고했고, 다른 의원들에게는 일체 비밀에 부쳤습니다. 알려주면 일이 틀어질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이미 가결 확신이 섰기에 발의 때도 유인물로 대체한 것입니다.”

청와대는 국회와 채널이 없었다.
국회가, 두 거대 야당이, 대통령을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이처럼 치밀하게 준비하고 실천하는 동안 청와대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3월 9일의 대통령 공식 일정을 보자. 오전 9시 국무회의를 주재한 노무현 대통령은 오후 2시, 육사 졸업식 및 임관식에 참석한다. 그리고는 오후 6시 30분, 성우회 회장단과 만찬을 한다. 이 날 청와대의 공식 활동은 이것이 전부였다.세상에, 대통령을 자리에서 쫓아낸다는데 한가하게 이런 공식 행사나 하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가능한 모든 채널을 동원해서라도 발의를 하지 못하게 막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노력을 해도 모자랄 판인데, 청와대가 국회의 두 거대 야당은 물론, 여당이라는 열린우리당과도 변변한 채널이 없었음이 입증됐다. 적어도 같은 편이라는 열린우리당과는 긴밀히 만나 대책을 협의했어야 했는데, 그런 정황도 없다. 그런데 이런 일은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엄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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