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증권 자금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
산업증권의 부정에 협조한 사람들은 지금 좋은 자리를 잡고 잘 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실업 3년차인데 취직을 할 수가 없다. ‘이것이 사회적 왕따구나’ 생각하며 자학할 때도 있으나 굳센 의지로 버티고 살고 있다. 나는 소금을 만드는 A업체에 대한 산업증권의 채권을 관리하고 있었다. 산업증권은 A업체 관련사에게 200억 원 이상의 부실채권이 있었다. A업체는 산업은행에서 거액을 대출받고 담보가 바닥나자 산업증권이 회사채 지급보증을 한 것이었다. 이 회사에 부도가 발생해 법정관리를 신청했으나 소금은 계속 판매되기 때문에 자금이 쌓이게 된다. 나는 A업체에 대하여 채권회수를 위한 법적절차 개시, 필요한 소 제기 등을 보고하자 산업증권 최고 책임자는 “당신 그러다가 테러 당한다”고 협박했다.
산업증권이 모회사에 30억 원의 채권이 있었는데 채권확보 방안으로 당좌수표를 보유하고 있었다. 채무자 임원은 산업증권 대표에게 로비를 시도했다.
어느 날 채무자 회사 직원이 “당신이 15억 원 정도 회수하고 종결하는 것으로 결재를 올리면 사인하겠다고 한다. 빨리 품의서를 올려 달라”고 했으나, 나는 “대표가 무슨 지시가 있겠지요”라고 답했다. 그러나 회의석상에서 산업증권 대표는 아무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대표는 다른 직원을 시켜 내게 압력을 넣었다. 나는 압력이 계속되어 18억 원과 보충안을 넣어 제시했고, 종결됐다.
산업증권의 몇 사람은 이미 감옥 갈 각오를 한 것 같았다. 서류를 무단 파기하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고 채권자들을 위하여 법원이 선임한 자가 부하 직원들에게 상식 이하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산업증권 자금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다’라는 식이었다. 어느 날 비교적 친하다고 생각한 산업은행 입행 동기 녀석이 오더니 “너도 한 20억 해먹지 그랬냐. 잘못하면 칼 맞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가증스러웠다.
파산회사는 법원허가를 받아 업무처리를 하는데 감사가 없기 때문에 파산관재인이 한 눈 팔면 자금담당 직원이 돈을 빼 먹어도 모르는 지경이다. 파산관재인은 인감도장이 들어 있는 금고 열쇠를 직원에게 맡기고 돌아다닌다. 나는 “인장은 관재인이 가지고 다니는 것이 옳다”고 회의석상에서 말했으나 전혀 개선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산업증권의 자금흐름을 전반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채무자들은 금품으로 관재인 매수를 끊임없이 시도한다. 많은 사안에서 관재인은 일단 채무자의 로비가 시작되면 저녁 약속을 잡거나 골프장에서 만난다. 원하는 사항을 듣고 내 의견을 묻는다.
그리고 나서 맘에 드는 대안이 제시되면 내게 채무자들의 입장에서 의견을 개진한다. ‘무슨 이런 사람이 있나’하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다.
채무자들의 조건을 수용한 상태에서 “법원에 보고를 하겠다”며 검토서를 작성하게 한다. 동 검토서를 가지고 법원판사에게 보고하고 난 후 관재인이 돈 먹고 해주고 싶은 사안은 판사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며 “허가서를 넣으라”고 하고, 맘에 안드는 사안은 “판사가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며 거부하게 한다. 채무자들은 내게 “관재인과 얘기가 잘 되었으니 검토서를 한 번 올려보라”고 코치까지 했다.
선태규 기자 august@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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