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의 ‘미국 길들이기’
이승만의 ‘미국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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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3-12-31 09:00
  • 승인 2003.12.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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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서 예를 찾을 필요도 없이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의 재판 결과와 그것을 대하는 우리 정부의 입장 한가지만 보더라도 ‘미국 상대하기’는 고민거리다.이제 대미 접근은 친미 반미의 획일적인 선 긋기가 아니라 ‘미국 활용’이 아닐까? 냉정함, 실리 우선, 국익에 대한 열정이란 원칙과 그런 리더십은 이승만한테서 제대로 드러난다.이승만에겐 미국의 앞잡이라는 잘못된 이미지가 씌워져 있다. 이는 현대사의 이미지 경쟁에서 분단 책임을 전가하려는 친북 좌파의 기도가 주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그렇다고 역사의 진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해방 후 이승만의 역정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대한 도전과 설득으로 차 있다. 도전은 미국, 소련이 합의한 신탁 통치 시나리오의 분쇄로 시작했다.

그는 신탁 통치가 우리의 자주 열망을 무시한 것이며, 공산화 함정으로 변질될 위험성을 역설했다.이승만은 냉전의 새 국제 질서, 소련과 북한의 집요한 공산화 공세 속에서 미국을 어떻게 활용해 건국으로 갈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이해에 충실했다.미국에 대해 오기도 부렸고 심리전도 구사했다. 6·25전쟁 끝 무렵 반공포로 석방은 오기였다. 미국의 전략을 정확히 읽고 계산한 허 찌르기였다.이를 통해 얻어낸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은 냉전 시대에 안보의 큰 부담없이 산업화와 민주화로 갈 수 있는 기반이었다.이승만의 ‘인기 없는 상품’속에 ‘히딩크식의 세련된 미국 다루기’(2002 월드컵에서의 한·미전)가 넘치는 것은 흥미 있는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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