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대권 여론조사 1위, 그러나…

‘광폭정치’에 나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정치인 인맥 조사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한나라당 정몽준 최고위원(MJ)은 박 전 대표가 차기 대권후보로 가장 유력하다고 추켜세웠다. 한나라당에서는 10·29보선을 전후해 너도나도 박 전 대표에게 구애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야말로 ‘박근혜 대세론’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친박계의 캐스팅 보트 역할을 기대했던 국감에서 공당 지도자로서 확실한 이미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MB심판대’가 될 10·29보선에서 ‘비둘기파’ 박희태 대표의 SOS를 거절했다. 4·9총선에서 ‘박풍’에 침몰했던 왕의 남자들은 연말 개각으로 재기의 칼을 갈고 있다. 무엇보다 MB와의 양자구도가 향후 다수의 대권 후보가운데 하나란 다자 구도로 변모하면서 이들과의 합종연횡이 최대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MJ캠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때문에 친박계는 ‘이회창 대세론, 이인제 대세론, 그리고 박근혜 대세론’의 학습 효과를 경계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물리학과 정하웅 교수팀의 연구결과, 박근혜 전 대표가 18대 현역 국회의원 중 가장 ‘마당발’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중요한 연결선만을 잇는 MST(Maximum Spanning Tree)방식에 의하면 모두 78명의 의원과 직접 연결돼 1위를 차지했다. 2위에 오른 정몽준 의원(MJ)은 17명과 연결됐다. 모든 의원이 다른 모든 의원에게 편지를 한 통씩 주고받을 때도 박 전 대표를 통할 경우 가장 빠르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외 활동이 많지 않은 박 전 대표가 ‘마당발’로 조사된 데는 여당 계파의 수장이자 가장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란 정치적 입지 때문이다.
MJ도 20일 차기 대권과 관련, 박 전 대표를 거론하며 “현재로서는 제일 유력한 것 아니냐. 좋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세론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인 것처럼 보인다. 한나라당 역시 10·29 재보선 승리를 위해 박 전 대표에게 구조신호를 보냈다. 선거구 14개 가운데 8군데가 한나라당 텃밭인 경상도 지역인데다가 지난 6·4재보선 참패 이후 또 다시 고배를 마실 경우 정부여당의 입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10·29보선 후 ‘역 책임론’ 가능성 제기
한나라당 당직자는 “00지역은 박근혜 전 대표 사진만 붙여놓고, 당의 지원유세보다는 ‘박 전 대표 언제 내려오느냐’고 물어보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표 측은 선거지원유세 요청에 대해 국정감사 등을 이유로 사실상 거절의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당에서 책임 있는 사람들이 책임지고 선거를 치러야지 그렇지 않으면 매번 재보선마다 동원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밝혔다.
이번 선거가 금융위기와 쌀 직불금 파동 등으로 ‘MB심판론’의 색채가 강한 것도 박 전 대표의 결정을 주저하게 했다. 친박계 한 인사는 “필요할 때만 ‘국정의 동반자’라는데 도와 줄 마음이 나겠느냐”며 “친이 주류 측의 자업자득”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10·29 재보선의 ‘실종된 朴心’은 자칫 박 전 대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지난 4·9총선과 6·4재보선 때 빛을 발했던 ‘침묵의 정치’의 명분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공천후유증과 친박계의 복당, 그리고 강재섭 지도체제와 MB ‘매파’와의 대립 등으로 박 전 대표의 침묵에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친박계가 지목한 공천 학살의 주도자들은 낙마했고, 복당 문제도 매듭지어졌다.
무엇보다 현 여권 지도부는 박 전 대표에게 우호적이다. 박 전 대표의 침묵이 명분을 잃을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권 관계자는 “추경예산안 통과를 놓고 홍준표 원내 대표가 사퇴의사를 밝혔듯 거듭된 선거패배로 박희태 대표가 극단의 카드를 빼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원외의 한계를 절감한 박희태 대표로서는 내년 국회의원 재보선 출마란 대안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홍준표 원내대표의 입각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순 없다. 10·29 재보선의 결과에 따라 당내 MB 심판론을 제기하려는 친박계가 오히려 여권 ‘매파’의 역공을 당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잠재적 대권 후보군의 행보도 주시해야 한다. 특히 고개 숙인 MJ의 속내가 궁금하다. 6·4재보선 직후 목소리를 높이던 MJ는 7·3전당대회에서 박희태 대표에게 석패한 이후 확실히 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MJ는 7·3전당대회전 ‘인적 쇄신론'에 대해 “청와대든 내각이든 민심 수습을 위해 꼭 필요한 분들만 남고 나머지 분들은 모두 용단을 내려야 한다. 미봉책은 곤란하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MJ 물밑 행보, MB측근 관계회복 관건
그러던 MJ가 지난 10일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주미 대사관 국정감사차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재오 전 의원을 만나 위로했다. 그리고 최근 박근혜 전 대표도 추켜세웠다. 여권 관계자는 “MJ의 보폭이 넓어졌다. 일부에서는 MJ대권 플랜이 시작됐다는 설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최근 MJ진영에서는 ‘차기 대권 프로젝트’ 보고서가 나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MJ계임을 공공연하게 표현하는 의원들의 수도 십여 명을 훨씬 넘어섰다. 때문에 박 전 대표도 다자구도로 급변하는 여권 내 세력 재편 흐름 속에서 일부 친이 세력과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한다는 주문이 잦아지고 있다.
지난달 미국에서 이재오 전 최고를 만나고 온 MB의 측근 박창달 전 의원은 “이재오의 국내 정치 복귀 전제 조건으로 박근혜 의원 측의 반감을 사게 만든 투사형 트러블 메이커 같은 이미지를 완전히 버릴 것을 주문했다”며 “MB가 더 이상 적수가 아닌 이상 박근혜 전 대표도 이젠 이재오를 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지 755,756호 참조)
그러나, 현실적으로 박 전 대표는 이재오 전 최고의 조기귀국과 연말 개각 등으로 MB직계와의 격돌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연말 정국에서 박 전 대표가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가 향후 ‘대세론 다지기와 견제론 부각’의 갈림길이 될 전망이다.
오경섭 기자 kbswav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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