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부패의 이면 다섯곳 손 써야 승진된다?
인사부패의 이면 다섯곳 손 써야 승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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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3-09-18 09:00
  • 승인 2003.09.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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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부패 만연하면 능력있는 사람 발탁 기회 적어져박통 사랑받은 부산 한전지검장, 일약 지역 유지 대열에 합류
‘부패의 톱니바퀴’
오모 수산청장의 ‘물개 특송작전’
관료 사회에서는 상하가 뇌물을 주고 받는 게 관행처럼 되어 있잖아. 이런 에피소드도 그 하나지만 코믹한 소재감이기도 해.오XX씨는 박정희 소장이 한강 다리를 건널 때 선봉장 노릇을 했던 인물 아냐. 이 분은 정력이 아주 출중했던 분이지. 수산청장을 할 때인데 미국에 여행을 갔어.그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는데 비서관을 지냈던 L씨의 증언이지.“청장 방에 여자가 하나 들어가, 그래 나도 하나 모셔오라고 했지. 나는 일찌감치 동해물과 백두산을 부르고 잤는데 다음날 새벽에 내 방 문을 두드리며 다급하게 소리치는 서양 여자 목소리가 하나 들려 와. 문을 여니 청장 룸에 들어갔던 바로 그 여자라. 여섯 번 출격하고도 모자랐는지 일곱 번째 발동을 걸고 들어와 도망 나왔다고 아주 죽어죽어. 오씨의 정력이 이 정도였다는 거지.하여튼 이 공무 저 공무를 마치고 귀국할 때 물개 두 마리를 선물로 구해 가지고 돌아오게 되었어. 그것도 산 것으로 말야.

초정력 강장제 선물은 일반 사회나 권력 사회나 다 똑같았지.자, 한 마리는 오 청장 것이고 또 한 마리는 당시 총리였던 정일권씨한테 진상할 선물이었지. 그런데 문제가 있어. 물개를 살려서 모셔오는 방법이야. 마침 한국으로 오는 어업 지도선이 청장 방미로 정박 중이었어. 그 배에는 선원들의 욕실이 달려 있었는데 물개를 그 욕실에 넣고 물을 갈아주며 ‘특송작전’으로 들어갔어. 귀국한 오 청장은 정 총리에게 ‘귀한 선물’을 그것도 산 채로 가져왔다고 보고를 했지.그런데 사고가 난 거야. 정 총리가 인천으로 가 미국서 온 지도선 시찰을 하는 중 슬쩍 ‘내 물개 어디 있나’하고 선실 안을 보게 됐어. 이게 웬 일. 물개가 피를 흘리면서 시체로 변해 있는 거야. 물개의 ‘그것’이 어떤 자에 의해 칼로 잘려져 도둑 맞은 거라. 망망 대해를 거쳐왔으니 외부 침입자는 있었을 턱이 없으니 분명 선원이나 선객의 짓이 틀림은 없는데 범인은 오리무중이야.”이 이야기를 L비서관에게서 듣고 나니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장본인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 넘겨짚었더니 펄쩍 뛰긴 했지만 수상하긴 했어.

문제의 물개는 이런 에피소드를 숨긴 채 부산 해양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해.공무원 사회의 뇌물은 대부분 자리 이동과 승진문제와 걸려서 오고 가지. 그 부패의 톱니바퀴는 청와대로부터 저 말단에 이르기까지 아주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갔어. 승진 때가 되면 관청의 건물 뒤에 또 하나의 복잡한 인맥과 뇌물이라는 회로가 생겨나. 실력이 있어도 가만히 앉아 있다가는 당한다는 게 불문율로 되어 있어.차관보였던 N씨는 한일협정 관계로 장관을 수행하게 되었어. 그 때 마침 차관 승진이 걸려 있었지. 아침 공항으로 출발하려는데 인사첩보가 전화로 걸려 왔어. “모두들 뛰고 있는데 당신 가만히 있어도 될지 몰라” 하며 펌프질을 했어. 장관만 믿고 있던 N씨는 “누군 누구 줄을 잡고 또 누구는 청와대 쪽에서 발동을 걸고 있다”는 구체적 움직임에 하늘이 노래졌지. 나중 차관 승진을 한 다음 이 양반 말씀이 걸작이야.”나 비행기 안 타려고 했어.

나 없는 동안 저희들 싫건 뛰고, 난 물먹을 것 뻔하지 않아. 그렇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나. 할 수 없이 김포공항으로 나가면서 집사람에게 여기 저기 손 대야 할 곳을 지시했지.”몇 군데나 손을 대야 했느냐고 하니까. 손가락 다섯을 쫙 펴는 거야. 청와대, 당(여당), 남산(안기부), 총리, 장관실 주변 이런 공식이지. 비단 N 차관뿐이겠어? 인맥과 금맥이 총동원되고 압력수단과 경쟁이 일어나는 게 인사의 이면이야.물론 예외도 있겠지. 사실 N차관의 경우는 그의 성실성을 높이 산 장관이 “ 내 재직시가 아니면 승진시켜 줄 사람 없을 거야”하고 대통령에게 특별 간청을 해서 차관 자리에 올랐어.

오야붕과 꼬붕의 세계
‘낙하산 병’의 시조, “우리 덕병이 잘 있나”
박통의 운전기사로 윤덕병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알려지기로는 군대 있을 때부터 집안식구처럼 데리고 있던 사병출신이라는 얘기가 있어.사람이 하도 충직해서 육영수 여사의 신뢰가 매우 컸어. 어느날 “여사님, 저도 이젠 사회(청와대 밖)에 나가고 싶습니다”하고 간청을 했어. 그래서 얻은 자리가 한국전력의 전차운전 사업소장 자리였지.운전에 관한 업무가 관계되니, 업무의 연관성이 있다고 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전문성이 그래도 필요하다는 점으로 보면 특혜인사야.윤씨의 경우는 주인 밑에서 오래 고생한 ‘머슴’에게 밭떼기 하나 떼어주는 정도라 볼 수 있을지 몰라. 하지만 더 큰 자리들이 권력의 패거리라든가 그 울타리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건 심각한 문제야. 우선 전문성이 없으니 조직의 생산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고, 보다 유능한 인재들이 발탁되는 기회를 빼앗아가 버리는 결과가 되거든. 세월이 흘러 40년 넘어서도 권력의 주변에서 고공투하하는 ‘낙하산 병’이 아직도 도처에 있다는 건 참 한심한 일 아냐.

어떻든 우리의 덕병씨는 한국전력 수뇌부에는 주요한 인물이 되었지. 이 정도가 되면 뒤따르는 게 있는데 어떻게 알아서 대우를 해 주느냐가 문제야. 영업소장으로는 좀 미흡하다 싶어 이번에는 부산 지점장으로 발령을 냈어. ‘알아서’ 계급을 올려준 것이지. 사실 정치적 의혹과 비리 사건 가운데는 이렇게 권력의 마음을 ‘알아서’ 처리한 결과가 심각한 국면으로 번지는 것도 있어. 그러나 사법적 귀책 사유가 권력에게 돌아갈 수는 없지만 따지고 보면 원인 제공을 시작한 곳이 권력이므로 원죄의 책임이 있는 거지.윤씨가 부산 지점장으로 내려 왔을 때는 경찰서장도 중앙정보부장(현 국정원장)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지. 지방유지 서열로는 저 뒷줄이거든. 중앙집권제이긴 하지만 지방에도 분권화된 권력의 세계가 있는데 이게 협동체야. 서열이야 있지만 대체적으로 몇 사람의 유지가 지방의 정치적 대소사를 협의 결정하는 거라. 당시로는 도지사, 안기부 분실장, 검찰지검장과 고검장, 지방국세청장, 경찰국장, 도 상공회의소 의장 등이 ‘유지클럽’이지. 그 밑에 은행 지점장 등이 줄을 잇지. 청와대에서 나왔다고 하지만, 한 사람 건너고 두 사람 건너 청와대와 줄 안닿는 사람 없는 곳이 지방 유지클럽이라 윤 지점장을 그저 대수롭지 않게 보았어.

그런데 어느날 부산에 내려온 대통령이 환영나온 유지단 앞에서 “덕병이는 잘 있는가”고 새카만 한전지점장의 안부를 물은 거야. 모두들 어리둥절할 때 윤덕병씨가 저 쪽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난 거야.윤씨는 부산에 있는 동안 대통령 차의 핸들을 잡았어. 대통령은 부산에 내려올 때마다 ‘덕병이’를 찾았고 윤씨는 자연 ‘유지클럽’의 중요한 맴버가 되었어. 우리나라 야구루트 업계의 대 메이커 한국 야구르트의 윤쾌병 사장은 바로 덕병씨의 아우야. 이 기업의 실질적인 오너는 덕병씨가 아닌가 싶고 그 성장 배경에는 알게 모르게 박 대통령과 윤씨의 관계가 작용했을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 이 이야기는 관대하게 보아주면 인정미담이라 할 수 있을지 몰라. 문제는 권력자와의 관계에 따라 국사의 매우 중요한 자리나 공기업의 장 자리가 메워지고 자신의 실력이 아니라 권력자의 배후지원에 따라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평가되고 있다는 게 문제야.

“내가 형님한테 얘기드렸으니 그대로 밀고 나가”
한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 공기업 조직은 매출액이 지금은 30조원에 이르는 대기업이야. 거기다가 새로운 발전 설비 투자를 위해 외자차입을 하는데, 이게 또 한 30조원 되는 거라. 어마어마한 공룡기업이지. 공기업의 덩치가 크다는 것은 여기서 누출되는 자금이 많다고 보면 돼. 권력과 그 주변으로 흘러나가는 돈 말야. 그래서 경영합리화에 뛰어난 경영능력도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정치적 입지가 강하지 않으면 안돼. 그래서 사장에 기용되는 인물은 정치성을 띠어야 한다는 불문율이 생겼지.예를 5·16후 사장에 기용된 김영준씨는 9사단장 시절 쿠데타군의 진압 명령을 받고 출동을 하려는 찰나에 ‘잠시 정지’ 명령을 내려 쿠데타를 성공케 하고 그 공으로 박 대통령이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는 게 정설로 되어있어.한전 사장으로 자질과 덕목을 갖추었던 인물로 사람들은 성락정씨를 꼽고 있어. 이 사람은 공과대학에 강의를 나갈 정도의 실력을 가진 기술 출신의 한전 맨이지. 그는 지나칠 정도로 청렴했어.

무슨 때가 되어 부하들이 고기를 사들고 가면 아예 이웃집 담 너머로 던져 버릴 정도였어. 그래서 후진들의 많은 존경을 받았지. 그러나 이건 역시 이 거대 기업의 CEO가 되기 위해서는 필요조건의 하나일 뿐이지. 역시 권력과의 연결 라인이라는 충분 조건이 필요해. 12·12쿠데타 이후 전두환씨가 간판을 단 국보위에서 상임위원장을 한 이호씨와 성 사장은 처남 매부간이었다는 점, 이게 그 대답이야.성 사장은 그러나 한전 사장을 오래 못했지. 뭐 본인의 무능이나 실수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야. 한전과 한국중공업이 한판 붙은 거야. 발전설비를 주업으로 하는 곳이 한국중공업이니 한전은 왕 발주처지. 쉽게 말하라면 한전이 한중을 쥐고 흔들 수가 있는 틀이지. 당시 한중 사장은 박정기씨야. 만만치 않은 인물이지. 사사건건 두 거대 기업이 박치기를 하는데 아무래도 박 사장의 권력 접근이 더 강했어. 전두환 대통령은 하루 아침에 덩치나 규모나 상대가 되지 않는 두 기업의 사장을 맞바꾸어 버렸어. 엄청난 덩치의 공룡기업이지만 한전에는 사장 위에 사장이 있지.

CEO 회장격인 상공부 장관(현 산업자원부 장관)말야. 국가 정책과 계획이 걸려 있으니 두 사람의 CEO가 필요하다는 건 인정해. 그렇지만 그 관계가 완전히 종속적인 게 문제야. 수평적 최고 의사결정기구가 아니라는 사실이 바로 이 거대기업의 경영구조와 내막에 수상한 그림자를 항상 깔아 놓게 하는 근본원인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지. 그런 면에서 보면 박 사장은 정반대지. 파워 라인이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과 직통이라 ‘단독 드라이브’로 조직을 몰고 나갔지. 부하들이 미묘한 문제가 걸린 안건들을 들고 들어가 “상공부에 보고하러 가겠습니다” 고 하면 “그럴 필요 없어. 내가 형님한테 다 얘기 드렸으니까 그대로 밀고 나가” 하면 그만이었어. 박 사장이 유능했는지 아닌지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기업 조직의 보스로는 강한 인상을 남겼지.여기서 하나 관심을 끄는 것은 ‘형님’이라는 명칭이야.10·26사태가 난 후 뉴스의 초점이 된 인물은 단연 전두환 육군 소장이지. 강인한 얼굴에 눈치가 보통이 아닌, 별 둘을 단 이 군인은 대통령 시해 사건의 전말을 아주 실감나게 발표하곤 했지.

아마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이런 대목을 기억할 거야. “형님 이리 오시오!” 말야. 일을 저지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김계원 비서실장에게 한 소리를 전 소장은 아주 실감나게 전달하던 거 기억나. 정치가 마피아의 세계는 아니지만 역시 ‘형님과 아우의 세계’아냐. 군의 세계, 특히 권력 주변의 군 사회 역시 형님과 아우의 세계였다는 사실을 주목해 볼 필요가 없을까. 육군 중령이 육군 대령에게 혹은 육군 소위가 중위에게 ‘형님’하는 호칭은 있지도 않고 상상할 수도 없어. 그러나 별을 단 세계에서는 특히 이너서클에서는 자연스러운 호칭이 되고 그것은 은연중 정치세력으로 규합되는 코드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안 돼?신군부의 7년 정치는 이런 측면에서 보면 군이라는 집단 속에서 좌우가 통했다고 볼 수 있어.

진압쪽에 서 있었던 모 장군의 경우를 들어봐. 서울대에 다니던 아들이 행방불명이 되었어. 한창 대학가의 반정부 데모가 심한 때였으니 어디로 도망갔거나 경찰서에 잡혀간 줄 알고 있었지. 그런데 영 소식이 없어. 할 수 없어 부탁한 곳이 민정당의 권정달 쪽이야. 당시만 해도 ‘민정달이 권정달이’할 때지.“형님 진작에 말씀해 주시지” 하더니 지방의 어느 호숫가 인근에서 찾았다고 시체를 인계해 주었어. 세력은 적대적 위치였지만 서로 통하는 한계점이 있었던 거야. 군부는 무슨 신군부와 구군부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일 정치 세력이라 이 말이야. 결국 ‘형님 아우’의 협객정치는 다음 정치 세력까지 계속돼. 정치권력의 내부는 인물과 세력의 변화는 많이 가져 왔지만 이런 면에서는 변한 것이 없어. 오히려 박정희 시대보다 어느 면에서는 전 근대로 후퇴했다고 볼 수 있어.이제까지의 대통령은 DJ까지도 한 블록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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