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3류, 언론은 4류”
우리사회의 이너서클들이 언론계를 과연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기록했던 녹취록을 몇회에 걸쳐 공개키로 했다. 겉으로 이너서클들은 언론계 앞에서 더없이 친화적이고 저자세이다. 그러나 속으로는 ‘기업이 2류, 정치가 3류라면 언론은 4류’라는 평가를 하고 있음을 앞으로 연재될 일련의 기록들을 통해 알 수 있다.언론이 자기자리를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앞으로 몇차례에 걸쳐 ‘이너서클이 보는 한국의 언론’을 소개한다. 첫번째 기록은 동아그룹의 상속싸움이 치열했던 90년대 중반 한 중견 기업인의 증언이다.이너서클 ‘기업은 2류, 정치가 3류, 언론 4류’ 로 생각하는 경향한국 언론, 스스로 투쟁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에 편승
망나니 재벌 2세의 방패막이 역할
요즘은 재산싸움이 유행인가 봐. 동아그룹 최원석회장 모친 춘자여사가 서울신문에 광고로 호소문을 냈어. “이런 배은망덕한 연유로 해서 아들을 고발한다”고 주먹덩이만한(?) 글씨로 고발을 했더군.이런 걸 두고 ‘돈의 악마성 운운’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뒤에서 누가 펌프질을 하고 있는 느낌이야. 최회장 동생인 시사저널의 최원영이 쪽에 누가 붙었다는 설도 있고 하여튼 복잡해.최원석이는 워낙 젊었을 때부터 말썽꾼이었지. 아버지 최준문씨가 살아있었을 때에도 보통 골치를 썩인 게 아니라더군.그때마다 이환의 MBC사장이 많은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는 거야. 스캔들이 빈번했거든. 그래서 K주간신문의 L부장을 통해서 돈으로 입을 막곤 했지. 각 언론사 문화부장들에게도 입을 막기 위해 돈을 풀었어. 그런데 L부장은 이사장에게 올라와 다시 ‘베팅’을 하곤 했지.이런 적이 있어.
돈을 풀었는데도 나중에 여원사(여성잡지사) 사장이 된 ‘콧수염’ 김재원이가 “재벌 돈 먹고 안 쓴다는 건 말도 안된다”고 버틴다는 거야. 그러니까 이 사장이 대뜸 최준문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그러니까 즉각 거금이 송금되어 오더란 얘기야. 배우××, 김××, 또 누구누구 하고 여자관계가 복잡도 했지. 다른 얘기로는 어머니 춘자여사와 고부간 갈등이 항상 도화선이 되어 최회장이 부인을 셋이나 갈아치우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 이번에도 최회장 부인인 펄씨스터스 언니와 시어머니 사이의 갈등이 잠재적 뇌관으로 작용했다는 설이 있어.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본인의 심성에 딸린 문제야. 최회장은 대전인가 지방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서울 경동고로 진학했는데 ‘왕초’ 노릇을 했어. 돈으로 무리를 거느리고 다니며 악동 노릇을 했어. 그러다가 퇴학 처분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갔지. 아마 지금 동아그룹 다스리는 힘도 폭력적 권위인지 몰라.자기가 번 돈이 아니니까 손도 커. 왕창 왕창 주는 거라.
최원석이 학생시절 가정교사를 하다가 나중에 MBC기자를 한 사람이 있는데 최회장을 찾아 가기만 하면 “어이구, 선생님!”하면서 거마비를 뭉턱뭉턱 내놓곤 했어. 이 친구는 나중에 최한테 가서 찔끔찔끔 이렇게 신세를 질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 부탁하는 거라고 하면서 몇억을 요청, 그걸 받아 가지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해.어떻든 최준문-최원석-MBC는 이런 저런 인연으로 얽혀(MBC 주식소유 정수장학재단에 동아그룹이 출연) 나중에 이환의 사장이 백수가 되었을 때 동아그룹 재단인 백제문화 이사장 자리를 마련해 주었지.재벌 마나님들의 안방 파워들은 대단한데 쌍룡의 김석원이도 어머니가 장가 두 번 보냈다는 설이야. 점을 보았더니 며느리 상에 횡액이 끼었다는 거야. 그 며느리로는 집안 망한다는 소리지. 그래서 대구엔가 가서 미모가 빼어난 국민학교 여선생을 하나 잡아 온 거라는 거야.
그들의 언론관<2>
“그게 다 가짜놀음이라”
지난 96년 7월 언론사에 일대 불상사가 발생했다. 부수 확장운동을 벌이던 중앙일보와 조선일보 지국이 충돌, 조선일보 직원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여론은 그 무렵 삼성그룹 계열사였던 중앙일보가 금력을 앞세워 사세를 키워가던 과정에 발생한 사건으로 규정, 재벌의 언론소유를 비판하는 쪽으로 흘렀다. 필자는 당시 각계 고위인사들과 만나 이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녹취했다. 제3자의 시각은 냉정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언론재벌과 재벌언론간 격돌’이라는 것이었다. 아울러 한국의 언론자유는 언론 스스로 투쟁을 통해 쟁취한 게 아니라, 다른 민주화운동에 편승해 얻었다는 점에서 근원적 한계를 갖고 있다는 날카로운 지적도 나왔다.이 사건이 있은 지 5년이 지난 지금, 조선·중앙 두 신문은 한국의 양대신문으로 자리매김됐다. 5년전에 비해 지금 한국언론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다음 세 명의 녹취록을 곱씹어 읽어볼 일이다.
1.
보도를 보니까 신문사 사이에 불상사가 일어났더군. 중앙일보 지국장이 조선일보 지국을 습격, 직원을 찔러 죽였다는 거야.오늘은 피해자 측인 조선일보가 총공격을 했어. ‘삼성 내부자 거래 집중조사-국세청, 이건희씨 집 인근 땅 전매과정 등’ 기사로 두들기고 3면 사회면 제2사회면을 통해 중앙일보의 무차별 판매전, 재벌언론을 파상공격했어. 동아일보도 ‘재벌의 언론 소유 시정하라’는 사설을 띄워 동참을 했지. 칼로 사람을 찌른 사건이 났으니, 더욱이 그게 언론사의 울타리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니 방방 뛸 만도 하겠지.그런데 두 회사의 한 회사에 대한 보도 폭격은 좀 웃기는 구석이 있어. 이 살인을 부른 내부구조를 파헤칠 생각은 안하고 ‘이 놈은 죽일 놈’ 식의 예의 인민재판식이야. 그래, 다른 신문들은 판촉경쟁 안하나. 다 똑같이 하지. 그런데 문제는 중앙이 금력을 동원해서 극성맞게 시장을 휩쓸고 있어 모난 돌 정 맞기가 된 거 아니겠어. 지국장 살해 사건은 따지고 보면 미묘한 흐름 속에서 터져 나온 신문업계의 치부야.
나도 신문사 밥을 먹어 보아서 알지만 “좋은 신문 만들면 잘 팔린다” 이거 교과서에나 있는 소리라고 판매국장은 발을 동동 구르지. 그럼 뭐냐. ‘실탄’이지. 실탄공세를 해야 독자인 소비자가 움직인다는 거지. 선물 사서 돌리고 판촉사원, 배달사원 한테 돈 퍼부어야 된다는 논리이지.옛날에 배달소년 앞세워 신문 이미지 높이던 것 그거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야. 게다가 판매조직이라는 것은 본사 사원하고 또 달라. 각자가 자기 영업단위를 가지고 있어. 본사 판매조직도 회사에 속해는 있지만 거대한 신문판매시장 메카니즘 속에 발을 담그고 있지. 회사보다는 그 쪽 영향권에 있다는 말이야. 회사도 신입사원 뽑지만 우수한 인력을 판매 쪽에는 보내지 않아.기자들을 징계할 때도 나가라고 할 수 없을 때 판매국으로 보내. 그래서 판매조직은 본사에서는 ‘소외지대’이면서 의무와 업무 하중은 엄청나. 그러니 조직 성원들은 매일이 갈등의 연속이야.결국은 회사 입장에서 볼 때 이들의 충성을 읽는 매개체는 돈 뿐이야.
아마 모르긴 해도 지금 중앙 쪽에 있는 기자나 사원들은 갈등 반 감정 반일거야. 하긴 조선, 중앙이 “콩기름으로 인쇄한다”고 떠들어 대자 “나머지 신문은 공해나 만들어 낸다는 말이냐”고 싸잡아 비판하던 동아일보도 이 사건이 나자 내부 회의에서 조율이 있었는지 방향을 ‘중앙 타도. 재벌언론 타도’로 바꾸었어.옳은 논조야. 재벌이 언론해서는 안돼. 창과 방패 역할을 하거든. 더욱이 신문권력이 막강해진 지금 그 폐해는 깊이 짚어 보아야 할 만큼 상황적이고 구조적이고 교묘한 데가 있어. 따지고 보면 이번 사건은 신문의 상업주의와 패권주의가 충돌했다는 게 그 본질이라 할 수 있어.그럼 패권주의를 추구하는 쪽은 ‘상업주의 배격인가.’그건 또 아니야. 결국 이 싸움은 헤게모니 쟁탈전이야. 싹쓸이를 하고 싶은 숨어있는 상업주의가 어느 쪽에나 팽배해 있지. 조선일보는 정통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진짜는 상업주의로 성공한 신문이야. 그 기득권에 대한 도전을 용서 안해. 도대체가 진흙탕 싸움인데 가다가 보면 누가 가해자인지 누가 피해자인지 뒤죽박죽이거든.
2.
야, 두 신문(조선 중앙)이 콩기름으로 인쇄한다고 선전이 요란하더니 이제는 콩가루 같은 언론계 치부를 드러내는 싸움이 한창이더군.우리 눈에 비치는 건 말야 이게 국가 사회를 걸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저희들 집안 싸움이라는 거야. 다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뀔 수도 있는 게 이번 신문 배달원 치사사건이지. 하긴 용어도 정확하게 써야 할 터이지만 이번 사건은 ‘살인’이 옳아 ‘치사’가 옳아.뭐, 그냥 칼 들고 들어갔으니 살인이라구? 그건 그렇다 치구 내가 보기엔 무슨 언론의 공적 기능, 재벌언론의 폐해론 이런 게 제목으로 나와 있지만 그게 핵심이 아니야. 누가 시장 잡느냐는 쟁탈전이 핵심이야.
그러니 오히려 사건 이후 벌어지는 싸움이 몽땅 왜곡 보도, 왜곡 전파이지. 하긴 조선, 동아, 한국 등 조간 3사가 다 재벌언론에 대해 총공세를 펴고 있으니 누가 ‘그게 아니다’라고 입도 뻥긋 못하고 있지만 결국 조선 이외에는 삼성 쪽이 광고로 ‘쇼부’를 칠 것이고 조선쪽도 ‘끝장을 볼 수 없는 싸움’이니 펜으로 두들겨 패 시위나 하고 특별광고와 진사를 받고 끝내겠지. 안 그래?누가 경제 2류, 정치 3류 어쩌구 했다가 혼나기도 했다지만, 이번 사건은 언론의 저질성을 드러낸 ‘4류 신파극’ 수준이야. 이런 소리는 공개적으로 했다간 인격살인까지 당할 정도로 언론은 폭력적이라 정식 글도 못 쓴다며. 또 그런 글이 어느 쪽 매체에 났느냐에 따라 ‘이용문건’으로 되어 오해를 받게 되기도 하구 말야.
우리 신문의 비극이 뭔지 알아. 그렇게 ‘열린 사회’ ‘비판정신’ ‘정론’ 어쩌구 떠들면서 자신들에 대해서는 보통 관대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바로 그점이야. 신문을 비판해줄 때도 두리뭉실로 해야지 ○○신문 하고 제호를 걸어서 비판하면 알레르기 반응 왕창이지. 큰 신문일수록 더해. 너희들이 수백만 독자를 뭘로 알고 그러느냐 식이지. 그러니 우리는 ‘반성한다’ ‘자괴한다’ ‘스스로 비판한다’며 사고(社告) 내고 목소리 높여도 그게 다 ‘가짜놀음’이라. 대중 비판에 대한 방패막이로 동원된 방법 밖에 안되는 거라. 하긴 정부도 뭐 일만 터지면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대책을 세운다 하지만 그거 다 똑같은 이치야.<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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