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어도 털어도 먼지 안 나는 투명경영”
“털어도 털어도 먼지 안 나는 투명경영”
  • 언론인 배병휴 
  • 입력 2007-11-06 11:33
  • 승인 2007.11.06 1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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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휴의 재계 원로 탐험<17>

심갑보 삼익 THK 부회장

세미나와 토론회 맨 앞자리에서 캠코더로 강연 내용을 촬영하는 삼익THK 심갑보 부회장을 자주 만날 수 있다. 녹음기와 카메라로 기록하던 것이 언제부터인지 자동 녹화시스템으로 발전한 모습이다. 삼익THK는 반도체 장비용 특수 베어링을 제조하는 투명 경영업체로 오래전부터 알려졌고 심 부회장은 장수 전문 경영인으로 명성을 쌓아왔다. 심 부회장은 지금껏 수천 개의 녹음테이프를 축적해 온 세미나 기록광이지만 그 자신 발표자와 토론자로도 활약하고 있다. 그래서 국내 최대 녹음, 녹화기록 속에는 자신의 기록물도 보관돼 있음은 물론이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삼익THK 서울지사의 심 부회장실에 들어서면 우선 원로 경영인의 사무실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두 대의 컴퓨터, DVD플레이어, VTR복사기 등의 최신형 미디어 장비 등이 갖춰져 있고 책상위에 쌓여 있는 업무 서류, 벽장을 도배한 수많은 CD와 책들이 마치 젊은 증권 전문가의 사무실을 연상시킨다.


재무부와 특관세 싸움서 승소

환갑을 훨씬 넘긴 나이에도 심 부회장은 젊게 산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수많은 세미나에 참석하고 각종 노사 문제 관련 단체활동과 인간개발연구원 부회장으로서 경영인들에게 기업 경영에 관한 노하우를 전수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심 부회장은 영세기업이던 회사를 굴지의 중견기업으로 발돋움하게 한 결정적인 공신이다. 삼익은 첨단 공장 자동화기기인 LM(직선운동 베어링)시스템 제조업체로는 국내 선두로 삼성, LG, 현대 등의 대기업을 상대로 거래를 해 한국 산업발전의 뒤편에서 단단히 한 몫을 한 기업이다.

삼익이 LM적용기술을 국내에 도입할 당시만 해도 일부 공작기계나 단순 이송장치에 국한되었던 수요처가 지금은 반도체 제조장비, LCD제조장치, 각종 로봇을 비롯한 자동화 장치 등 수요가 산업전반으로 확대되면서 직선운동부문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고조돼 가고 있다.

삼익은 60년대 대구에서 설립한 회사로 초창기에는 종업원 8명이 열악한 환경에서 공업용 줄 생산을 했던 영세기업이었다.

그러나 삼익은 10년을 단위로 크게 변모하며 성장해 왔고 이 변화의 중심에 심 부회장이 있어왔다.

심 부회장이 처음부터 경영에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교수가 되고자 하던 중 부친의 갑작스런 작고로 물려준 건설회사를 이어받아야 했다.

토목이나 건설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정치학도가 건설업을 하려고 하니 막막했다고 회상한다. “아는 것이 없어 무작정 공부부터 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1년 만에 토목 기술자 2급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곧 건설이나 시공방면에 실무를 익혀 무리 없이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심 부회장은 사업을 삼촌에게 양도하고 68년 단신 상경하게 된다.

“어떤 한계 같은 것을 느꼈고 보다 큰 세상에서 승부하고 싶었습니다” 라며 이유를 설명한다.

서울에 온지 2년 뒤인 70년 장인의 회사였던 삼익THK의 전신인 삼익공업에 상무이사로 새 출발했다. 입사할 당시만 해도 삼익은 줄과 삼익쌀통 두 가지 품목을 생산판매하고 있었다.

사업에 처음 뛰어들었을 때 심 부회장에게 주어진 임무는 기업 존속이 어려울 정도로 과도하게 부관된 특관세를 재무부에 소원하는 것이었다.

“처가 회사에 상무이사로 입사해 주위의 따가운 눈총이 있었습니다. 이를 극복해야 했죠. 그때 이일을 성공시키면 상무이사 자격이 있고 그렇지 못하면 물러나야 한다,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야 능력이라고 생각하며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하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는 일개 영세 기업이 정부를 상대로 하는 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때문에 아무도 이것을 해결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니 심 회장의 끈질긴 노력으로 결국 승소를 얻어냈고 징수당한 세금의 80%를 돌려받았다.


경영대학원 강의 내용 몽땅 녹음

당시 100개 업체가 소원을 냈는데 그 중 3개 업체만 승소했었다니 얼마나 힘든 작업이었나 짐작이 간다. 회사는 돌려받은 자본으로 대구본사와 서울 사무소를 개설할 수 있었다.

능력을 인정받고 회사 경영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장인인 창업주 진우석 회장의 배려로 고려대 경영대학원에 입학해 경영자로서 기초를 닦게 되었다.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다닐 때부터 모든 강의를 녹음해 와 집에서 몇 번이고 다시 듣곤 했죠. 요즘처럼 작은 녹음기가 없어서 커다란 녹음기를 들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오면서 녹음한 것을 듣곤 했습니다.” 강의를 녹음하는 습관은 이때부터 생겼다고 한다.

이때 대학원이나 세미나 수강을 통해 ‘시스템’에 의한 영업관리체제를 구축하지 않으면 회사의 정상적인 성장과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외국의 대형회사들과 관계를 맺고 있던 동아제약, 유한양행, 대웅제약 등 제약회사들의 선진 영업관리 시스템을 벤치마킹, 성공적으로 도입해 눈에 띄는 실적향상을 이뤄냈다. 그 후 75년 서울영업본부를 설립해 정착시켰으며 신용위주의 철저한 거래를 해 대손율이 가장 적은 회사로 거듭났다.


노동집약에서 기술집약으로 변신

80년대 들어 삼익은 공장자동화 부품 메이커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등 크게 변모했다. 노동집약 제품인 줄과 쌀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 아래 기술집약산업으로 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우선 기계 자동화의 필수 부품인 직선운동 베어링를 세계적 메이커인 일본 THK사로부터 수입,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줄과 쌀통으로 구축한 전국 영업망을 최대한 활용했다. 경영성과는 성공적이었고 89년에는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에 만족할 순 없다고 심 부회장은 말한다. “외국제품을 국내에서 판매만 하는 것은 외국 생산자에게 국내 시장을 열어주는 역할 밖에 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THK사를 끈질기게 설득, 91년 합작 투자 및 기술도입계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이 계약에 따라 대구에 LM가이드 공장을 준공하고 자체 생산에 들어갔다. 세계적인 기업인 일본의 THK와 합작 및 기술도입을 통해 LM가이드 직선운동 베어링 국산화를 이룩한 것이다.

마침 공장 자동화 열풍이 거세게 몰아치면서 직선운동 시스템 사업의 중요성이 크게 증대돼 가던 시기였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그 후 이 사업을 오늘의 주역 아이템으로 성장시켜 국내 제1의 직선운동분야 전문 메이커로 자리 잡았다.

삼익은 지금도 국내 시장 점유율이 80%이상인 창업품목 중과 LM시스템 등의 자동차 관련부품 사업만 집중 육성키로 하고 99년까지 구조조정을 마무리 지었다.

현재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르노삼성자동차 등에 LM시스템 등을 납품하고 있다. 삼익의 변신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30년간 세미나 3600회 참석

심 부회장은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한 후에도 시대의 변화에 맞춰 단기 과정에 수시로 참여해 실무 공부를 계속했다. “초기에는 경영실무에 도움이 되는 과목을 많이 들었죠. 하지만 우리나라가 초기 산업사회에서 후기 산업사회, 다시 정보화 사회로 급변하면서 공부의 범위를 계속 넓혀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국내는 물론 세계경제의 전망, 기업 경영전략 같은 폭넓은 주제의 세미나를 찾기 시작했다. 경제단체나 대학, 연구소, 공공기관 등이 주최하는 세미나, 심포지엄, 조찬회, 학술대회 등에 30년간 3600번이나 참석하는 기록을 세워 ‘세미나 광’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동시에 서울대 경영대 최고경영자과정과 공과대 최고산업전략과정, 전경련 정보전략최고경영자과정도 이수했고 모교인 영남대에서 명예정치학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심 부회장은 항상 제일 앞자리에 앉아 보이스 펜으로 녹음하면서 청강하는 열성 학구파다. “대학원 시절부터 제가 다니는 강의마다 녹음하고 주요인사의 TV방송까지 녹화했습니다. 그랬더니 꽤많은 영상자료가 쌓이더군요.”

심 부회장이 안내해 준 집무실 옆 자료실에는 세미나와 방송강연, 대담프로를 녹음, 녹화한 테이프 4700개가 진열돼 있어 방송국 자료실을 연상시킨다.

이 자료들을 디지털화해서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바람이다.

“세미나에 참석해 공부한 것만 가지고 그쳐버리면 의미가 없습니다. 이것을 변형하고 가미를 해서 실제 경영에 사용 해야죠”라는 지론을 펼친다. 심 부회장은 세미나에서 녹음한 테이프를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몇 번씩 반복해서 들어 반드시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낸다.


털어도 먼지 안 나는 회사 명성

심 부회장은 기업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정도경영을 강조한다. “뒷돈이나 비자금을 쓰는 기업들은 결국 망한다고 생각합니다. 검은 돈을 썼다면 정의 회사도 여태껏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70년대 중반 삼익도 전자 밥솥, 전자 밥통 같은 가전용 전자제품을 생산한 적이 있다. 그런데 대다수 경쟁업체들은 부가가치세와 특소세 등을 관행적으로 탈루하는 바람에 탈세하지 않고는 도저히 경쟁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세금을 탈루하지 않고서 사업을 유지할 수 없다면 생산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며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면서 조업을 중단하고 말았다. 또한 76년에 경쟁업체의 모함으로 대구 지방국세청으로부터 세무사찰을 받은 적이 있다. 정밀조사 결과 무혐의 판정을 받았는데 당시 대구지역에서 세무사찰을 받고서도 무혐의 처분을 받은 업체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때 “털어도 털어도 먼지가 안 나는 회사‘라는 소리를 들었다.

심 부회장은 “우리나라에서 40년 이상 꾸준히 성장해 온 기업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부정한 방법과 결탁하지 않은 정도경영으로 영세기업을 중견기업 규모로 키워낼 수 있었던 겁니다” 라고 얘기한다.

<다음호에 계속>

언론인 배병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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