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大富)는 하늘의 뜻 소부(小富)는 근면이 이룬다
대부(大富)는 하늘의 뜻 소부(小富)는 근면이 이룬다
  • 배병휴 언론인 
  • 입력 2007-09-17 16:22
  • 승인 2007.09.17 1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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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휴의 재계 원로 탐험 ⑮
-정형식 일양약품 명예회장

국내 최장수 제약인으로 꼽히는 일양약품 정형식(鄭亨植) 명예회장은 몇 안 남은 창업1세대로서 옛 고생을 감미롭게 회상하는 분이다. 올해도 여든이 훨씬 넘었지만 70년 전 제약업과 첫 인연을 맺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려웠던 세월의 사업과 삶을 매우 소중한 교훈으로 들려준다. 정 회장의 말과 글에는 고진감래나 칠전팔기 등 옛 사람의 행동가치가 많이 담겨 있다. 정 회장 스스로 온갖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분골쇄신해 왔다고 회고하며 요즘의 젊은 기업인뿐만 아니라 자신의 2세들에게도 한 번 더 고생을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정 회장은 약사도 아닌 자신이 제약업에 참여해 국내 1위, 2위를 겨룰 만큼 성취한 것을 보람이자 복이라고 해석한다. 그렇지만 60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동안 노력했지만 재벌과 같은 큰 부를 쌓지 못한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재운의 한계라고 인식하며 만족하려 한다.

‘대부는 하늘이 내리고 소부는 근면과 성실로 이룩하는 법’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정 회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재운만큼 소부를 쌓아 자식들에게 물려 줄 수 있었으니 얼마나 행복하냐고 스스로 자위한다.

정 회장이 일양약품을 창업해 회사를 발전시켜 온 세월은 일제식민지, 8·15혼란, 6·25 전쟁과 그 뒤의 사회변혁 등 격변기의 도전과 성취였다. 태평세월의 거의 없었기에 오늘의 성취는 고진감래이며 칠전팔기 등 값진 땀의 결실이라는 뜻이다.


살아온 세월 고생했지만 보람

정 회장은 5남매를 둬 아들 넷이 사업활동에 참여하고 딸 하나가 출가해 잘 살고 있으니 스스로 다복이라 자부한다. 그렇지만 약사 자격증을 지닌 장남이 기업을 경영하면서 비 약사인 자신보다 아직은 큰 성과를 못 올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혀를 친다.

정 회장은 그것도 주어진 운이자 세월의 변혁을 겪고 있는 과정일 것으로 해석한다. 자식이 신의와 성실을 신조로 정도를 벗어나지 않으면 반드시 일양약품은 더욱 크게 번성하게 되리라고 기대한다는 심정을 밝혔다. 인생은 선천(先天)에서 자질과 소질을 받아 가지고 태어나 후천(後天)에서 생활하면서 변천돼야 한다. 생활전선에서 승패를 가늠하자면 물론 승자가 돼야 하고 기업을 성취할 목적이라면 심신을 굳게 연마해 좌우명을 세워 이를 달성해야 한다.

만약 목표를 세워 모진 혈전을 벌여도 목표달성이 미흡하다면 타고난 선천적 운명의 장난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과욕을 부리게 되면 역으로 불행을 좌초하게 된다. 속담에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말라’고 일러 주었다.

예부터 재운에 따른 ‘대부는 유천(由天)’이라 했으니 큰 부자는 하늘에게 내려진 큰 복이다. 반면에 소부(小富)는 유근(由勤)이라 했으니 근면하면 작은 부자는 이룩될 수 있다.


대부(大富)는 하늘의 뜻 소부(小富)는 근면

그래서 작은 부자라도 되려면 성실과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라고 하루라도 열심히 하고 부지런하면 천하에 걱정할 것이 없다.

모름지기 자신에게 주어진 소부의 목표를 기치로 삼아 진실로 성심을 다하되 뼈아픈 노력이면 고진감래이니 초년고생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다. 월간 경제풍월이 언론인 출신의 발행인에 의해 창간돼 5주년 기념행사를 가진 자리에서 진념 전 경제부총리 등이 축사를 보내는 장면에 감명을 받았다.

잡지사 창간과 발전도 운영 책임자가 심신을 다 쏟으면 성공한다고 믿기에 긍지를 갖고 정진토록 기력을 보태주고 싶어 필자가 70년 전 제약업과 인연을 맺은 과거를 잠시 소개코자 한다.


47년 전 일양약품 창업 회고

필자(정 회장)도 20년간 샐러리맨으로 종사하다가 권태증이 생겨 독립하기로 발의했었다. 그러나 자금도 없이 약국을 운영하다 전업을 하겠다고 택한 것이 1957년 일양약품의 설립이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 경제는 기본생활이 보장되지 않은 극빈국 처지였으니 생존을 위해 모진 고생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로부터 고생이 헛되지 않아 제약업계의 선두그룹에 속하는 발전도상의 기업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뒤에는 기업을 영속시키는 것이 나의 목표이자 사명이었다.

장남에게 경영권을 물려준 것이 바로 기업의 영속적 발전으로 염원했기 때문이다.

기업은 전문 경영인에 의해 책임경영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장남에게 상장기업 경영을 맡긴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필자는 약사가 아닌 비전문가로 제약업에 참여했지만 마침 장남이 약사 자격증을 획득했으므로 경영권을 이양하는 것이 순리라고 판단했다. 차남은 경영학을 공부해 약품원료 공장인 동방FTL(주)을 책임지고 국내 공장과 중국 상해에 있는 가흥동방 생명화학 공장을 잘 운영하고 있다.

또 3남은 고려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성균관대 약학과에 편입, 약사가 돼 10여 년 전 일본 동경에서 무역업을 경영하고 막내인 넷째는 연세대 법대를 나와 미국에서 회계사 자격을 획득해 국내에서 금보 투자자문을 경영하고 있다.

이렇게 자식들에게 제 할 일을 찾아 주었으니 행복하다고 자부한다. 다만 장남이 경영하는 일양약품을 제외하고 삼형제들의 사업체는 소규모이지만 이는 각자에게 주어진 운수소관이라고 믿는다.


성실과 신의를 신앙처럼

필자의 소망은 오직 자식들이 성실과 신의를 신앙처럼 믿고 기업가로서 책임을 다해 줄 것뿐이다. 만약 생부이자 창업자의 신조를 훼손하게 된다면 불행해 질 수 밖에 없다고 믿는다.

필자는 약업계에 진출한 지 70년간 국가와 사회에 누를 끼치지 않고 오직 정도와 성실을 신조로 앞세워 운과 노력으로 기업을 이룩했다는 사실을 자식들에게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다.

필자가 오랫동안 분골쇄신 했지만 재벌처럼 대부를 이룩하지 못한 것은 나에게 주어진 선천적 대운의 한계라고 자위하며 현실에 만족하며 여생을 보내고자 한다. 다만 자식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말은 ‘아비가 걸어온 길’은 ‘7전8기’를 넘어 ‘9전10기’와 같았다는 사실이다.

일양약품은 ‘노루모’와 ‘원비D’로 사회적 지명도가 높아진 제약 명문이다. 노루모는 ‘술마시기 전후’에 속 편하도록 복용하고 원비D는 영양실조 시절 살찌고 싶은 우리네 소망이 담긴 드링크류다.

정 회장의 제약회사 창업기와 성장기가 배고프고 설사병 잦은 시절이었다. 야근과 특근으로 경제개발에 몰두할 때 과로와 피곤을 달래기 위해 소주를 마시고 배탈 나고 설사도 잦았다. 그래서 ‘술 마시기 전후’에 노루모 한 봉지가 샐러리맨들의 필수품이었다.

정 회장은 홀어머니가 품팔이로 어렵게 꾸려가는 집안에서 이사를 자주 다니며 자랐다.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지극한 것은 당연했다.

옛부터 효도는 대물림 된다고 했다. 정 회장이 모친에 대해 지극한 효심을 보이자 이를 지켜보고 자란 5남매에게 효심이 대물림되었다.

특히한 것은 정 회장이 자식 5남매 부부에게 ‘부모 은공은 100배 갚으라’는 서약을 요구했던 일이다.

이에 따라 1990년 12월31일자로 장남 정도언 회장 부부를 비롯한 5남매 부부 10명이 서약서를 작성하고 서명, 날인했다.

서약서는 3가지를 굳게 약속했다.

첫째, 부모님께 베풀어 주신 은덕을 채무액으로 환산하면 저희는 7억원의 채무자입니다.

둘째, 저희들은 만60세가 되기까지 채무를 상환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사회에의 기여와 기업확장을 통해 채무액의 100배인 700억원을 조성해 갚아 드리겠습니다.

셋째, 이 같은 서약을 생애 최대의 목표로 삼아 부모님께 효도하고 5남매가 화합과 우애로 결합해 은공에 보답하겠습니다.


효도 집안서 효도서약을 받아

이처럼 특히한 효도 서약이 정 회장이 물려받은 효심과 가풍의 대물림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은 5남매의 서약이 성취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더 이상 강요하거나 간섭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회사를 맡기고 물러난 이상 경영을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만약 자식이 도와 달라면 경험을 도와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 회장은 아직도 건강하고 의욕이 넘친다. 얼마 전 건강진단을 받았더니 “뭣이 나쁘다고 하길 래 간단히 수술했다” 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단지 술은 입에 대지 말라고 해서 참고 있다고 밝힌다.

새벽 5시30분쯤 기상해 걷기도 하고 가까운 이들과 골프를 즐기고 있으니 ‘이만하면 다복’아니냐고 자신한다.

고생을 모르고 자란 세대들이 정 회장의 칠전팔기와 고진감래이야기를 듣고 감명을 받을까. 코웃음 칠까 궁금한 심정이다. 그러나 우리네 경험세대가 듣기로는 콧날이 시큰해지는 감동이다.

배병휴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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