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기보다 쓰기가 어렵고, 살기보다 죽기가 쉽지 않은 법”
“벌기보다 쓰기가 어렵고, 살기보다 죽기가 쉽지 않은 법”
  • 배병휴 경제평론가 
  • 입력 2007-06-11 16:12
  • 승인 2007.06.11 1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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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휴의 재계 원로 탐험 ①
“세월은 바뀌어도 때론 피가 끓는다오”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은퇴한 유명 기업인들은 뭘 하고 있을까. 궁금하지만 쉽게 만나주지 않는다. “은퇴한 사람인 줄 알면서 뭐하러 찾아오느냐”는 뜻이다.
코오롱그룹 이동찬 명예회장은 찾아 올 테면 오라고 해 놓고 “뭔 일이 있어 왔소?”라고 반문한다. “미리 일러두지만 늙은이 이야기는 어떤 내용이건 쓰면 안 된다”고 못을 박는다.
그래서 한 시간가량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지만 한마디 메모도 하지 못했다.


이 명예회장은 노욕이 어떤 것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늙어 욕심을 다 버려야 할 때 쓸데없는 욕심 못 버리면 주위사람이 피곤하고 보기에도 흉하다는 지적이다.


노욕(老慾)이란 스스로 경계해야

그러면서 “난 세상을 떠난 이니 묻지도 말고 들을 생각도 말라”고 당부한다. 코오롱그룹에 관해 궁금한 것이 있거든 과천으로 가보라고 일러준다. 아들 이웅열 회장이 과천 빌딩에 있지만 경영과 관련해서는 이미 부자간에 절연했노라고 강조한다.

이 명예회장은 “나는 무교동 세대고 그 애는 과천 세대이니 남남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년 넘게 정든 이 사무실마저 곧 옮겨야 할 것 같다고 들려준다. 사옥이 외국인에게 팔렸으니 나가라면 옮겨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이 명예회장이 “난 세상을 떠난 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행여 노욕 증세라도 비칠까봐 극도로 경계하는 말이다. 벌써 10여년 가까이 은퇴했는 데도 명예회장이라면서 찾아와 이것저것 묻는 이가 있어 답답하다는 심정이다. 그래서 ‘난 세상을 떠난 이’라고 막말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이 명예회장의 활달하고 시원한 어법은 타고 난 성품이다. 숨기고 꾸밀 것이 없는 솔직담백한 성품 그대로 “나는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게 된 늙은이”라고 말한다.

“명예도 돈도 다 성취했었는데 더 이상 무슨 미련이 있겠는가. 좋은 집에 먹을 것 있고 친구들 만나 담소할 수 있는 사무실이 있고 죽을 때까지 돈 아쉽지 않을 테니 이보다 더 바랄 것이 있겠는가.”

이런 심정으로 이 명예회장은 세상만사를 아무런 조건 없이 볼 수 있게 됐노라는 최근의 심경을 밝힌다.

이 명예회장은 각종 스포츠단체에 헌신했고 스스로 등산과 골프 등으로 건강을 자신했던 분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의사가 하지 말라’던가 ‘골프는 나인 홀만’이라던가 하는 건강 조심이 입어 붙어 다닌다. 지난 1999년 해외여행 시 급병으로 큰 고비를 넘겼기 때문이다.

이 명예회장은 “한 시간 반 가량 저승세계에 갔다 돌아왔다”고 거리낌 없이 털어놓는다. 그때 “염라대왕이 조금 일찍 왔으니 돌아가라”고 해서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왔노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그때부터 의사가 시키는 대로 조심하지만 “내게 주어진 나날을 속으로 계산하면서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듣고 보면 울적한 심정인 데도 이 명예회장은 아주 명랑한 표정으로 쉽게 내심을 드러낸다.

선친 이원만 회장이 아흔한 살에 별세했는데 자신도 그만큼 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염라대왕의 귀띔이 아니겠느냐는 말이다.


염라대왕이 조금 있다 오라기에…

이 명예회장은 선친이 타계하기까지 지극 정성의 효심을 보여 재계의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리고 외아들 이웅열 회장도 효심을 되물림 받은 것으로 소문이 났다.

여강 이씨 전통 양반가문의 혈통이 살아있는 집안이다.

그렇지만 딸 다섯, 아들 하나를 교육하고 출가시켜 놓고 ‘더 이상 아비에게 기대지 말라’고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이미 자식에게 기업을 물려 줬는데 김서방이니 이서방이니 하는 사위들이 찾아오면 되겠는가.

출가한 딸들이 무슨 날이라는 명분으로 구두나 티셔츠와 같은 선물을 들고 찾아오는 모양이다. 당연히 친정아버님의 건강을 염려하고 노후 취미생활을 보살펴 드리기 위해 정성을 보일 수 있는 일이다.

이를 모를 턱이 없지만 이 명예회장은 매정하게 야단쳐 돌려보내는 성품이다.

“제발 찾아오지 마라. 선물도 가져오지 말고 도로 가져가라”고 면박을 준다. 게다가 “내가 죽을 때 남은 것 모두 나눠 줄 테니 걱정 말라”고도 일러준다. 딸들이 듣기 민망해 왈칵 눈물이 쏟아질 말이지만 이 명예회장은 실제 그런 분이다.

남아 있는 주식이나 부동산 따위는 모두 딸에게 나눠주기로 작정하고 준비까지 해 뒀다고 소개한다. 그렇지만 지금 나눠 줄 생각은 없다고 한다.


우정(牛汀)의 자오(自娛)라…그림과 바둑

무교동 45번지 코오롱 빌딩 15층에 자리 잡은 이 명예회장 사무실은 넓은 편이지만 빈 공간이 없다(현재는 효자동 사무실로 이전) .

나지막한 책상과 응접세트 옆에 수채화가 가득한 간이 화실이 있고 휴식실에는 바둑판이 놓여 있고 사방에는 자랑스러운 선조와 관련된 옛 문집과 각종 전집, 시사물까지 빽빽이 진열돼 있다.

화실에는 하와이와 괌 바다풍경과 소나무와 정자 그림으로 들어찼다. 그림의 소재에서부터 채색과 구도를 설명할 때 이 명예회장은 가장 신바람을 느끼는 모양이다.

이 명예회장은 아호를 우정(牛汀)이라 부른다. 소처럼 미련하게 일 했지만 지금은 유유자적하게 지낸다는 심정을 담은 호다. 지난해 4월 서울 갤러리에서 이 명예회장이 특별히 아끼는 그림을 모은 자오의 그림전을 가진 바 있다.

자오란 스스로 심심풀이 오락 삼아 그린 그림 전시회란 뜻이다. 자오전은 산과 바위와 소나무, 그리고 바닷그림이 태반이었다. 평소 낚시를 즐겨 바다낚시와 민물낚시와 관련된 그림도 있었다.

바위와 소나무는 등산을 즐길 때 스케치했던 그림이다. 그러나 요즘은 등산을 그만 두었으니 더 이상 실감나는 산수화를 그리기 어려워졌다. 이 명예회장의 바둑은 1급 실력으로 알려졌다.

집무실 옆 휴식실에서 옛 국민학교 동창들과 내기 바둑하다 나와서 방문객을 빨리 내보내고 싶은 입장이다. 빨리 돌아가라는 눈치를 감추지 않는다.

“왜 내기바둑을 두시느냐”는 물음에 ‘재미’라고 솔직하게 답변한다. 그러면서 한수 물러 달라는 옛 죽마고우의 청을 끝까지 들어주지 않는 성미에 대해서는 ‘승부’라고 응답한다.

오랫동안 재계에서 궂은일마다 않고 봉사활동 많이 했던 우정의 자오는 이렇게 그림과 바둑과 낚시로 하루가 저문다.

비록 회사업무와 관련 없고 약속한 면담객도 없지만 이 명예회장은 매일 출근한다.

오랫동안 정든 현역시절 비서 한명을 친구나 말벗 삼아 일과를 시작하면 잠시 노는 틈이 없다. 평생의 반려인 자오꺼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선친 고집을 대물림 받아

이 명예회장의 선친 이원만 회장은 호걸다운 풍모를 자랑했다.

나일론 사업을 일궈 산업입국에 공헌하기도 했고 한량과 같은 풍류도 즐겼다.

이원만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을 조금도 두렵게 여기지 않는 성품을 보여주었다. 이 명예회장은 박 대통령이 참석하는 다과회에서 초청객들이 엄숙히 대기하고 있는 긴장된 순간에도 껄껄 웃으며 먼저 다과를 집어먹기도 했었다는 선친의 일화를 들려준다. 이 명예회장은 선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선친이 정계로 진출할 때 오기로 선거운동에 뛰어들어 상대를 이긴 전력을 신나게 자랑한다.

그러나 30대의 혈기가 왕성할 때 자신이 국회의원에 입후보하려다가 선친과 논쟁을 벌였던 일을 회상한다. 끝내 선친의 고집에 굴복했었지만 “아버님 고집은 말할 수 없지만 저도 고집이 있었다”고 털어 놓는다.

그때 선친은 “국회의원에 입후보하면 이래도 저래도 패가망신하니 그만두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당선돼 정계로 나가면 패가하고 낙선되면 망신이 아니냐는 말이다. 이 명예회장은 지금 되돌아 생각하면 정치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것이 ‘백번 잘된 일’이라고 해석한다.


“명예회장은 가만히 나둬야 명예”

박 대통령 시절 이후 김대중 정부까지 권력자들과 주변사람들에 대해 이 명예회장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요즘 TV와 신문을 보면서 역시 권력세계의 풍토는 예상이나 짐작과 한치도 틀리지 않는다고 혀를 찬다. 각종 게이트사건도 보고 듣고 있다.

그렇지만 ‘난 세상을 떠난 이’라는 말로 논평을 거부한다. 다만 정치하는 양반들이 마음을 비웠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겠느냐며 비웃는다. 한참 동안 이 명예회장 말을 듣고 있노라니 산중의 노승을 만나고 있는 느낌이다. 이 명예회장은 제발 명예회장이란 호칭도 붙이지 말아달라고 당부한다. 은퇴한 이에게 ‘명예회장
이 무슨 명예냐’는 지적이다. 억지로 주어져 붙어다니는 명예회장 감투가 아직도 너무 많다고 불평한다.

대한농구협회, 경영자총협회, 골프협회 등이 아직도 명예회장으로 대우하고 코오롱그룹 임직원들도 명예회장이라고 부른다. 명예회장으로 초청하는 행사도 많고 축사나 축배제의를 부탁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아예 얼굴도 내밀지 않고 불가피하게 참석해도 축사나 축배를 단연코 거부한다고 밝힌다.

그러니까 구태여 명예회장으로 예우하려면 불러내지도 말고 인사말도 부탁하지 말아야 다소나마 명예가 보존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현역시절 이 회장은 재계의 중요 감투를 많이 썼고 대부분 장수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스스로 원해서 회장 감투를 쓴 적은 없었다. 억지 감투를 많이 썼었다는 이야기다. 경총회장 14년은 초대 김용주 회장이 후임자를 찾지 못해 구두로 강요해 회장이 되고 다시 이 회장 후임이 없어 장수했던 경우다. 골프협회장 11년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당부로 어쩔 수 없이 맡았고 월드컵유치위원장도 강요되다시피 맡겨진 감투였다. 섬유산업 연합회장은 코오롱 그룹의 주력 업종이 섬유였기에 맡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명예 감투를 쓰게 되면 명예보다도 의무와 책임이 무거워 지는 것이 통례다. 이 명예회장은 경총회장 시절 보람의 일터 대상을 제정하고 경총회관을 건립한 큰 공적을 쌓았다.

그래서 경총회관에는 생전 흉상을 명예의 전당에 올려놓은 유일한 사례가 되고 있다. 경총회장으로 노사문제를 고심했을 것은 물론이다. 회사에 노사분규가 있어서는 곤란하기에 노사협상이 더욱 어려웠다. 이때 이 회장의 소박하고 솔직한 성품이 노조의 신뢰를 끌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노사협상으로 ‘보람의 일터’운동이 지금까지 지속될 수 있었다.


‘이상은 높게, 눈은 아래로’

이 명예회장은 현역시절을 회고하고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면 ‘이상은 높게, 눈은 아래로’라고 가르쳐 준다. 젊은 시절 이상은 높아야 마땅하지만 쓸데없이 눈을 높여 실패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절로 교훈이 생기고 신념이 쌓이는 법이다. 벌기보다 쓰기가 어렵고, 살기보다 죽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이 명예회장의 자서전 ‘일흔 살의 고백’이 ‘벌기보다 쓰기가, 살기보다 죽기가’이다. 책 제목처럼 이 명예회장의 삶의 철학이 바로 벌기보다 쓰기가 어렵고 살기보다 죽기가 쉽지 않다는 내용이다.

이 명예회장은 이 자서전에서 ‘오래 살았다’는 말로 서문을 시작했다. 실로 이 회장다운 성품의 고백으로 들리는 대목이다. 또 허울 좋은 양반 자식이란 대목에서는 회재 이언적의 16대 손임을 자랑스럽게 기술하고 있다. 실제 어느 양반 반열에도 뒤질 수 없는 양반 혈손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 명예회장은 ‘작은 것에서 행복이’라는 대목에서는 스스로 ‘짜다’는 소리를 듣고 ‘자장면 회장’이라는 지적도 받았다고 고백했다.

실로 이 명예회장은 그런 분이다. 출가한 딸들이 최신 유행 구두와 실내화들을 선물했지만 옆에 두고 신지 않은 성품이다. 슬리퍼를 들어 보이며 ‘30~40년쯤 신은 것 같다’고 말하는 고집불통이기 때문이다. 이 명예회장은 같은 시대 경제활동을 같이 했던 동지들이 거의 다 떠나고 은퇴했음을 상기시킨다.

LG그룹 구자경 회장이나 삼양사 김상홍 명예회장이 어떻게 지내시더냐고 묻는다. 안부가 궁금해서 묻는 다기보다 은퇴한 기업인들은 조용히 머물러 있게 사회와 언론이 가만히 놔두는 것이 좋지 않으냐는 뜻이다. 은퇴한 이들끼리 만나고 안부를 묻고 있지만 현역인들과 어울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 명예회장 특유의 고집이다.

이 명예회장은 잡지 언론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 월간 경제풍월을 계속 구독하고 있는데 ‘무척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필자를 동원하고 편집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텐데 ‘괜찮으냐’고 걱정한다.

그러면서 한국논단 이도형씨의 예를 들며 “누가 도와주는 이가 있느냐”고 묻는다. 잡지 언론도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했으면 끝까지 잘해 보라고 권유하며 “보수적 논평지도 발전해야 사회가 균형을 맞추게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배병휴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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