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의 1’의 의미
‘10분의 1’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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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3-12-31 09:00
  • 승인 2003.12.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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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2월 14일 불법대선자금의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정계를 은퇴할 용의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이후로 ‘10분의 1’이라는 비율은 한국사회를 강타한 단어가 되었다. 당시 대통령의 발언의 뜻을 두고 많은 말들이 있었고, 일부에서는 검찰수사와 관련하여 검찰과 기업들에 대하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 아니냐는 식의 추측까지 있었다.하지만,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불법대선자금의 규모의 비율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번 ‘재신임’정국 이후로 일국의 대통령의 자리가 너무나 가볍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현실을 걱정하고, 대통령 취임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아직도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대통령의 리더십을 걱정한다. 그리고, ‘10분의 1’이라는 비율적 수치에 선행하는 자기판단적 가치판단의 오류를 더욱더 걱정한다.

우리 헌법상 무엇이 불법인가에 대한 선험적 가치판단을 하여 추상적인 법률의 형태로 정립하는 것은 국회의 기능이다. 법률을 바탕으로 하여 구체적인 사안에서 무엇이 법인가를 판단하여 선언하는 것은 법원의 기능이다.우리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제263조에서는 선거비용의 초과지출로 인한 당선무효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고, 그 문언에 따르면, 선거비용제한액의 200분의 1 이상 즉, 0.5%를 초과지출한 이유로 선거사무장 또는 선거사무소의 회계책임자가 징역형의 선고를 받은 때에는 그 후보자의 당선은 무효로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선거와 관련하여 모금하고 지출한 자금이 위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한도를 넘는 것은 이미 불법이 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다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하여 생각하여 본다. 만약 ‘10분의 1’이 되지 않는다면 불법이 아니라는 것인가? 아니면 모두가 불법을 행한 자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불법이 적으면 괜찮다는 뜻인지 묻고 싶다.

물론 대통령 선거 당시의 선거비용 과다지출에 대하여는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선거사무장 또는 선거사무소의 회계책임자가 징역형을 선고 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같은 법 제268조). 만약 대통령이 이러한 법률규정을 알고서 ‘10분의 1’이라는 발언을 하였다면 너무도 큰 실망을 하게 될 것이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공소시효의 경과로 인하여 처벌을 받지 않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범죄를 저지른 사실마저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선자금과 관련된 사항들은 앞으로 검찰의 수사를 더 지켜보아야만 그 전모를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걱정이 되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도, 한나라당도 아니라 이 나라와 그 국민들이다.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고도 1년이 지난 시점에서 국가의 경영과 민생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고, 선거자금에 관한 문제로 날을 지새고 있는 사이에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은 국민들이다.IMF는 극복이 되었다지만, 노숙자들은 그대로이고, 오륙도, 사오정, 삼팔선 등의 단어들이 회자되면서 사람살기가 더 팍팍해지기만 하는데, 정말 우리가 시급하게 해결하여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신년의 총선에서는 모든 선거참여자들이 함께 돈 쓰지 않는 선거를 한번 해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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