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당 내 ‘수도권 규제완화’ 논쟁에 불이 붙고 있다.
당내 비수도권 의원들의 반발이 하나, 둘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바닥이 충분히 달궈졌다는 의미다. 특히 정부가 수도권 규제완화에 무게를 실으면서 비수도권 의원들이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반면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힘을 받아 부각되는 모습이다.
자칫 내분으로 비칠 수 있는 한나라당 내부 상황과 김 지사의 대권 로드맵 등을 점검했다.
수도권 규제완화 불씨를 최근 다시 지핀 것은 충청출신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었다.
그는 지난달 26일 한나라당 연구모임 초청토론회에서 “수도권 규제는 욕먹더라도 풀 것”이라고 말했다. 불씨를 타오르게 한 것은 경기 부천이 지역구인 차명진 한나라당 대변인이었다.
그는 다음 날 “수도권 공장 규제 철폐야말로 돈 한 푼 안들이고 대한민국 성장 잠재력을 증가시키고 침체에 빠진 경기를 회복시키는 핵심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전날 정 장관의 발언을 옹호하는 논평을 냈다. 대변인 명의의 논평이기에 당의 공식입장으로 여길 오해의 소지가 있기도 했다.
수도권-지방 한나라 내분
당내 반격은 직후에 나왔다.
강원도당 위원장인 이계진 의원은 지난 달 29일 “공당 대변인 지위를 이용해 일부 수도권 광역단체장의 대권가도 발판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강력히 경고한다”면서 “국가 분열을 획책하는 아전인수격 논의를 즉각 중지하라”고 촉구했다.
경북 지역구의 한나라당 여의도 연구소장 김성조 의원은 30일 “전국 231개 지자체 종합평가 결과 상위 50위의 82%를 서울과 수도권이 차지했다”면서 “지방을 먼저 배려하고 상생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규제완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부산 지역구의 김정훈 의원은 “지방에 먹고 살 대책부터 마련해 주고 수도권 규제를 풀어라”며 노골적으로 비판했고, 유일한 충북출신의 송광호 의원도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면 재앙이 온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김문수 지사는 6일 “수도권 규제 철폐를 지역이기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넌센스다”라고 주장한 데 이어 7일에도 수도권 규제완화를 재차 주장했다. 특히 그는 수도권 주요 규제사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신속히 진행하라”고 도 실·국장에 지시했다.
경기북부 지역 의원들은 국감을 통해 “노무현 정부에서 행정수도 이전과 균형발전특별회계 등으로 역차별을 당했다”는 주장을 펼칠 예정이고, 차명진 의원은 ‘수도권 규제 백서’를 발행하고 김학용 의원은 수도권 규제완화로 발생하는 이익을 ‘지방상생발전기금’으로 조성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는 등 경기도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려 하고 있다.
한나라당과 정부는 중간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수도권 규제완화 쪽에 무게를 싣는 모습이다.
정치권에서는 수도권 규제완화 논란에 대해 김 지사의 대권 로드맵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비수도권의 반발에도 불구, 당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한 대립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김 지사가 진정성이 있다면, 규제완화가 아니라 동반성장이나 발전의 균형을 주장해야 한다”면서 “대권을 위한 수단일 수 있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대선에서 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에 오래 몸담았던 한 인사는 “김 지사가 충청도와 전라도를 포기하고 경상도와 수도권만을 갖고 대통령이 되려 한다”면서 “그럴 가능성이 다분하지만, 70년대 개발 성장시대에나 맞는 논리고, 소아적 구도”라고 비난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대립 격화 우려에 대해 당 관계자들은 대체로 “지역 의원들이 민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지, 목숨을 걸 정도로 관심이 없다”며 가능성을 낮게 봤다.
유일하게 대권을 노골화하고 있는 김 지사의 당내 입지나 향후 거취도 관심거리다.
당내 사정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친 이명박계, 친 박근혜계, 친 이상득계 모두 김 지사에게 등을 돌린 상황이고, 유일하게 30-40여명의 친 이재오계가 당내 지지세력인데 그 중에 김 지사를 적극 지지하는 의원들이 몇 명이나 될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사에 당선된 것은 한나라당이란 명패 때문”이라며 “수도권 규제완화를 주장하는 것은 이름 알리기 정도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 정치분석가는 “김 지사가 발을 얹혀놓고 있는 단체가 많고, 대권도전 할 때야 비로소 표출될 것으로 본다”면서 “현재는 독자세력이 없는 걸로 안다”고 밝혔다.
대권행보 김문수, 당내기반 약해
정부가 수도권 규제완화에 무게를 싣는 이유에 대해서도 그는 “북한과 인접한 경기 북부의 교동도 프로젝트와 관련이 있다”면서 “접경지역을 개발해 북한과의 관계를 회복해 나가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말했다.
김 지사도 최근 “경기도 최전방 지역과 가평군, 양평군, 여주군, 연천군, 인천 옹진군, 백령도, 강화도 등은 수도권이라기보다는 낙후지역 또는 오지로 봐야 한다”면서 “이들 지역에서 서울보다 10배 이상 규제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당 세력이 쪼개질 가능성은 낮지만, 양측 간 충돌은 강도를 더해갈 전망이다.
경상도 지역 한 중진의원 측은 “수도권 세력들이 힘으로 밀어 부칠 경우 그 순간 대립은 격화될 것”이라며 “현재 중간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우리도 결국 규제완화 반대쪽에 서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당 관계자는 “경기도 자체의 개발 요구와 도지사 자리를 노리는 인사들의 압박으로 인해 김 지사는 대선에 출마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수도권 규제완화 요구는 더 거세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김 지사가 현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 세력화에 성공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선태규 기자 august@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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