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vs 노무현 ‘국감 혈투’

현 MB정부와 전 정부(노무현)가 한바탕 혈투를 벌이고 있다. 무대는 국회다. 한나라당은 참여정부 비리를, 민주당은 MB정부의 실정을 타깃으로 칼끝을 겨누고 있다. 국정 주도권을 잡고 놓지 않으려는 치열한 샅바싸움이 전개되는 것이다. 관심이 온통 “네가 잘했냐 내가 잘했냐”에 쏠리다보니, 정작 정책국감 현장을 실종됐다는 비판이 국회 한 켠에서 쏟아지고 있다. “공무원들만 살판났다”는 비아냥도 각 의원실에서 나온다. 국회 국감이 정부감시라는 고유기능을 상실한 채 소리만 요란하게 내는 형국이다. 국정감사의 겉과 속을 들여다봤다.
여야 의원들은 국감이 시작되면서, 각 상임위별로 멜라민 사태 확산, 공정택 서울시교육감 선거자금 문제, 사이버 모욕죄 논란, KBS 표적감사 논란, 종부세, YTN 사태 등 현안을 중심으로 치열한 공방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여야 의원들은 실제로 현 정권과 지난 정부의 잘못을 꼬집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치적 계산이 깔린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명박 정부가 일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국정 주도권을 찾겠다는 각오로 국감에 임하고 있다. 현재의 잘못된 모습들이 전 정권의 실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각시킴으로써 현 정권에 기대감을 갖도록 하자는 전략이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이번 국감은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1년과 이명박 정부의 6개월을 평가하는 자리”라고 밝혔다.
민주당의 경우 야성을 회복하고 견제 정당의 면모를 보임으로써 대안정당으로 자리를 잡겠다는 포석이다.
하루 지나면 의혹 돌출
원혜영 원내대표는 “책임국감, 민생국감, 현장국감의 원칙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정책실패를 낱낱이 파헤치고 국정운영 기조를 바로잡는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다. 우선, 한나라당 이진복 의원은 참여정부의 e지원 원본디스크가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e지원 기록물보호체계 구축사업계획서’를 인용, “지난 정부가 지난해 말 새 정부가 사용할 수 있도록 e지원의 원본데이터 디스크를 새 디스크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원본 디스크가 사라졌다”면서 “검찰이 원본 대조수사 중인 28개 하드는 전체의 약 25%에 불과하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공성진 의원은 노무현 정권의 코드 인사가 계약직에까지 미쳤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대책마련을 요구했다.
공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청렴위는 홍보협력단 민간협력팀 계약직 사무관 공채를 실시해 16명의 응시자 가운데 1차 서류전형을 통해 6명을 1차 합격시키고 이후 면접을 통해 최재천 의원의 비서관으로 있던 정모씨를 선발했다. 정씨는 FTA기밀 문건 유출 당사자로, 검찰의 불구속구공판 처분을 받아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사람이다.
공 의원은 “이런 일이 정모씨 한 개인에게만 국한된 내용이 아닐 것”이라며 “지난 10년간 좌파정권에 코드가 맞춰진 인사들이 아직까지 정부 및 각 산하기관에 포진해 사사건건 이명박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상규 의원은 “지난 10년간 농가부채는 해마다 증가해 2007년 현재 농가부채는 10년 전에 비해 76% 늘어났고, 반면 농림수산부문 예산은 해마다 줄어들었다”면서 “잃어버린 10년에 농업분야도 예외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조원진 의원은 “참여정부 기간 동안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노동정책이 상대적 빈곤을 심화시켰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벌리는 역효과를 가져왔다”면서 “참여정부의 노동정책은 실패한 것으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조 의원에 따르면 참여정부 기간 상대적 빈곤율은 12.1%에서 13.4%로 늘어났고,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 수준은 2002년 67.1%에서 2008년 60.5%로 떨어졌다.
“MB정부 들어 인사부실, 국가위기”
민주당 의원들도 맞대응에 나섰다.
친노세력 3인방인 백원우, 서갑원, 이광재 의원은 현 정부의 불량코드 인사를 집중 지적했다.
백원우 의원은 “이명박 정부 8개월 동안 사회복지분야 인사실패로 사회복지분야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면서 “박미석 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부터 유종하 적십자사 총재까지 이명박 정부 공신들의 자리 만들기 인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서갑원 의원은 “지난 6개월 동안 청와대가 스스로 정한 18대 총선관련 낙천·낙선인사 공직금지 약속을 깬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만 해도 무려 39명에 달한다”면서 “이명박 정부의 인사정책을 봤을 때 10월 이후 무더기 보은성 인사가 예고된다”고 밝혔다.
이광재 의원은 “MB 정부가 임기가 보장된 공공기관 기관장들의 일괄사표를 종용하고 사퇴를 거부하는 기관장이 속해 있는 기관에는 표적감사를 했다”면서 “공공기관장 일괄 사표 종용이 합법인지 묻고 싶다”고 밝혔다.
외교분야에서 민주당 박주선 의원은 “현 정부의 외교는 철학, 원칙, 일관성이 없는 3무 외교이자 비현실적이고, 비생산적이며 비주체적인 3비 외교”라며 “가장 큰 문제점은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한미동맹 그리고 주변 4강 평화외교를 종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대통령의 외교철학 부재에 있다”고 지적했다.
최철국 의원은 “YS시절에는 단 한 번도 무역흑자를 실현하지 못했으나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는 10년 내내 무역흑자를 달성했다”면서 “그러나 MB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첫해에 적자로 반전해 9월까지 누적적자는 무려 142.4억 달러나 된다”고 지적했다.
국감이 진행되는 동안 검찰 쪽에서도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한나라당이 지목한 참여정부의 비리의혹과 관련해서다.
조영주 전 KTF 사장, 전대월(46) KCO에너지 대표, 프라임 그룹 계열사 S업체 대표 임모(53) 사장 등이 최근 줄줄이 구속됐다. 그러나 수사에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참여정부 실세 관계자는 “실세 중 한 인사의 경우 차명계좌가 하도 많아 검찰이 단서 잡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감이 정부 대 정부의 흠집내기로 치우치는 가운데 정책국감이 실종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늑장 제출을 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김재경 의원은 “기획재정부에 50건의 자료제출을 요청했는데, 17건 밖에 오지 않아 국감을 중단하고픈 심정”이라고 밝혔다.
정치국감에 희생된 정책국감
정부는 민감한 자료에 대해 “내부 자료라 공개가 불가하다” “대면보고를 하겠다”고 하거나 아예 자료제출을 무기한 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감사 하루 전날 저녁에 제출해 제대로 준비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경우도 잦다.
한 보좌관은 “공무원들이 여당은 청와대의 거수기 노릇 정도로 보기 때문에 무시하고, 야당은 힘이 없고 수도 적어 무시한다”면서 “심지어 관련법을 어기면서까지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정치권 일각에서는 감사원과 법제처의 권한을 입법부에 넘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감사원을 통해 평상시에 감사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고, 법을 처음부터 국회의 감시하에 만들도록 하자는 것이다.
국감 이후 국정 주도권이 어느 쪽으로 쏠릴지 관심이다. 그러나 실종된 정책국감을 회복시키는 것도 시급한 과제로 부각될 전망이다.
선태규 기자 august@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