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대통령은 왜 이런 기자회견을 했을까?야당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정말 함정을 판 것일까?야당에 약을 올려 탄핵안을 가결시키도록 하고, 대 역풍을 일으켜 야당을 일거에 몰락시킨다는 그 함정 말이다. 과연 그렇다면 우리나라 대통령은 정말 무서운 분이다. 신이라고 해야 한다. 하긴 정치 10단이라고는 하지만….한나라당 의원들 가운데 상당수는 함정론을 제기한다. 이원창 의원의 말부터 들어보자.“결론적으로 보면 노무현 대통령의 술수가 있었다고 봅니다. 우연히 사즉생(死則生)한 것인데… 건전한 상식으로 본다면, 사과를 하고 국회와 원만한 관계를 갖는 것이 이성적입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사과해본들 자기의 인기는 더 추락할 것이고, 국회에 끌려 다니는 꼴이 될 테니, 사과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재신임을 묻고자 했고, 언제나 배팅할 기회만을 노렸습니다. 결국 사과하면 (탄핵안을)취소하겠다고 했는데도 사과하지 않은 것은 탄핵안을 가결시키라고 한 것입니다. 탄핵을 유도한 것입니다.”그러면서 그는 노 대통령의 승부사적 기질을 그 이유로 들었다.
“사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걸고 여러 번 승부수를 썼습니다.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을 그만 두겠다고도 했고,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재신임을 묻겠다고 협박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결국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또 열린우리당도 그렇게 뜨지 않고, 대통령직을 유지하기도 힘들다는 걸 알고, 올인을 하자, 실패해도 겁날게 없다고 생각하고 배팅을 한 것입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절대가치로 놓고 하는 사람입니다. 노 대통령은 국민이나 야당에 굴하지 않겠다고 말한 사람입니다. 노 대통령이 이런 배짱을 부린 이유는 방송이 버텨줄 것이고, 노사모라는 끈끈한 조직이 있고, 미 정보기관의 분석처럼 의정부 촛불 시위를 주도한 40만이라는 남한의 정통성을 무너뜨리려는 세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이 말은 함정론과 조금 있다 소개할 총선 올인론이 뒤섞여 있다.
이번엔 민주당 유용태 총무의 말을 들어 보자. 그도 함정론에 가세한다.“처음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함정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왜냐하면 탄핵을 하겠다고 발의를 했는데도 사과하지 않았다는 것은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정말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것이 틀렸다면, 왜 그렇게 무대책으로 나올 수 있느냐, 결국 야당 쪽을 자극시킨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탄핵이 될 경우 노사모나 운동권에 대대적으로 불을 질러 길거리에 내놓는 것을 통해 반기를 들게 하는 것까지는 예상했습니다만, 또 탄핵 세력을 여론으로 매도시키는 것까지는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만, 첫째, 방송으로 하여금 그 즉각 반응하도록 대응한 점, 둘째, 여의도 시민혁명 발언의 시나리오가 그대로 맞아떨어진 점을 생각하니까 함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청와대의 생각과 열린우리당의 전략은 다 맞아떨어지지 않았는데, 그것은 청와대가 알리지 않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 사후에 보니까 모든 게 맞아떨어져 함정에 빠진 것으로 생각됩니다.”그렇다면 함정인 줄 알면서 왜 빠져들었느냐는 민노당 노회찬 당선자의 지적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서는 당시야 어떻게 알았겠느냐는 변명일 텐데, 그러나 이런 함정론은 지나치다는 게 야권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홍사덕 총무의 말이다.“노 대통령이 그 정도로 지적 수준이 뛰어나서 함정을 파 놓았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함정까지는 아니겠죠.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씨름으로 말하면 힘이 센 상대 앞에서는 정교한 기술로 맞서야 하는데, 워낙 상대가 힘이 세면 기술이 안 통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통령이라는 막강한 파워 앞에서는 기술이 통할 수가 없는 데다가 KBS와 MBC가 쌍 나팔을 불어 대니 그럴 수가 없었던 것뿐입니다.”
총선 올인론
다음으로 제기되는 것은 이른바 총선 올인론이다.대통령이 최병렬 대표의 발언처럼 ‘그렇게 큰 순풍(대통령 쪽에서 볼 때)까지는 기대하지 못했겠지만 야당의 공세에 굴하지 않겠다는 자세가 선거에서 불리하지 않다는 계산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을 펴는 근거는 아래와 같다.첫째, 신기남 의원이 얘기했듯, ‘탄핵을 강행해봐라, 그러면 역풍이 분다, 우리가 선거에서 유리해진다’라고 말했다는 점.둘째, 탄핵 발의 이후 청와대에서 탄핵이 가결됐을 때의 대책 마련 회의에서 노사모의 촛불 집회 시위와 대언론 대책, 시민단체의 항의 등으로 결코 선거에 불리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을 것이라는 점.셋째, 어차피 노 대통령도 밝힌 것처럼, 민주당을 깬 이유가, 80석이나 100석이나 2등은 마찬가지니 차라리 모험을 해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는 점.그래서 기왕 질 바에야 모든 것이 끝이라는 심정으로 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려면 이런 모험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주장인데, 이것 역시 추측일 뿐이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외로 큰바람(역풍)을 불러일으켰고, 그런 점에서 대통령이 무서운 사람이로구나, 하고 느꼈다는 것은 함정론에서와 같다.
노대통령의 성품론
노무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을 가진 민주당의 이낙연 의원은 함정론이나 총선 올인론은 야박하다고 말한다.“노 대통령이 야당을 촉발하기 위해서 그런 기자회견을 했다고 보는 것은 심합니다. 노 대통령의 성품이 그대로 드러난 회견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노 대통령은 옳지 않은 일에 굴복하는 것은 더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입니다. 가끔 순교자적인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그러면서 대선 때의 예를 논거로 든다.“대선 하루 전 정몽준씨가 지지철회를 했을 때, 정몽준씨에게 가서 사과하라고 하니까 밤새도록 거부했습니다. 그때 노 대통령은 ‘실패한 후보가 돼서 정치를 바로잡는 것이 실패한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낫지 않겠느냐’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타협하고 굴복한다는 것은 용납 못 한다, 차라리 이 자리에서 탄핵이라는 칼을 맞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못 한다,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노 대통령은 대선 때 투표 당일에도 ‘중요한 건 승부보다 원칙’이라고 말했던 분입니다. 결국 탄핵을 모면해보려는 듯한 사과가 싫었을 것입니다.”여당은 물론 함정론이나 총선 올인론에 펄쩍 뛴다.
천정배 의원의 말이다.“바보들이라면 모를까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노 대통령의 말을 듣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까?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는 노 대통령의 평소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고 봅니다. 노 대통령은 결코 술수를 쓴다거나 함정을 파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 회견은 노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회견입니다.”이번엔 김근태 원내대표의 말이다.“함정도, 총성 올인도 아니고 대통령의 생각을 그대로 표현한 게 맞습니다. 대통령은, 선거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국민들이 잘 지켜주지 않겠느냐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철저히 계산을 하고 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우리도 그랬습니다. 정치권에서 하는 계산은 항상 틀립니다. 그래서 정치적 판단은 철학과 신념이 필요한 것입니다. 대통령도 이런 신념과 철학으로 판단한 것입니다.”노 대통령을 가까이서 지켜본 청와대 기자들도 이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SBS 정치부의 정승민 기자.“대통령이 회견 후 야권의 반발과 그로 인한 탄핵 사태로 엄청난 후 폭풍이 일어날 것까지를 계산해 그런 기자회견을 강행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탄핵안 가결을 이끌어 내기 위해 회견을 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총선에 올인한다는 것인데, 대통령 자신의 탄핵이 중요하지 총선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말입니다.”그런데 함정론과 총선 올인론, 그리고 성품론이 모두 뒤섞인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민주당의 조순형 대표와 한나라당의 김문수 의원이다. 특히 김문수 의원의 말에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노무현 대통령의 성품 자체가 올인이고, 함정입니다. 함정이라는 것은 씨름을 할 때 온몸을 던짐으로써, 즉 올인을 함으로써 상대를 빠지게 하는 것인데, 노 대통령의 성품이 그렇습니다. 모두를 거는 승부에 능합니다. 특히 자신에게 가장 상황이 어려울 때 그런 승부수를 늘 띄웁니다. 지난번 대선 때 정몽준이 그 덫에 걸려 넘어졌고, 이회창 후보도 거기에 넘어갔습니다. 이번에는 홍사덕 총무와 최병렬 대표가 그 함정에 걸린 것입니다.노 대통령한테는 야성(野性)이 보입니다. 몸으로 체득한 야성인데, 놀라운 순발력과 투사적 기질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잡히면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온몸을 내던지는 야수와 같은 저돌성과 용맹성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이 매우 뛰어납니다.”
엄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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