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승기 분수령…천재일우’기회 놓쳤다
총선 승기 분수령…천재일우’기회 놓쳤다
  • 엄광석 
  • 입력 2004-10-19 09:00
  • 승인 2004.10.1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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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권 발동 언급하다
드디어 오후 4시 30분, 박관용 의장은 발언대에서 1차 발언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의 의장 단상 점거 중지를 요구하며, 경호권 발동에 대한 언급을 하게 된다. 이것이 경호권 발동의 최초이자 유일한 공식 언급이다. 그러면서 단상으로 이동하려고 시도했으나,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거센 저지로 이번엔 국무위원석으로 밀려가 앉게 된다. 박 의장은 다시 제지하던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얘기한다.“총무회담을 열게 해주겠다는 데도 막길래 도대체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이번엔 대표회담을 열게 해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또 그것도 약속을 하고 단상에 가겠다고 하니까 또 못 가게 막았습니다. 도대체 이성적인 대화가 안 됐습니다.”이에 대해 최병렬 대표는 노 대통령의 도발이 열린우리당의 이런 육탄 저지로 안건 처리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개정된 국회법에 따라 의장 단상에서만 회의 진행이 가능하고, 또 무기명 비밀투표와 개표를 해야 하는데, 단상이 점거되고 투표에서 육탄 저지가 있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이 걸림돌이었습니다. 그래서 노 대통령이 왜 도발을 할까, 도발하는 것이 열린우리당의 실력 저지로 인해 안건 처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러면 여기서 열린우리당의 얘기를 들어보자. 이해찬 의원이다.“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탄핵안 표결 강행을 막아야겠는데 총 48명 중 입원한 사람들을 빼고 40명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더구나 표결을 하게 되면 기표 행위를 막아야 하는데, 역시 40명으로는 턱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의장석부터 점거하기로 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의원 20명을 의장석에 배치하고, 나머지 20명을 양쪽 투표함이 있는 곳에 10명씩 배치하기로 했는데, 이것 역시 도저히 막아질 것 같지가 않아 의장석으로의 진입 자체를 못 하도록 작전을 바꾸고, 의장석으로 진입하는 양쪽 통로에 10명씩을 배치한 것입니다. 우리가 60명만 됐어도 20명은 의장실로 보내, 아예 의장이 의장실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두 번에 걸쳐 의장석 진입에 실패한 박관용 의장은 오후 5시 13분, 발언대에서 2차 발언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의장 단상 점거 중지를 재차 요구했고, 세 번째로 의장석에 가려 했으나 제지당한다. 드디어 박 의장은 ‘대화와 타협이 중단된 오늘날 국회의 현실에 실망한다. 자유로운 의사 표시를 할 수 있도록 하고자 사회라도 보려고 했으나 그 기회마저 박탈당했다. 현재의 상황으로는 회의가 불가능하니 내일 모든 조치를 취해서라도 사회를 보겠다(12일 오전 10시 개의 언급)’고 말하고 퇴장한다. 이때가 오후 5시 53분이다.의장의 퇴장으로 한나라당과 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반발이 거셌음은 물론이다. 역시 의장 단상을 점거한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나머지 본회의장에 있던 의원들도 농성에 들어간다.의장실로 돌아온 박관용 의장은 이어 밀어닥친 야당 지도부로부터 호된 닦달을 당한다. 다수가 발의한 안건을 처리하지 못하면 직무유기 아니냐는 분위기로 추궁했다는 것이 당시 상황을 지켜봤던 몇 안 되는 사람들의 전언이다. 특히 한나라당의 최병렬 대표는 ‘밤 9시에 처리해요!’라고 강하게 압박했다는 것이다.

이때 강경식 사무총장이 절묘한 아이디어를 내놓는다.강경식 사무총장의 증언을 들어 보자.“최병렬 대표가 나간 뒤 의장과 홍사덕 총무가 있는 자리에서 국회법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국회법 130조를 보면 탄핵안을 발의한 뒤에라도 법사위로 넘길 수가 있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법사위로 넘긴다는 의결을 해야 합니다. 당시 상황으로는 이것이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발의된 탄핵안을 강행하려고 하지 말고 법사위로 넘겨라, 그러면 65시간 내 처리라는 부담 없이 야당의 결의를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고, 극한 대립도 피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충고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디어에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이미 들을 생각을 하지 않은 겁니다.”그러면 국회법 130조를 보자.

제 130조(탄핵 소추의 발의)① 탄핵 소추의 발의가 있을 때에는 의장은 발의된 후 처음 개의하는 본회의에 보고하고, 본회의는 의결로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하여 조사하게 할 수 있다.② 본회의가 제 1항에 의하여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하기로 의결하지 아니한 때에는 본회의에 보고된 때로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탄핵 소추의 여부를 무기명 투표로 표결한다. 이 기간 내에 표결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탄핵 소추안은 폐기된 것으로 본다.강경식 사무총장은 국회가 파국 상태였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여·야가 상생(相生)하자는 차원에서 이런 제안을 하게 됐다고 부언했다.그런데 실제로 여당은 법사위 회부안을 뒤늦게 전해 듣고 떨었다. 김근태 총무의 증언이다.“탄핵안을 본회의에서 가결하지 않고 법사위에 회부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들렸는데, 그 말을 듣고 실제로 두려웠습니다. 법사위에 회부되면 조사를 하게 되고, 총선 기간 내내 괴롭힐 텐데,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에는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국민들에게 일일이 해명하기도 어렵고, 선거에도 불리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야당으로 볼 때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놓쳤다고 해야 한다.

청와대에 사과 촉구 의견 쇄도
한편 청와대에는 남상국 사장의 자살 소식이 전해지면서 회견 내용이 지나쳤다는 여론이 빗발친다. SBS 정승민 기자의 증언.“이 날 저녁 청와대에는 각계로부터 지나치게 여론을 자극했다면서, 사과하라는 건의가 들어온 것으로 압니다. 한마디로 ‘여론이 안 좋다. 한나라당뿐만이 아니라 대통령이 사과하는 게 좋겠다’는 말을 대통령에게 전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특히 대통령은 남상국 사장의 자살 소식을 듣고 참담해하면서 가슴아파했습니다.”박관용 의장의 증언을 들어보자.“기자회견이 실패한 데다가 남상국 사장의 자살 사건까지 일어나자 청와대가 긴급 여론 조사를 했는데, 분위기가 매우 나빠지자 허겁지겁한 겁니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까 정동영 의장이 최병렬 대표한테 ‘청와대로 가자’고 했다는 겁니다. 물론 최 대표는 거절했고요. 급하긴 급했던 모양입니다.”이상이 11일, 국회와 청와대의 상황이다. 거듭 얘기하지만 대한민국 헌정사상 초유의 국회 탄핵안 가결은 이 날의 노무현 대통령 회견이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다.

대통령이 그런 회견을 하지 않았더라면, 감히 얘기하지만, 야당은 탄핵안을 밀어붙이기가 힘들었다. 물론 가결선을 확보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조자룡 헌 칼 쓰듯, 탄핵이라는 최후의 칼을 휘두를 수는 없었다.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여론의 역풍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그런 회견으로 여론이 나빠진다고 하니까, 또 사실 실제로도 나빠졌지만, 용기를 얻은 것이다. 대통령의 회견이, 예상했던 역풍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이, 야당의 몰락을 가져온 원인이다.

엄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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