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적으로 96%라는 절대 다수가 공영 방송이 편향성을 보였다고 답한데 비해, 메이저 신문에 대해서는 23%만이 편향성을 보였다고 답함으로써, 공영 방송의 편파성을 지적했다는 사실이다.윤명중 회장의 말을 들어보자.“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데이터들이 단순한 숫자놀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번 설문에 응답한 회원들의 견해가, 흔히 방송이 시중에서 인터뷰해 온 행인들이나 감성적인 대학생들의 돌출된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마침 한국언론학회 교수들도 ‘탄핵 방송이 편향적’이었다는 보고서를 방송위원회에 냈고 그것이 해당 방송사들에 의해 ‘기계적 중립주의에 의한 판단’이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우리 언론인포럼의 설문 조사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고 본다. 대학 교수들은 여러 가지 데이터를 통해 학술적으로 조목조목 결론을 도출했지만, 우리는 오랜 실무 경험을 통해 그 편향 보도의 프로세스를 알고 있고, 그냥 TV만 보고 있어도 얼마만큼 편향적인 방송을 하고 있는지를 피부로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면에서 당사자들은 이 설문 조사에 담긴 선배들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요즘 철없는 젊은 네티즌들처럼 덮어놓고 자기 코드에 맞지 않으면 선배들을 ‘수구 반동’식으로 몰아버리는 못된 행태는 삼가 주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다.”따라서 문제는 공영 방송이라면 공영 방송답게 어느 한 편에 기울지 않고 중심을 잡아나가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방송이 이른바 정권 홍보의 수단으로 전락됐다는 것이 많은 방송 학자들만이 아닌 언론인들의 설문 조사에서도 나타났다.KBS와 MBC, 두 공영 방송은 일방적으로 탄핵 세력 규탄과 야당 때리기에만 초점을 맞춰 언론의 기능을 망각한 편들기의 극치를 보여주었다는 지적이다.자,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까? 방송 기자인 필자 자신도 당혹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러면 여기서 그동안 편파 방송의 대표적 사례로 지적됐던 몇 가지를 구체적으로 언급해 본다.
편파 방송의 사례들
먼저 KBS부터 얘기하면 3월 28일 밤 방송된 ‘취재파일4321-정치표현 어디까지’가 대표적인 예다. 이 프로그램은 촛불 시위 주도자와 인터넷 패러디 사이트에 대한 사법처리 문제를 다루면서 야당에 불리한 내용을 부각시켰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촛불 시위 참가자들이 이른바 ‘탄핵송’으로 알려진 ‘너흰 아니야’ 를 부르는 장면에서 당 이름이 들어가야 할 부분에 개 짖는 소리로 대체했을 뿐, ‘개 같은 세상… 그래도 너흰 아니야… 차떼기로 갈취하는 조폭들…’ 이라고 되어있어 누가 봐도 한나라당이 표적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이것은 한 예에 불과하다.방송위원회 보도교양 제 1심의위(위원장, 남승자) 는 KBS가 3월 2일부터 15일까지 방송된 탄핵 관련 방송을 검토한 뒤 3월 15일에 방영됐던 KBS 1TV의 「뉴스9」 여론조사 보도와 같은 날 2TV의 「생방송 세상의 아침」에서 방영됐던 ‘국회의원의 왕국, 세상의 아침’ 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향후 보도에 신중을 기해 달라는 권고 결정을 내린다.이어서 선거 방송 심의위(위원장, 임상원)는 4월 1일 KBS 1TV 9시 뉴스가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노인 폄하 발언을 누락시킨 보도에 대해 선거방송의 공정성과 객관성 유지에 더욱 각별히 유의해 달라는 권고 조치를 내린다.
오죽하면 KBS의 현직 감사(강동순)가 ‘KBS 사장 임명 과정에 정부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공영 방송이 공론을 말해야 할 때 당파적 견해를 밝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겠는가. 그는 이어 ‘특히 중간 간부들이 무력화돼, 게이트 키핑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을 하기에 이른다.MBC는 어떨까? MBC의 경우는 「시사 매거진 2580」과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등 시사 프로그램이 대표적으로 편향성을 보였다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4주간에 걸쳐 ‘박정희 때리기’를 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 대해 왜 하필 그런 시점에서 그런 방송을 내보냈느냐에 대한 집중적인 의혹을 받은 게 사실이다. 「시사매거진 2580」도 마찬가지였다.우선 보도에 대해서, 방송위 보도교양 심의위는 MBC 뉴스데스크의 ‘행정수도 차질’(3월 12일)과 ‘탄핵 잘못’(3월 15일) 보도에 대해 공정성 권고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선거방송 심의위는 MBC ‘시사매거진 2580’ 이 4월 6일, 낙선대상 명단을 일방 보도한 것에 대해 공정성을 훼손했다며 주의 조치를 내렸다.그러나 MBC의 편파 시비에서 가장 비판을 받았던 것은 시사프로그램인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이다. 3월 31일, 영부인 폄하 발언 짜깁기 편집과 4월 9일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 인터뷰 조작이 그것이다. 방송위 심의위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은 이 프로그램으로 MBC는 사과 방송을 내보내고, 담당국장과 PD를 문책했지만, 이 경우는 아무리 변명을 한다고 해도 납득될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였다.영부인 폄하 발언 짜깁기 편집이란 어떤 것인가? 방송인 송만기씨는 3월 21일 광화문 동화 면세점 앞에서 있었던 ‘탄핵 지지 문화 행사’에서 사회를 보게 된다. 그가 이날 사회를 보며 청중과 나눈 대화는 이렇다.
송만기: (남상국 사장이)자살한 것 여러분 아시죠? 전 대우 건설 사장이 누구입니까?
청중: 남상국.
송만기: 누구 때문에 죽었습니까?
청중: 노무현.
송만기: 제가 비유를 들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노무현씨가 ‘많이 배우고 성공한 분이 시골 사람에게 가서 굽실거리고…’ 제가 남상국이라도 많은 국민 앞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치욕감에 죽었을 겁니다. 여러분도 죽지요?청중: 예.송만기: 제가 비유를 하나 들겠습니다. 우리 국모(國母)가 누구입니까?
청중: 없어요.송만기: 제가 방송에 나와서 이렇게 외칩니다.
한 청중: 권양숙(權良淑)이 무슨 여사냐.
송만기: 내가 방송에서 ‘여러분! 고등학교도 안 나온 여자가 국모로서 자격이 있습니까’ 이렇게 이야기하면, 권양숙 여사가 이 말을 방송에서 듣고 있다면… 앞에 영부인 다 이대(梨大) 나왔어요. 이희호 여사 이대, YS 이대….
한 청중: 권양숙 여사, 여사 하지 마요.
송만기: 뭐야?
한 청중: 무슨 여사예요. ×××이지.
송만기: ×××? 응, 그래, 그래 맞아. 박수. 우리는 욕하지 맙시다. 우린 민주시민이에요.자, 권양숙 여사가 만약 이 이야기를 들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앞에 이희호 여사, 손명순 여사 다 이대 나왔습니다. 방송에서 내가 ‘고등학교도 안 나온 이런 여자가 국모가 될 자격이 있습니까? 이렇게 말하면 권양숙 여사가 이 말을 듣고 어떻게 하겠습니까’
청중: 자살요.
송만기: 이것도 언어 폭력, 언어 살인이에요. 이렇게 말하는 대통령이 국민의 리더가 될 자격이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그래서 이 자리에 나온 것이고 그래서 탄핵한 것입니다. 맞습니까?
청중: 예.
MBC의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은 3월 26일, 이를 보도하면서 “여러분, 고등학교도 안 나온 여자가 국모로서 자격이 있습니까?”라고 한 송 씨의 말을 내보낸 뒤 건너뛰어 “다른 영부인들은 다 이대 나왔어요?라고 말한 부분을 이어 붙였다. 그리고는 한 청중이 ?그게 무슨 여사예요. ×××이지”라고 말한 것을 편집한 뒤 송씨가 이를 맞장구치며 박수를 유도했다고 방송했다.이 날 송씨가 다중 앞에서 대통령 부인에게 모욕적인 비유를 한 것도 적절치 못했지만, 방송도 짜깁기 편집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불행한 사건이었다.
저널리즘의 정도를 포기
공영 방송의 이런 행태는 사실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이다.그래서 방송계 출신인 우석호 광운대 교수의 비판은 매우 아프다. “탄핵과 총선을 둘러싼 방송의 보도 행태를 보면, 한마디로 언론으로서의 정도를 완전히 벗어난 느낌이 든다.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절대 다수의 찬성으로 가결된 이후, 방송들은 탄핵 지지의 목소리를 거의 외면한 채 일방적으로 탄핵 반대와 야당 때리기에만 초점을 맞춰 나갔다. 탄핵 사태를 계기로 방송은 편파에서 왜곡, 그리고 조작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신뢰를 극도로 실추시켰는데, 그것은 방송이 저널리즘의 정도를 스스로 포기하고, 권력과 자본의 편들기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안티 조선에 가담한 진중권 교수마저도 공영 방송의 언론 비평 프로그램은 위험한 수준이라면서 MBC의 「신강균…」은 미디어 동원 수준이라고까지 비난한 바 있다.오늘날 방송이 이렇게 된 것 역시 시대의 흐름과 무관치 않다. 프로그램 제작의 주류를 이루는 30∼40대가 합리적 통제의 울타리를 벗어나도 망연히 손을 놓아버리고 마는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간부들이 있는 한 문제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이제 세상이 달라졌다고 한다.
과거 활자매체 중심에서 방송매체 중심으로 언론기관의 위력도 옮겨졌다.거대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이상득 사무총장이 전당 대회 중계를 KBS에 요청하면서 ‘체면 가릴 때가 아니다. 긴말 않겠으니 한 번만 봐 달라’며 방송에 머리를 조아리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잘 아시다시피 언론의 생명은 중립이다. ‘편들기’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공정성을 유지해야 하고 정부 권력을 감시, 비판해야 한다.필자는 방송의 편파성을 지적한 우석호 교수와 진중권 교수의 견해에 동의한다. 방송은, 특히 공영 방송은, 국가가 위기 상황일수록 차분하게 여론이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기능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재산인 공영 방송의 책임기능이다. 독자적 컬러를 갖고 있는 신문은 독자들이 선택할 수 있지만 방송은 무차별적으로 안방에 쏟아져 들어온다는 점에서 어느 편에도 기울지 않는 중심역할을 해야 한다. 방송의 중심역할, 몸통역할이 이번 탄핵사태를 계기로 얻는 교훈이어야 할 것이다.
엄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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