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전부터 분당 음모 진행
대선이 12월 19일이었으니까 선거를 일주일 남겨놓고 한 협박이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까 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추미애 의원 등과 얘기하는 과정에서 ‘정권을 잡으면 정당까지 다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새로 개혁을 해야 한다. 당이 새로워져야 한다. 아무개는 골라내고, 누구는 새로 빼고, 앞으로 문성근, 유시민 이런 사람들과 정당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정몽준은 뭐냐, 그 사람은 잘 모르겠다. 새로 당을 만들면 정몽준은 그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는 김행(당시 국민통합 21 대변인)의 말과도 일치한다.후단협 지도부의 한 사람이었던 유용태 원내총무는 직격탄을 날린다.“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후단협 멤버들을 원수로 생각했습니다. 노 대통령이 어떻게 해서 대통령에 당선됐습니까? 단일화 때문 아닙니까? 그런데 단일화가 누구 때문에 됐습니까? 후단협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후단협에 감사해야 합니다. 노 대통령은 편협하고 편 가르기에만 능한 사람입니다. 노 대통령은 배신자입니다.”그러면서 단일화 과정을 설명한다.
“노 후보가 민주당 후보가 됐지만 노풍이 꺼지면서 3등으로 밀려났습니다. 당시 후단협은 오로지 정권 재창출만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단일화밖에 길이 없다고 보고 정몽준을 꼬신 겁니다. 처음엔 경선을 하자고 했는데, 노 후보가 ‘야당을 할 깝세 경선은 않겠다’고 거부했습니다. 사실 경선을 했어도 노 후보가 이겼습니다. 저쪽(정몽준 측)은 돈은 있을지 몰라도 조직이 없어 안 됩니다. 그런데 노 후보가 자신이 없으니까 거부한 겁니다. 그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도 후단협을 미워했습니다.”또 하나 있다. 대선 자금이다. 역시 유용태 총무의 증언이다.“대선 때, 나는 사무총장이었는데 정말 당에 돈이 없었습니다. 사무처 요원들 월급을 주려고 각종 후원회에 가서 구걸을 하며 푼돈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원길이가 사무총장할 때는 노 후보에게 6∼7억 원씩 주었다면서 이상수 의원이 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정대철 의원도 선대 위원장이 되더니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습니다. 돈이 있어야 주는 것 아닙니까? 직원들 월급도 못 줬는데… 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신문·방송의 편집·보도국장을 불러놓고 후단협이 돈을 안 주더라고 했다는 말이 그것입니다. 제 후임으로 이상수가 사무총장을 했는데 당에 돈이 없었다는 걸 뻔히 알았을 것 아닙니까?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은 자격이 없습니다.”그러면서 2002년 8·8 보선 때부터 이미 갈라서기로 작정했다는 주장이다.
독자들은 혹시 필자가 한 쪽(후단협)의 주장만 인용하는 게 아니냐고 항의할지 모르겠다. 사실이다. 그러나 그동안 후단협의 주장은 묻혀 있었기 때문에 이 참에 한번 짚고 넘어가자는 생각에서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니까 자료만 충실히 제공할 따름이다. 굳이 말한다면 이번 헌재의 판결에서 보이지 않았던 소수 의견 같은 것을 말하고 싶다는 뜻이다. 그러면 계속 들어보자.“8·8 보선 때 내가 사무총장이어서 공천 심사위원장을 하고 있었는데 노 후보가 자기에게 공천권을 달라면서 자기가 심사위원장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당에서는 안 된다고 하니까 심사위원장으로 노 후보가 지명한 김근태 의원을 시키기로 했습니다. 국회의원 공천은 경력과 능력, 그리고 당선 가능성을 보아야 하는데, 순서로는 당선 가능성이 맨 우선입니다. 그런데 노 후보의 사인을 받은 이재정은 코드가 우선이었습니다.심지어 어디까지냐 하면, 당에서는 김중권을 내보내려고 했는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천정배가 김중권을 만나, 나오지 말라면서 협박을 했습니다. 김중권은 더러워서 안 하겠다고 물러났습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노 후보가 공천 심사위원회 첫 회의에 와서 한다는 말이, 당선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와 정치를 오래 한 분이 공천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원 참, 선거인데, 당선이 우선이지 아는 사람이 우선이냐, 지금 생각하니까 노 대통령은 그때부터 이미 민주당을 쪼개려고 한 것이 분명합니다.”그러나 후단협도 잘못한 것은 크다고 해야 한다.
이낙연 의원의 증언이다.“후단협이 노 후보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대통령 감이 아니라는 둥, 인간적인 모멸감을 주는 언동을 했습니다. 특히 후단협의 몇몇 분들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런 걸 당하면 누구나 견디기 힘듭니다. 단일화 이후에는 열심히 했다는 말일 텐데, 그래서 자기들도 공헌했다는 건데, 단일화 전까지는 모멸적인 언사를 쓰고 다닌 게 사실입니다.”자, 이 정도면 이제 둘은 서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갈라지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뒤 하려고만 마음먹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던 분당(창당)이었는데도 말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차근차근 짚어보자.먼저 천정배 의원의 말부터 들어보자.“대선 직전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정치 개혁을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선거 이틀 전인 12월 17일 아침 회견에서도 노 후보는 정치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선거가 끝나자마자 정치 개혁을 민주당부터 시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민주당부터 개혁하겠다
결국 민주당의 분당을 음모라고 보는 후단협의 시각에 대해 정치 개혁 차원이라고 응수한 것이다. 그러면서 한화갑 의원이 말한 민주당 해체 촉구 성명 건에 대해서도 이렇게 해명한다.“대선 다음 날인 12월 20일(일요일) 오전 11시 민주당 해체를 주장하는 성명을 낸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일부에서는 바로 탈당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초선들을 중심으로 ‘발전적 해체’를 주장해 그 용어를 쓴 것입니다. 다시 말해 발전적 해체란 정치적 의미다, 당의 변화를 추구하는 선언적 의미다, 라는 것입니다.”쉽게 말해서 리모델링이다. 못마땅한 사람들을 솎아내자는 것이다. 이해찬 의원의 증언은 더 솔직하다.“당시 민주당 최고지도부는 박상천, 정균환, 한화갑, 정대철씨 등이었는데 정대철 의원만 빼고 나머지 모두 노 후보 흔들기에 가담했던 사람들입니다. 또한 이들 지도부는 당내에서도 지탄을 받았습니다. 그런 지도부는 대통령과 협조도 안 되고 당정 협의도 안 됩니다. 그래서 그런 지도부를 갖고는 당을 이끌어 나갈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건은 이제 충분히 성숙되었는데 왜 그때 리모델링이나 탈당, 또는 분당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천정배 의원이 답한다.“그때 노 당선자는 1박 2일로 제주도에 갔는데, 21일 두 번 통화하면서 이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그랬더니 노 당선자가 ‘그런 흐름을 막을 수도 없지만, 그렇게 되는 사태를 원치도 않는다’면서 만류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프로세스, 즉 과정을 중시하는 분입니다. 신당 창당이 불가피하다는 당위성을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입니다. 그때 솔직히 말해, 대장(두목)이 그러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지, 분당(탈당)을 했어야 했습니다. 당시는 승리의 힘으로 충분히 정치적인 힘이 있었습니다.”
엄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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