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순형 “정상 참작, 집행 유예 선고한 것이나 다름없어”
조순형 “정상 참작, 집행 유예 선고한 것이나 다름없어”
  • 엄광석 
  • 입력 2005-02-02 09:00
  • 승인 2005.02.0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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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다수의 의회 권력에 의해 추진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은 그러나 1차로 총선이라는 국민의 심판을 받았고, 이어서 헌법재판소에 의해 기각이라는 최종 판결을 받으며 소멸됐다. 총선에서 탄핵을 주도했던 민주당은 빈사상태가 됐고, 한나라당은 아슬아슬하게 죽음의 난간을 건넜다. 자민련은 해체 직전이다. 야당으로 볼 때 참혹하다면 너무 참혹한 결과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핵안을 주도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민주당의 조순형 대표다. 거의 모든 야당의 정치인들이 중간에 물러섰거나, 선거 결과를 보고 후회하는데, 그는 아직도 꿋꿋하다. 총선 참패 이후 기자라면 아무도 만나지 않았던 그가 필자와 만나 심경을 털어놓았던 5월 21일까지 그는 분명히 그랬다.더구나 그는 전혀 풀죽은 모습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선량이라는 사람들이 낙선하게 되면 그만 어깻죽지가 축 늘어지는 법인데, 그는 자세도 흐트러짐이 없었고, 얼굴도 해맑았다. 그래서 아니 이분이 정말 제정신으로 이러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조순형 대표, 탄핵안 추진 후회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낙선했지만 괜찮습니다. 다만 전국적으로 많은 동지들이 낙선하고 당이 무너진 데 대해 너무 마음이 아파서 안 할 걸 그랬나, 하고 생각도 해보았습니다만, 헌정과 역사라는 면에서 크게 생각하면 후회하지 않습니다. 특히 이번 헌재의 결정을 계기로 그런 생각을 더 갖게 되었습니다.”누구처럼 너무 오기로 그러시는 것 아닙니까? 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근거를 이야기한다.“이번 헌재의 결정은 기각이지만 사실상 대통령의 유죄를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가령 이것이 형사사건이었다면 유죄를 선고하고, 정상을 참작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탄핵이라는 것은 징계의 성질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헌재가 비위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탄핵감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탄핵은 기각됐지만, 그러나 이제까지 제왕적 대통령이니 하는 것이 없도록 하는 계기가 됐고, 누구든지 법위에 군림하지 못하도록 하는 근거를 남겼다는 면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면 있는 것입니다.”

조순형이라는 정치인이 누군가. 196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지낸 전설적 정치인 유석(維石) 조병옥 박사의 3남 2녀 중 막내다. ‘고독한 원칙주의자’라는 말에서 느끼게 해주듯, 고집세기로 말한다면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도 두 손을 든다.“언젠가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각 당 대표들의 회동이 있었습니다. 그때 조 대표가 메모를 해가지고와 노 대통령에게 조목조목 독한 소리를 해대는데 조마조마 했습니다. 저 같으면 그런 말 못합니다. 조순형 대표는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실제로 이런 일도 있었다. 87년의 일이다.그때 군정 종식을 위해 YS와 DJ 두 지도자에게 후보 단일화를 하라는 것이 국민적 요청이었다. DJ의 동교동계에서는 조순형·이철 의원이, YS의 상도동계에서는 홍사덕·김정길·박찬종 의원 등 당시 소장파들이 단일화를 주장하다가 실패하자 소속계보로 복귀하지 않고 한겨레 민주당이라는 것을 창당한다.

재야에서는 예춘호, 장을병, 제정구, 유인태 등이 합류한다.조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 빠지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저 한 사람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13대 총선을 치렀는데, 물론 한겨레 민주당에서는 전국적으로 100명이나 공천했지만 전남에서 한 명만 당선되고 (그도 다음 날 평민당으로 이적), 저를 포함한 전원이 낙선했습니다. 그러니 당도 자동 해체됐습니다. 사실상 정치적 자살이지요. 당시는 그런 생각도 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지금도 그때 내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그는 이런 사람이다.그런데 이런 그가 지금 헌재의 판결에 몹시 서운해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번 헌재의 판결은 용기와 신념, 양심이 결여된 판단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두고두고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헌법재판관들이 들으면 역시 서운해할 발언이다.

조 대표가 제기하는 문제들
조순형 대표가 제기하는 헌재 판정의 문제들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그는 대통령과 만날 때도 메모를 써 갔던 것과 같이, 필자의 인터뷰 때도 깨알같이 써가지고 나온 메모를 보면서 답변했다. 그는 그만큼 철저한 사람이다.
첫째,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인 판정을 하면서 소수 의견을 발표하지 않은 것은 큰 잘못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수 의견을 달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결정문에서 장황히 설명했지만 논리에 닿지도 않고, 궁색하기 짝이 없다. 한마디로 형식 논리에 불과하다.
둘째, 결정문을 보면 앞부분에서는 대통령이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하고, 헌법 수호 의무도 위배했다는 것을 분명히 해놓고서, 중간에 붕 뜬 뒤, 중대한 사유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린 것은 기형적인 판결이다. 어떻게 앞에서는 법 위반이라고 해놓고, 중간에 납득할 만한 논리적 설명 없이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있나?
셋째, 대통령의 법률 위반 사실을 심리하기 위해 소추 위원들이 증인 출석을 요구했음에도 뚜렷한 이유 없이 증인 신문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수사 기록 제출 요구도 검찰이 거부했다고 해서 덜컥 받아들인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넷째, 따지고 보면 중대사유라는 것도 무엇이냐.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파괴하고, 국민의 신임을 잃으면 그것이 중대사유 아니냐. 또한 임기 중의 부정부패, 측근 비리라는 것은 중대사유에 해당된다. 더구나 파면의 요건으로서 더 이상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국민의 신임을 배신해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에 한한다고 정의해 놓고, 어떻게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대통령에게 면책 결정을 내릴 수 있나?

우리 사법부는 지난 10·26사건 때, 5명의 대법관들이 김재규의 박 대통령 시해가 내란 목적의 살인이 아닌 단순 살인이라는 소수 의견을 냈다가 계엄사에 끌려가 호되게 당하고, 사표를 낸 전통이 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역사적 판결에 소수 의견을 내지 않은 것은 법관으로서 용기와 신념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이상이 국회 법사위에 오래 몸담았던 ‘원칙의 신사’, 조순형 대표가 제기하는 헌재 결정에 대한 문제들이다.그렇다면 이런 야당 대표의 문제 제기에 대해서 헌재는 뭐라고 답변할까? 지금까지 헌재는 결정 당일 소수 의견을 달지 않았던 이유에 대한 장문의 보도자료를 낸 뒤, 계속되는 이런 류의 언론 지적에 대해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래서 헌재의 입장을 알아보기 위해, 필자는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에게 정식으로 인터뷰를 요청하기로 했다.대한민국 최고 헌법기관의 하나인 헌법재판소의 수장에게 하는 인터뷰인 만큼 정중하게 격식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비서관에게 미리 전화한 뒤, 예의 바른(?) 질문서와 함께 필자의 이력서도 팩스로 보냈다. 주심인 주선회 재판관과 권성 재판관에게도 똑같이 했다.

그런데 예상대로 세 분으로부터 정중한 거절의 답을 들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 더 이상 인터뷰 요청서를 보내지 않았다. 무덤까지 갖고 가겠다는 비밀의 벽이 느껴진 순간이었다.그런데 한 가지 길이 트였다.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으로부터 기록을 위한 취재라는 면을 고려, 자신이 지정하는 선임 헌법 연구관을 만나게 해준다는 제의였다. 어차피 헌법 재판관들은 입을 다물기로 굳게 약속했으니, 그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어그러졌고, 무엇보다 헌재소장이 추천한 사람이라면 헌재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전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만난 헌재의 선임헌법연구관이 장석조 부장판사다. 그가, 그의 답변이, 사실상 헌재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된 것은 실제로 인터뷰 직전 윤영철 헌재소장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때문이다.

그는 윤영철 헌재 소장으로부터 필자와의 회견 시 답변에서 유의해야 할 몇 가지 지시와 주의를 들었다.장석조 부장 판사는 헌재에 파견 나온 법관까지를 포함해 50명이나 되는 헌법연구관 중 유일하게 이번 헌재의 전 재판 과정에 하나도 빠짐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한 법관이다.그는 ‘헌재의 공식 견해라기보다는 재판소장님과 재판관님들을 가까이 모시면서 탄핵 심판 절차의 진행 과정을 지켜본 한 법조인의 개인적 견해로 생각해주기 바란다’는 토를 달았지만, 필자가 듣기에는 영락없는 공식 답변이었다.그의 답변을 들어보자. 조금 지루하더라도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되도록 그의 답변을 충실히 옮겨 본다.

엄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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