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번 탄핵 심판 절차를 진행함에 있어 절차 규정이 매우 미흡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절차에서 제기됐던 쟁점들에 대해서는 재판관 전원이 평의에서 의견을 모아 하나하나 풀어 나갔다고 전했다.재판관들이 가장 격하게 토론을 벌였던 것은 역시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소수 의견의 공표 여부를 놓고서다. 오죽하면 주심인 주선회 재판관이 ‘지금 우리는 정말 힘든 상태’라고 말했겠는가. 마지막 단계에서 있었던 이 의견 충돌로 윤영철 헌재 소장을 비롯한 9명의 재판관들은 극심한 마음의 고통을 겪었다. 소수 의견을 공개하라는 비등한 여론의 압력도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한 요인이다. 그들은 헌재 자체가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게 괴로웠다고 한다. 실제로 5월 14일 주선회 주심재판관이 연합뉴스와 SBS의 법조 출입 심석태 기자에게 했던 말을 인용해 본다.“(대통령이)파면 대상이 아니라는 건 너무 상식적이지 않나. 어떻게 4천8백만이 뽑은 대통령을 처벌 규정도 없는 그런 것을 가지고 파면을 하나. 그렇지만 소수 의견은 아주 강하게 나왔다. 그러나 반대 의견(기각)이 강하니까, 그리고 소수 의견을 따로 내지 않기로 한 마당에 균형을 잡아야 했다. 그래서 원래 기각 의견의 결정 이유보다는 많이 강하게 나갔다. 소수 의견을 녹이지 않을 수 없었다. 파면해야 한다는 쪽에서 주장한 초안은 엄청 강했다.
항목마다 논쟁이 엄청나게 제기됐다. 정말 어려웠다.(대통령을)꾸짖은 부분이 있는데, 그건 대통령이 법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더구나 법조인 출신인 대통령이 법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정말 심각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민투표 같은 것도 나도 당시에는 각하 의견 냈는데,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경고를 한 것이다. 앞으로 말 좀 조심하시라고… 초안에서는 아주 심하게 꾸짖는 내용이 들어 있었는데 고치라고 했다. 그래도 예의를 갖춰야 하지 않나.”주선회 주심재판관의 말처럼 재판관들은 여러 쟁점에서 심한 의견 대립을 보였다.소수 위원 측이 신청한 증인, 증거를 어느 범위까지 받아들일지의 여부를 놓고, 또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행위가 파면할 정도의 사유가 되는지의 여부를 놓고도 고성이 오갔다고 한다. 특히 소수 의견의 비공개 법칙이 보도되자, 흥분한 재판관도 있었다고 알려졌다. 실제로 평의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나오던 재판관들을 지켜본 헌법연구관들은 재판관들이 벌겋게 상기된 채 어색하게 웃으며 악수하는 모습을 보고 ‘되게 싸운 모양이로구나’ 하고 추측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 의견을 밝히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여론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법의 원칙을 지킨 것으로 법조의 일원으로서 경의를 표한다고 장석조 부장판사는 말한다. 아울러 사견으로 소수 의견의 비공개는 법률의 충실한 해석이라는 점 외에도 결정 이후의 국론 분열을 방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합목적적 견지에서도, 바람직한 조치였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정치적 상황을 고려했다는 말이다.헌재의 결정이 내려진 날, 인터넷에는 권성, 김영일, 이상경 세 재판관이 탄핵 쪽에 섰다는 글이 올랐다. 그리고 각하도 한 명 있었는데, 유일한 여성 재판관인 전효숙 재판관이었다고 올랐다. 그러나 이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헌법재판관들을, ‘탄핵 찬성과 기각이 몇 대 몇인지는 죽을 때까지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는 그들의 말을, 식은 죽 먹기로 뒤집는 정치인들의 말과 비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탄핵은 집행유예다
자, 이제 이 긴 글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헌정 초유의 이번 탄핵안 발의부터 가결, 그리고 총선의 심판, 이어서 헌재의 기각 결정이 내려지기까지의 전 과정을 추적하면서 느낀 가장 큰 충격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매우 감정적, 감상적이라는 사실이었다. 탄핵이야말로 냉정하게 바라보고 판단할 일이지, 감정적, 감성적으로 처리할 일이 아니었다.야당이 탄핵을 강행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와 배경에 대해, 그 정황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역시 탄핵은 신중했어야 했다. 헌법 학자인 명지대 허영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국회의 탄핵 소추는 우선 시기적으로 매우 부적절했다.48.9%의 지지율로 당선된 대통령이나, 193명이라는 압도적 다수가 탄핵을 지지한 국회나, 모두 국민적 배경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기적으로 국회는 임기 말이었고, 대통령은 임기 초였다. 더구나 국회가 타락하고, 부패한 집단으로 몰리던 상황에서 이런 국회의 강행처리가 국민 눈에 정당하게 비쳐질 리가 없었다.탄핵의 사유도 야당이 소추한 3개 중, 측근 비리는 대통령과의 연관성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였고, 경제 파탄은 헌법이론상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컸다. 유일하게 해당된 것이 선거법 위반인데, 대통령을 파면시킬 만큼 중대한 사유였느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이견은 있지만, 헌재의 결정처럼 당시에는 불충분하다는 의견이 학자들 사이에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야당이 정말 대통령 탄핵을 성사시키려 했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대통령의 전반적인 헌법과 법률 저촉 행위를 문제삼았어야 했다는 지적이다.가령 소추안에서 열거한 재신임 연계 발언이나 선거 중립 위반 외에, 노조의 불법 시위와 법질서 무시 행위를 동조한 듯한 언동에서 보인 법치주의의 위배와, 일본에서의 공산주의 발언 및 송두율 입국 사례에서 보인 자유민주주의 수호 의지를 경시한 헌법정신위배 사례, 그리고 선출 기반을 탈당함으로써 국민의 심판권을 훼손한 민주당 탈당이나, 직무 집행에 있어 헌법 정신을 위배한 측근 비리 특검법 위반 등을 종합적으로 포함시켰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랬다면 결과는 누구도 모른다.사실 이번 헌재의 대통령 탄핵 소추안 기각 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 그들은 헌재가 사법기관인 대법원과는 달리 헌법의 위반 여부만 판정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따라서 국회가 가결했다면 이미 정치적으로는 끝난 사안이며 헌재는 국회의 이런 결정이 법률적으로 문제가 있느냐의 여부만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헌재로 하여금 탄핵에 대해 포괄적 판단을 하도록 한 헌법이 모순이라면 모순이라는 것이다.
국회의 탄핵 소추에 절차상의 하자는, 헌재의 결정처럼, 없다고 판정했다. 그런 의미에서 의회 쿠데타 운운은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핵 소추안 강행 처리로 야당은 국민의 매서운 심판을 받았다. 역대 총선에서 국민들은 대통령을 견제하라는 삼권분립의 정신에 따라 야당에 표를 모아 주었던 전통을 깨버린 것이다.결국 야당은 자살을 선택한 꼴인데, 아무리 부패집단으로 몰렸다 하더라도, 역시 국민적 배경이 있는 만큼, 정말 대통령을 탄핵해야 할 정도로 충분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이를 정치적으로 푸는 전략을 구사했어야 했다.예컨대, 탄핵안을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하지 말고 법사위로 넘기든가, 청와대가 걱정했던 시나리오대로 국회의장이 의장 단상에 오르지 못한 채 중간에서 엉거주춤하게 선 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탄핵된 것이다’라고 선언하는 것 말이다. 그랬다면? 총선 결과는 역시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야당에는 전략가가 없다는 말을 듣는 것이다.헌재가 구성에서 민주적 정당성의 취약으로 총선 결과에 따라 결정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학계의 지적도 있었다. 헌재의 결정이 정치 상황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헌재는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아픈 충고를 했다.
‘대통령의 권한과 정치적 권위는 헌법에 의해 부여받은 것이며, 헌법을 경시하는 대통령은 스스로 자신의 권한과 권위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것’이라고 꾸짖(?)었다.‘대통령은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로서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 기관이나 일반 국민의 위헌적 또는 위법적 행위에 대해 단호하게 나섬으로써 법치국가를 실천하고, 궁극적으로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하는데 ‘대통령의 특정 시민단체에 대한 편파적 행동은 대통령을 지지하는 집단과 그를 지지하지 않는 집단으로 나라를 양분하는 현상을 초래함으로써 모든 국민의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통합시켜야 할 의무와도 부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언행과 정치적 파장에 비추어 그에 상응하는 절제와 자제를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그래서 민주당의 조순형 대표는 이번 헌재의 탄핵 기각 결정이 ‘가령 이것이 형사사건이라면, 유죄를 선고하고 정상을 참작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그런데 대통령은 직무에 복귀한 뒤 첫 대국민 담화에서 이런 헌재의 경고(?)에 전혀 답을 하지 않았다. 헌재의 지적을 법률적으로 수용하지만 심정적으로는 승복하기 어렵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2개월간 직무 정지를 당했던 대통령이 자리에 복귀하고 나서 달라졌다느니,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느니 말들이 많다. 대통령이 달라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원칙을 갖고 지속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되, 대결과 편가르기는 이제 그만 자제해 달라는 바람일 터이다.결론적으로 탄핵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불행한 일이었다.적어도 탄핵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 경위를 생각하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은 이제 이런 헌재의 충고를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엄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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