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은 “얼마나 지독한 감기에 걸렸으면…” 하면서도 그러려니 했다.하지만 권양숙 여사가 재외공관장 만찬장에 못 나온 것은 감기 탓만이 아니었다. 사실은 이에 앞서 4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의무실에서 눈꺼풀 처짐증 수술을 받을 때 함께 눈꺼풀 수술을 받아 부기가 채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와중에 청와대는 끝까지 권양숙 여사의 수술 사실을 쉬쉬했고, 2월28일 한 언론이 주변취재를 통해 보도한 뒤에야 확인해줬다.그런 과정을 거친 권양숙 여사는 지난 3월1일 꼭 한 달만에 공개된 장소에 모습을 나타냈다. 서울 이화여고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86주년 3·1절 기념행사장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나 TV를 통해 기념식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길은 권양숙 여사의 얼굴에 쏠렸다. 그런 후 곧바로 인터넷의 각종 게시판에는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그 가운데는 권양숙 여사가 눈뿐만 아니라 코 등 여러 곳을 ‘성형수술’한 것 아니냐는 글도 더러 있었다.청와대측은 권양숙 여사의 눈꺼풀 수술에 대해 “사적영역의 문제”라며 세인의 관심이 들끓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렇지만 대통령 부인의 동정 하나 하나에 여론이 민감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 부인이란 자리는 이 나라 여성계의 상징이며, 어떤 의미로는 대통령의 ‘최측근 실세’이자, ‘1급 참모’인 까닭이다.그만큼 세인들의 시선을 모으고, 국민생활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는 대통령 부인들의 청와대 생활은 어땠을까.청와대에서 대통령 부인의 생활을 챙기는 부서는 ‘제2부속실’이다. 제2부속실의 구체적 업무는 ‘영부인 일정 및 행사 기획, 집행’ ‘영부인 활동 수행 및 비서업무’ ‘영부인 활동 대내외 네트워크 및 비서활동’, ‘관저생활 보좌’ 등이라고 청와대 홈페이지는 설명하고 있다.
관저 생활까지 포함해 대통령 부인과 24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 업무인 셈이다.다만 대통령 부인이 각종 공식행사에 참석할 때 필요한 연설문은 제2부속실이 아닌 대통령 ‘연설팀’에서 작성한다. 경호도 경호실에서 별도로 관리한다. 현재 제2부속실장은 공석이다. 참여정부 출범 초 숙명여대 아동복지학 강사 출신인 김경윤씨가 제2부속실장으로 들어왔으나 지난해 학교로 복귀한 뒤 아직 후임을 인선하지 않고 있다. 대신 3급 국장(행정관)부터 9급 사무원, 계약직까지 합쳐 모두 9명의 직원들이 권양숙 여사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한다. 여기는 미용사와 코디네이터 등도 포함된다.한편,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펴 보좌하는 곳은 ‘제1부속실’인데 현재 제1부속실장은 청와대 대변인을 지내 외부에도 잘 알려진 윤태영씨(1급)가 맡고 있다. 참고로 김대중 대통령 시절 말기 청와대 제1부속실장은 2급인 김한정씨였는데, 제2부속실장은 그보다 한계급 높은 1급인 성인숙씨가 재직했다.
‘최상의 퍼스트레이디’로 육영수 여사 자타가 인정
제2부속실이 대통령 부속실에서 독립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2년이라고 한다. 당시 제2부속실장의 직급은 ‘2갑’이었고, 전두환 대통령의 5공화국 시절 ‘2급’으로 변경됐다. 이후 노태우 대통령의 6공화국 때 3급으로 하향조정됐다가 이후 1급 또는 2급이 맡고 있다. 역대 퍼스트 레이디 가운데 국민에게 가장 깊이 각인된 인물은 박정희 전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라는 데 별다른 이론이 없다. 육영수 여사 사망 후 사실상의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수행했던 박근혜 한나라당 총재는 지금 부모의 후광을 큰 밑천으로 삼아 대통령직까지 노리고 있다.반면, 헌정 사상 가장 구설수에 많이 올랐던 청와대 안주인은 전두환 전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일 것이다. 이순자 여사는 1980년 전두환 장군이 정권을 잡은 직후부터 대학가를 중심으로 풍자의 대상이 됐다.당시 이순자 여사의 왕성한 대외 활동력을 빗대 별명이 ‘빨간바지’였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는데 청와대 생활 역시 거침이 없었다고 한다. 개성을 감추지 못하고 화려한 스타일의 옷을 자주 입어 서민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남편을 닮아 ‘통이 컸다’고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사람들은 회상한다. 명절이면 하급 직원들에게도 떡값을 후하게 쥐어주고, 근무지가 바뀌어 떠나는 참모들의 안사람에게도 전별금을 전달하곤 했다는 것이다.이순자 여사는 청와대에서 나온 후에도 간혹 화제를 뿌리고 있다. 지난 해 5월11일 전두환 전대통령의 비자금을 관리한 의혹 때문에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으면서는 울먹이면서 “(검찰이 남편 비자금이라고 주장하는) 130억원은 패물을 팔고 땅을 사서 불린 알토란 같은 돈”이라고 말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몇몇 퍼스트 레이디들은 ‘청와대속의 야당’을 지향하기도 했다. 가령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3년 12월18일 충북지역 언론인들과의 간담회에서 “(부인이) 보지말라고 해도 조선일보를 본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비판적으로 이것저것 물어보곤 한다.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닌대로 설명하고 생각이 다른 것은 해명을 부지런히 한다”고 토로한 바 있다.
외모도 성격도 ‘붕어빵’인 노 대통령부부 소탈함도 닮은꼴
또다른 일화도 있다. 2003년8월 청와대와 인접한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에 노무현 대통령 부부가 불쑥 나타났다. 당시 문희상 비서실장이 수석 보좌관들을 초청해 만찬을 하고 있던 자리였다. 여기서 서울 외곽순환도로 사패산 터널 문제가 화제에 올랐다. 한 참석자가 터널 공사에 반대 의견을 밝히자 권양숙 여사가 “그봐요, 내 말이 맞잖아요”라며 참견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신은 가만히 있어”라고 말했지만, 부부가 이 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권양숙 여사는 또 노무현 대통령이 말을 너무 많이 해 자주 실언을 하는 점도 지적하면서 고칠 것을 당부하곤 한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귀띔했다.노무현 대통령 부부는 외모도 그렇지만 성격도 무척 닮았다. 서로 격식을 싫어하고 천성적으로 권위적이지 않다는 점이 그렇다.그렇지만 정치적으론 ‘코드’가 맞지 않을 때도 있는 것 같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권양숙 여사에게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정치인 부인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어렸을 때부터 육영수 여사를 존경하고 좋아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현정부는 지금 유신시대를 겨냥한 과거사 정리 작업에 한창이다.
김옥숙 여사의 ‘그림자 내조’는 허구로 드러나 국민들의 눈총 사
대통령 부부를 둘러싼 좋지 않은 소문들도 항상 있었다. 주로 대통령의 사생활에서 비롯된 부부간의 불화가 단골 메뉴였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이런 루머들이 시중에 끊임없이 나돌았다.또 노태우 대통령 때는 김옥숙 여사가 전임인 전두환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가 너무 ‘설치고’ 다녀 국민들의 눈총을 샀던 탓에 가급적 조용히 지내려고 애썼지만 타고난 까탈스러운 성격 때문에 뒷말이 많았다.결국 퇴임 후 불거진 비자금 사건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김옥숙 여사가 지향했던 ‘그림자 내조’는 상당 부분 허구였음이 드러났다.참여정부들어서도 대통령 부부와 관련된 좋지 않은 소문이 간간이 흘러다니고 있다.
특히 권양숙 여사가 골프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골프와 관련된 여러 가지 루머가 나돌기도 한다. 얼마전 한 여성경찰관이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던 중 대통령 부부와 관련된 소문을 입밖에 올렸다가 문책을 당하기도 했다.아마 그런 점에서 가장 자유로운 쪽은 김대중 전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일 것이다. 대통령이 됐을 때 고령이기도 했지만 두 사람의 금실이 워낙 좋았고 신앙심도 깊어 적어도 부부관계에 있어선 아무런 소문도 없었다. 이런 배경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울 동교동 자택 문패에 부부의 이름을 나란히 써 붙여 놓은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이름 난 패미니스트란 점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비서관들이 가장 편했던 손명숙 여사는 현모양처형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던 퍼스트 레이디로는 최규하 전 대통령의 부인 홍기 여사가 꼽힌다. 홍 여사는 최 대통령의 임기가 워낙 짧기도 했지만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 한학을 배우며 교양을 쌓은 전통적인 한국의 여인 답게 소박한 처신을 했다.윤보선 대통령의 부인 공덕귀 여사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 온 ‘신식 여성’이었지만 청와대에 머문 1년8개월 동안 조용하게 보냈다.남편의 임기도 정상적이었고, 고등교육을 받았음에도 조용한 내조를 지향하고 실천한 인물은 김영삼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를 꼽을 수 있다. 아들 김현철씨가 ‘소통령’ 소리를 들으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것과 달리 그는 현모양처형 퍼스트 레이디였다. 당시 청와대 사람들은 손명순 여사가 가장 모시기 편했던 퍼서트 레이디였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호주댁’ 별명 프란체스카 여사 정보 차단해 불행 자초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도 홍기 여사 못지않게 무척 검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말년에 이승만 대통령에게 들어오는 좋지않은 정보를 앞장 서 차단해 끝내 불행을 부른 막후 주인공이란 악평도 없지 않다. 당시 실질적인 ‘비서실장’ 역할을 했다는 말도 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오스트리아 출신인데, 당시 사람들이 오스트레일리아와 혼동해 ‘호주댁’으로 부르곤 했다는 일화가 있다.언론에서 대통령 부인을 호칭하면서 ‘영부인’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 시작한 것은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표방한 노태우 대통령 집권 이후부터다.원래 영부인이란 조선조 내명부의 관직명으로, 당상관의 부인을 지칭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해방 뒤에 대통령의 부인을 호칭하는 극존칭이 됐다.지금도 청와대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얘기할 때 대통령 부인을 영부인이라고 부른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면 호칭이야 어떻든 상관이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대통령 부인들은 국정에 대한 전문지식이나 식견이 없다. 그렇지만 대통령의 성격이나 가족들의 평소 행태는 누구보다 잘 안다. 여기서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국민의 소리를 바로 들어 바로 전하고, 대통령가(家)를 단속하는 일이 급선무다.그 이후에 일부에서 거론하는 대통령 부인의 역할 제고를 위한 제도화, 청와대 제2부속실 확대 개편, 가칭 ‘영부인 담당 비서실’ 신설 등의 방안을 논의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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