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참여정부 청와대 사람들의 태도는 과거 대통령 비서실 사람들에 비해 매우 겸손하다. 비서실 내에서도 엄격한 위계질서 보다는 차관급인 수석비서관과 말단 5급 행정관이 함께 맞담배를 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자유롭다.“참여정부 청와대 비서실의 직급은 매우 단순하다. 단 두 가지 ‘형’과 ‘동생’만 있다.”현정부 청와대 비서실에 근무하는 젊은 참모가 농담삼아 한 말이다. 청와대 비서실 직제는 장관급인 비서실장과 정책실장, 차관급인 수석비서관, 1~2급 비서관, 3~5급 행정관(국장), 6급 이하 직원 등으로 짜여져 있다. 그렇지만 참여정부 청와대에는 과거 학생운동을 함께 하면서 끈끈한 연을 맺은 사람들이 대거 입성해 있어 이들 사이의 호칭이 ‘수석님’ ‘비서관님’ ‘국장님’ 대신 ‘형’ ‘동생’으로 통하는 것을 빗댄 말이다.가령 이강철 시민사회수석은 집무실에서건 술자리에서건 함께 근무하는 젊은 참모들을 호칭할 때 “OO야” 하며 성은 빼고 이름만 부른다.
그들에게도 이강철 수석은 “수석님”이 아니라 “강철이 형”이다. 현재 경호실을 제외한 비서실 정원은 498명이다. 이는 역대 정부 청와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참모진에 해당한다. 이전까지는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청와대가 모두 400명선의 비서실 직원을 유지해 ‘작고 강한 정부’라는 캐치프레이즈와는 반대로 가장 많았다.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통령 비서실 참모수는 박정희 대통령의 제3공화국시절때 137명이던 것이 전두환 정부때 334명, 노태우 정부때 384명으로 계속 늘다가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절에만 375명으로 약간 줄어들었다.현재 대통령 비서실은 김우식 비서실장과 김병준 정책실장을 정점으로 7개 수석비서관(시민사회·민정·홍보·인사·경제정책·사회정책·혁신관리)이 있다. 정책기획위원회 등 12개 위원회, 국가안보·경제·외교·정보과학기술보좌관, 그리고 비서실장 직속의 비서관들은 별개다.각 수석비서관실에는 3~6명의 비서관이 담당 분야별로 수석비서관을 보좌한다. 1명의 비서관 아래에는 적게는 3명, 많게는 10명 가까운 행정관과 6급 이하 직원들이 실무를 담당한다.
다양한 출신 성분
청와대 비서실 사람들의 ‘출신성분’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전문관료 그룹이다. 여기에는 현역 군인과 검찰·경찰 등 ‘특수직’도 포함된다. 이들은 해당 부처의 엘리트 공무원들로 파견 형식으로 근무하다가 일정 기간을 채운 뒤 대개는 승진해 친정으로 돌아간다.둘째는 범정치권 출신 그룹이다. 신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함께 청와대에 입성하거나 집권한 정당 또는 국회에서 청와대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 비서실에 채용되는 사람 가운데는 언론계와 사회단체 출신들이 많은 편이다.셋째는 극소수이긴 하지만 청와대 토박이 그룹이 있다. 정권이 바뀌면 대부분의 비서실 사람들도 바뀌지만 청와대 살림의 노하우가 필요한 분야에서는 토박이가 우대 받는다. 주로 총무·의전·기능 파트에 장기근무자가 몰려 있다. 세 그룹 간의 비율은 정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보통은 전문관료 출신과 신임 대통령을 따라 입성하는 범정치권 출신 참모들의 비율이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다.
정치권 출신 자부심 강해
앞에서 소개한 ‘형’ ‘동생’이란 호칭은 정확하게 말하면 범정치권 출신 참모 그룹에 한정된다. 전문관료 출신들간에는 엄격한 위계질서가 있다. 이는 두 그룹의 성장 배경과 인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와대 내부에서 이들 사이에 알력과 갈등이 없을 수 없다.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관료 출신은 정치권 출신을 그다지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한마디로 줄 잘 서서 청와대에 들어 왔을 뿐 ‘함량미달’이 많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특히 30대 중·후반이나 40대 초반의 정치권 출신이 비서관으로 있으면서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의 노련한 관료 출신들을 행정관급 부하로 거느리고 있는 부서에서 더욱 그렇다. 자신들은 행정고시 합격 후 20여년을 공직에서 근무해야 올 수 있는 자리를 정치판에서 구르다 줄 잘 잡은 사람이 차지한 데 대한 반감이다.
반면, 정치권 출신 인사들은 정권 창출에 일익을 담당했다는 데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이들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데는 행정 경험보다 정치적 감각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따라서 정무 파트나 기획·홍보 파트에는 언제나 범정치권 출신 참모들이 포진한다.비서관급이나 행정관급에서 나타나는 이런 알력은 곧잘 실무적인 마찰로 이어지곤 하지만 크게 불거진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업무협조 문제 등으로 충돌이 있었어도 대게는 사소한 감정싸움이나 말다툼 정도로 좋게 끝을 낸다.그러나 상층부에서 벌어지는 권력갈등은 문제가 심각하다. 청와대 비서실 수뇌부와 청와대 밖 여권 실세 간의 권력암투뿐 아니라 청와대 수뇌부 간의 권력갈등이 수시로 벌어지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같은 정치권에서 들어왔어도 일선 정치인 시절 성향이 달랐던 사람들 사이에선 종종 권력암투가 벌어진다.
참모간 권력 암투
국민의 정부 청와대 초기 김중권 비서실장을 비롯한 구여권 출신 참모들과 권노갑 전 의원의 동교동계 구파 출신 참모들의 갈등이 전형적인 경우다. 김중권 실장은 이와 별도로 김대중 대통령의 최측근인 박지원 당시 공보수석과도 보이지 않는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비서실 내에선 유력 인사들이 주로 비서관급들을 대상으로 자기 사람 심기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일부 비서관들이 이 과정에서 자신의 직속 상관인 수석비서관을 배제하고 다른 수석비서관에게 보고해 구설에 오른 적도 있었다.참여정부 청와대 역시 김우식 비서실장 같은 실용파와 이강철 시민사회·문재인 민정수석 등 개혁파, 김병준 정책실장을 비롯한 분배론자 등 여러 성향의 참모들이 섞여 있다. 지난 2년여 동안 내부 마찰이 뚜렷이 드러난 것은 없지만 언제든 내분 소지를 안고 있는 셈이다.
청와대 비서실 사람들은 들어올 때도 그렇지만 나갈 때도 출신성분에 따라 새로 가는 길이 다르다. 관료 출신들은 대개 원적이 있는 부처에 복귀한다. 대부분 승진하거나 좋은 보직을 받아 ‘금의 환향’ 하는 게 보통이다.반면, 정치권 출신들은 부침이 심하다. 나가서도 정치를 하려고 하지만 자리가 그리 많지 않다. 보통 총선 때가 되면 국회에 진출하기를 희망하는 청와대 사람이 10여명씩 나온다. 이들 가운데 공천을 받는 인사는 반 정도. 공천을 받은 사람 중에도 절반 가량은 낙선한다.특히 참여정부 청와대에선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여권이 올인 전략을 구사하는 바람에 대거 선거판에 뛰어들었다. 수도권과 호남·충남에 나간 참모들은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한 경우가 많았지만, 마지못해 차출 당해 영남에 출마한 참모들은 실업자 신세로 전락했다. 물론 그 ‘보상’으로 이해성 전 홍보수석처럼 다른 번듯한 자리를 꿰차기도 한다.
비서실 힘은 대통령과 접근성
앞에서 참여정부 청와대가 ‘탈 권위’를 표방하면서 적잖게 힘이 빠졌다고 했지만 그래도 청와대는 청와대다. 행담도 개발 의혹에 연루된 ‘청와대 3인방’이 업무영역 밖의 부분에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데서도 여전히 청와대가 권력의 심장부임을 알 수 있다.청와대 비서실의 힘은 ‘대통령과의 접근성’에서 나온다. 대통령에게 직접 국정을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질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가령 차관급인 수석비서관들이 해당 부처의 장관보다 정책결정 과정에서 우선권을 갖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수석비서관 아래의 1~2급 비서관들이 소관업무와 관련된 현안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해당 부처 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해결하는 일도 흔하다.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때인 2000년 11월 일어난 ‘청와대 청소원 사건’은 청와대의 파워를 논할 때 매우 상징적이다. 동방금고 불법대출과 무차별 로비로 파문을 일으킨 정현준 한국디지털라인 사장이 ‘실세 과장’ 흉내를 낸 청와대 미화원을 든든한 배경으로 생각하고 수억원을 갖다 바친 이 사건은 청와대 내에서도 두고두고 화제가 되고 있다.
비리유혹 노출
요즘에도 청와대와 관련된 비리는 신문 사회면이나 가십난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실제 청와대 직원이 연루되기도 하고, 청와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단순 사칭도 있다. 또 자기를 사칭한 사기꾼에게 피해를 당한 사람으로부터 확인전화를 받는 청와대 참모도 간혹 있다.그만큼 청와대 사람들은 비리의 유혹에 광범위하게 노출돼 있고, 청와대 사칭 사기극이 곧잘 통한다. 수석비서관급은 말할 것도 없고 비서관급이나 행정관급에게도 하루 한 두 건 정도의 ‘민원’은 기본적으로 들어온다. 물론 대부분은 달콤한 대가 제의가 수반되므로 웬만한 사명감 없이는 떨쳐버리기 힘든 유혹들이 많다고 한다.그 결과 국민의 정부 때만 해도 10여명의 청와대 사람들이 각종 비리에 연루돼 구속됐다. 1999년 박주선 당시 법무비서관(1급)이 옷 로비 사건과 관련돼 구속됐고, 민정수석으로 재직했던 신광옥씨가 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돼 영어의 몸이 됐다.
청와대 비리 국민적 관심사
청와대 참모들의 비리 사건은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절에도 극에 달했다. 장학로 1부속실장의 수뢰 사건을 신호탄으로 임기 내내 ‘청와대 비리’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그 이전의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도 청와대는 전국의 유능한 인재들이 모여드는 보고(寶庫)였는지 모르지만 결코 깨끗하지는 않았다.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 정권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당시 “경무대(지금의 청와대)에서 일하면 화장실 인분 처리원도 위세를 부린다”는 말이 나돌았는데 이를 동아일보에 시사만화 ‘고바우’를 연재하던 김성환 화백이 풍자했다가 고초를 겪은 이른바 ‘경무대 똥통 사건’이 있었다.유혹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힘이 있다는 뜻이고, 이는 곧 화려한 비서실 생활을 연상할지 모른다. 그러나 청와대 비서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직업을 ‘3D’ 업종이라고 부르며 열악한 근무환경을 호소하곤 한다. 부서별로 다르지만 대체로 오전 7시~8시에 출근해 퇴근시간은 따로 없다. 퇴근했다가도 언제 불려 들어올지 모른다. 마음 편하게 술 마시거나 가족들과 함께 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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