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세 축인 당·정·청 가운데 여당인 열린우리당이야 별개로 치더라도 청와대와 정부에서 떠날 사람은 떠나 보내고 새로 체제를 정비해 임기 후반부를 맞기 위한 물밑 움직임들이 감지된다. 그렇다면 청와대 비서실은 어떨까. 현직에 있을 때 막강한 파워를 갖는 청와대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임기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분 자체가 별정직 공무원이니 만큼 언제든 청와대를 떠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만큼 부침(浮沈)이 심한 셈이다. 물론 정부부처에서 파견근무를 하던 참모들은 ‘친정’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정치권 등에서 정권창출과 함께 입성한 사람들은 갈 곳이 마땅치 않다.지난 7일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간담회를 지켜보던 한 청와대 출입기자는 간담회에 배석한 참모진들을 쭉 둘러보더니 “참 2년 반 사이에 많이도 바뀌었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취임 초기 노 대통령의 각종 기자회견이나 간담회 등에 배석했던 참모들 가운데 상당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그 자리를 다른 사람들이 채웠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초기 청와대 비서실은 문희상 비서실장과 이정우 정책실장을 중심으로, 유인태 정무수석·문재인 민정수석·이해성 홍보수석·박주현 국민참여수석·권오규 정책수석이 움직였다.
전문적인 분야에서 대통령의 정책 판단을 돕는 보좌관으로는 라종일 국가안보·반기문 외교안보·김희상 국방·조윤제 경제·김태유 정보과학기술·정찬용 인사보좌관이 있었다. 초기에 이들 수석·보좌관과 비서관급인 송경희 대변인이 청와대의 주요 시책을 결정하는 수석·보좌관회의 참석 멤버였다. 2년 반 가까이 시간이 지난 지금 이들 14인 가운데 청와대에 남아 있는 사람은 이정우 현 정책기획위원장, 문재인 현 민정수석 두 사람뿐이다. 그나마 이정우 위원장은 직책이 바뀌었고, 문재인 수석은 청와대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시민사회수석을 거쳐 원직책으로 복귀한 케이스다. 비서관급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참여정부 출범 초기 수석비서관급을 제외한 비서관(1~2급)은 모두 39명이었다.
이 가운데 7월 현재 청와대에 계속 근무 중인 참모는 5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같은 업무를 계속 하고 있는 인물은 장준영 비서관이지만 그 역시 직책 명칭이 정무수석실 시민사회1비서관에서 시민사회수석실 사회조정1비서관으로 변경됐다. 나머지 4명 가운데 윤태영 연설담당비서관은 쭉 청와대를 지켰으나 대변인을 거쳐 지금은 제1부속실장으로 있다. 천호선 참여기획비서관도 노 대통령을 수행하는 의전비서관으로 갔다가 지금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맡고 있다. 김만수 보도지원비서관은 지난해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청와대에 복귀, 부대변인을 지내다 대변인으로 승진했다. 얼마 전 부동산 관련 의혹으로 낙마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딸인 이지현 외신담당비서관은 지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결국 수석비서관·보좌관급과 비서관급 모두 2년 반 동안 85%가 넘는 교체율을 보인 셈이다.
39명 비서관 중 5명만 남아
노 대통령은 인재풀의 한계와 특유의 인사 스타일에 따라 특히 청와대 비서실에 대해선 ‘돌려쓰기 인사’를 즐겨한다. 젊은 386세대 비서관들을 선호하는 까닭으로 몇 안되는 참모들이 청와대 안에서 이 직책, 저 직책 옮겨다니게 되는 것이다. 총애하는 측근들인 윤태영 비서관과 천호선 국정상황실장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럼에도 청와대를 떠난 사람이 많다. 가장 큰 이유는 지난해 여권을 휩쓴 ‘총선 올인’ 전략을 들 수 있다. 당시 노 대통령은 국정운영에 필요한 원내 안정의석 확보를 위해 조금이라도 당선 가능성이 있는 여권 사람들을 대상으로 총동원령을 내렸고 청와대 참모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에 따라 초기의 문희상 비서실장을 필두로 유인태 정무수석·이해성 홍보수석과 서갑원·이광재·문학진·김현미·박재호·박기환·박범계·김만수·정만호 비서관 등과 일부 행정관(3~5급)이 총선 출마를 위해 자의반타의반으로 청와대를 떠났다.
이들은 대부분 총선 당시의 탄핵역풍에 힘입어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지만 일부는 낙선했다. 하지만 낙선자들도 지금은 청와대에 복귀하거나 공공기관 임원으로 들어가는 등 거의 모두가 ‘보상’을 받았다. 청와대 참모들이 번듯한 직장인 비서실을 떠나는 두번째 이유는 완전한 타의에 의한 것으로, 분위기 쇄신 등을 위해 비서실 인사를 단행할 때 탈락하는 경우다. 이 때도 대다수 탈락자들은 해외공관이나 국영기업체 등에 자리를 찾아 가지만 영영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이와 함께 대통령 비서실은 파워가 있는 만큼 항상 비리의 유혹에 노출돼 있는 이유로 각종 추문에 연루돼 물러나는 경우가 많다. 현정부에선 양길승 제1부속실장이 향응을 받은 사실이 탄로나는 바람에 여론의 몰매를 맞고 옷을 벗은 1호 비서관이 됐다. 공교롭게도 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비리연루 1호 비서관도 대통령을 24시간 보필하는 제1부속실장인 장학로씨였다. 다시 참여정부로 돌아와 최근에는 ‘행담도 게이트’에 연루된 문정인 전 동북아시대위원장과 정태인 전 국민경제비서관이 사퇴했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비서실 내부 알력과 파워게임에서 패배하거나 선의의 희생양이 되어 청와대문을 나서는 사례도 적지않다. 굳이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치열했던 2인자 다툼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이 지금도 알게 모르게 권력 헤게모니 다툼이 청와대 내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 정부 시절엔 김대중 대통령이 국정경험이 있는 구여권 출신 정치인과 관료들을 대거 청와대로 끌어들이는 바람에 동교동 출신들과의 마찰이 자주 일어났다. 문민정부 시절의 청와대 내부 갈등은 주로 김영삼 대통령과 함께 입성한 상도동 출신 참모, 즉 민주계와 3당통합 전 여당에 몸담았던 민정계 참모들 사이에 일어났다. 그러나 YS 시절에는 파워게임이랄 것도 없이 뚝심을 주무기로 하는 민주계에 민정계가 일방적으로 밀렸다. 심지어 민주계 행정관들이 민정계 비서관이나 관료 출신 수석비서관들을 깔아 뭉개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청와대 내부의 힘겨루기는 비서관급이나 행정관급 사이의 하부에서도 일어난다. 주로 조금이라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약점을 들춰내 ‘밀어내기’를 시도하게 된다. 참여정부 청와대에서도 얼마 전 어느 수석비서관실 산하 비서관들 사이의 알력이 기자실내에 구체성을 띠고 입소문으로 나돈 바 있다.또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수석비서관 아래에 비서관을 2~3명 뒀는데, 박 대통령은 그 비서관들의 선발은 수석비서관이 직접 하도록 했으며, 수석비서관이 청와대를 떠날 때는 데리고 온 비서관들도 함께 떠나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고 김정렴 당시 비서실장이 소개한 바 있다.
화려한 겉모습 이면에 애로점 많아
결국 청와대 참모직은 겉으로의 화려함과는 달리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자리인 셈이다. 또 능력을 발휘하든, 보신을 잘 하든 청와대에 버티고 있더라도 대통령 임기 5년이 끝나면 극소수를 제외하곤 다 떠나야 한다. 그러나 5년을 채우는 참모 자체가 극소수다.국민의 정부 시절을 예로 들면 김대중 대통령과 5년 임기를 같이한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참모는 박금옥·박선숙씨 등 여성 비서관 두 명에 불과하다. 특히 박금옥씨는 5년 내내 1급 총무비서관을 맡았다. 박선숙씨는 처음 2급 비서관으로 들어왔다가 1급을 거쳐 차관급인 공보수석 겸 대변인까지 지냈다. 그런데 두 사람은 국민의 정부 사람들이 거의 몰락한 지금도 참여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어 눈길을 끈다.박금옥 전 비서관은 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 박선숙 전 대변인은 참여정부 초대 환경부 차관으로 발탁돼 2년이 넘도록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교체 때는 후임자 물망에 오르기까지 했다.
처신 잘해 요직 오르기도
두 여성 비서관의 경우에서 보듯 청와대 참모 경험을 살려 승승장구하는 사람들도 많다.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자리이긴 하지만 처신하기에 따라선 장관이나 국회의원을 포함한 요직으로 얼마든지 뻗어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과거 정권의 청와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무수한 사례가 있겠지만 참여정부 출범 당시 청와대 비서실을 떠받쳤던 참모들의 현주소만 살펴봐도 청와대의 은근한 힘을 느낄 수 있다.참여정부 첫 청와대 비서실의 주축이었던 비서실장·수석비서관·보좌관·비서관을 모두 합친 인원은 52명이다. 이 가운데 앞에서 설명한대로 청와대에 남아 있는 참모는 7명뿐이다.
청와대를 나간 45명 중 국회의원 배지를 단 인물이 6명(문희상 비서실장·유인태 정무수석·서갑원 의전비서관·이광재 국정상황실장·문학진 정무1비서관·김현미 국내언론1비서관)이나 된다. 장관도 한 명 배출했다. 반기문 현 외교통상부 장관이 참여정부 청와대 초대 외교안보보좌관이었던 것이다.또 현직 대사는 3명이다.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이 일본대사, 조윤제 경제보좌관이 영국대사, 권오규 정책수석이 OECD 대사로 나가 있다. 이와 함께 허준영 당시 치안비서관은 치안총수인 경찰청장으로 올라 있고, 이해성 홍보수석은 총선에서 낙선한 뒤 얼마 전 논란끝에 한국조폐공사 사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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