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회담 뒤 민주당 ‘이상기류’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지도력이 위협받고 있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이 계기가 됐고, “제 할 말을 못했다”는 당 내외 비판이 바탕에 깔려 있다. 아울러 지도부를 향한 당내 반발이 심화되고 계파 분화도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맥 못 추는 국정 현안질의 실적도 지도력 부재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리먼브라더스 사태, 멜라민 파동 등 정국을 뒤흔드는 논란이 끊이지 않음에도 현안 질의에서 이슈하나 생산해내지 못하고 여당에 질질 끌려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국감준비도 엉성하다는 지적이다. 총체적 리더십 위기에 처한 ‘정세균의 민주당호’를 진단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5일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 오찬 회동을 갖고 세계 금융위기 대처와 경제살리기 등을 위해 초당적으로 협력하기로 했다. 정 대표는 회담 뒤 “충분한 대화를 나눴고 생산적인 회담이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회동 뒤 당내 비주류 진보세력 등을 중심으로 반발 여론이 심화되고, 계파 분화가 본격화됐다.
최문순 의원은 “지금도 2중대 소리를 듣는데 여기서 뭘 더 협력을 한다는 말이냐”면서 정 대표를 향해 쏘아붙였다.
민주연대에 참여하며 DJ계로 분류되는 추미애 의원은 “햇볕정책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깎아내려진 것에 왜 침묵하는지 민주당 지지세력은 궁금했을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가 대북정책을 잘할 때 협력해 주겠다고 하면 되겠지만, 지금처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구호만 외친다면 (협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 박았다.
민주연대 발족 의미
민주연대의 문학진 의원은 “경제나 남북문제에 초당적으로 협력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내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종걸 의원은 성명서를 통해 “민주당의 역할과 책무를 허물어뜨린 들러리 영수회담이 과연 진정한 상생협력인가, 민주당의 존재는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개탄한 뒤 “민주당 대표가 초당적 협력이라는 미명하에 제대로 비판과 견제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면 이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중에 옛 김근태계, 천정배계, 정동영계가 힘을 합친 모양새인 민주연대가 지난달 30일 가칭 ‘민주연대’ 발기인대회를 갖고 본격 활동에 나섰다. 민주연대는 대회에서 “민주당은 국민으로부터 대안을 제시하는 유능한 수권정당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민주당을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으로 견인하고 일하는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밝혔다. 현 지도부의 정책기조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친노진영도 정치세력화를 통해 독자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민주당 조정식 대변인은 친노세력의 움직임에 대해 “친노그룹이 정치세력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이들이 독자신당을 창당할지 아니면 민주당과 연대할지는 아직 모르겠다”고 밝혔다.
계파분화 양상에 대해 당 전 핵심관계자는 “정세균 대표의 지도력 부재에서 나오는 현상”이라고 꼬집은 뒤 “당 지도부가 이들 세력들을 아우를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주지 않아 각 계파별로 나뉘어져 별도의 압력단체를 만드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특히 “현 민주당이 과거 죽은 열린우리당 회의 체제를 그대로 쓰고 있다. 망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면서 “의미 없는 회의를 할 바에야 회의를 줄이고, 차라리 원내 상황을 돌봐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정세균 대표의 지도력 부재는 국정현안을 대하는 당 행태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모습이다. 정책위가 원내대표 산하에서 의장 산하로 바뀌었기 때문에 정대표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은 최근 리먼 브라더스 사태, 멜라민 파동 등 전국적인 사안이 연이어 터졌음에도 이슈거리 하나 양산해내지 못하고 있고,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도 못하고 있다. 오히려 한나라당 초선 의원 등에 질질 끌려가는 모습이다.
국감 준비 상황을 보건데, 10월 국감도 별반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소속 의원들 중엔 국감기간임에도 아예 자료요청을 하지 않은 의원들이 많고, 보좌진들도 정책 사안들에 거의 손을 놓고 있다. 일부 의원들은 지방선거를 벌써부터 내다보며,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다.
야권 한 보좌관은 “민주당 보좌관 동료들에게 리먼사태 때, 리먼 브라더스에 대해 질의하라고 답답해서 제안했더니, 그게 뭐냐고 오히려 반문했다”며 실소했다.
민주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선거에서 무조건 이긴다는 데 그 근거를 물어도 답변이 없다”면서 “지지율이 한나라당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어 이대로 가면 호남권 단체장, 충북 단체장 정도만 건지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동영 전주 동선 주목
정 대표의 지도력이 비판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 대표의 지역구 관리와 정동영 전 의장의 움직임도 비판거리가 되고 있다.
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 대표는 명절에 서울에 머무르며 사람들이 모이는 점심,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 지역인사들에게 하루 3000-4000통의 전화를 해 안부를 묻고 있다. 지역구 관리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것이다.
정동영 전 의장은 당선무효가 예상되는 전주지역 등에 특보단을 파견, 사무실을 만들어 놨다는 후문이다. 보궐 선거를 염두에 둔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지역구 관리를 잘하니 정세균 체제는 별 탈 없이 잘 가게 될 것”이라며 “당 지도부고, 당 중진이고 자기 살 궁리만 하고 있으니 민주당 앞날이 훤하다”며 비판했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으로 출마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나 최근 들어 “불안하다”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정세균 체제로 2년을 끌고 가면 당은 파산직전까지 갈 것이라는 얘기, ‘식물 정당이 됐다’는 비아냥도 들린다.
정세균 대표의 지도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의 ‘관리형 리더십’이 이번에도 통할지 주목되고 있다.
선태규 기자 august@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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