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부정축재 의혹은 있었고,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수천억원대의 비자금 조성 혐의로 사법처리까지 받았다. 뿐만 아니라 전·노 전 대통령을 단죄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도 현역 시절까지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을 주물렀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이 개인예금 8천만원을 주식형 펀드 8개에 각각 1천만원씩 분산 투자했다. 당시 청와대 김만수 대변인은 “노 대통령은 시중 여유자금이 기업의 기술개발 등 보다 생산적인 부문에 쓰일 수 있도록 자본시장으로 유입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갖고 있는 예금 중 일부를 주식형 펀드에 간접투자하기로 했다”고 말했다.이 과정에서 ‘예금 잔액 중 일부인 8천만원’이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청와대측은 “대통령 취임 전에 살던 서울 명륜동 빌라를 팔아 은행의 저축성 예금에 집어넣었고, 취임 후 월급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쌓인 돈이 지난 2월 기준으로 4억7천여만원”이라고 설명했다. 또 “부동산은 장남 건호씨의 전셋집 외에는 한 건도 없으며, 주식도 없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 8천만원 주식투자
역대 대통령들이 수십억원씩 주고 받는 것은 예사고, 수백억, 수천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해 운용했던 것과 비교하면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8천만원 주식 투자가 신선한 느낌마저 준다. 그렇다면 과거 청와대가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할 때 권력 주변에서, 특히 대통령의 경우 돈을 어떻게 모으고 관리했으며, 씀씀이는 어땠을까.역대 대통령의 돈 얘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DJ와 YS’, 그리고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의 비교다.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그들의 성격과 돈 관리법이 상통하는 측면이 많아 세간의 화젯거리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이와 관련해선 과거 청와대 사람들의 구체적인 경험담이 적지 않다.먼저 DJ와 YS. 두 사람 모두 오랜 야당 정치인 생활을 하면서 결코 돈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돈 관리법은 전혀 달랐다. DJ가 ‘수전노형’이라면, YS는 ‘한량형’이었다. 이는 외딴섬 하의도에서 어렵게 자란 DJ와 거제도의 선주 집안에서 큰 YS의 성장환경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DJ의 ‘동교동 지하금고’ 소문은 유명하다. 그는 야당 시절 보안이 필요한 외부 인사를 서울 동교동 자택의 지하서재에서 만나곤 했다. 그 지하서재 곁에는 별도의 공간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 금고를 설치해놓고 항상 거액의 현금 뭉치를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마다 직접 꺼내 썼다는 것이다. 정치사찰을 담당했던 전직 안기부(현 국정원) 요원은 “우리팀의 비밀 파일 가운데 YS의 경우는 사생활 부분이 많았고, DJ와 관련된 것은 대부분 돈 문제였다”고 들려줬다.
DJ, 지하금고 유명
특히 DJ는 누가 정치자금을 가져오면 직접 받아 금고에 집어넣고 측근들에겐 그 내용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꼭 필요한 활동자금은 쓸 곳을 꼼꼼이 물어본 뒤 직접 지급했다. 그렇지만 충성심으로 뭉친 호남 출신 동교동 참모들은 ‘선생님’의 돈 문제는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지난 1995년 당시 야당 총재로 중국을 방문 중이던 DJ가 “89년 봄 평화민주당 총재일 때 중간평가 유보와 관련해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20억원을 받았다”고 고백했을 때 누구보다 놀란 사람들은 동교동 핵심 측근들이었다. 중국에 수행했던 한 측근은 “기업인 등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는다는 것은 다 알고 있었지만 정치현안과 연결된 돈을 정권으로부터 받았을 줄은 정말 몰랐다”고 허탈해했다.
YS, 기분따라 돈 집행
이에 비해 YS는 누가 돈을 건네 주면 상도동계 중에서 자금을 관리하는 그룹 가운데 한 명(주로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을 불러 대신 받도록 했다. 또 돈을 집행할 때도 사용처를 일일이 묻지 않고 기분 내키는대로 돈을 집어주는 스타일이다. 강삼재 전 신한국당 사무총장은 “96년 총선을 앞두고 당무보고차 청와대 집무실을 방문하면 YS가 1억원짜리 수표로 수십억원, 많게는 200억원을 (집히는대로) 지갑에 넣어줬다”고 증언한 바 있다.YS는 지금도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단 한 푼의 정치자금도 받지 않았다”고 자랑한다. 그의 말은 사실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본인의 손으로 직접 돈을 받지는 않았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당선 축하금이나 통치자금으로 들어오는 돈을 차남 현철씨, 또는 청와대 살림을 도맡아 하던 홍인길 수석에게로 가도록 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물론 집행권은 본인이 가졌다. 그런 YS지만 퇴임후에는 ‘빈털털이’가 됐다는 말이 나돌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지난 2003년 5월경 ‘생활고’ 때문에 부인 손명순 여사의 97년형 쏘나타 승용차를 팔았고, 단벌로 다니며, 비서관 월급도 제 때 못 준다는 식의 보도가 나왔다. 그러자 한나라당 박종웅 의원 등 상도동 비서 출신 국회의원들이 3천만원을 갹출해 건네주려 했으나 YS가 호통을 쳤다는 얘기도 흘러 나왔다.
전두환, 전별금 나눠줘
그러나 이는 돈 관리에 있어 비슷한 스타일인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처럼 여론의 동정을 얻으려는 엄살에 불과한 것으로 봐야 한다. 전 전 대통령의 경우 “수중에 단 29만원밖에 없다. 골프도 주변 사람들이 도와줘서 공짜로 친다”고 했지만, 어느 골프장에서 ‘홀인원’을 기록하자 5백만원대 기념 식수를 했다고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도 여러모로 비교된다. 두 사람의 돈 씀씀이 차이를 단번에 확인할 수 있는 전언이 있다. A씨는 5공과 6공 시절 모두 청와대 경호실에서 중간 간부로 일했다. “두 대통령은 퇴임하면서 간부급 직원들에게 일일이 전별금을 나눠줬다. 전두환 대통령이 주는 전별금을 그대로 아내에게 갖다줬더니 아내가 크게 놀랐다. 액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5년 후 노태우 대통령에게서 받은 전별금도 봉투째로 집에 갖다줬는데, 부부싸움을 할 뻔 했다. 5년 전보다 ‘0’이 하나 적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내가 다른 곳에 다 쓰고 남은 잔돈푼만 갖다 준 것으로 오해하더라.” 좀 더 구체적인 증언이 있다.
5공 말기에 청와대의 수석비서관을 지낸 B씨는 청와대를 떠나기 직전 다른 수석비서관들과 함께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전별금 봉투 하나씩을 받았다.액수는 3천만원이었다고 한다.그런데 나중에 대통령이 따로 불러 봉투 하나를 더 줬다.화장실에서 뜯어보니 무려 3억원이 들어 있었다.그는 진짜 3억원인지 수표의 동그라미 개수를 여러 차례 세어보았다고 한다.그런데 B씨만이 ‘특별대우’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다른 비서관들에게도 1억원 이상씩의 전별금을 더 돌렸음이 나중에 확인됐다. 이 때 C 수석비서관이 받은 2억원이 동화은행 사건 때 발각됐기 때문이다.이처럼 씀씀이가 큰 것으로 소문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명절이나 휴가철에 청와대는 물론 정부와 여당 사람들도 꼬박꼬박 챙겼다. 또 별 일이 없어도 문득 문득 생각이 나면 주위 사람들에게 돈을 집어줬다. 1983년 청와대 법률비서관으로 있던 박철언 전 의원은 회고록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돈 쓰는 스타일을 알 수 있는 일화를 소개했다.
“외부에서 점심을 먹고 있던 중 대통령이 찾는다는 연락을 받고 청와대 서재에 올라갔다. 대통령과 소파에 앉아 한 시간 반이 넘도록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전 대통령은 ‘집사람 갖다 줘’라면서 봉투를 주었다. 나중에 열어보니 자기앞수표 5백만원이었다.” 20여년 전의 5백만원은 큰 돈이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모 여대 교수에게 세뱃돈으로 1천만원을 주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으니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특히 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야당 정치인들까지 다 챙겼다. 명절과 휴가철은 물론 정치권에 중요한 현안이 있으면 여당 원내총무에게 ‘돈 봉투’를 두 개씩 줬다. 둘 중 하나는 야당 원내총무에게 가는 ‘활동비’였다. 한 봉투에 많게는 5천만원이 들어있기도 했다고 한다.현직 대통령들이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직접 돈을 만질 수 있으니 넉넉한 인심을 쓸 수 있다. 그렇다면 청와대 사람들은 어떨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당연한 귀결이지만 청와대 참모들의 돈 사정은 당시 대통령의 스타일에 따라 크게 좌우됐다.사실 청와대 참모들이라고 해 봤자 급여는 뻔하다. 부처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과 별정직 공무원들이니 급여기준에 따르는 것이다. 다만 활동비조로 나오는 ‘실탄’의 규모는 시대마다 달랐다.
‘실탄’ 규모 정권마다 달라
전두환·노태우 대통령 때가 온탕에서 냉탕으로 옮긴 시절이었다면 김영삼 대통령 때는 다시 청와대에 온기가 감돈 시기였다. 특히 YS의 자금을 관리하던 홍인길씨가 문민정부 청와대의 초대 총무비서관으로 부임하자 비서실은 흥청거렸다. 홍인길 수석 역시 정치권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기분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인길 수석이 국회로 진출하고 후임 총무수석에 기업인 출신이 앉자 온기가 싹 걷히고 냉기가 감돌더라는 것이 당시 비서실에 근무했던 C씨의 회상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선 박지원씨가 비서실 직원들의 명절이나 휴가를 챙겼다. 그러나 액수는 ‘상식선’이었다. 직급과 직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통상 30~50만원 수준이었다고 한다. 전별금 같은 것도 일반 관공서와 기업체 정도의 수준을 유지했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 직원 가운데 일부는 “법인 카드 한도가 너무 낮아 사람 만나기가 두렵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참여정부 들어선 이마저도 완전히 사라졌다. 기본적인 업무추진비야 나오지만 ‘뒷돈’은 구경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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