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무상함 가슴에 품는 푸른 기와집
권력의 무상함 가슴에 품는 푸른 기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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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5-09-12 09:00
  • 승인 2005.09.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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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들어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이색 경험을 두 차례나 했다. 일반인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청와대 뒤편의 북악산 등반이다. 노 대통령은 자신이 국회의 탄핵을 당해 직무가 정지된 2004년 봄과 올 봄에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함께 북악산을 올랐다. 북악산은 역대 대통령들의 ‘전용 등산로’다. 1968년 김신조 등 북한 124군 부대 소속 31명의 무장공비들이 청와대 습격을 시도한 ‘1·21사태’ 이후 대통령 경호를 위해 곳곳에 초소가 세워졌고, 일반인들의 출입은 금지돼 있다. 다리가 불편했던 김대중 대통령을 제외하곤 과거 대통령들도 북악산 등반을 즐겼다.노무현 대통령 역시 봄, 가을에는 시간 나는대로 부인 권양숙 여사나 참모들과 함께 북악산을 오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함께 할 때도 직접 등반코스를 설명하는가 하면, 곳곳에 있는 약수터 등 시설물들에 대한 소개를 곁들였다.

당시 기자들은 백악정에서 시작해 정상에 올랐다가 숙정문과 촛대바위를 거쳐 하산하는 산길의 아름다움에 탄성을 자아냈다. 또 1·21 사태 때 총알이 박힌 소나무들을 보고 감회에 젖기도 했다. 올 봄 등산 때 노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옛날엔 여기가 다 사람이 다니던 길인데 1·21 사태 이후 개방이 안되고 있다”며 “이걸 서울시민들이 봐야 하는데 못보고 사는 게 참 답답하다”고 말했다.노 대통령의 안타까움은 진심이었다. 최근 문화재청과 경호실 등에 지시, 한양 4대문 가운데 북대문에 해당하는 숙정문(肅靖門·사적 10호) 부근을 일반에 개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북악산 전체를 트는 것은 아니지만 개방이 결정된 홍련사에서 숙정문을 거쳐 촛대바위로 이어지는 1.1㎞ 구간은 북악산에서도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노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두 차례 등반 때 숙정문에서 한참을 쉬면서 한담을 나눴다.청와대 인근이 일반에게 개방되기 시작한 것은 김영삼 대통령 취임초인 1993년부터다. 그러나 청와대 경내는 여전히 일반인들에겐 통제 구역이다. 경내 단체 관람이 이뤄지고 있지만 관람코스는 극히 제한돼 있다. 숙정문 일대 개방을 계기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중심으로 청와대 안의 모습을 들여다 본다.

청와대는 ‘나무 천국’
처음 청와대를 둘러 본 사람들은 대게 헬기장으로 이용되는 드넓은 잔디밭에서 강한 느낌을 받고, 그 다음엔 나무가 무척 많은 데 놀란다. 청와대는 말 그대로 ‘나무천국’이다. 모두 137종 4만7천여 그루의 온갖 나무가 자라고 있다. 총무비서관실 소속으로 조경을 담당하는 ‘수목조장’ 직책을 따로 두고 나무를 관리한다. 나무의 주종은 한국 고유의 소나무다.야외 연회장으로 주로 이용되는 ‘녹지원’의 상징이 수령 150년이 넘은 반송 (盤松)과 금강소나무(일명 춘양목)다. 반송은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4월 한국관광 CF를 찍을 때 손을 짚고 선 나무다. 또 대통령 관저와 본관 앞에는 소나무 군락이 있다. 노 대통령도 취임 후 첫 식목일에 관저의 인수문(仁壽門) 앞에 수령 80년 된 소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소나무 다음으론 단풍나무와 하늘을 찌를 듯이 솟구쳐 자라는 목백합나무(일명 튤립나무)가 많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가 목백합나무를 유난히 좋아했다. 관저 앞에는 모과나무·감나무·단감나무·자두나무·사과나무·배나무 등 유실수가 많아 제철을 맞으면 비서실과 경호실에 과실을 내려보내기도 한다. 청와대 경내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는 725년 된 주목(朱木)이다.

총면적 3개동 7만6천여평
청와대는 대통령의 집무실·접견실·회의실 등이 있는 본관과 대통령 가족이 거처하는 관저, 그리고 비서실·경호실·춘추관·영빈관 등 부속건물들로 구성돼 있다. 또 넓은 정원과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후원(後園) 및 연못이 있다. 본관은 2층 화강암 석조에 청기와(청와·靑瓦)를 덮었다. ‘청와대’란 명칭은 여기서 유래됐다.청와대 터는 고려시대에 남경(南京)으로서의 별궁(別宮)이 있던 곳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26년(세종 8년) 경복궁을 창건하면서 궁궐 후원으로 삼았다. 그 후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경복궁 안에 청사를 신축했다. 청와대 본관은 이 때 세워졌다. 1945년 8·15광복과 더불어 미군정이 시작되자 이곳은 군정 장관의 관저로 사용됐다.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부터 ‘경무대(景武臺)’란 명칭을 붙여 대통령이 집무와 생활을 하는 곳으로 만들었다. 1960년 당시 윤보선 대통령이 ‘청와대’로 개칭했다.현재 청와대 경내 대지는 세종로 1번지·삼청동 157-94번지 외 9필지, 영빈관·101단·구연무관 위치인 세종로 1-91 번지외 17필지, 궁정동 1-2번지 외 43필지 등 총 면적이 3개동 73필지 7만6,685 평에 달한다.

‘천하제일복지’ 표석 일화 유명
청와대 내에서는 지난 1990년 대통령 관저 신축공사장 바로 뒤에 있는 바위에서 발견된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고 쓰여진 표석과 관련해 재미 있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일제 시대 총독관저 자리 물색에 내몰렸던 조선의 풍수가들이 고의적으로 ‘용맥(龍脈)’에서 약간 벗어난 위치에 자리를 잡아 줬는데, 이 때문에 조선총독을 지낸 사람들뿐 아니라 그후에 이곳에서 생활한 우리나라 대통령들까지 불행한 말년을 맞았다는 것이다. 즉, 당시 풍수가들이 본관에서 북악산 쪽으로 올라 가 있는 지금의 관저 자리가 ‘천하제일복지’임을 알면서도 일본 총독에게 용맥에서 비켜난 곳에 관저를 짓게 했다는 말이다.

이 표석은 발견 당시 암벽 전면이 풀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화강암 암벽을 깎아 만든 표석은 가로 2m50cm, 세로1m20cm 크기에 글씨 크기는 가로 세로 각 50cm씩이었으며 획의 평균길이는 9cm였다. 글씨체는 해서체며, 낙관자리에는 ‘延陵 吳据(연릉 오거)’라는 글을 쓴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이름까지 있다. 금석학자들은 이 글이 쓰여진 때가 약 300~400년 전인 조선조 중기인 것으로 보고 있다.노무현 대통령은 올 봄 출입기자들과의 산행 때 “‘천하제일복지’란 글도 권력자 입장에서는 지금 지내는 곳이 천하제일이겠지만 국민 입장에서 보면 궁궐은 암투·모해·음모가 들끓었던 곳”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춘추관 관람객 입장 통로
청와대에서 가장 최근에 세워진 건축물은 올 2월에 준공된 노무현 대통령의 새 집무실 ‘여민관’이다. 과거 온실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여민관은 총 사업비 47억원이 투입됐으며, 연건평 974평 규모에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건립됐다. 여민관에는 대통령 집무실을 비롯해 소회의실과 대회의실, 비서실장실·인사수석실 등이 입주해 있다. 여민관이라는 이름은 ‘국민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한다’는 뜻의 ‘여민고락’에서 따온 것이다.기자들이 머무는 춘추관 앞 마당은 경내 관람객들이 입장하는 통로로도 사용된다. 1층에는 기자들이 사용하는 ‘기사송고실(송고 1실·2실, 사진송고실)’과 대통령이나 수석비서관, 대변인 등이 간략한 간담회를 하는 ‘자료실’이 있다. 2층에는 대통령의 기자회견과 대변인의 공식 발표에 주로 사용되는 다목적실과 구내식당, 행정실 등이 있다.

녹지원은 청와대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식수가 있다. 매년 봄 어린이날 행사를 시작으로 어버이날, 장애인의날 등 각종 청와대 행사가 여기서 펼쳐진다. 1995년 5월28일에는 인근 주민 약 3천명이 관람한 KBS 열린 음악회가 개최되기도 했다.상춘제는 116평짜리 전통 한식 가옥으로 외빈 접견, 비공식 회의 등에 사용되고 있다. 이 자리에는 원래 20여평 정도의 일본식 건물(상춘실)이 있었다. 상춘제가 세워진 1983년까지만 해도 청와대 경내에는 전통 한옥식 건물이 단 한군데도 없는 실정이었다. 수궁터는 옛날 경복궁을 지키는 수궁(守宮)들이 주둔해 있던 곳이다. 대통령과 그 가족이 생활하는 대통령 관저는 대통령의 공적인 업무공간과 사적인 업무공간을 구분할 필요성을 느껴 1990년 10월25일 세워졌다. 본채·별채·대문채·사랑채·회랑으로 구성돼 있다.본관은 대통령의 집무와 외빈 접견 등에 사용된다.

약 30만장이나 되는 청기와를 일반 도자기를 굽듯이 한 개 한 개 구워 내어 100년 이상을 견딜 수 있는 강도를 지녔다고 한다. 1층에는 대통령 부인의 집무실과 접견실, 연회장, 식당이 있다. 2층에는 대통령의 집무실과 접견실, 회의실이 있다. 건물앞의 넓은 잔디마당에선 국빈 환영행사와 육·해·공군 의장대, 전통복식을 입은 전통의장대의 사열 등이 열린다. 본관의 ‘세종실’은 회의실 및 접견장으로, ‘충무실’은 식당 및 만찬장으로 사용된다. ‘인왕실’은 소규모 행사의 칵테일 접견 장소로, ‘백악실’은 10여명 이내의 인원이 식사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영빈관은 대규모회의와 외국 국빈들을 위한 공식 행사를 개최하는 건물이다.

청와대 경내 제한적 개방
청와대 경내는 개인, 가족 관람객과 초등학생 이상 단체 관람객이 사전 예약에 의해 둘러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코스가 짧고, 단체별 하루 관람인원도 200명 이내로 제한돼 있다. 유치원·어린이집 등 미취학 아동단체는 관람할 수 없는데, 이는 “아이들이 용변을 참지 못해 곤란한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 관계자가 귀띔했다. 또 매주 월요일·토요일·일요일과 국경일 등 공휴일에는 관람할 수 없다. 다만 매월 넷째주 토요일은 50인 이하 개인 및 가족단위 주말 관람이 가능하다. 청와대 내부 훈련 등이 있을 때도 관람은 제한된다.그래도 연간 관람객 수가 24만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관람은 오전 10시와 11시, 오후2시 , 3시 등 하루 네 차례 진행된다. 한 바퀴 돌고 기념 사진까지 찍는데 보통 2시간 가량이 걸린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까지 오전과 오후 1시간씩 참모들이 머무는 ‘비서동’에 한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참여정부에선 이를 없애 버려 하루 종일 춘추관에만 있어야 한다. 그 때문에 현정부들어 출입기자들이 자신의 출입처 비서동을 단체로 관람하는 웃지못할 일도 두 차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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