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 이미지 이면에 자상한 아버지상 갖춰
‘강성’ 이미지 이면에 자상한 아버지상 갖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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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5-10-17 09:00
  • 승인 2005.10.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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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오랜 지기이자 청와대 핵심 요직을 지낸 모 인사로부터 노 대통령의 성격에 대해 재미 있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노 대통령이 직선적이고 강단 있는 성격이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론 매우 감성적이고 부드러운 성품이란 것이다. 특히 정치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남에게 매몰차게 대할 때도 있지만 실제론 상대방 면전에서 싫은 말을 절대 하지 못한다고 한다.그 인사는 “가령 지난해 총선 때 노 대통령이 ‘올인 전략’에 따라 현직 장·차관급 인사 등에게 출마를 종용하고 이번 10·26 대구 동을 국회의원 재선거에도 이강철 전 시민사회수석을 억지로 내보낸 것으로 알려졌지만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성품으로 볼 때 자기 주변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을 절대 강제로 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대통령의 심중을 읽고 알아서 해주면 고마워서 어쩔줄 몰라한다고 전했다.그렇다면 역대 대통령의 성격은 어땠을까. 최고의 권력을 가졌던 대통령들의 내면세계는 어떤지 들여다 본다. 노무현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청와대 윤태영 1부속실장도 기회 있을 때마다 노 대통령의 인간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려 노력한다. 다음은 최근 윤 실장이 모 일간지에 기고한 ‘청와대 일기’의 한 대목이다. ‘두 달 전쯤. 관저의 서재에서 보고를 받고 있던 대통령을 여사님이 거실에서 급히 찾았다.

박정희는 ‘대추방망이’
“여보, 빨리 나오세요. 정연이 전화 연결되었답니다.” 미국에 나가 있는 딸과 통화를 할 일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자리를 나오려는 순간, 수화기를 든 여사님 옆으로 다가선 대통령의 느닷없는 한마디가 걸음을 멈추게 했다. “자, 시작할까요?” 호흡을 가다듬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안부전화가 아니라는 예감이 퍼뜩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화기를 앞에 들고 나란히 선 내외는 대통령의 ‘하나, 둘, 셋’ 구령과 함께 합창을 시작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딸의 생일날, 대통령으로서의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은, 평범한 아버지의 따뜻한 부정이 대통령의 거실에 은은히 감돌았다.” 그러나 ‘정치인 노무현’의 성격은 아무래도 직선적이고 고지식한 것으로 각인돼 있다. 패배할 줄 알면서도 부산지역의 선거에 고집스럽게 계속 출마했던 것도 성격 탓이다. 그런 성격은 정제되지 않은 말에서도 잘 나타난다.

취임 초 화제를 불러일으킨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든다”든가 “이쯤되면 막 가자는 거죠” 같은 말들에 강단 있는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노 대통령은 화를 잘 내지만 뒷끝이 없는 편이다. 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부인 권양숙 여사는 “화가 나면 한 잠 푹자고 털어낸다”고 소개한 바 있다.과거 대통령들의 성품도 대부분 ‘강성’이었다. 유약해서는 한 나라를 이끌어 가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물태우’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노태우 대통령조차 친구이자 전임자인 전두환 대통령을 백담사로 유배 보내는 등의 강단을 발휘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역대 대통령을 외울 때 ‘이·윤·박·최·돌·물·깡’이라고 한다. 이승만·윤보선·박정희·최규하 대통령까지는 성을 그대로 부르지만 그 다음부터는 별명이다. 즉 ‘전두환=돌’, ‘노태우=물’, ‘김영삼=깡’이다. 직전인 김대중 대통령과 현역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공인된 별명은 아직 없다.

DJ, 온화하고 자상
DJ는 야당투사 출신이지만 개인 성품은 매우 온화하고 자상하다. 군사독재 시절 정권에 의해 ‘강하고 모난 성격’이란 이미지가 덧칠돼 선거 때마다 많은 애를 먹었다. 1997년 대통령선거 때 MBC ‘임성훈입니다’ 프로그램에 노타이 차림으로 출연해 “나는 ‘알부남’(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이 아니고 ‘본부남’(본래 부드러운 남자)이 맞다”고 말한 것이 화제를 모을 정도였다.그는 또 스스로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면서 동교동 자택의 문패에 ‘김대중·이희호’라고 부부의 이름을 나란히 써 놓은 것을 자랑삼아 이야기하곤 했다.특히 DJ는 자신이 신임하는 측근들에 대해선 사소한 부분까지 일일이 챙겨준다. 박지원 전 비서실장이 야당 대변인 시절 아침 회의 때부터 술냄새를 풍겨 다른 참석자들이 눈살을 찌푸리면 “대변인이 밤새 일한 모양이군요. 기자들과 술 마시는 게 대변인의 가장 중요한 일이지요”하며 분위기를 풀어주곤 했다.사분오열된 YS의 상도동계 사람들과 달리 DJ의 동교동계 사람들이 민주당 등을 통해 지금도 끈끈한 인연을 맺어가고 있는 것은 호남정서 탓도 있지만 DJ의 자상한 배려도 큰 이유가 된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성격이 불같았던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개인 성품과 관련한 일화가 무수히 많다.

YS, 단순·집요한 성격
문민정부 시절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YS의 성격을 ‘단순·집요’라고 축약해 표현했다. 한번 해야겠다고 생각한 일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기필코 성취한다. 물론 그 일은 측근들과의 상의나 토론을 거치지 않고 혼자서 단순하게 결정한 것들이 대부분이다.YS의 성격을 이야기할 때도 곧잘 DJ와의 비교법이 사용된다. ‘3김 정치’ 시절 정치부 기자 생활을 오래 한 민주당 이낙연 의원은 얼마전 한 토론회에서 YS가 ‘직관과 단행’의 지도자라면, DJ는 ‘논리와 축적’의 지도자라고 표현한 바 있다. 또 YS의 ‘직관과 단행’에 의해 하나회 해체, 금융실명제, 공직자 재산등록 등의 작품이 나왔고, DJ의 ‘논리와 축적’에 의해 IMF 위기 극복과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했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이낙연 의원이 들려준 다음과 같은 일화는 YS와 DJ의 성격 차이를 단적으로 읽을 수 있게 한다. 1987년 4월13일, 전두환 대통령의 이른바 호헌조치 직후 두 김씨가 만났다.
DJ;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백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합시다.”
YS; “백만이 뭐꼬? 천만으로 합시다.”
DJ; “우리나라 인구가 몇 명인데 천만명의 서명을 받는단 말이오.”
YS; “누가 세어보나.”결국 두 사람은 직선제 개헌 1천만명 서명운동을 벌였고, 이 운동이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서명한 국민이 몇명인지는 아무도 세어보지 않았지만 1천만명 서명운동은 대성공을 거뒀다.

나중에 DJ는 이 의원에게 이 비화를 소개해 주면서 “그분(YS)의 그런 장점은 내가 도저히 따라가기 어렵다”고 말했다고 한다.마지막 군 출신 지도자인 노태우 대통령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핵심 가운데 한 명이지만 정치를 시작하면서부터 ‘군’ 보다는 ‘문민’ 냄새가 더 많이 났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전임 대통령을 강원도 산골로 유배 보낼 정도의 강단은 가지고 있었다.노태우 대통령의 원래 성격은 매우 차분하다고 한다.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고 스스로 삭인다. 그러나 남을 배려하는 데는 매우 인색했다. 노태우 대통령의 외아들인 재헌씨도 매우 유한 성격이지만 아버지와 달리 상당히 사교적이다.

전두환, 유머 넘치고 활기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밖에 알려진 딱딱한 이미지와 다르게 실제로 만나 보면 유머가 넘치고 언제나 활기에 차 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도 남 달라 권좌에서 물러난지 20년이 다 돼가지만 지금도 주위엔 사람들이 넘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어렸을 때 별명이 ‘대추방망이’였다고 한다. 몸집은 비록 작았지만 야무진 데가 있어 생긴 별명이다. 또 잠시 교사생활을 할 때는 엄하게 가르친다 해서 ‘호랑이 선생님’이라고 불리었다. 이런 성격은 대통령이 된 뒤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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