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국정 업무 수행…깊은 스트레스 하소연
과도한 국정 업무 수행…깊은 스트레스 하소연
  •  
  • 입력 2005-12-20 09:00
  • 승인 2005.12.20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들어 정가의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한 권 있다. 참여정부 초기 대통령 제1부속실 소속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근접 수행했던 이진 전 행정관(여)이 펴낸 ‘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노무현은 왜 그러는 걸까’란 책이 그 것이다. 2003년 3월 참여정부 출범부터 2005년까지 2년 간 청와대에 근무했던 저자는 이 저서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청와대 생활을 생생하게 그려 내 관심을 모으고 있다.이 비망록의 내용 중에는 특히 노 대통령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언제인지를 곁에서 지켜본 입장에서 서술한 대목이 있어 눈길을 끈다. 대통령의 스트레스는 대통령 개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곧바로 국정운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주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심기는 곧바로 청와대와 행정부, 여당의 분위기에 반영된다.

대통령 주변에서 ‘심기 보좌’라는 말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역대 대통령들은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이었는지, 또 그 스테레스는 어떻게 풀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된다.이진 전 행정관이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소개한 바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긴급한 현안이 대통령에게 빨리 보고되지 않았을 때’ 가장 격노한다. 예를 들어 양길승 제1부속실장에 대한 향응제공 사건이 있었을 때처럼 자료 보고서가 충분치 못하다고 판단하면 화를 낸다. 2003년 화물연대파업 때도 마찬가지다.한·미동맹관계가 약해졌다는 얘기가 있었을 때도 ‘한·미동맹관계의 적절한 설정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근거를 댈 수 있는 다각적 측면에서의 보고서를 원했다고 한다. 외교통상부 등이 그런 역할을 못했기 때문에 노 대통령에게서 심한 질책을 들었다.

노무현, 탄핵정국때 극심한 스트레스
또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안처럼 ‘부당한 모함’이나 민심 수습책으로 국회에서 해임안을 결의하려고 할 경우에도 무척 화를 냈다고 이진 전행정관은 전한다. 앞서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004년 봄 탄핵정국을 헤치고 나온 이후 더 스트레스를 받고 억눌림에 시달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끈 바 있다.숭실대 정보통신전자공학부 배명진 교수는 지난해 6월 “탄핵 전후 노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과 기념식 연설을 비교한 결과, 목소리의 여유도와 인자함은 감소한데 비해 근엄함과 스트레스, 억눌림은 크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 조사에 따르면 남녀 대학원생 1천명의 목소리 평균을 기준(100)으로, 노 대통령의 목소리를 탄핵 전·후로 비교했을 때 ‘여유도’, ‘인자함’ 등은 100 이하로, ‘근엄함’, ‘스트레스’, ‘억눌림(하소연)’은 100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구체적으론 탄핵 전 100이었던 ‘여유도’는 90.6으로 감소했고 ‘인자함’도 73.8에서 63.2로 줄어든 반면, ‘근엄함’은 90.5에서 109.5로, ‘스트레스’는 100에서 124.1로 증가했다. 특히 ‘억눌림’은 탄핵 전 76.5였으나 탄핵 후에는 되레 121.9로 급격히 늘어났다고 한다. 술을 즐기지 않고 최근에는 담배도 끊은 노무현 대통령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잠자기’와 ‘말하기’로 알려져 있다. 한 측근 참모는 “노 대통령은 직선적인 성격 때문에 화를 잘 내지만 뒤끝은 없다”고 했다. 그리고 뒤끝을 털어내는 방법이 “한 잠 푹 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런 해소법은 대통령에 취임하고 난 뒤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격무에 바쁜 와중에 잠을 푹 자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인들에게 스트레스 하소연
이에 대해 다른 참모는 “요즘들어선 대통령께서 말씀을 많이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시는 것 같다”고 전했다. 각종 회의나 모임 등 공식·비공식 행사에서 특유의 직설적 표현으로 속마음에 있는 응어리들을 털어냄으로써 스트레스도 함께 푼다는 것이다.노 대통령은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지인들을 개인적으로 만날 때면 청와대 생활에 따르는 깊은 스트레스를 하소연하곤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 이전의 역대 대통령들은 어느 때 스트레스를 받고, 또 어떤 방법으로 그 스트레스를 풀었을까.일선 정치부 기자 생활을 오래 했고,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 참모를 지냈으며, 지금은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최진씨는 최근 고려대 행정학과 박사학위 논문에서 이 부분을 언급했다. 논문 제목은 ‘대통령 리더십과 국정운영스타일의 심리학적 상관관계’다. 여기에 소개된 내용과 필자의 경험 등을 토대로 역대 대통령들의 성격에 따른 스트레스 해소법을 비교해 본다.

DJ, 성격상 스트레스 잘 받아
전임인 김대중 전대통령은 겉으론 차분하지만 워낙 꼼꼼한 성격이라 스테레스도 곧잘 받았다. 참모들의 보고에 미흡한 점이 발견되면 그냥 삭이고 넘어가지 못하는 스타일이었다. 간혹 면전에서 원색적인 욕을 먹는 참모들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최진 소장은 “DJ가 불안하고 초조하면 하루에 커피를 10잔 가량 마시는 날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나중에는 커피 대신 커피껌을 씹기도 했다.특히 지난 1992년 12월 대선 패배 직후 한강변 워커힐 빌라에 머물 때는 저녁에 커피껌 심부름을 시키며 쓰린 속을 달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여러 가지로 스타일이 비슷한 김영삼 전대통령은 스트레스를 그때 그때 풀어버려야지 직성이 풀렸다. 일선 정치인 시절은 물론이고 대통령 재임 중에도 그의 집무실에 불려가 심한 질책을 당한 참모들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전해진다.문민정부 시절엔 홍인기 전총무수석, 이원종 전정무수석 등 ‘한 성깔’ 하는 참모들이 적지 않았지만 이들도 YS가 화를 내면 고양이 앞의 쥐처럼 꼼짝도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특히 최근들어 통치 시절의 비자금 조성과 옛안기부의 불법도청 사건 등이 잇달아 터져나오자 YS는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화를 달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전두환, 화나면 장관 걷어차기도
노태우 전대통령은 ‘물태우’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부드러운 대통령이었지만 그도 군 출신답게 크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불같이 화를 내며 측근들을 닦달했다.다만 웬만해선 그런 모습을 보기 어려워 그를 우유부단한 이미지로 간직하고 있다. 보통 때는 어지간히 화가 나도 화가 풀릴 때까지 스스로 마음을 달래면서 삭였던 것이다.전두환 전대통령은 잘 알려진 대로 노태우 전대통령과 여러 모로 비교된다. 그는 유머 감각도 있고 상당히 마음이 넓은 편이면서도 일단 화가 나면 참지를 못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푸는 스타일이었다. 최진 소장이 소개한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전두환 전대통령 재임 시절 한 장관이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해야 대통령의 위대한 업적으로 남을 것’이라며 예산 배정을 간곡히 요청하자 전 전대통령은 즉각 특별예산을 배정해 줬다. 그러나 얼마 뒤 그 장관이 ‘다른 일이 밀려 그 프로젝트에 손도 대지 못했다’고 보고하자 구둣발로 그 장관의 정강이 뼈를 걷어차 버렸다.”

박정희, 폭탄주로 해소
박정희 전대통령은 애주가 답게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경우 막걸리에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마시며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한국 폭탄주의 원조를 놓고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지만 진짜 원조는 바로 박 전대통령이라는 주장도 나온다.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신사’였다. 하지만 그도 신사이고 대통령이기 전에 인간인지라 이런 저런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특히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의 말다툼이 벌어질 때마다 ‘아들 출산’ 문제를 걸고넘어지며 화풀이를 했다고 한다. “아들도 못낳는 못난 마누라 주제에…” 같은 말을 거리낌없이 했다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