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은 대통령의 정치·이념의 거울
스승은 대통령의 정치·이념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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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5-12-27 09:00
  • 승인 2005.12.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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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22일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12월 초부터 활동을 시작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 15명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환담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 눈길을 끈 것은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 또는 ‘대통령의 스승’으로 일컬어지는 송기인 신부가 ‘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임명장을 주고 환담을 나누는 자리에서도 송 위원장에게 깍듯이 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송 위원장은 환담에 앞서 인사말을 통해 “내가 대통령과 (특별한) 관계가 있고, 같이 일한 경험도 있고 해서 자리를 맡지 않으려고 완강히 고사했었다”며 “그러나 어쨌든 맡게 됐으니 ‘진실’과 ‘화해’를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송기인 신부의 과거사위 위원장직 발탁에 대해 야당과 일부 보수언론들은 맹렬한 비판을 퍼부었다. 가톨릭 사제이자, 부산 민주화운동의 대부라는 점에서야 적임자라고 할 수 있지만, 노 대통령과의 특수한 관계 때문에 ‘부적격자’로 꼽혔다. ‘대통령의 스승’이 대통령과 코드를 맞춰 과거사 문제를 자의적으로 재단할 게 뻔하다는 지적인 것이다. 송기인 위원장의 등장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들은 어떤 인물에게서 정치적·이념적으로 영향을 받았고 누구를 스승으로 모시는지 살펴본다.송기인 위원장은 김영삼 전대통령이 야당 총재 시절, 당시 ‘인권변호사 노무현’을 국회의원 후보로 YS에게 천거했던 장본인이다. 또 대통령 부부에게 세례명을 준 당사자이기도 하다.

‘대통령 노무현’에게 불호령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란 말도 있다.노 대통령 취임 첫 해인 2003년 5월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송기인 신부는 노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날려 화제가 됐었다. 송 신부는 한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 당시 논란이 일었던 노 대통령의 ‘친미’ 발언에 대해 “원칙을 그대로 밀고 나가야지 지금 우리 국민들이 바라는 걸 우선 해결해주자는 식의 외교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다시 말하면 인기영합이 되는 것”이라고 따끔하게 훈계했다.

정치스승 YS와 거리두기
송기인 신부가 노 대통령의 정신적 스승이라면 ‘정치적 스승’은 김원기 국회의장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자신이 현직 대통령을 정치에 입문시킨 스승격이라고 생각하지만 노 대통령은 YS와는 항상 거리를 둔다.노 대통령이 야당 정치인 시절 인연을 맺은 김 의장을 얼마나 어렵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지난 2004년 2월4일 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우리당 김원기 최고상임고문에게 정치특보 임명장을 수여했다.수여식에서 노 대통령은 “고문이라는 제도가 없어서 특보 임명장을 드렸으나 앞으로도 예전처럼 정치고문으로 호칭하겠으며 그렇게 (다른 참모들에게) 지시하겠다”며 각별한 예우를 표시했다고 한다. 또 “김 고문께서 필요한 시기에 언제라도 대통령을 만날 수 있도록 청와대 문을 활짝 열어놓을 것”이라고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기명, 문화콘텐츠 제공
노 대통령에게는 또 한 사람의 잘 알려진 스승이 있다. 바로 후원회장을 지낸 이기명 국민참여연대 고문이다. 추억속의 라디오 드라마 ‘김삿갓 북한 방랑기’의 작가이기도 한 그는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언론문화고문을 지내는 등 ‘문화 콘텐츠’를 심어 준 인물이다. 이런 각별한 인연 때문에 노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인 장수천 의혹에도 이름이 오르내렸다.

대통령에 반말한 스승
물론, 노 대통령의 학창 시절 스승들은 따로 있다.노 대통령은 취임 초인 2003년 5월8일 어버이날을 맞아 초·중·고교 시절 은사들을 청와대로 초청, 야외 행사장인 상춘제에서 점심을 대접했다. 이 자리에는 노 대통령이 진영 대창초등학교와 진영중학교, 부산상고에 다닐 때 담임을 맡거나 상업·영어·상업부기·국어·음악·수학 과목을 가르쳤던 24명의 옛선생님들이 참석했다.당시 노 대통령의 중1 때 담임인 서익수옹(74)은 “대통령은 나를 모를끼다”며 여느 제자 대하듯 반말을 했고, 노 대통령은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선생님 별명이 ‘서도끼’ 아니었습니까. 잘 기억합니다”라고 대답하는 등 평범한 사은회 풍경을 연출했었다.

DJ의 정치적 스승, 장면
전임인 김대중 전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은 장면 전부대통령이다. 1957년 7월 가톨릭 영세를 받을 때 대부였던 장면 전부대통령은 청년 정치인 ‘김대중’에게 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또 이희호 여사와 결혼할 때 중매를 섰던 정일형 박사(정대철 전의원의 부친)도 DJ가 정치관을 확립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다.DJ는 나이가 나이니 만큼 그의 학창 시절 스승들은 일본인이 많다. 이로 인해 대통령이 된 뒤 뜻하지 않은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재임 시절 야당인 한나라당이 DJ가 목포상고 재학 시절 일본 군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당보에 공개하면서 “김 대통령이 방일 당시 일본인 스승과의 전화통화에서 일본식 이름과 일본어를 사용했다”고 비난했던 것이다.당시 한나라당보에 실린 사진은 2000년 DJ의 노벨 평화상 수상에 맞춰 한 민간출판사가 전 2권으로 발행한 한 만화책에 ‘1943년 목포상업학교 재학시절 반장을 하던 소년 김대중’이라는 설명과 함께 실려 있던 것이었다.DJ는 1998년 10월 일본을 방문했을 때는 팔순의 일본인 선생 무쿠야마씨를 만나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한편, 이희호 여사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기간 중 평양에서 이화여고 재학시절의 옛스승을 만나기도 했다.

YS와 장택상의 인연
김영삼 전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은 잘 알려진대로 장택상 전국무총리다. YS는 1952년 서울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국무총리 장택상의 비서로 들어감으로써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된다. 1954년 26세의 최연소자로 3대 민의원 의원에 당선된 후 5·6·7·8·9·10·13대 의원에 당선됨으로써 8선의원이라는 기록을 세우기까지는 장택상의 가르침이 컸다. YS는 재임 시절인 1994년 5월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교육방송(EBS) 프로그램 ‘나의 학창시절’에 출연한 적이 있다.당시 YS는 일제시대 거제도 장목소학교 시절부터 통영중과 경남중(5년제·현 경남고), 서울대 철학과에 이르는 기간 동안 잊지못할 스승의 가르침과 일화를 술회했다. 당시 방송국에서는 국민학교 스승이었던 이강욱(변호사)씨, 경남중의 박지홍(정년퇴직)씨, 서울대의 안호상 박사(전 문교부장관) 등 YS에게 영향을 미쳤던 옛스승들을 소개하고 인터뷰를 내 보냈다.

우드로 윌슨의 제자 이승만
군 출신인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에게는 이렇다 할 정치적 스승이 없다. 굳이 꼽는다면 전두환 전대통령은 박정희 전대통령의 총애를 받으며, 정치감각을 익혔다고 할 수 있다. 또 노태우 전대통령은 여당 대표를 하면서 박준규·채문식 전국회의장 등 고향선배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박정희 전대통령의 스승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선친인 김용하씨다.박 전대통령은 서예가 취미였는데, 이는 대구사범학교 시절 습자시간에 붓글씨를 배우면서 시작됐다. 당시 서예 선생님이 김용하씨였다. 이런 스승-제자의 인연으로 김우중 회장이 박정희 전대통령 시절 대기업을 일으킬 수 있었다고 한다.초대 이승만 전대통령이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 미국 28대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을 스승으로 모셨던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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