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게이트 파문일 때마다 ‘몸통’의심 받았다
대형게이트 파문일 때마다 ‘몸통’의심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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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6-02-02 09:00
  • 승인 2006.02.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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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간의 화제거리가 되고 있는 마당발 법조브로커 윤상림씨의 전방위 로비 사건에도 어김없이 청와대 비서실이 등장하고 있다. 처음에는 윤씨가 청와대를 드나들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야당이 이를 쟁점화시키자 이번 사건이 ‘청와대 게이트’로 확산될지 관심을 모았었다. 특히 비서실이 야당의 청와대 출입 기록 공개 요구에 대해 처음에는 “출입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가, 나중에는 “외교통상부 건물에 별도로 나가 있던 민정수석실 산하 사정비서관실에는 들렀다”고 말을 바꾸는 바람에 뭔가 감추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그러다 윤씨가 2003년 말 사정비서관실을 방문했던 이유가 ‘장군 잡는 여경’으로 알려진 강순덕 전경위의 구명을 위한 것이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상황은 일단 반전됐다. 윤씨의 사정비서관실 방문이 자신의 범죄행각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빌미가 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일면식도 없이 ‘호텔 사장’이라며 불쑥 찾아 온 윤씨가 강 전경위의 구명을 요청하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당시 양인석 사정비서관이 윤씨에 대한 내사를 벌여 비위 첩보를 검찰에 넘겼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윤씨가 자승자박을 한 셈이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청와대 참모들의 미묘한 행동들도 감지됐다.역대 정권에서 각종 대형 의혹 사건, 이른바 ‘게이트’ 파문이 일 때마다 대통령 비서실은 항상 ‘몸통’이 아닌가 의심을 받았다. 게이트의 주역들이 일방적으로 청와대를 팔고 다닌 경우도 있고, 실제로 청와대 사람들이 개입된 사례도 없지 않았다.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던 2003년 2월25일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청와대 사칭 주의보’를 발령했었다. 그 무렵 참깨 수입업자가 청와대 비서관이라면서 부산세관장에 전화를 걸어 통관해줄 것을 요구하는 등 사칭사건이 몇 건 생긴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 사칭 사건은 그 이후에도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 물론, 그 이전에는 더 심했다.

DJ정권때 청소부도 1억 꿀꺽
문제는 단순한 사칭 사건이 아니라 실제로 청와대 참모가 비리 의혹에 개입된 경우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줄줄이 발생한 정권 비리 의혹과 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각종 권력 추문은 굳이 되새길 필요조차 없이 ‘청와대= 의혹의 온상’이란 이미지로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돼 있다. 특히 DJ 시절에는 청와대 경내 청소원이 ‘비서실 과장’ 행세를 하며 억대의 금품을 받아 챙긴 사건도 발생,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이나 박정희 전대통령 시절에도 청와대 비서실은 보유하고 있던 권위와 권한 만큼이나 많은 비리 의혹이 있었다. 단지 언론의 자유가 봉쇄돼 있던 시절이라 낱낱이 파헤치는 데 한계가 있었을 뿐이다. 집권 4년차에 접어든 참여정부 역시 그동안 이런 저런 의혹에 시달려 왔다.

지난해 불거진 ‘오일 게이트’(러시아유전 개발 의혹)와 ‘행담도 게이트’(충남 당진 행담도 개발 의혹)가 대표적이다.이후 한동안 잠잠하더니 연초부터 불거진 대형 브로커 사건의 불똥이 청와대로 튀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는 청와대측이 스스로 의혹을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먼저 청와대 사정비서관이 불쑥 찾아온 전혀 모르는 사람을 만나줬다는 자체가 얼른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대통령 비서실의 권위와 권한은 많이 약화됐지만 일반인에게 청와대의 문턱은 여전히 높은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비서실의 하위직 직원을 만나려 해도 면회실에서 꼼꼼하게 신원 확인 절차를 거친다. 신원이 확인되면 인적 사항을 기록한 뒤 방문증을 받아 패용하고 경내로 들어간다. 사전에 면담 약속이 돼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한 번 청와대를 방문한 기록은 일정 기간 동안 없어지지 않는다.

대통령 사생활 험담하다 좌천
윤씨의 경우 청와대가 아닌 외교통상부 건물에 입주해 있는 사정비서관실을 찾았다고 하지만 그렇더라도 실제로 면담이 이뤄졌다는 것은 이해가 잘 안되기는 마찬가지다. 외교부 건물도 보안이 엄격하며, 더구나 윤씨는 사전 약속도 없이 찾아 온 내방객이었다. 이에 대해 지금은 청와대를 떠난 양인석 변호사는 기자들과 만나 “일면식도 없는 윤씨가 불쑥 찾아온 게 희한해 기억하고 있다”고만 밝혔다.또 하나, 윤씨가 선처를 부탁했던 대상이 강 전경위라는 데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강 전경위는 2003년 12월17일 8명의 동료 여경들과 경찰청 구내 커피숍에서 담소를 나누던 중 노무현 대통령의 사생활과 관련된 소문을 언급한 것이 문제가 돼 경찰청 특수수사과에서 남대문경찰서 경무과로 대기발령된 상태였다.당시 강 전경위는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 강금실 당시 법무부 장관까지 거론하며 험담을 늘어놓았고, 이곳에서의 발언이 얼마 후 청와대 홈페이지에 게시되는 바람에 청와대에 ‘괘심죄’로 찍혀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아무리 윤씨가 무모하다고 해도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일면식도 없는, 그것도 청와대에서 사정업무를 담당하는 비서관을 찾아 갈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다음으로 윤씨 사건이 불거진 이후 청와대의 대응 태도 역시 많은 의문점을 낳고 있다.야당에서 윤씨의 청와대 출입 의혹을 제기한 초기에 정례브리핑 시간을 통해 이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지만 청와대 문재인 민정수석과 김만수 대변인은 “출입한 사실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그러나 윤씨의 사정비서관실 방문 사실이 확인되자 김만수 대변인은 “당시 민정수석실은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 별관인 외교통상부 건물에 있었다”면서 “업무적으로는 청와대 업무를 했지만, 공간적으로는 청와대로 관리되지 않는 부분”이라고 해명했다. 문 수석도 “확인 결과 청와대 출입사실은 분명히 없었다”면서 “당시 외교부는 들락날락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최광식 퇴진에 청와대 입김설
결국 윤씨가 사정비서관을 찾아갔던 2003년 말 민정수석실은 외교부 청사에 있었기 때문에 이를 청와대 출입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누가 봐도 궁색한 변명이다. 윤씨가 대통령 비서실 사람을 만났다는 데 의혹이 있는 것이지, 장소가 청와대냐 아니냐는 문제는 곁가지란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이런 정황들로 인해 청와대도 이번 윤상림씨 사건에 대해 뭔가 자유롭지 않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과거의 예를 보면 청와대를 향한 그런 의혹들이 현실화된 경우가 적지 않다.이번에도 의심이 가는 구석들이 적지 않다. 앞에서 언급한 외에도 청와대가 윤씨의 사정비서관실 방문을 시인한 당일, 역시 게이트 연루 의혹을 받아온 최광식 경찰청 차장이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이틀 전만 해도 “사퇴하고 싶어도 못한다”던 그이기에 청와대의 입김설이 뒤따른다.물론, 대다수의 청와대 비서실 직원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높은 자긍심과 사명감으로 묵묵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있다. 업무에 몰두하느라 치명적인 암에 걸린 줄도 몰랐던 고위 참모도 있었다. 과중한 업무를 이기지 못하고 남들이 그렇게 부러워 하는 청와대를 나간 사람도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청와대 비서실이 여전히 정권비리 의혹의 산실처럼 인식되고, 또 그것이 간혹 사실로 밝혀지는 것은 권위와 권력의 달콤한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일부 참모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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