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전 수석의 거침없는 독설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이 ‘안티 조기숙’ 세력의 불만이었다고 한다. 조전 수석의 퇴진은 그만큼 대통령 비서실에서 여성이 빛을 발하기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사실 조 전수석은 이미 한 달 전쯤에 청와대 기자실에 들러 ‘앰바고’(일정 기간 비보도)를 전제로 홍보수석직에서 물러날 생각임을 밝혔다. 직접 내 세운 이유는 “홍보수석은 1년 정도 하는 것이 적당할 것 같고,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갖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구상만 해 놓고 미처 끝마치지 못한 일이 있다”며 공식으로 사퇴하는 시점을 한 달 정도 후로 미뤘다. 또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했더니 ‘보내자니 아깝고 붙잡자니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 했다.하지만 청와대 수석직을 물러나면서 한 달 전에 기자실에 들러 사퇴하겠다고 미리 예고한 사례는 없었다. 따라서 그만한 속사정이 있었을 것이란 말들이 나왔고, 가장 유력한 관측은 ‘외압설’이었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조 전수석이 조선·동아 등 보수언론과의 관계를 너무 긴장시켰고, 오히려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린다는 지적이 많았던 만큼 그의 퇴진을 외압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심지어 일부 언론에서 그를 “참여정부의 차지철”이라고 지칭할 정도로 그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은 대단했다. 또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으로도 불렸다. 이런 점들이 여론의 흐름에 민감한 여당 국회의원들에게는 ‘지적사항’이 된 것이다.
대통령 인내심에 큰 감동
그는 퇴임하기 직전 한 사석에서 이런 말들에 대해 “독재자에게 충성하는 것은 사리사욕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국민의 손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것은 곧 국민에게 충성하는 것”이란 논리로 항변하기도 했다.조 전수석은 또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퇴임의 변에서도 “안팎으로 힘에 부친 일을 하면서도 제가 기죽지 않고 꿋꿋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의 변함없는 신임과 여사님의 든든한 후원 덕분이다. 대통령을 가까이서 모시면서 그 분의 깊이 있는 철학과 인간미를 직접 느끼게 된 것도 제게는 큰 영광이었지만 대통령 내외분의 포용력과 이해심, 인내심에 더 큰 감동을 받았다”고 변함없는 충성심을 보였다.
가장 눈물 많은 여비서관
어쨌든, 조 수석의 퇴진으로 청와대에는 차관급 이상 여성 고위 참모가 완전히 사라졌다. 또 행정부를 포함해서도 참여정부의 차관급 여성은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과 정강자 상임위원, 최영희 청소년위원회 위원장 등 단 3명이 남게 됐다. 지난해 까지만 해도 7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다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이다. 장관급도 당연직인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을 포함해 단 두 명(장 장관과 김선욱 법제처장)뿐이다.이런 현상은 미첼레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 엘렌 존슨 설리프 라이베리아 대통령에 이어 핀란드의 타르야 할로넨 대통령이 지난달 말 치러진 대선 결선에서 재선에 성공하는 등 전세계적으로 여성들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것과 비교된다. 또 각종 고시와 사기업에서도 여성들이 선전하는 분위기와도 다르다.청와대만 놓고 볼 때 1, 2급 비서관도 여성에게는 좁은 문이다. 현재 46명의 비서관 가운데 여성은 김현 보도지원비서관(춘추관장), 이은희 2부속실장, 선미라 해외언론비서관, 김은경 민원제안비서관 등 4명에 불과하다. 정영애 균형인사비서관도 최근에 사표를 제출했다.이 가운데 김은경 민원제안 비서관은 청와대에서 눈물이 가장 많은 비서관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 민원실에 올라 오는 서민들의 애환을 처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여인천하’ 시절도
사실 참여정부 전반기에는 청와대 비서실에 ‘여풍(女風)’이 불고 있다는 평가를 받던 시절도 있었다. 특히 1년 전인 2005년 3월엔 홍보수석실을 두고 ‘여인천하’로 지칭하기도 했다.당시 여성 비서관은 모두 7명에 달했는데, 특히 조기숙 수석이 지휘하던 홍보수석실에 집중돼 있었던 것이다.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조 수석을 필두로 노혜경 국정홍보비서관, 김현 보도지원비서관, 선미라 해외언론비서관 등 여성 참모가 무려 4명으로 전체 7명의 과반수를 차지했었다.참여정부 청와대는 2003년 출범 때도 박주현 국민참여수석을 비롯해 황덕남 법무비서관, 송경희 대변인, 김현미 국내언론1비서관, 최은순 국민제안비서관, 이지현 외신담당 부대변인까지 6명의 비서관급 이상 참모가 있었다.앞서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는 보통 4~5명의 비서관급 이상 여성 참모가 활동했다.
국민의 정부 때 대표적인 여성 참모는 박선숙씨다. ‘운동권 학생’ 출신으로 DJ의 민주당에서 주로 공보 일을 맡았던 그는 청와대 공보기획비서관을 거쳐 2002년 초 여성 최초의 청와대 대변인(공보수석)에 올랐던 인물이다. 특히 청와대 생활 5년을 DJ와 함께 마치고 나온 뒤에도 현정부가 출범하면서 환경부 차관으로 발탁돼 지난 1월까지 장수했다.그는 국민의 정부 실세 중 실세였던 박지원 전비서실장 계보로 꼽혔다. 청와대 시절 박선숙씨는 철마다 출입기자들에게 넥타이를 선물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당시 ‘박선숙 표 넥타이’는 청와대 안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국민의 정부 시절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임기를 마친 여성 참모로는 박금옥 총무비서관도 빼놓을 수 없다. 독신인 그는 기자들과 밤새워 폭음을 마다하지 않는 사교술로 청와대 내에서 ‘팬’이 많았다.
박금옥씨도 2003년 초 퇴임 직후 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으로 기용돼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DJ가 여성 참모들을 비교적 중용한 것은 그의 페미니스트적인 성격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국민의 정부 출범 초기 청와대의 여성 비서관과 행정관(3~4급)은 모두 12명에 달했다.반면,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대통령 같은 군 출신은 물론, 문민정부를 세운 김영삼 대통령까지만 해도 청와대 비서실은 사실상 ‘금녀(禁女)의 성(城)’이었다.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여성 비서관이나 행정관급은 한, 두 명이 고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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