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군이래 첫 육사 졸업식 불참 ‘군부 쿠데타설’ 나돌아
건군이래 첫 육사 졸업식 불참 ‘군부 쿠데타설’ 나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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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6-03-13 09:00
  • 승인 2006.03.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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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육·해·공군 3군사관학교의 졸업 및 임관식이 있었다. 또 학군사관후보생(ROTC) 임관식도 열렸다. 이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은 ROTC 제 44기 임관식(2월28일)과 육군사관학교 제 62기 졸업 및 임관식(3월3일)에 참석했다. 나머지 군 초급장교 양성기관인 해군사관학교(6일)와 공군사관학교(8일) 졸업 및 임관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시간적으로는 노 대통령이 이들 사관학교의 졸업식이 열린 기간에 아프리카를 순방하고 있었기 때문에 참석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런데, 만일 노 대통령의 국내 체류 중에 해사와 공사 졸업식이 열렸다면 대통령과 군(軍)의 관계가 또 한번 도마에 오를 뻔했다. 지난해 청와대는 노 대통령이 군·경찰 초급간부 양성기관 6곳의 졸업식에 격년제로 참석기로 했다고 밝히고, 실제로 육사·해사·ROTC 졸업식에 이해찬 국무총리 등을 대신 보내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없이 치러진 육사 졸업식은 군내에서 두고 두고 말이 많았다고 한다. 청와대측은 “대통령이 바쁜 국무 일정을 접어둔 채 매년 모든 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하는 것은 무리”라며 그같은 결정을 내렸지만, 사회 보수세력과 군 일각에선 이를 ‘노무현 대통령의 군 경시(輕視)’ 때문이라며 발끈한 것이다.그도 그럴 것이 헌법상 국군 최고통수권자인 역대 대통령들은 만사 제쳐놓고 3군 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 수석졸업생에게 대통령상을 수여하고 신임 장교들을 일일이 격려했다.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대통령과 군사정권으로부터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김대중 대통령 때까지만 해도 그런 ‘전통’은 이어졌었다.

‘군인가족의 힘’이 당선시켜
사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출범 때부터 ‘군’과 관련한 여러 가지 이야깃거리를 낳았다. 일각에선 2002년 대통령선거 때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것도 ‘군인 가족들의 힘’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의혹에 따라 병역 이수자와 자식·형제를 군대에 보낸 유권자들의 표가 노무현 후보에게 쏠렸다는 분석이다.그러나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 초기 정부 각료와 청와대 참모진을 구성하는 과정에서부터 ‘군’ 문제 때문에 낭패를 겪었다.병무청이 참여정부 출범 후 2개월여 후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정부의 장관급 공직자 30명 중 여성 장관 4명과 국정원장을 제외한 25명 가운데 10명(40%)이나 병역을 면제받은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참여정부 첫 조각(組閣) 과정에서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아들의 병역 문제로 곤욕을 치른 뒤끝이었다.아울러 청와대 비서실에 대거 입성한 ‘386 참모’들 가운데 상당수가 ‘병역 미필자’로 밝혀져 화제가 됐었다. 물론, 고의로 병역을 기피한 것은 아니고 대부분 학생운동을 하다가 징역을 산 전력이 있어 군대에 가지 못한 경우였다.이 때문에 당시 청와대 총무비서관실에는 이들 ‘386 참모’들의 공무원 자격 심사와 호봉 산정에 상당한 애를 먹었다고 한다. 실제로 몇몇 참모들은 수개월 동안 ‘신원조회’가 떨어지지 않아 월급도 못받고 청와대로 출근하는 일도 있었다.

386 참모들 신원조회 애먹어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직후 경호실장도 경찰 출신인 김세옥씨를 임명해 지금까지 자신의 신변보호를 맡기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이후 청와대 경호실장 자리에는 모두 11명이 거쳐갔다. 현재의 김세옥 실장이 12번째다. 이 가운데 군 장성 출신이 아니었던 인물은 문민정부 시절의 박상범 실장과 김세옥 실장뿐이다. 참여정부 청와대 경호실의 전체 인적 구성에서도 군 장교 출신이 대폭 줄어든 것으로 알려진다. 또 청와대에서 ‘국방비서관’ 직제가 없어진 것도 참여정부들어서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까지는 외교안보수석비서관실 산하에 국방비서관을 두고 각군과의 업무협조 체계를 구축했다. 국방비서관에는 통상 현역 준장이 임명됐다. 참여정부는 대신 ‘대통령 국방보좌관’ 직제를 뒀으나 이마저 얼마 전 폐지됐다.물론, 대통령 직속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설치돼 있고, 지금은 청와대 내에 통일외교안보정책실이 신설된 만큼 굳이 국방비서관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청와대 국방비서관의 주 업무는 정권 실력자들에게 전국에 산재해 있는 군 골프장을 부킹해 주는 것”이란 조소섞인 말이 나돌았다.

대통령에 우산받친 국방장관
어쨌든 군 개혁을 기치로 내걸었던 참여정부와 군은 초기에 숱한 마찰음을 냈다. 2004년 여름 발생한 북한 경비정의 무선통신 보고 누락 사건을 둘러싼 양측의 인식 차이가 대표적이다.또 그해 5월 현역 육군대장인 신일순 한·미 연합사부사령관이 횡령혐의로 전격 구속되자 군을 지나치게 다룬다는 지적이 나왔다. 나아가 특정 지역 출신 장성들만을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앞서 2003년 10월1일에 열린 건군 55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 사열 행사에서 연장자인 조영길 국방부 장관이 노무현 대통령을 위해 우산을 받쳐든 모습이 각 언론에 공개돼 네티즌들이 들끓고 국회에서까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왔다.이런 가운데 ‘국민행동본부’를 비롯한 극우단체를 중심으로 공공연하게 ‘군부 쿠데타’를 암시했고, “전방의 모 장군이 쿠데타 모의 혐의로 체포됐다”는 황당한 소문마저 나돌았다.

참여정부 임기가 중반을 넘어서면서는 경기도 연천 총기난사 사고가 나고, 논산훈련소에서의 가혹행위(인분 사건)가 밝혀지는 등 예상 외의 악재까지 겹쳤다.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 때를 전후해 군 수뇌부와 수시로 골프 라운딩을 갖는 등 관계개선에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과거 ‘하나회’ 출신을 요직에 임명하면서 “아직도 하나회 출신이란 점이 인사의 결격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청와대에서 ‘면죄부’를 주기도 했다. 대통령과 군의 관계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 것은 당연히 민간정부가 들어서면서 부터다.특히 김영삼 전대통령은 취임 하자 마자 보름도 되기 전에 하나회 출신으로, 군부의 좌장격이던 김진영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 기무사령관을 전격 경질했다. 이후 임기 100일 동안 YS는 대장 7명을 포함해 19명의 장성을 전역시켜 버리는 초강수를 뒀다. 당시 모두 42개의 별이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일부 장성들이 사석에서 울분을 터뜨리다가 좌천되거나 진급에서 탈락한 경우도 많았다.이 때의 ‘하나회 척결’로 YS 정부의 지지율은 한때 90%를 넘어가기도 했다.하지만 나중에 하나회의 빈 자리를 YS의 차남 김현철씨가 채워 군 주요 인사에 개입한 것이 드러남으로써 비난의 대상이 됐다. 뒤이어 등장한 김대중 전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는 소수정권이라는 한계와 5·16 군사정권 출신인 김종필 총재와의 공동정권이란 약점 때문에 군을 다루는 데 매우 조심스러워 했다.군부 역시, DJ를 달가워 하지 않았다. 참여정부가 추진한 대북 햇볕정책 때문에 주적 개념이 모호해지는 등 군의 정체성마저 흔들린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DJ는 야당 지도자 시절 ‘적색분자’라는 이미지가 군내에 퍼져 있었다.

막강파워 자랑 5공비해 격세지감
과거 군 출신 대통령들과 군의 관계는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물론, 박정희·전두환 전대통령과 노태우 전대통령의 군 장악력은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 많지만 어쨌든 군은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고, 그만큼 파워도 대단했다.가령, 최근 최연희 의원 술자리 여기자 성추행 사건으로 다시 회자되는 1986년 3월의 국회 국방위 회식사건 같은 일은 앞으로 다시는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당시엔 전두환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군 장성들이 국회의원과 한 판 붙을 정도의 위세를 갖고 있었지만, 지금 상황에선 어림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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