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 대해 민주당 김정현 부대변인은 “이것이 어느 나라 청와대고 어느 나라의 대통령 비서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맹렬히 성토했다. 김 대변인은 “제대로 된 청와대 비서관이라면 컴퓨터에서 케케묵은 글이나 뒤져 브리핑에 올릴 것이 아니라 시정 골목이라도 돌아다니며 채집한 생생한 ‘민심 리포트’라도 작성해 대통령에게 올리는 것이 본분일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차 수석은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기동창이다. 청와대가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시기에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동창생이 ‘노비어천가’를 부르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대통령을 욕보인 셈이다.더구나 최근들어 대통령의 고교동창생들이 각계에서 너무 약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던 참이기도 하다.
민감한 시기에 발언 파문
현재 청와대 비서실내에도 3급 행정관 이상 요직 가운데 부산상고 출신이 차 수석 외에 두 명이 더 있다. 손성수 인사관리비서관실 행정관(3급)과 홍경태 총무비서관실 행정관(수송담당·3급)이다. 한 언론의 분석에 따르면 참여정부 청와대 비서실 직원의 출신 고등학교는 전반적으로 흩어져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부산상고는 검정고시(5명), 경기고(4명), 서울고(4명), 전주고(4명)에 이어 3급 이상 참모들을 다섯 번째로 많이 배출한 학교인 것으로 집계됐다.부산상고는 1895년 사립 부산개성학교로 문을 열었다. 1909년 공립 부산실업학교로, 1911년에는 부산상업학교로 각각 교명이 바뀌었다. 부산의 명문 상업학교로 이름을 날렸으나 최근 실업계 학교 지원학생이 줄자 2005년부터 인문계 학교로 전환하면서 교명도 부산 개성고등학교로 되돌아갔다. 부산상고 인맥이 가장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곳은 재계다. 부산상고 출신들은 이전부터 재계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참여정부들어 더욱 위상이 강화됐다.
신상우 전국회부의장도 10년 선배
지난 3월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를 비롯해 이장호 부산은행장, 김장수 은행연합회 부회장, 김지완 현대증권 사장, 옥치장 증권선물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장, 김정민 국민은행 부행장, 김수룡 도이치뱅크 코리아 회장, 이수희 증권예탁원 감사, 김대평 금감원 부원장보, 황두열 석유공사 사장, 한행수 대한주책공사 사장, 김지엽 대한석탄공사 사장 등등 이름을 열거하기조차 어렵다.얼마전에는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자리에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10년 선배인 신상우 전국회부의장이 앉는 바람에 “체육계에서까지 ‘학맥인사’가 이뤄지느냐”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노 대통령은 취임초부터 동창 때문에 한차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부산상고 1년 선후배이자 오랜 벗인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대선 직후 SK로부터 10억원에 가까운 양도성 예금증서(CD)를 받은 혐의로 구속됐던 것이다.
동창때문에 곤욕치른 대통령
과거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의 동창인맥이 활개를 쳐 왔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MK’, 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PK’, 노태우 대통령 시절의 ‘TK’, 전두환 대통령 시절의 ‘육법당(陸法黨)’이 대표적이다.목포상고 출신인 DJ 시절엔 MK가 사회 요소요소를 장악했다. MK는 목포·광주를 의미했지만, 보다 좁게는 목포상고와 광주일고 인맥을 뜻했다.국민의 정부 출범 초기에는 목포고 출신이 각계에서 그다지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지 못하던 때였다. 영남인맥에 밀려서다. 그러다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하고 나서 목포고 출신들을 중용하다 보니 나중에는 인적자원이 바닥나다시피 했다. 당시 “목포고 출신이면서도 번듯한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면 팔불출”이란 말이 나돌았다.앞서 김영삼 대통령 시절엔 더 심했다. 부산·경남을 의미하는 PK의 중심에 YS의 출신학교인 경남고가 있었다. 문민정부 시절 경남고 출신들이 핵심 권력을 모조리 장악하자 ‘동창회 정권’이란 비아냥거림이 나올 정도였다.당시 경남고 출신으로 청와대를 출입했던 한 언론인은 “처음 청와대에 들어가 비서실마다 인사를 다니는데, 각 방마다 한두명씩은 동창회에서 얼굴을 익혔던 사이여서 나도 놀랐다”고 회상했다. 그 때는 청와대 기자단에도 경남고 출신들이 다수 있었다.
TK시절 경북고 가장 막강
그렇지만 헌정 이래 한국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학교는 노태우 전대통령이 졸업한 경북고라는 데 이론이 없다. 노태우 전대통령은 전두환 전대통령과 대구공고 입학 동기였는데, 중간에 경북고로 전학했다가 졸업후 육사 11기로 함께 입학하면서 다시 만났다.아직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회자되는 TK라는 용어는 넓게는 대구·경북을, 좁게는 경북고만을 일컬었다. 경북고는 한국전쟁 당시 잠시 교명을 대구고로 바꾼 적이 있는데 그 때의 졸업생을 합쳐 TK라고 부르는 것이다.당시 사회 각계에 진출한 TK 인맥이 워낙 광범위하자 수도권 출신으로 관료생활을 오래 한 어느 정치인은 “TK정권이 끝나도 사회전반에서 TK 출신과 다른 지역 출신의 형평이 이뤄지는데 최소 50년은 걸릴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전두환과 ‘육법당’
사정이 이렇다 보니 TK는 자기들끼리도 편을 갈랐다. ‘성골 TK’니 ‘진골 TK’니 하는 말은 꽤 알려져 있다. TK들 사이에선 내부적으로 경북고를 나온 사람은 ‘광어 TK’, 그냥 고향만 대구·경북이면 무늬만 TK라며 ‘도다리 TK’로 부르기도 했다. 전두환 전대통령 시절에도 경북고 출신들이 각계에 포진했다. 하지만 전두환 전대통령은 대구공고를 졸업했다. 그는 엄밀히 따지면 TK가 아니었다. 고향이 경남 합천인데다 경북고를 다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육사 11기 동기들이 결성한 ‘하나회’의 멤버 대부분이 경북고 출신이었고,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TK의 일원이 됐다.따라서 전두환 전대통령은 집권 시절 고교 학맥 보다는 육사 학맥에 의존했다. 당시 내각 명단을 보면 항상 절반 이상이 육사 출신이었고, 나머지는 서울대 법대 출신들이 독식하다 시피했다. 워낙 서울대 법대와 함께 육사 출신이 두각을 나타내자 ‘육법당(陸法黨)’이란 말이 나돌았다.박정희 전대통령은 1937년 3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40년 3월까지 문경소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다 군관학교에 들어가 일본군 장교를 지냈다. 해방 후에는 우리나라 육사를 2기로 졸업했다.
박정희도 ‘대구사범’중용
박정희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특히 고향 사람들이 많은 대구사범학교 동창들을 음으로 양으로 끔찍이 챙겼다고 한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대구사범학교 시절에도 친구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권좌에 앉자 사범학교 친구들을 공사직에 상당수 앉혔다. 지난 2004년 5월에는 당시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신임 인사차 예방한 자리서 두 사람의 선친이 대구사범학교 동기로 절친한 사이였음을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신 의장은 자신의 아버지는 졸업 후 경찰의 길로, 박정희 대통령은 군인의 길로 들어섰다고 설명했는데, 나중에 신 의장의 선친이 일본군 헌병 출신이란 사실이 보도돼 의장직에서 물러났다.사회생활을 하면서 학교 동창끼리 서로 돕고 살아가는 모습은 보기에도 좋다. 하지만 대통령의 동창들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대통령의 동창이란 한가지 이유만으로 청탁인들이 줄을 설 판인데, 거기다 요직에까지 앉힌다면 그에 따른 부작용은 불을 보듯 뻔하다. 물론, 대통령의 동창이라고 불이익을 당해서도 안되지만 특혜의 대상이 돼선 더욱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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