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좀 나서지 말아달라” 열린 우리당 강력 요구
“제발 좀 나서지 말아달라” 열린 우리당 강력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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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6-06-22 09:00
  • 승인 2006.06.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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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치권에선 노무현 대통령이 21일로 예정됐던 국회연설을 돌연 취소한 진짜 이유를 놓고 여러 가지 말들이 오갔다. 청와대 정태호 대변인은 여·야 정책협의회에서 6월 임시국회법안 처리에 합의가 이뤄져 취소키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지만 이를 곧이 곧대로 믿는 관측통들은 거의 없었다. 열린우리당측에서 “제발 좀 나서지 말아 달라”며 연설취소를 간곡하게 요청했다는 얘기 등이 나돈다.만일 이런 말이 사실이라면 국가 차원에서 불행한 일이다. 대통령이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에서 국정 전반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자리까지 봉쇄될 정도로 청와대가 엉망이란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대통령과 국회가 부딪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서로간에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다. 이번 일을 계기로 역대 대통령과 국회와의 관계를 살펴 본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현직인 16대 노무현 대통령까지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인물은 모두 9명이다. 이승만 대통령(1~3대), 윤보선 대통령(4대), 박정희 대통령(5~9대), 최규하 대통령(10대), 전두환 대통령(11~12대), 노태우 대통령(13대), 김영삼 대통령(14대), 김대중 대통령(15대), 노무현 대통령(16대)이 그 맥을 이어 왔다.이 가운데 국회의원을 지냈던 대통령은 모두 6명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꼭 3분의 2에 해당한다.이승만 대통령은 제헌국회의 의장을 역임했다. 또 자유당의 창당 총재이기도 했다. 미국에서 공부한 정치인 답게 최소한 임기 중반까지는 국회를 존중하는 등 의회주의에 대한 인식이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국회에 시달린 역대대통령들

4·19로 뒤를 이은 윤보선 대통령도 3대 민의원, 4대 국회의원과 신민당 대표최고위원, 국민당 총재 등을 지낸 정치인 출신이다. 당시는 의원내각제였기 때문에 대통령은 상징적 국가원수였고 내각과 의회의 권력이 더 강했다. 이후 5·16으로 정권을 잡은 군인 출신 박정희 대통령, 10·26 수습 과정에서 과도체제의 수장이 된 외교관 출신 최규하 대통령, 12·12의 주역인 군인 출신 전두환 대통령까지 세 사람은 국회의원 경력이 없다.국회의원 출신 대통령 이력은 노태우 대통령에 이르러 다시 이어진다. 전두환 대통령을 이은 노태우 대통령도 군인 출신이지만 그는 ‘후계자’ 수업을 받을 때 내무부 장관을 거쳐 1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당시 그는 민정당 총재도 겸했다. 이 때 사귄 정치인들이 나중에 권력에 대거 입성하면서 노태우 정권의 군 색체를 탈색하는데 한몫 하기도 했다.노태우 대통령 다음부터의 대통령들은 노련한 정치인들이었다.김영삼 대통령은 1952년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장택상 국무총리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한 뒤 1954년 26세의 최연소자로 3대 민의원 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1992년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기 전까지 5·6·7·8·9·10·13·14대 의원에 당선된 9선 의원 출신이다.YS는 헌정사에서 최연소 국회의원 기록과 최다선 의원 기록을 동시에 갖고 있다. 9선의 최다선 기록은 김종필 전국무총리와 박준규 전국회의장과 함께 보유 중이다. YS는 이 사이에 민주당 대변인 2번, 민중당 등 야당 원내총무 5번을 역임했고, 신민당과 통일민주당 등 야당의 총재를 세 차례나 지냈다.

DJ정권 때도 줄곧 애먹어

YS의 영원한 라이벌인 김대중 대통령도 정치 이력이 눈부시다. 해운업을 하면서 언론사 사장 등을 거쳐 1960년 민의원에 당선된 것이 시초다. 이후 여러 차례 정치 활동 금지 조치를 당하면서도 6·7·8·13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그 사이에 민주당·민중당·신민당 대변인, 신민당 정무위원,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등으로 정치 경험을 쌓았다.특히 DJ는 아들인 김홍일 의원은 물론, 동교동 가신들을 대거 국회로 진출시켰다. 지금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DJ계’만으로도 원내교섭단체를 꾸릴 수 있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다. 현직인 노무현 대통령도 국회의원 출신이다.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YS의 권유로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공천을 받아 부산 동구에 출마, 당선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13대 국회 당시 ‘제5공화국에 있어서의 권력형비리조사특별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돼 이른바 ‘5공 청문회’에서 일약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또 이 시기에 국회 노동위원회에 소속돼 통일민주당 간사로 활동했는데, 이해찬 전국무총리 등 정치적 동지들을 당시 노동위 활동을 통해 만났다. 노 대통령은 사석에서 국회 노동위에서 일하던 때를 자주 회상할 만큼 그 시절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다. 나중에는 통합 민주당의 대변인을 지내기도 했다.이후 1995년 부산시장 선거, 1996년 제15대 총선(민주당, 서울 종로)에서 잇달아 낙선의 고배를 마시다가 1998년 15대 국회의원 종로구 보궐선거에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해 당선됨으로써 다시 금배지를 달았다.

탄핵당한 노대통령의 수모

이렇게 해서 역대 대통령 9명 가운데 6명이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사단법인 헌정회의 회원(작고한 회원 포함)으로 남아 있다. 그렇지만 같은 국회의원 출신 대통령이더라도 재임 시절 국회와의 관계는 천차만별이다.가장 극적인 사례가 자신이 몸담았던 국회로부터 탄핵을 당해 대통령 직무가 정지됐던 노무현 대통령이다. 물론 노 대통령을 탄핵하는 데 앞장섰던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탄핵 역풍을 맞아 2004년 총선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래도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로부터 탄핵을 받은 유일한 사례로 남아 있다.

여당 대통령 연설에 콧방귀 뀐 야당의원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친정인 국회로부터 ‘푸대접’을 받았다. 임기 초반에 국가예산안 편성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시정연설 등을 위해 여러 번 국회를 찾았지만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한 일부 의원들이 입장할 때 박수는 커녕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노 대통령으로선 국가원수로서 최소한의 예우도 받지 못한 참기 어려운 ‘수모’였었다.2005년 11월17일에 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 중이던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국회를 방문해 큰 환대를 받은 적이 있다. 당시 김원기 국회의장은 환영사를 통해 “중국이 세계 경제발전의 기관차 역할을 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는 말로 최고의 예를 표했다.또 후진타오 주석이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섰을 때 빈자리가 거의 없이 회의장을 빽빽이 메운 국회의원들은 전원이 기립해 열렬한 박수로 환영했다. 또 후진타오 주석의 30분간 연설 동안 여·야 국회의원들은 무려 10차례 박수를 보냈고, 연설이 끝난 뒤에는 기립박수까지 쳤다.당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청와대의 한 참모는 “우리나라 대통령이 연설할 때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야당 의원들도 있었고, 연설 도중 여당 의석에서만 간간이 박수를 치던데…”하며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전두환시절엔 의원들 숨도 못 쉬어

그런 노 대통령이 다시금 국회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건이 이번 ‘국회연설 취소’다.여권 일각에서는 지난 13일 열린우리당 김근태 신임 의장이 청와대 이병완 비서실장과의 면담에서 “노 대통령의 국회연설을 청와대에서 보좌하는 분들이 각별히 신경 좀 써 달라”고 당부했고, 이것이 청와대의 ‘취소결정’으로 연결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5·31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열린우리당을 떠맡은 김근태 의장이 ‘서민정치’를 기치로 열세 국면을 만회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특유의 민심 정면돌파를 시도할 것을 우려해 자제를 요청하자 청와대가 아예 연설 자체를 취소해 버렸다는 관측이다.흥미로운 사실은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국회의원 경력이 있는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의 사례에서 보듯 항상 국회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좋은 의미로는 국회의원 출신 대통령들이 의회정치를 존중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회의원들 스스로가 한 때 동료였던 국회의원 출신 대통령을 너무 흔들어대는 것 아니냐는 측면도 있다. 국회의원 출신이 아닌 박정희·전두환 대통령 시절 국회의원들은 숨도 쉬지 못하고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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