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중앙위원으로 있다가 이번에 청와대로 입성한 허성무 민원·제도혁신비서관(43)은 허성관 광주과학기술원장의 아우다. 허 원장은 참여정부에서 해양수산부와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냈다. 이에 따라 허씨 형제와 노무현 대통령의 끈끈한 인연이 화제가 되고 있다. 두 형제와 노무현 대통령은 각각 다른 경로를 통해 인연을 맺었다. 그렇지만 두 집안 사이에는 각별한 인연도 있다. 허 전장관이 입각할 당시 그의 아버지 허도녕씨와 권양숙 여사의 선친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장인이 되는 권오철씨가 좌익활동을 함께 했다고 해서 논란이 일어난 적이 있었던 것이다.또 여론조사비서관으로 기용된 조용휴 ‘폴앤폴’ 대표는 뒤늦은 ‘보은 인사’ 성격이 짙어 눈길을 모았다. 조 비서관은 리서치앤리서치 선임연구원, 국민회의 및 민주당 정세분석 부국장 등을 거친 여론조사 전문가다. 그는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캠프의 선거컨설턴트를 맡아 정몽준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 과정에 기여했다.
양정철 비서관 블로그에 소개
특이한 경력의 청와대 참모들에 대해서는 양정철 비서관이 블로그에서 매우 상세하게 소개했다. ‘쉘위댄스 실장, 샌드페블즈 비서관, 소림사 가족…청와대 참모진의 특이사항 특이경력’이란 제목부터 흥미를 자아낸다. 먼저 최근 임명된 권오규 정책실장이 ‘쉘위댄스 실장’이라고 한다. ‘쉘위댄스’는 야쿠쇼 코지 주연의 일본 영화다. 권오규 정책실장이 야쿠쇼 코지를 연상시킨다는 것인데, 바로 권 실장이 춤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는 것이다.엘리트 경제관료인 권 실장은 부부가 댄스 취미를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1998년 여름 미국에 있을 때 파티장에서 열린 댄스 경연대회에 부부가 함께 참가해 화려한 라틴댄스로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1977년 제1회 MBC 대학가요제 대상을 차지한 곡 ‘나 어떡해’를 불러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서울대생들로 구성된 그룹사운드 ‘샌드페블즈’의 멤버 한 사람도 청와대에 있다.윤장배 농어촌비서관이다. 샌드페블즈는 1년 단위로 멤버가 바뀌었다. ‘나 어떡해’를 부른 샌드페블즈는 6기였다. 이 샌드페블즈를 처음 만든 1기 리더가 베이스기타를 맡은 윤장배 비서관인 것이다.
‘나 어떡해’ 멤버도 비서관 근무
윤비서관은 그 뒤 고시공부를 시작해 1978년 행정고시에 합격, 농림부에서 관료로 근무하다가 청와대에 들어왔다. 가수 비를 발굴한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윤 비서관 누나의 아들, 즉 조카라고 한다.경호실이 아닌 비서실 소속이면서도 경호실 직원들을 능가하는 무술 실력을 가진 참모도 있다.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 경호팀장을 맡았던 총무비서관실 소속의 한명선 비상계획관(3급)이다. 한 계획관은 20년 동안 모 항공사 탑승보안관으로 출발해 객실서비스 수석사무장, 무도사범까지 지낸 ‘항공보안맨’ 출신이다.
‘수박장사’ 경력 참모도
그는 합기도 9단, 태권도 7단, 유술 6단, 검술 4단이란다. 항공사 재직 중엔 항공기 납치범 진압을 위한 항공무술을 개발하기도 했다고 한다.특히 한 계획관 가족들도 무술의 고수들이다. 큰딸은 태권도 4단, 합기도 3단, 유도가 2단으로 용인대 경호학과를 나와서 여경 대테러특공대에 소속돼 있다. 권총 부문 마스터자격증을 보유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스나이퍼이기도 한 명사수인데, 한 때 청와대 경호실에 파견 나와서 권양숙 여사 경호를 맡기도 했다. 한 계획관의 큰딸은 얼마 전에 결혼을 했다. 신랑은 대통령 경호실 경호관으로 태권도 3단이다.한 계획관의 둘째 딸도 각종 무술 고단자로 경찰특공대에서 특공대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녀도 10월 결혼 예정인데, 신랑 될 사람 역시 경호실에 파견근무 중인 경찰특공대 소속의 경찰로 태권도 4단이다.양정철 비서관은 이밖에도 이백만 홍보수석의 이름에 얽힌 사연, 자신과 소문상 기획조정비서관이 시민단체 운영을 위해 한 때 수박장사를 했던 이야기, 김선수 사법개혁비서관이 사법고시에 수석 합격하고도 판·검사를 마다하고 인권 변호사가 된 이유 등을 재치 있는 글솜씨로 자세히 소개했다.
박지원 전실장은 ‘가발장사’
과거 정권에서도 대통령 비서실에는 특이한 경력을 지닌 참모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386 세대가 청와대에 입성하기 시작하고, 호남 출신이 약진한 김대중 대통령 때의 비서실이 그랬다.정권이 교체되면 기능 파트 등 일부 붙박이 청와대 직원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3~4급 행정관 이상 참모가 교체된다. 대개는 대통령 당선자의 사람들이 대거 청와대로 입성하게 되는데, DJ를 따라 청와대를 ‘점령’ 하다시피 했던 참모 가운데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가 많았다.국민의 정부 5년 내내 청와대의 실세로 군림했던 박지원 전비서실장은 미국 뉴욕에서 가발 장사로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전두환 대통령의 5공 때 부터 국내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그는 재야 시절 미국을 방문했던 DJ의 눈에 들어 민주당에 들어간 뒤 승승장구했다.국민의 정부 청와대 비서실은 양분돼 있었다. DJ의 총애에 의존해 단기필마로 고군분투하던 박 실장에 맞서 동교동 가신그룹이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동교동 인맥들은 하나 같이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감옥살이를 한 경험이 있었다. 현정부 청와대의 386 참모들 가운데 수형생활로 인해 군대를 가지않은 사람이 많은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끊임없이 사고쳤던 YS 참모들
또 국민의 정부 초기의 김중권 비서실장도 당시로서는 특이하다면 특이한 참모였다. 호남 출신 동교동계가 판치는 청와대를 경북 울진에서 민정당 국회의원을 지낸 김 실장이 확실하게 장악했기 때문이다. 김 실장은 당시 권노갑 고문을 비롯한 동교동계의 조직적 견제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대통령과의 접근성을 바탕으로 기 싸움에서 한 치도 밀리지 않았다는 게 당시 청와대 사람들의 기억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절은 특이한 참모라기 보다는 ‘함량 미달’의 참모가 많았다고 그 시절 청와대를 출입했던 기자들이 전한다. YS의 상도동계에는 지략가 보다는 저돌적인 참모들이 많았는데 그들이 고스란히 청와대에 입성하면서 끊임없이 크고 작은 사고들을 쳤다는 것이다.
당시 상도동 출신인 한 참모는 김영삼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수행한 현장에서 술에 취해 기자들과 기사 내용을 놓고 대판 싸움을 벌인 뒤 혼자 짐을 싸 귀국해 버리기도 했다. 또 다른 참모는 갑자기 상승한 ‘신분’을 감당하지 못해 돈과 여자 문제 등으로 숱한 추문을 남기다가 검찰에 구속됐다.이전의 군 출신 대통령 시절에는 청와대 비서실에 들어갈 때는 철저한 신원조회를 거쳤다. 사돈의 팔촌까지 조금만 사상이 이상하거나 이색적인 기록이 있다면 청와대 입성은 꿈도 꾸지 못했다. 당시에는 청와대 출입기자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따라서 군 출신 대통령 시절에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참모들이 많지 않았다. 정통 코스를 밟아온 엘리트들로 대통령 비서실이 채워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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