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장 전격사퇴 이면에 청와대 압력설 무성
국세청장 전격사퇴 이면에 청와대 압력설 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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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6-07-06 09:00
  • 승인 2006.07.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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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교육부총리는 지난달 30일 오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최근 발생한 학교급식 식중독 파문 등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지만, 주변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격적인 사의 표명이었다. 김 부총리의 사퇴 발표에 맞춰 한덕수 경제부총리도 얼마 전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사의를 밝혔다는 말이 청와대 주변에서 나왔다. 오래 근무한데다 최근 재경부가 연관된 잇단 사건들을 계기로 분위기 쇄신을 위한 인사가 필요하다는 차원이란 것이다. 앞서 27일에는 이주성 국세청장이 돌연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 청장은 “그동안 역점을 두고 추진한 업무가 마무리되거나 체계를 잡아감에 따라 청장직을 마무리할 최적의 시기라고 판단했다”며 사퇴 이유를 밝혔다고 국세청이 전했다. 사흘 사이에 잇달아 발생한 세 사람의 ‘전격 사퇴’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주목되는 것은 세 사람의 사의 표명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이다. 30일 김진표 부총리의 기자간담회가 끝난지 불과 몇 시간 후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경제·교육 부총리의 사의를 수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다음 주 중에 후속 인사를 단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향후 ‘수순’까지 말했다.뿐만 아니다. 거의 같은 시간에 청와대 관계자들의 입에서 ‘후임자’ 이름이 술술 나왔다. 새 경제부총리에는 권오규 청와대 정책실장, 교육부총리에는 김병준 전청와대 정책실장의 기용이 유력하다는 것이다. 또 권오규 정책실장의 이동에 따른 후임에는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이 유력하며, 후임 예산처 장관에는 장병완 기획예산처 차관을 승진, 기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들려줬다.이에 앞서 이주성 전국세청장이 갑자기 퇴진 의사를 밝혔을 때도 청와대는 하룻만에 “사표를 수리하겠다”고 발표했다. 후임에 전군표 국세청 차장의 승진 기용이 유력하다는 말이 동시에 나온 것도 김진표 부총리의 경우와 비슷하다.

잇단 사표수리 개각이 목적?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청와대가 미리 인사 시나리오를 짜놓고 교체 당사자에게 퇴진해 달라는 압력을 넣지 않고는 일어나기 어렵다. 당사자들이 자발적 퇴진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청와대의 사퇴 요구에 따라 마지못해 물러나는 것이다.이처럼 청와대가 필요에 의해 고위공직자에게 사표를 강요하는 일은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진다. 단지 물러나는 사람들의 명예를 생각해 스스로 사의를 밝히게 하는 경우가 많다.얼마전 청와대 비서관직에서 그만 둔 A씨는 표면적인 사퇴 이유가 “청와대에 너무 오래 있어서…”였다. 하지만 그가 청와대에 들어간 것은 2004년 중순 쯤이었으니, 불과 2년밖에 안된다. 진짜 이유는 대통령 비서실을 새로 교통정리하는 과정에서 ‘노무현 직계’가 아닌 A씨 등이 밀려난 것이다.A씨는 사퇴 이유를 묻는 질문에 처음에는 “외국에 나가서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라고 했다가 ‘언제쯤 나갈 계획이냐’고 묻자 “뭐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고…”하면서 끝내는 쓴 웃음을 지었다. 자의반 타의반, 혹은 완전한 타의로 사표를 제출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국가청렴위 자료제공설도

이번 연쇄 사퇴의 출발점이 된 이주성 전국세청장의 경우를 보자. 이 전청장의 사퇴 이유에 대해서는 구구한 억측들이 나온다. 국회 재정경제위에서까지 설왕설래가 오갔을 정도다.먼저 국세청 정기인사를 앞두고 청와대가 너무 깊숙이 개입하자 이 전청장이 반발했고, 결국 청와대의 퇴진 압력으로 이어졌다는 소문이다.또 이 전청장이 부동산 투기 의혹과 형평에 어긋나게 내부 인사를 강행해 청와대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았다는 말도 떠돈다. 국가청렴위원회가 이 청장의 부적절한 처신과 관련한 ‘밀봉자료’를 청와대에 넘겨줬다는 풍문도 있다.

버티기 했다가 화 입을 수도

심지어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한 책임을 덮어썼다는 정가의 분석도 나온다. 국회 재경위에서 한나라당 엄호성 의원은 “(27일) 오후 3시40분까지 재경위에 참석해 아무 말 없다가 4시쯤 청와대에 들어갔다가 나와 용퇴하겠다고 하니 납득이 안 간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또 “언론보도에 의하면 이 청장이 어제 김근태 의장을 만나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추궁을 들었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이 전청장이 선거 책임을 지라는 말은 부동산 등과 관련한 과세정책의 실패로 민심이 이반됐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이와 함께 국세청 주변에는 지난 4월에 치러진 제43회 세무사 1차 시험문제 오류 사태 때문에 이 청장이 사퇴를 표명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노 대통령은 시험 다음날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정부의 시험관리 실패가 반복되고 있다”며 “만약 공무원 기강해이 등이 원인일 수 있다면 정부로서도 중대한 문제로 봐야 한다”고 질타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강도 높은 진상조사를 벌였고, 이 전청장으로선 이를 퇴진 압력으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허준영 전경찰청장도 퇴진압력

어느 경우든 이 전청장의 전격 사퇴에는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는 퇴임식을 마친 뒤 ‘부동산 문제, 청와대와 불화설 등 언론에 보도된 의혹들이 사실이냐’는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받았지만 “다 낭설”이라고 한마디만 하고 입을 굳게 닫았다. 참여정부 청와대가 주요 자리에 대해 퇴진 압력을 행사했다는 관측은 이전에도 수차례 있었다.지난해 말 농민시위 사망사건으로 사퇴했던 허준영 전경찰청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스스로 퇴진 의사를 밝힌 직후 청와대에 부부동반으로 초대받아 노무현 대통령 내외와 식사까지 했지만 나중에 ‘청와대의 퇴진 압력’ 사실을 털어놨다.올 초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청와대의 시나리오는 내가 오전에 사퇴하면 오후에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하는 것이었는데 내가 거부했다”며 “이 사건은 대통령이 사과하거나 내가 물러날 사안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허 전청장은 지난해 12월 27일 청와대측이 제시한 사퇴 시나리오를 거부하고 사과 기자회견만 했다. 허 전청장은 인터뷰에서 “하지만 기자회견 다음날 시내에서 만난 청와대 모 수석이 ‘민노당을 끌고 가야 한다. 새해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데 민노당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해 사퇴의사를 밝혔다”고 공개했다.

그는 “이 수석의 말이 대통령의 뜻이라고 생각해 받아들였다”고 덧붙였다.허 전청장은 7·26 국회의원 재·보선을 겨냥해 서울 성북을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 여권에 대한 ‘보복’을 별렀으나 공천심사에서 떨어지고 말았다.이밖에도 현정부 청와대의 인사 압력설은 많지만 가장 백미는 2004년 17대 총선 당시의 이른바 ‘올인’ 전략에 따라 장·차관급 고위 공직자들의 옷을 무더기로 벗겨 선거에 내세운 일이다.물론 과거 정부에서도 청와대가 입맛에 따라 인사를 단행하기 위해 특정인을 찍어 조용히 나가 줄 것을 요구하곤 했다. 청와대의 말귀를 못알아 듣고 버티기를 시도하다가 청와대발(發 ) 비리 사건이 터져 큰 상처를 입은 채 물러나는 경우도 많았다.

<참여정부 청와대의 고위 공직자 퇴진 압력 의혹 사례>
●최광 전 국회 예산정책처장(2004년 11월)=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와 수도 이전 비용 산정 등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청와대의 사퇴 압력설.
●박기정 전 한국언론재단 이사장(2004년 12월)= 이사회 표결을 통해 정부가 내정한 인사가 탈락하고 박기정 이사장이 재선출되자, 참여정부 들어 산하기관 연임 사례가 없다는 것 등을 내세우며 자진 사퇴 압력설.
●통합증권거래소 이사장(2004년 12월)= 통합증권거래소 이사장 선출 과정에서 인사추천위원회가 추천한 3명의 후보가 동시에 사퇴했는데, 청와대가 미는 인사가 추천에서 탈락하자 청와대가 동반 사퇴토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2005년 5월)= 청와대가 자크 로게 IOC 위원장과 긴밀 협상을 통해 김 전 위원장을 가석방하고 자진 사퇴시키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태권도 정식종목 유지, 2014년 동계올림픽 평창 유치, 후임 IOC 위원 한국인 승계를 약속했다는 의혹.
●허준영 전경찰청장(2005년 12월)
●이주성 전국세청장 등(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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