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는 직접 만나 회담을 하면서 느꼈던 인상을, 북한에 대해서는 간접적으로 느낀 생각을 피력했다고 한다.먼저 노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직접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북한이 고집스럽고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다”며 “(미사일 발사라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답답해 했다. 또 “미사일을 쏘는 바람에 우방들간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상황조정이 어려운 국면에 처해 있다”고 설명했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스타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대응 방식의 차이 등으로 마찰을 빚고 있는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 대해선 “고이즈미 총리가 독도는 일본 땅이라며 교과서에 싣게 하고, 신사 참배를 고집스럽게 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아울러 “일본이 고이즈미 총리 같은 행보를 계속하면 향후 동북아에 심상치않은 상태가 올 우려가 있다”고 경계심을 표출했다고 한다.노 대통령은 이어 부시 대통령과 관련해선 “부시 대통령이 갖고 있는 ‘선악’의 개념 때문에 상황조정이 어렵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그러나 부시 대통령 역시 노 대통령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관측이 참여정부 초기부터 제기돼 왔다. 지난 6일 북한 미사일 사태 대응 방안 모색을 위해 이뤄진 한·미 정상간의 통화 내용은 그런 측면에서 정치관측통들의 관심을 모았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노무현 대통령, 고이즈미 총리와 잇달아 ‘전화 정상회담’을 가졌다.부시 대통령은 고이즈미 총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북한을 제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하는 데 협력기로 합의하는 등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문제를 ‘대화를 통한 외교적 방식으로 해결하겠다’는 등의 원론적인 대화만 나눴다. 이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나오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노 대통령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불신’ 때문이란 관측이 많다. 즉, 노 대통령과는 말이 통하지 않아서 원론적인 언급만 하고, 수시로 자신의 개인 목장인 크로퍼드 목장으로 초대해 화기애애한 장면을 연출하는 고이즈미 총리와는 속깊은 대화를 나눴다는 것이다.
빡빡한 일정, 무리없이 소화
대통령의 정상외교는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긴급한 현안이 발생했을 때 두 나라 국가원수 차원의 문제 해결을 위해 전화를 통해서든, 직접 만남을 통해서든 정상회담을 하는 경우가 있다. 북한 미사일 사태에 따른 관련국 정상들의 연쇄 전화 회담이 대표적이다.다른 하나는 그야말로 의전적인 정상회담이다. 뚜렷한 현안없이 ‘외교’ 차원에서 두 나라 정상이 만나는 것이다. 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나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같은 다자간 정상회의는 실무적 성격과 의전적 성격이 합쳐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이툰부대 방문당시 일화 남겨
의전적인 정상회담이라고 해도 보통 한 나라 국가원수가 청와대를 찾으면 대통령의 하루 일정을 다 비워둬야 한다.가장 최근에 열린 지난 29일의 한-도미니카 정상회담 때 노 대통령의 하루 일정을 보면 다음과 같다.‘오전 10시~10시10분 페르난데스 도미니카공화국 대통령 공식 환영식, 10시15분~11시20분 한국·도미니카공화국 정상회담 및 협정 서명식 임석, 오후 6시30분~8시30분 국빈만찬.’노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도 이날 공식환영식과 국빈만찬에 동석하고, 이와는 별도로 페르난데스 대통령 부인을 접견해 환담을 나누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대통령 내외는 이런 일정을 대개 한 달에 한 번 정도, 많을 때는 2~3차례씩 소화한다.물론, 대통령이 순방외교에 나서면 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노 대통령의 경우 올들어서만도 아랍에미리트·아제르바이잔·몽골·알제리·나이지리아·이집트 등 6개국을 다녀왔다.
오는 9월에는 미국을 비롯해 몇 나라를 방문할 예정이다.노 대통령은 평소의 스타일대로 순방외교를 하면서도 ‘돌출행동’을 자주 하는 편이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성격이 그대로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지난 2004년 연말의 자이툰 부대 전격 방문이었다. “이 비행기는 서울로 바로 못 갑니다. 쿠웨이트로 갑니다.” 지난 2004년 12월 8일 새벽 4시35분(한국시간), 유럽순방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던 특별기 안에서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노 대통령의 첫 마디였다. 특별기가 프랑스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을 이륙한지 35분이 지난 때 자이툰 부대 방문 계획을 전격 발표한 것이다.다만, 노 대통령은 해외에 나가서도 참모들을 붙잡아 두지 않고 일과 시간 이후에는 외국의 정취를 맛 볼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는 것으로 전해진다. 비상 근무자 일부를 빼고는 참모들에게 몇시 이후에는 찾지 않는다고 미리 알려준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의 귀띔이다.
DJ 왕성한 활동은 ‘프레지던트 엔돌핀’때문
전임인 김대중 대통령은 연로한 탓에 참모들이 가급적 해외 일정을 느슨하게 잡으려고 애썼다. 또 외국의 정상들이 우리나라를 찾았을 때도 주치의가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취소를 권고한 일정이 많았다.하지만 DJ는 참모와 의료진의 만류를 뿌리치고 일정을 강행하곤 했다. 해외에 나가서도 공식 일정 외에 민주화운동 당시 도움을 받았던 외국의 정치인들을 별도로 접견하는 등 일을 찾아서 했다.당시 청와대 기자실에선 DJ의 왕성한 활동을 놓고 ‘프레지던트 엔돌핀’이 있기 때문이란 농담을 하곤 했다. ‘CEO 엔돌핀’이란 말이 있듯이 대통령도 일에 집중하다 보면 의욕이 생겨 피곤함을 잊게 될 것이란 말이었다. 특히 외국의 정상들과 만나 ‘세계평화’라는 큼직한 화두를 놓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피로를 느낄 새가 없을 지도 모른다.DJ는 재임 시절 ‘This Man’ 소동을 겪기도 했다. 미국 방문 중 부시 대통령과 회견을 할 때 한참 나이가 적은 부시 대통령이 청중들에게 김대중 대통령을 소개하면서 ‘This Man’(이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바람에 일부에서 상당히 모욕적인 일로 받아들였다. 그 때 청와대측은 ‘This Man’이란 말이 부시 대통령의 고향인 텍사스에선 친근한 사람을 호칭할 때 사용하는 용어라고 극구 설명했다.
YS 해프닝은 책 한권 분량
김영삼 대통령은 정상외교를 하면서도 평소의 ‘기질’을 거리낌없이 발휘했다. 외국 국가원수와 만난 자리에서도 ‘교과서’대로 하는 적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문민정부에서 의전비서관실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YS가 해외순방 중 일으켰던 크고 작은 해프닝을 책으로 엮으면 한 권은 족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의 군 출신 대통령들은 정상외교를 하면서도 정해진 형식 속에서만 움직였지 결코 일탈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 때까지는 차관을 얻기 위해, 혹은 북한과의 외교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정상외교를 벌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항상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차관을 좌지우지하는 선진국은 선진국대로, 유엔총회에서 표를 갖고 있는 후진국은 후진국대로 극진히 대우를 해줘야 했다. 1970년대 아프리카 모 국가의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당시 미모의 톱스타에게 시중을 들게 했다는 씁쓸한 일화는 유명하다.정권은 정권대로 외국 국가원수와의 정상외교를 정권홍보에 적극 활용했다. 전두환 대통령 때까지 ‘정상회담: 보다는 ’수뇌회담(首腦會談)’으로 불렸으며, 그럴 때마다 기념우표를 발행하는 등 홍보에 열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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