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계륵 대통령’ 노골적 비하에 충격·분노…
청와대 ‘계륵 대통령’ 노골적 비하에 충격·분노…
  • 유제성·언론인 
  • 입력 2006-08-03 09:00
  • 승인 2006.08.0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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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비서실의 한 참모는 최근 원래 있던 정치권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별정직 4급인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가더라도 현재 직급(3급 행정관) 보다 한 단계 내려가지만 지금이 떠날 때라고 생각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1년반 가량 밖에 남지 않았는데다, 정치권에서 서서히 차기 대권경쟁에 시동이 걸리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지금이 다음 자리를 위해 줄을 설 수 있는 막바지 기회가 된다. 그런 생각은 그만이 하는 것은 아니다. 적지않은 참모들이 1년 반 이후 할 일을 찾고 있다. 과거 정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 임기가 후반기에 접어들면 청와대를 떠나는 참모들이 속출했다.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 레임덕에 걸리면 일도 힘들어지고 앞날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지난주 청와대는 매우 어수선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31일부터 휴가에 들어감에 따라 많은 참모들도 휴가 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밝은 표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드러내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7·26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청와대 참모 출신 세 사람이 모두 참패를 당한 데 따른 허탈감이 역력했다. 여기다 주말로 접어든 28일에는 조선일보가 ‘계륵(鷄肋) 대통령’이란 정치분석 기사를 1면에 게재하고, 동아일보가 ‘약탈정부’라는 칼럼을 싣는 바람에 청와대 참모들은 한바탕 ‘언론과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이번에 벌어진 ‘조·동과의 전쟁’ 과정을 살펴보면 임기말 대통령 비서실의 고충을 읽을 수 있다.무엇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기사는 대통령의 힘이 빠진 임기 후반기가 아니면 나오기 어려운 내용이다. 일부 보수 언론사의 기자들 사이에서도 “너무 심하다”는 말이 나왔다. 그런 만큼 청와대 참모들은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 짐작할 수 있다.

비서실, 조선·동아 취재 협조 거부키로

조선일보는 이날자 1면과 2면에 걸쳐 ‘계륵(鷄肋) 대통령’이란 제목의 정치분석 기자를 게재했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노 대통령은 이제 여당에서조차 계륵 같은 존재가 된 것 같다. 지금 여당에 노 대통령은 함께 가기엔 너무 부담되고 그렇다고 쉽게 헤어지자고 하기도 어려운, 그런 존재가 됐다. 요즘 ‘남은 1년반을 어쩌나?’라고 묻는 정치인들이 부쩍 늘었다. 대통령이 여당에서도 계륵 같은 존재가 되어버리고, 대통령을 대신해서라도 중심을 잡아줘야 할 여당 의원들마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짓는 상황이니 1년반을 걱정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발칵 뒤집어진 청와대는 이날 아침 이병완 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일일상황점검회의에서 강력히 대응키로 했다. 그리고 내친 김에 동아일보의 이날자 칼럼 “세금내기 아까운 ‘약탈정부’”와 전날자 칼럼 “대통령만 모르는 ‘노무현 조크’”도 함께 문제삼았다.

이백만 홍보수석 원색적 성토

비서실은 두 신문의 취재협조를 일절 거부키로 했다. 아울러 이백만 홍보수석이 나서 두 신문을 ‘마약’에 비유하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이 수석은 이날 오후 이례적으로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머무는 춘추관 2층 공식 기자회견장에서 두 신문을 원색적으로 성토했다. 청와대의 언론 기사에 대한 반박은 대변인이 약식 브리핑룸에서 TV 카메라 없이 간담회 성격으로 진행되는 정례 브리핑에서 하는 것이 관례였다. 따라서 이 수석이 공식 기자회견장에 정식으로 자리잡은 것 자체가 청와대의 분노를 가늠케 했다.이 수석은 특히 조선일보의 ‘계륵 대통령’ 기사를 겨냥, “오늘 1면 기사에서 국가원수를 먹는 음식에 비유를 했고, 차마 옮기기조차 민망하다. 그 천박한 메타포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의 수위를 한껏 높였다.이 수석은 동아일보에 대해서도 “논설위원 칼럼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약탈 정부’로 명명했고, ‘도둑정치’라는 표현도 썼으며, 어제는 편집부국장 칼럼을 통해 출처불명의 유치한 농담을 전하면서 국가원수를 ‘저잣거리 안주’로 폄훼하는 일이 있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그는 또 “기사 곳곳에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섬뜩한 증오의 감정이 깊이 묻어 있고, 해설이나 칼럼의 형식만 띠고 있을 뿐 ‘침뱉기’”라고 규정하고 “두 신문의 최근 행태는 마약의 해악성과 심각성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의기소침한 비서실 분위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기사가 나온 시점에 청와대 비서실은 가뜩이나 의기소침해 있었다. 4곳에서 치러진 7·26 국회의원 재·보선에 한솥밥을 먹던 옛동료가 3명이나 나섰지만 모두 낙선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번 재·보선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한 청와대 참모 출신은 김만수 전대변인(경기 부천 소사), 조재희 전국정과제 비서관(서울 성북을), 김성진 전정무수석실 행정관(경남 마산갑) 등이다. 특히 김만수 전대변인은 청와대 춘추관장으로 있던 2004년 17대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청와대에 재입성했지만, 다시 이번 재·보선 출마를 위해 청와대에서 나갔다가 또 실패하는 아픔을 겪었다.임기 전반기에 해당하는 2004년의 17대 총선 때만 해도 청와대 출신은 13명이 나서 8명이나 당선됐다. 문희상 초대 비서실장은 3선 고지를 점령했고, ‘엽기수석’으로 불리던 유인태 정무수석은 재선의원이 됐다.또 이광재 전국정상황실장, 권선택 전인사비서관, 서갑원 전정무비서관, 김현미 전정무2비서관(비례대표), 백원우 행정관이 각각 금배지를 달았다. 특히 백원우 의원은 3급 행정관에서 바로 국회의원이 된 첫 케이스가 됐다.

당시 청와대 행정관들은 백 의원의 당선에 크게 고무됐다.반면, 이해성 전홍보수석과 박재우 비서관 등 영남권에서 도전장을 내민 청와대 참모 출신과 김만수 전 춘추관장 등은 고배를 마셨다. 김용석 전인사비서관과 박범계 전법무비서관은 아예 당내 경선이라는 예선 관문도 통과하지 못했다.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청와대 출신들의 성적이 괜찮은 편이었다. 그러다가 이번 재·보선에서 당한 참패는 보수언론의 대통령을 겨냥한 본격적인 폄훼와 함께 대통령 비서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참여정부 청와대 비서실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가 386 비서관들의 활약이다. 상관인 차관급 수석비서관을 능가할 때가 많다. “수석보다 막강한 비서관들이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이들 386 실세 비서관들은 최근 고위공무원단 출범으로 실시된 직무 분석 결과 사실상 서열이 매겨지는 과정에서도 모두 직무등급이 가장 높은 ‘가급’에 포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3인의 대통령 보좌한 참모

노무현 대통령의 대내외 메시지를 작성하는 윤태영 연설기획비서관과 이호철 국정상황실장, 천호선 의전비서관, 정태호 대변인, 문용욱 제1부속실장 등이 ‘가’급에 해당됐다. 이들 가운데 윤 비서관과 이 실장, 천 비서관은 매일 아침 관저에서 노 대통령과 만나 그날의 주요 일정과 국정운영 기본 방향을 점검하는 이른바 ‘아침 구수회의’ 멤머다.그러나 이들도 참여정부 임기가 후반으로 가면서 이전과 같은 돌파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국회에 들어 가 있는 ‘동지’들조차 점차 청와대에 등을 돌리는 상황에서 나날이 힘이 빠지고 있는 것이다. 천호선 의전비서관의 경우 조만간 청와대를 떠날 예정이다.핵심 측근 가운데는 노 대통령이 퇴임 후 거주할 예정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까지 따라가 ‘전직 대통령 비서관’으로 있을 각오를 하는 인물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갈 길을 찾아야 한다. 특히 40대 초·중반인 386 참모들은 젊은 나이에 이미 1급까지 마친 만큼 다른 길이 많지 않을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이런 현상은 대통령 비서실이 전문화되지 않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90% 이상 인물 교체가 이뤄지는 관행에 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최대 5년 임기 동안(물론 5년을 다 채우는 경우도 극히 드물지만) ‘한 몫’ 잡기 위해 무리수를 두다가 패가망신한 청와대 사람들도 적지 않다. 참고로, 역대 대통령 비서실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참모는 9년6개월 동안 청와대를 지킨 김충남 박사다. 그는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대통령을 곁에서 보좌했다.

유제성·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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