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3일부터 해외순방을 하고 있다. 그리스·루마니아·핀란드·미국 등 4개국을 방문한 뒤 15일 귀국한다. 무려 12박13일간의 장기 일정이다. 3일부터 5일까지 그리스, 5일부터 7일까지는 루마니아를 국빈방문한다. 또 7일부터 9일까지 핀란드를 국빈방문한 뒤 10일부터 11일까지 핀란드에서 열리는 제6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 참석할 예정이다. 귀로에는 미국을 실무방문해 조지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이번 순방까지 합치면 노 대통령은 2003년 2월 취임한 이후 모두 18차례나 해외순방을 했다. 대통령의 업무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해외순방을 통한 정상외교임을 알 수 있다. 대통령들이 해외에 머물 때는 주로 어떤 일을 할까. 또 대통령 일행이 한번 움직일 때 사용하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 대통령의 해외출장과 관련한 궁금증들을 풀어본다.
먼저 대통령의 해외출장 비용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얼마전 구체적인 해외출장 비용 명세서가 공개된 적이 있다.
외교통상부가 국회 예결위 소속 한나라당 김희정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3년 취임 이후 지난 5월까지 총 17차례 해외 순방을 통해 약 466억원의 경비를 사용했다. 해외순방 1회당 평균 27억4,292만원이고, 이를 하루 평균으로 환산하면 4억2.390만원이나 된다.
가장 비싼 돈을 쓴 해외순방은 2004년 11월 라오스에서 열린 ‘ASEAN(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 참석 후 영국·폴란드·프랑스·이라크를 방문했을 때로 47억8,781만원이 집행됐다.
반면 2004년 12월의 일본 방문 때는 5억366만원만 사용해 가장 저렴한 비용이 든 해외출장으로 기록됐다.
가난한 나라에 무상 원조
전임자인 김대중 전대통령의 경우 재임 5년 동안 모두 22차례의 해외순방에서 총 546억1,756만원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확한 기록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김대중 전대통령 정도의 규모일 것으로 추정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17차례 해외순방에서 사용한 466억원을 국무총리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대통령 일행의 해외출장비 규모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지난 2001년 이후 국무총리 네 사람(이한동·고건·이해찬·한명숙)은 지난 2001년 이후 16차례의 해외순방을 했다. 노 대통령의 취임 후 17차례와 비슷하지만 총 비용은 51억5,900만원이 들었다. 대통령 일행과 국무총리 일행의 해외순방 출장비 지출 규모가 무려 10배 가까운 차이가 나는 셈이다.
대통령 해외경비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전세항공기(특별기) 임대료, 호텔 등 숙식비용, 동포간담회 등의 행사비용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해외에 나가면 소요되는 돈은 비단 이런 경비뿐만이 아니다. 아프리카나 아시아 등 가난한 나라에 가면 방문국에 무상원조를 약속하기 마련인데, 지난 2004년 그 규모가 공개된 바 있다.
당시 한국국제협력단이 한나라당 정문헌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1992년 이후 우리나라 대통령이 해외순방 방문국에 무상원조를 해준 규모가 16개국에 6,300만달러인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환율 기준으로 786억원에 달한다.
국가별로는 베트남이 7건에 2,244만달러, 중국이 4건에 1,696만달러, 수단이 479만달러, 필리핀이 380만달러 등이다.
영부인은 따로 행사
특히 김영삼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 모두 3,354만달러를 지원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2,675만달러를 무상원조해줬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무상원조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외에도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할 때 공식 집계되지 않는 비용도 천문학적이다. 대통령 일행과 같이 가는 경제인들의 경비가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또 수행기자들이 회사별로 수백만원씩의 출장비를 지출한다.
이처럼 막대한 경비가 소요되는 해외순방에서 대통령은 주로 어떤 활동을 할까.
보통 대통령이 한 나라를 국빈방문하면 현지 공항에서 ‘공항도착행사’가 열린다. 이어 참전기념비나 무명용사비, 국립묘지 같은 현충 시설을 방문하고 대통령궁 등에서 열리는 공식환영식에 참석하게 된다.
정상회담은 보통 방문 첫날에 공식환영식이 끝난 뒤 열리며 이 때 각종 협정서명식도 갖는다. 이밖에 현지 경제인단체 연설, 동포간담회, 국빈만찬 등의 일정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이번 미국방문처럼 국빈방문이 아닌 실무방문이면 의전 행사는 대폭 축소된다.
대통령과 함께 해외순방에 나서는 부인의 경우 공식환영식 같은 의전행사에는 대통령과 함께 참석하지만 다른 일정은 따로 갖는다. 대개는 그 나라의 문화유적지나 박물관 시찰, 또는 어린이병원 방문, 교민학교 격려 같은 일정이 짜여진다.
공식집계 빠진 비용도 많아
대통령들에 따라서는 공식 일정 외에 비공식적으로 다른 일정을 갖기도 한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경우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해외의 정치인·학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DJ는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숙소로 찾아오는 현지 인사들과 만나 회포를 풀곤했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해외에 지인이 거의 없는 편이다. 대신 공식일정은 과거 대통령들의 해외순방 때 보다 많이 잡는다. 어떤 때는 공항도착행사에서부터 시작해 저녁 만찬까지 10개 이상의 공식일정을 소화하기도 한다.
해외순방 때도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는 청와대 제1부속실장을 지낸 윤태영 대변인은 순방기간 곁에서 지켜본 노 대통령의 부지런함을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적절한 수면을 위해서는 6시가 좋겠다는 비서들의 건의를 대통령은 한사코 물리치면서 5시 모닝콜을 고집했다. 전날의 일정이 아무리 고단하고 힘들었어도 예외는 결코 없었다. 대통령은 그렇게 누군가 아침을 알리러 오기 전에 먼저 아침을 맞으면서 또 하나의 하루를 준비하곤 했다.”
공식일정이 끝난 뒤 대통령과 동행한 기자들이나 기업인들, 그리고 일부 참모들은 삼삼오오 밖으로 나가 이국의 정취를 맛보게 된다. 그렇지만 대통령은 밤 시간을 거의 호텔방에 머물며 다음날 일정을 챙기곤 한다. 노 대통령은 이를 두고 사석에서 “결국 대통령은 연금생활이다. 국내에서나 밖에서나 마찬가지다”라고 농담삼아 말한 적이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해외에 나가면 공식 일정이 끝난 뒤에는 참모들에게도 가급적 자유시간을 보장한다고 소개했다. 비상근무를 해야 하는 최소한의 참모들 외에는 긴장을 풀고 나가서 맥주라도 한 잔 할 수 있도록 “몇시 이후에는 찾지 않겠다”고 넌지시 알려준다고 한다.
대통령이 해외로 나갈 때는 보통 100명 이상의 공식·비공식 수행원들과 확인되지 않는 수의 경호원들, 그리고 60~80명 가량의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함께 출국한다. 이들과 별도로 경제단체 대표와 기업인들이 현지투자, 경제협력 등의 명분으로 동행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장거리 비행을 할 수 있는 대통령 전용기가 없다.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할 때 사용하는 항공기에 대해선 이 시리즈를 통해 자세히 소개한 바 있다.
간략히 설명하면 국내나 일본 등 가까운 나라를 방문할 때는 전용기인 ‘공군1호기’를 이용하지만 이번 같은 해외순방 때는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의 민간기를 통째로 전세내 특별기로 사용한다.
우리나라 보다 국력이 낮은 나라들도 대통령 전용기는 거의 다 있다. 이번 ASEM회의 같은 다자간 정상회의에 가보면 개최지 공항에 각국의 대통령 전용기들이 쭉 늘어서 있는데 유독 우리나라 비행기만 민간항공기 마크가 찍혀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대통령 전용기 구입 추진
역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전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했지만 “경제가 어려운데 무슨 대통령 전용기 타령이냐”는 비판여론에 부딪쳐 현실화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정부는 대통령 전용 항공기 구입을 구체적으로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차피 지금 구입해도 임기가 1년여 밖에 남지않은 노무현 대통령이 사용할 것이 아닌 만큼 비판여론을 피해 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통령 전용기는 내년쯤 구입해 다음 대통령부터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구입을 추진 중인 전용기의 가격은 1억달러 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보잉 747기 2대를 ‘에어포스 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1990년에 보잉사가 초현대식 보잉 747-200 두 대를 대통령 전용기로 제공했다. 탑승 인원은 93명(승객 70명, 승무원 23명)이며, 회의실·식당·대통령 부부의 숙소 및 주요 수행원을 위한 사무실 등 ‘날아다니는 집무실’이라고 불릴 만큼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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