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구명시식(救命施食)
병(病)의 기원-2“차차 나아질 거야. 아직 명이 많이 남았으니 너무 걱정 말고.”
차법사는 여인에게 이렇게 말하고 부적 하나를 써주고 돌려보냈었다. 여인은 역시 반신반의했다. 돌아가신 부모님께 절하고, 살풀이굿을 올리고, 부적종이 하나로 첨단의술이 선고한 처방을 뒤집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집에 돌아가자 실로 오랜만에 수면제 없이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다. 일어나니 생기가 돌고 입맛이 돌았다. 한 달이 지나 발길을 끊었던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니 암수치가 눈에 띄게 낮아져 있었다. 이제는 거의 정상수치가 되었던 것이다. 의료진들은 기적이라며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법사님, 다들 기적이라고 합니다. 모두 법사님 가피력 덕분입니다.”
“뭘요. 크게 보면 기적은 없지요. 모두 필연이지.”
여인이 하나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차법사는 이 여인 구명시식 전후로 매우 아팠다. 몇 번이나 쓰러져 링거를 맞아야 했다. 여인은 차법사가 대신 앓고 강력한 기로써 이를 이겨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그래, 오늘은 어떤 소원인가?”
“법사님께 감사도 드리구요. 또…….”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시집도 가고 싶어요. 죽을병도 낫게 하셨으니 짝을 만나게 하는 건 훨씬 쉽지 않겠어요?”
차법사는 허허 웃었다. 몇 개월만이라도 더 살게 해달랄 때는 언제고 이제는 결혼까지 바라다니…….
“본래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지. 하지만 1년 전을 생각해봐. 그때 초심을 잊지 마시고. 때가 되면 다 짝이 찾아올 테니. 이따가 운맞이 굿할 때 나와.”
“땡그랑, 땡그랑-”
차법사는 영단 앞에서 절을 마친 30세 후반의 여의사에게 물었다.
“적어내신 초혼자 영가들과는 무슨 관계이신가요?”
여의사가 신청한 사망자 명단의 수가 120여명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 숫자는 전쟁 때 집단학살이나 비행기사고 같은 대형참사,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천재지변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숫자였다.
사망자들은 여의사와 혈족관계가 아닌 듯 성씨가 모두 달랐다. 더 특이한 점은 이름 앞에 붙은 ‘408’, ‘409’, ‘410’같은 숫자였다. 선원에는 초혼된 영가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숫자는 뭔가요?”
“명단에 있는 분들은 제 환자분들이었습니다. 숫자는 환자들이 입원했던 호실 번호이구요.”
말기암 환자를 비롯해 불치병 환자들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병동의 환자들이었다. 말이 회복실이지 호스피스 병실이나 다름없었다. 그 탓으로 이번에 구명시식 전후로 차법사는 더욱 몸 상태가 안 좋았던 것이다.
또 하나 이상한 점이 있었다. 등장한 환자 영가들은 극심한 고통뿐 아니라 원망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여의사는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었다.
병동을 순회하고 있노라면 첨단 의술을 비웃듯 속절없이 보내야 하는 생명들에게 기껏해야 진통제밖에 주사하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녀는 의사로서 자신의 무능력에 무력해지곤 했다. 그들은 살려달라고 아우성쳤다.
“의사 선생님, 살려주세요. 병원은 사람 살리는 곳이 아닌가요? 저 같은 사람을 살리는 데가 병원이잖아요?”
특히 처자식을 남기고 떠나가는 젊은 환자의 절규를 듣고 있노라면 여의사의 마음도 산산이 찢어졌다. 그녀는 많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숨을 거두는 장면을 목격해야 했다.
자기 가족처럼 마음을 다해 돌보았건만 허무하게 영안실로 향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의사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꼈다. 그래서 그동안 숨을 거둔 백이십 명의 명단을 들고 구명시식을 올린 것이었다.
“이번 구명시식의 목적은 무언가요?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것인가요?”
“그것도 있지만 다른 이유가 있어요. 저는 의사예요. 생명을 구하는 것이 제 임무입니다. 의술이 발달했다지만 병동에는 지금 죽음과 싸우는 환자들이 가득합니다. 이들을 살리고 싶어요.”
여의사가 나를 찾아온 이유는 분명했다. 이미 간 영가들의 천도뿐 아니라, 지금 병상에서 현대의술이 구하지 못하는 생명을 구명시식을 통해 치료 또는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의술을 넘는 영적 치료를 기대하고 있었다.
“구명시식은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이 아닙니다. 그럴 수도 없구요. 설사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해도 해서는 안 되구요.”
“법사님, 환자를 고치지 못하면 구명시식이 무슨 소용인가요?”
“그건 의사로서 자기만의 욕심일 수 있습니다. 돌아가신 분들은 달리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욕심이라고요? 천만에요. 임종이 가까운 환자들은 살려달라고 아우성쳤고, 저는 의사로서 외면할 수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야지요.”
여의사는 물러설 기미가 아니었다. 차법사는 난감했다. 오늘 초혼된 환자영가들은 스스로 구명시식을 원한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여의사에 의해 초혼된 영가들이었기에 의식진행이 순탄하지 않았다.
‘나는 이런 것을 믿지 않소.’ 하며 멀찍이 물러서는 영가에서부터 ‘귀신이 어디 있다고 그러는 거야.’ 하면서 어깃장을 놓는 영가까지 가지각색이었다. 특히나 종교가 저마다 달라서 선원의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차법사는 여의사를 교문 옆으로 불렀다. 그리곤 영가들의 외침을 글로 써 직접 전해주기로 했다.
‘당신이 분명 살 수 있다고 했잖아. 그런데 내가 왜 죽어! 당신이 의사야?’
그 여의사를 향한 원망의 목소리였다. 죽음 직전까지 자기 가족처럼 따뜻하게 돌보아주던 망자는 자신의 죽음을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의사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여의사는 사색이 되었다. 자기에게 살려달라고 매달릴 때는 언제고 원망이라니. 이 구명시식 자리도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올리는 것이었기에 상상도 못한 원망에 그녀는 충격에 휩싸였다. 여의사가 하소연했다.
“법사님, 살 수 있다고 신념을 심어 준 게 잘못인가요? 희망이 있어야 치료도 가능한 건데요.”
차법사는 조용히 타일렀다.
“구명시식을 올리다 보면 의사를 원망하는 환자영가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의사는 당연히 환자에게 나을 수 있다는 용기를 불어넣지요. 긍정적인 생각이 회복에 무엇보다 큰 효과가 있다는 건 잘 압니다. 그러나 인간은 천년만년 살 수 없어요. 언젠가는 죽지요. 그러다가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채 임종을 하면 의사 탓을 하지요. 제가 보는 견지에서는 염라대왕이 오라고 하면 백약이 전혀 소용이 없습니다.”
“그럼 의사가 죽어가는 환자에게 할 수 있는 게 뭐지요?”
“여기 오신 환자영가들은 대부분 죽음에 대해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이승을 떠났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병원에선 육신의 병을 고치고, 구명시식에선 영적인 병을 고치는 게 아닌가요? 죽어서보다 환자들이 죽기 전에 구명시식으로 생명을 연장해야 쓸모가 있는 게 아닌가요?”
여의사의 당돌한 질문은 차법사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차법사는 침착하게 그러나 단호히 이야기했다.
“영적인 측면에선 죽음은 병이 아닙니다.”
“…….”
“육신이 죽는 것이지 영혼이 죽은 건 아닙니다.”
차법사는 아무 말 못하는 여의사에게 예전에 겪었던 구명시식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다.
선원에 미모의 여의사가 한 분 찾아왔다. 그녀는 장안에서 소문난 마취과 의사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머리 모양이 이상했다. 그녀의 머리는 가발이었다.
“저는 암에 걸려 있습니다. 그것도 가장 나쁜 암에요.”
항암제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 있었다. 그녀의 암은 지독한 악성이었다. 진통제나 모르핀, 심지어는 척수신경을 절단해도 고통을 줄일 수 없는 지독히 고통스런 암이었다. 남의 고통을 덜어주는 마취과 의사가 정작 본인은 의학적으로 손 쓸 수 없는 고통의 수렁에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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