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취재] 등산로 정비 작업 노동자의 하루
[동행취재] 등산로 정비 작업 노동자의 하루
  • 김혜진 기자
  • 입력 2020-11-06 17:41
  • 승인 2020.11.06 19:33
  • 호수 1384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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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연령 40~50대…안전한 등산로 뒤 숨은 땀방울
20kg가량의 장비를 든 등산로 정비 노동자들이 불암산을 오르고 있다. [사진=김혜진 기자]
20kg가량의 장비를 든 등산로 정비 작업 노동자들이 이른 아침부터 불암산을 올랐다. [사진=김혜진 기자]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천하대사 필작어세(天下大事 必作於細). 천하의 큰 일은 반드시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크고 중요하거나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에는 집중하지만 작고 사소한 일은 근본적인 일이라고 해도 경시하기 십상이다. 우리 사회에는 작고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는 고마운 사람들의 일터를 동행하며 그들 삶의 현장을 들여다보려 한다. 일요서울은 불암산의 마지막 단풍이 떨어지기 전인 지난 4일 ‘등산로 정비 작업 노동자’의 하루를 따라가 봤다.

 

- 산 정상 오르락내리락…일당 30만 원에도 꺼려
- 등산객 “고맙기도 미안하기도…덕분에 편하게 다닌다”

 

아침 6시 50분. 안전 모자를 쓰고 형광색 안전조끼를 갖춰 입은 등산로 정비작업 노동자 8명이 불암산 등산로 초입에 삼삼오오 모였다. 현장관리자는 그들을 일렬로 세운 다음 열 체크를 하고 손 소독제를 나눠줬다. 이후 동그랗게 모여 손목과 발목을 돌려가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가벼운 운동이 끝나자 현장관리자는 ‘서로 소통하자’ ‘힘든 작업은 도와주자’ ‘등산객과 접촉 없이 작업하자’ 등 다양한 주문을 했다. 

서울시 등산로 정비 사업의 경우 서울시설공단의 감독과 해당 구청의 시행, 공개입찰로 정비업체를 선정해 삼위일체로 움직인다. 보통 현장에는 정비 업체 소속 직원 몇 명과 인력시장에서 파견한 일용직 인력이 함께 모여 작업한다. 매일 업무가 다르기 때문에 매번 일하는 인력의 수도 유동적이다. 

험난한 산길서 20kg 장비 드는 건 ‘기본’

등산로 정비를 위해 산에 오르기 전 이들은 쇠로 된 튼튼한 지게에 장비를 차곡차곡 실었다. 20kg짜리 전기발전기와 공구가방, 각종 장비가 담긴 통, 기름통, 전선 그리고 초코과자와 믹스커피 등이 담긴 간식봉투와 물통 4병까지 꼼꼼히 챙겨 산에 오를 준비를 했다. 이날은 두 팀으로 나눠 비교적 가벼운 장비팀이 먼저 올라가 설비를 진행하기로 했다. 중량이 큰 장비를 드는 전기발전기 팀은 계속 손을 바꿔 들어가며 천천히 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기발전기는 등산로 정비 작업 시 필수품이다. 용접을 하고 쇠를 갈고 구멍을 뚫고 커피물까지 끓이기 위해선 반드시 전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불암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산길 곳곳은 크고 작은 돌로 이뤄져 있어 맨몸으로도 오르기 힘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쉬고 있는 등산객들을 뒤로하고 등산로 정비 노동자들은 등 뒤에 20kg 이상의 지게를 짊어진 채 거칠게 경사진 산길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이들은 ‘힘들지 않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처음 한두 번 올라올 땐 너무 힘들었지만 계속 오르니까 근육이 단련돼 이제 힘든지도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등산로 정비사업 노동자들의 평균 연령은 대부분 40~50대다. 자재와 무거운 장비를 들고 가파른 동선을 오가는 업무 위주이다 보니 젊은 사람들은 꺼린다는 것이다. 현장관리자는 “일당 30만 원을 줘도 젊은 사람은 안 온다”면서 “오히려 오래 일한 사람들이 연륜 있고 단련돼서 잘한다”고 했다. 

불암산 등산로 정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혜진 기자]
불암산 등산로 정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혜진 기자]

전기발전기로 끓인 커피 한 잔이 피로해소제

1시간이 채 안 돼 작업 장소인 등산로 정상 부근에 도착했다. 이날의 주요 업무는 썩은 나무난간을 교체하고 보수하는 작업이다. 현장관리자는 “난간을 쇠로 하면 평생 교체할 일이 없지만 한겨울에는 등산객들의 손이 시릴까 봐 일부러 튼튼하고 부드러운 나무로 난간을 만든 것”이라고 했다. 

먼저 도착한 팀은 보수·정비할 장소에 짐을 풀어놓고 곧바로 발전기를 가동시키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 10여 분의 커피타임을 즐기며 휴식을 갖기 위해서다. 산 정상에서 발전기로 끓인 물로 탄 믹스커피가 피로를 싹 가셔 준다고 했다. 

이들은 잠깐의 휴식 후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무 난간 정비 작업을 시작했다. 15kg 정도의 긴 통나무를 어깨에 메고 오가거나 낭떠러지 밑에서 가느다란 안전줄 하나에 몸을 맡기고 작업하기도 했다. 선발대 팀이 일을 하는 동안 후발대 팀도 어느새 도착해 산 정상 부근에 있던 100kg짜리 용접용 발전기를 옮겼다. 건장한 성인 남성 4명이 들어도 몇 초마다 쉬어 가야할 정도다. 비탈진 경사와 돌들이 난무하는 이곳에선 특히 그렇다. 이들을 현장에서는 소위 ‘곰방’이라고 부른다. 발전기나 온갖 자재 등을 나르는 운반공의 일본어다. 산에서 장비를 나르는 일은 매우 힘들기 때문에 보통 임금을 18~20만 원부터 받게 되는데 이들은 최소 1만 원이라도 더 챙겨 준다고 했다. 

12시쯤 되자 지게에 도시락과 컵라면을 한가득 실은 사람이 정상 부근에 올라왔다. 최근 한 커뮤니티에서 ‘배달비 건당 5만 원 받는 배달부’라는 사진이 화제가 됐는데 등산로 정비하는 사람들의 식사를 산 정상까지 배달해 주는 아르바이트로 소개됐었다. 다만 사진의 설명과 달리 도시락 지게를 메고 올라온 사람은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함께 일하는 정비 업체 직원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배고플까 봐 서둘러서 왔다고 강조했다. 

설비 작업 근처 정자에서 도시락 뚜껑이 하나둘 열리면서 일상적인 대화도 오고가기 시작했다. 어떤 고충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여름에는 모기가 너무 많고 비가 오면 도랑이 많아서 힘들다. 최근에는 바람이 많이 불어 힘들었다”면서 “그래도 가장 힘든 건 산을 타는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이는 “등산로 보수 작업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티가 안 난다”면서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한다”고 말했다. 등산이 취미가 되기 어렵겠다는 질문에는 “이 일을 하는 사람 중에 등산이 취미일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면서 “일하느라 땅만 보고 다녀서 올해 단풍이 핀 것도 제대로 못 봤다”고 말했다.

(좌) 산 정상에서 먹는 점심 도시락 (우) 발전기에서 끓인 물로 타먹는 커피 [사진=김혜진 기자]
(좌) 불암산 정상에서 먹는 점심 도시락 (우) 발전기에서 끓인 물로 타먹는 커피. [사진=김혜진 기자]

등산객-정비 노동자 ‘수고하십니다’ 인사 나누기도

점심시간이 지나고 다시 두 팀으로 나눠져 일이 진행됐다. 선발대 팀은 기존의 난간 등 설비 작업을 진행하고 후발대 팀은 산 정상에 있던 100kg가량의 발전기를 들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 설비 작업이 진행되는 내내 산 정상에서는 발전기가 큰 소리로 돌아가고 있고 어쩔 수 없이 길을 막고 있을 때도 있었지만 등산객들과 정비 노동자들은 서로 불평 한마디 없었다. 오히려 서로 ‘수고하십니다’라며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등산객 A씨는 “산에 자주 다니면서 (등산로 정비를) 누군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은 했다”면서 “높은 곳까지 올라와서 고생하시는 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보수를 받겠지만 쉽지 않은 일일 텐데 덕분에 편하게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등산객 B씨도 “길을 막고 작업을 하더라도 불편한 점은 없다”면서 “안전하게 정비해 주는데 등산객들이 피해 가면 된다”고 말했다. 

작업을 마치고 내려가는 정비 노동자들의 발걸음은 산을 오를 때보다 훨씬 가벼워 보였지만 나무 계단과 난간, 벤치 등 불암산 곳곳의 위치한 다양한 설비 시설들을 주의 깊게 살피는 그들의 눈빛은 오히려 산을 오를 때보다 더 날카로워 보였다. 수리해야 하는 곳을 미처 놓치고 지나쳤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 아니었을까.

김혜진 기자 trust@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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