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장편소설 제 43 회
김영수 장편소설 제 43 회
  •  기자
  • 입력 2011-07-05 15:01
  • 승인 2011.07.05 15:01
  • 호수 896
  • 4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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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일수사견(一水四見)

한 가지 물에도 네 개의 눈이 있다(一水四見)-2

“그럼요. 일종의 공식이지요. 저는 이를 ‘교주 만들기’라 부릅니다. 성인과 교주는 분명히 다릅니다. 먼저 성인의 신통력과 이적을 모아 후세학자들이 구세주로 각색합니다. 신화를 모아 각색해서 허구의 이상적인 인물을 만들기도 하지요. 그리고 종말론 또는 원죄론을 덧씌우고 이상향인 천국을 제시하는 내용의 경전을 만듭니다. 하지만 마지막 하나가 남았습니다. 뭘까요?”

조기자가 고개를 갸우뚱 했다.

“더 필요한 게 있나?”
“천국으로 인도할 메시아가 필요하죠.”
“아, 메시아.”
“메시아가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 문제는 정해진 메시아 이외 다른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구제할 수 없다고 못 박는데 있지요. 자신의 종단이 인정한 메시아만 인정하니 다른 종교나 무명의 성인들을 모두 사이비 취급한다는 데 심각성이 있는 겁니다. 자기 아니면 안되는 교주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매뉴얼을 만드는 겁니다.”

조기자가 혀를 찼다.

“정말이지, 사이비 종교의 매뉴얼이 있긴 있구먼. 예전에 백백교도 자신이 말세를 구할 선택 받은 자라고 시작했지라. 밀레니엄 때도 세계 종말론이 퍼져 반짝 사이비 종교들이 호황이었으니까.”

차법사가 슬며시 끼어들었다.

“인간은 알고 보면 참 나약한 존재입니다. 누구든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하거든요. 살다가 죄 없는 사람 있겠어요? 그런 공포와 죄책감 심리를 악용해서 사이비 종교가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사후를 오가며 경험한 것도 아니구요. 자신이 영혼의 존재란 사실만 알면 자기 중심을 잡고 그런 것에 휘둘리지 않을 텐에…….”

지천태는 자신의 종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봇물 터지듯 쏟아놓기 시작했다.

“경전이란 것이 성인 죽음 이후에 후대에 그러하게 집대성되고 각색된 거지요. 종교가 다 그런 거지요, 뭐. 제가 알기론 성인들은 당대종교와 정치의 편견에 맞서다 사회 주류 권위 세력에 의해 희생되어요. 획일적인 규범에 항거한 혁명가들의 면면이 강합니다. 마호메트도 중동의 악습을 일소하려 평생을 바쳤고, 석가는 인도 다신교 힌두교에, 예수는 유대교와 로마제국에 항거했지요. 그 분들은 인간을 속박하는 모든 종교와 규범에 저항하는 최고의 자유주의자들이었어요. 증산만 해도 그렇습니다. 사후 몇 십 년이 지나서야 경전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그 경이 과연 증산의 행적과 말을 제대로 담았는지 알 수는 없지요. 쓴 사람 수준이 아닐까요?”

차법사가 나섰다.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한데…….”

좌중은 차법사의 말에 움찔했다. 부정도 긍정도 아닌 모호한 반응이 아닌가. 차법사는 주변의 찜찜한 시선을 의식한 듯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종말론이 불황인때는 없었어요. 격암유록에서는 ‘이웃나라(일본)에서 둑이 터져 파도가 밀려들어 수도를 옮기고 나라를 옮긴다’, 에드가 케이시는 ‘일본의 대부분은 반드시 바다 속으로 침몰 한다’, 남사고나 노스트라다무스는 일찌감치 인류 멸망을 예언했어요.”
“그란디요?”
“정말 최후의 심판이 다가온 것일까요?”
“그 말인 즉, 혹세무민이란 뜻이요, 형님?”

조기자의 성급한 재촉이 즐기는 듯 차법사는 싱긋이 웃어보였다.

“조기자, 내가 손바닥으로 조기자 눈을 가리면 어찌 되겠어?”
“그야, 안보이지라.”
“그래 그거야. 눈앞의 가랑잎 때문에 세상을 보지 못하는 게 인간이야. 장례식장이나 병원 응급실에 가보라구. 오늘 벗어놓은 신발을 내일 신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게 인간이지. 자신의 종말이 세상의 종말이야. 세상보다는 먼저 자신부터 관심을 두어야하지 않을까.”

좌중은 조용했다. 듣는 사람들은 머리가 복잡했다. 차법사의 법문아닌 법문이 이어졌다.

“생물은 언젠가 죽게 되어있죠. 지구 또한 때가 되면 멸하게 되어있지요. 지구는 멀쩡해도 인류가 전멸할 수도 있구요. 생멸은 너무도 자명한 자연의 순리예요. 그런데 나 자신의 종말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자가 과연 세상의 종말에 무슨 할 일이 있겠습니까. 자기의 종말이 세상의 종말 아니겠어요?”

조기자는 속이 탄 듯 음료수 마시듯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차법사는 그런 조기자가 재미있다는 듯 장단을 맞추었다.

“예언이란 책을 많이 읽고 사색을 많이 해서 오는 게 아닙니다. 책을 본다고 어떻게 시간을 앞질러 미래를 알겠어요?”
“형님, 책을 보면 미래를 예언한 정보를 볼 수 있잖수?”
“바로 그게 문제야. 착각이지. 자기가 미래를 보고 와서 아는 것이 아니라 남이 생각한 것을 빌려 정리해서 예측한 것이잖아.”
“그야 그렇지만…….”
“사색은 지식을 쌓는 것인 반면, 명상은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사색은 시간이 유한함을 전제로 하지만, 명상은 시간이 무한함을 전제로 합니다. 그래서 사색은 시간을 거스르거나 앞지를 수 없지만, 명상은 과거나 미래를 오갈 수 있어요.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 오는 것이에요. 증산선생께서도 예언을 했지만, 이는 그분이 하신 천지공사의 극히 일부분이지요. 중요한 것은 단지 미래를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예언을 초월한 일을 했다는 겁니다. 예언을 초월했다는 말은 다가올 미래를 다시 설계한다는 거지요.”

증산이란 말에 용화귀가 반사적으로 쫑긋 솟았다. 차법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학자가 예언의 정보를 얻었다는 말은 예언자의 생각을 빌려 인용한다는 뜻입니다. 사색은 어디까지나 남의 생각을 빌려온 것이니까요. 상념(想念)의 법칙이란 게 있어요. 자고로 마음이 만사의 근본이라는 뜻입니다. 한 생각이 있어 세상이 만들어집니다. 얼마 전부터 재난 영화, 지구 멸망 영화들이 횡횡하고 있어요. 애들이 하는 컴퓨터 게임도 죽이고 파괴하는 콘셉트 일색이에요.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미래를 그렇게 설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좌중은 조용했다. 일행은 더욱 미궁에 빠졌다. 차법사는 허공을 보며 이야기했다.
“과학이 발전하고 정보가 쌓인다고 덩달아 마음도 발전하지는 않지요. 시간을 주도하고 인생의 주인공이 되려면 명상만한 게 없어요. 무한시간 속에서 자신을 관조해야지요. 자신의 종말에 대해서. 자기 미래는 자기 손으로 만드는 것이니까요. 하루가 한 생입니다. 명상은 명상만이 알아보지요.”

조기자는 머리가 복잡했다. 그렇다면 지금 천문 해석은 전혀 부질없다는 뜻인가. 용화도 지천태도 차법사의 말에 나름대로 해석을 가하고 있었다. 차법사는 좌중의 무거운 표정이 맘에 들지 않았다. 생각을 버리라고 했는데 오히려 생각의 가지가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법사는 흩어진 말의 조각들을 수습했다.

“너무 심각하게들 고민하지 마세요. 증산선생 정도의 입장이라면 적어도 종말론은 그런 차원이 아닐까 생각해본 거예요. 보이는 세계 너머의 수, 다시 말해 그 수를 점지하는 무언가가 있겠지요. 보이는 세계, 그러니까 육신의 종말을 궁극적인 종점으로 삼지는 않았을 거란 말이죠. 그러나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니, 저도 일수사견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쪼르르 차 따르는 소리가 심산계곡에 떨어지는 폭포수 소리만큼 크게 울렸다. 조기자가 물었다.

“형님, 죽으면 어떻게 되요?”

뜬금없는 질문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아이같이 천진하게 휙 던지는 질문이 무서운 것이었다. 차법사도 아이처럼 웃으며 답했다.

“이제야 질문다운 질문을 하는구먼. 죽으면… 마을 다음에는 한 마을이 또 있지. 이 마을에서 잘 사는 사람은 저 마을에서도 잘 살아.”

좌중은 깔깔대며 웃었다. 왜 웃음이 터졌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웃으니 속이 후련했다.

“조기자, 부처님의 마지막 법문이 뭔지 알아?”
“자비, 뭐 그런 거 아니것소.”
“49년 동안 설한 바가 없다는 거야. 모르는 자는 몰라서 말이 많고, 아는 자는 알아서 말을 못하지.”
“…….”

그럼 지금까지의 말을 모두 허사란 말일까. 이상하게 누구도 토를 다는 사람이 없었다. 차는 식어가고 있었다. 다시 뜨거운 물로 우린 차를 받은 차법사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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