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계파 핵분열 이상 징후

폭염이 물러간 자리를 가을바람과 고추잠자리가 채우기 시작하면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가을 행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박 전 대표는 지난 25일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에서 친박과 반박의 경계를 허무는 ‘광폭 정치’의 시작을 알렸다. ‘여름의 침묵’을 끝내고 국정 감사와 당의 공식 모임에 적극 참여할 뜻을 밝힌 것이다. 한나라당의 계파 분열이 이상 징후를 보이는 가운데 시작된 박 전 대표의 ‘가을 정치’는 경우에 따라 ‘4·9총선’과 ‘7·3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이어 또 다시 ‘3개월 주기의 박근혜 발 지각 변동’을 정치판에 예고하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지난 25일 2008 대구 국제육상경기대회 개막식 참석에 앞서 대구지역 공무원 20여명과 간담회를 가졌다. 박 전 대표 측의 요청으로 열린 이날 간담회에서 박 전 대표는 "여러분의 의견을 국정 감사나 당정 협의회, 국회 상임위원회 등을 통해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약속했다.
스킨십 행보 강화 ‘광폭 정치’로 물밑 세몰이
박 전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앞으로 당의 공식 모임과 국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사표현이다. 박 전 대표는 그 동안 당의 공식 행사에 ‘침묵 모드’로 일관했다. 전날 열린 한나라당 최고·중진 연석회의에도 불참했다. 무려 6주째 결석이었다.
당 안팎에서는 이 같은 장기 결석이 ‘우연이 아니라 고의적’이라며 그동안 갖가지 설이 난무했었다. 친박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MB)의 지지율이 낮은 상태에서 박 전 대표가 나서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는 부담감은 있지만, 각종 현안에 대한 침묵의 정치가 길어지면 불확실감이 커지고 능력에 대한 의심이 일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표는 각종 현안에 대한 ‘공식적 침묵’과는 달리 각계와의 ‘스킨십 행보’를 강화하며 정치적 보폭을 크게 넓혀왔다.
그는 지난 23일 한나라당 여성 의원들과 여의도 근처 한 식당에서 점심 모임을 가졌다. 이보다 앞서 당내 일부 친이계 의원들과 자리를 함께 했고, 지난해 경선 때 MB를 지원했던 '뉴라이트'계열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도 만났다.
한 국회출입기자들은 “최근 박 전 대표 측이 언론 접촉을 줄이는 바람에 자세한 동향은 알 수 없지만 진보 시민단체 관계자도 만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촛불집회 관련자와 같은 급진 세력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오는 29일엔 당내 친박계 의원들의 모임인 ‘여의도 포럼 (김무성, 유기준 의원 중심) 행사’에 참석한다. 친박계 관계자는 “원래 예정된 일정이지만, 최근 박 전 대표와 김무성 의원사이에 이상기류설이 도는 것을 의식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는 김 의원이 친박 모임을 확대하면서 독자적 정치 세력화를 모색했고, 이것이 박 전 대표 측에 포착되면서 양측 사이에 냉기류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실제 초재선 의원 중심의 친박계 소장파들은 전통적 지지층인 TK지역 외에 수도권과 PK지역, 그리고 호남지역 등으로 세를 불리면서 친박·친이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7·3전대를 거치면서 친박·친이의 계파적 의미가 퇴색되면서 예비 대권주자들을 중심으로 뭉치고 있다”면서 “최근 그 움직임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수도권 소장파의 모임인 ‘민본21’의 경우, MB의 측근인 정태근, 권택기 의원 등과 함께 친박계 소장파의 핵심 김선동 의원 등이 참여하면서 박 전 대표 측의 외연확대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민본 21’을 이끌고 있는 주광덕 의원(경기 구리)측은 “조찬 모임 수준에 불과”하다며 “전국 단위 조직 결성은 사실무근으로 소속 의원들이 지역구를 관리하는 정도”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7·3전대 이후 박근혜 전 대표가 주요 정치 현안에 대해선 침묵하면서도 각계 사람들과 꾸준하게 접촉해온 것은 사실”이라며 “이제 국정감사 등 본격적인 정치 시즌을 맞아 굵직한 현안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MB와 차별화 본격 행보시작
즉, 박 전 대표는 이번 국감을 통해 MB의 국정 운영에 대해 검증을 도모한다는 ‘여당 속 야당’의 모습으로 MB와 차별화를 통한 대권행보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유승민·이정현 의원 등 일부 친박계 의원들이 최근 정부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친이 주류진영과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유 의원은 이미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해온 추경예산을 반대한다며 국회 예결특위 추경안 처리에 불참한 바 있다. 국회 국방위에서는 MB가 검토를 지시했던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 허용문제를 매섭게 몰아붙였다.
이정현 의원은 국회 문광위에서 MB 언론정책의 핵심인 미디어렙을 비판한데 이어, 대운하 공약과 ‘747’ 등 MB의 일부 대선공약을 과감히 수정할 것을 주장하는 등 MB정부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이기 시작 했다.
때문에 ‘9·25 대구 선언’을 통해 본격적인 ‘광폭 정치’를 주창한 박 전대표의 큰 꿈을 향한 잰 걸음에 관심이 모아진다.
#“한나라당 상징 파란점퍼 벗자”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대구에서 ‘광폭 정치’를 선언하기에 앞서 친박계의 MB저격수로 떠오르고 있는 이정현 의원이 ‘한나라당의 상징 파란 점퍼를 벗자’고 주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정현 의원은 지난 20일 국회 발언대를 통해 “미 공화당 대선 후보 메케인이 ‘공화당 모자를 벗어 던지고 아메리칸 모자를 쓰자고 했다”면서 “한나라당이 선거 때 입었던 점퍼를 벗어던지고 대한민국 국민이 입는 색동옷으로 갈아입자”고 말했다.
이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는 밥상론을 제기한 적이 있다”면서 “국정비판세력 한나라당에서 국정담당 세력 한나라당으로 대변신하자. 탈정파, 탈이념, 탈지역 하자”고 강조했다.
오경섭 기자 kbswav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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