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장편소설 제 40 회
김영수 장편소설 제 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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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06-14 12:47
  • 승인 2011.06.14 12:47
  • 호수 893
  • 4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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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나은진

5장. 일수사견(一水四見)

남북통일공사-2

용화는 가방에서 또 하나의 종이를 펼쳤다. 처음 보는 모양이었다. 한반도 모양의 그림 같기도 한 글자였다.

“여길 보세요. 이것이 현무경 축부도, 정사부(政事符)라고도 합니다. 한반도 모양인 한자 축(丑)자에 도수를 정하셨습니다. 해방 후 한반도 남북한에 출현할 정치지도자의 성씨(姓氏) 수리가 설계되어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팔궤 구궁(八卦 九宮)수리에 의해서 8명이나 9명이 설계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영감이 떠올라 문득 그림을 살펴보니 13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지요. 열석자의 비밀이 풀린 셈이지요.”

용화는 그때의 감격이 가시지 않은 듯 은근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렇게 작은 그림에 13명의 이름이……어째서 13명이 됩니까?”

조기자는 또다시 용화가 천기누설 운운할까봐 슬쩍 미끼를 던졌다.

“해방 후 남북한 정치지도자(12명)의 성함은 차례로 이승만, 김일성,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입니다. 성씨의 도수를 보면 윤(尹)씨는 4수, 박(朴)씨와 전(全)씨는 6수, 이(李)씨는 7수, 김(金)씨는 8수, 최(崔)씨는 11수, 노(盧)씨는 16수입니다.”
“자, 잠깐만요. 천천히.”

순식간에 도수를 세 버리자, 지천태가 다시 한 번 설명을 요청했다. 용화는 흔쾌히 손가락을 짚어가며 다시 도수를 셌다.
“아카시아 잎은 3개와 8개 즉 38선을 뜻하고, 반원 8수는 김씨, 동그라미 7수는 이씨, 기초동량 점 4수는 윤씨, 좌측 남쪽 점 6수는 박씨, 나뭇잎 형 11수는 최씨, 쌍엽형 6수는 전씨, 아카시아 잎 16수는 노(노태우)씨, 아카시아 중간 대 종선 8수는 김씨(김영삼) 이렇게 쭉 나갑니다.”

지천태는 어린아이처럼 용화를 졸랐다.

“참 재미있는 발상이네요. 나중에 도수를 한 번 확인해 보도록 하고, 지금의 이명박 대통령은 11번째가 된다는 것인데, 12번째 대통령의 성씨는 어떻게 되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열 석자 이 분이 출현하면 대시국(大時國)의 국호를 내세우며 초대 대통령이 되도록 설계해 두셨다고요.”
“남북통일은 언제 되는 건가요? 법사님 말대로 2012년인가요?”
“정사부에는 12번째로 출현하는 지도자가 통일 대통령으로 설계되어 있으므로 아무래도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동안에 통일의 계기가 되는 일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열 석자가 되는 13번째 출현하는 지도자가 곧 금산사 미륵불이 되는 것인가요? 그러면 금산사 미륵불은 언제쯤 세상에 출현하게 되지요?
“12번째 지도자의 임기가 ‘2013년부터 2017년’까지이므로, 통일년도는 여러분이 한번 추리해 보도록 하세요.”

조기자가 날카롭게 지적했다.

“2017년이란 뜻이란 말이죠. 그런데 13명의 지도자 중에 왜 김정일은 제외 되었습니까? 김정일을 넣으면 이명박 대통령이 12번째 지도자가 되는데.”
“도수에 없기 때문입니다.”
“네?”
“세습 허수아비라고 보는 것이지요. 북한은 김일성체제의 연장이지요.”
“엄연히 지금 북한의 통치자는 김정일인데……. 도수에 없다고 아니라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요.”

순간 용화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13번째 지도자의 성씨가 바로 소만부에 들어 있습니다. 제가 간신히 풀어냈습니다. 천기누설이라 더 이상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용화는 화가 난 듯 냉랭했다. 하지만 조기자도 작정을 한 듯 한 번 더 후벼 팠다.

“증산 선생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 상당히 많고, 그 중에서 적당한 말을 이리저리 인용하면 모든 것이 설명이 가능합니다. 심지어 같은 말도 다른 뜻으로 해석이 분분한 것들이 많지요. 도수만 해도 그렇습니다. 설명하신 획수가 중복 되어서 계산하는 것도 있구요. 도수가 보는 사람에 따라 틀리면 어디 도수라고 할 수 있나요. 지난 일은 어떻게든 갖다가 맞추어 해석할 수 있지만 미래에 일어날 일은 전혀 속수무책이지요. 밀레니엄 때만 해도 증산계열의 종교단체들이 천재지변의 개벽이 있을 것이라고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편승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그 사람들도 도수를 근거로 삼았습니다.”
“조금 전 말씀 드렸다시피 그건 증산 상제님의 말씀을 온전히 모두 공부하지 못해서입니다. 이 유서만 해도 그 진위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좀 많습니까.”


미륵은 하나인가-1

용화나 조기자 모두 얼굴빛이 울그락 불그락 해졌다. 격앙된 분위기를 식히려는 듯 지천태는 화제를 살짝 바꾸려했다.

“용화선생님의 감결문과 단주수명서 해설을 들으면서 저는 내내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과연 현생에 출세하는 미륵이 한 명인가 하는 점입니다.”
“미륵이 여럿이라구요?”
“네. 해석을 들으니 미륵이란 어떤 특정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째서 그렇지요?”
분위기를 바꾸려는 지천태의 의도와는 달리 용화에겐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용화의 말투는 공손했지만 가시가 돋쳐 있었다. 지천태가 나름의 해설을 붙였다.

“먼저 감결문의 문(文)은 글자나 문장이 아니라 음양오행 기(氣)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기란 우주만물의 보이지 않은 근원입니다. 만물에 나뉘어 형형색색 만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게 기이지요. 그래서 기 공부의 기초는 우리 오감으로 나뉜 기를 하나로 모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감결문에서도 유불선으로 나뉜 기를 하나로 모아서 보라고 되어있습니다.”
“…….”
“시중엔 해석을 달리 한 증산관련 경과 책들이 열 댓 권 있습니다. 많은 종단들이 저마다, 아니 같은 종단 내에서도 다른 해석을 하는 게 현실입니다.”

용화는 눈 꼬리를 올려 뜨며 응대했다.

“그래서요?”
“단주수명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각론은 제외하고 전체적인 뜻은 유불선을 하나로 보라는 것으로 생각되네요. 유불선이 각기 다른 모양이지만 인간행동의 일부분이니 분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용화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

“미륵이 하나가 아니란 얘긴 뭐지요?”
“말미에 보면 ‘1년 360일 점차 수련을 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인 시간이 등장하지만, 문장에 집착하지 않고 전체적인 대의로 해석하면 평상시에 일상적인 생활의 도를 닦고 그 우주의 이치를 아는 자는 누구나 주인이 된다는 내용입니다. 그 주인이란 바로 미륵이라고 해석됩니다.”

다소 비약적인 논리에 모두 어리둥절해하자 지천태가 설명을 덧붙였다.”

“석가도 모든 중생이 장차의 부처라고 한 것처럼 미륵은 특정인물이 아니라 모든 중생이 부처의 씨앗을 가지고 있고, 평시에 생활 속에서 수련하여 우주의 기를 터득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지천태의 설명에 용화는 기가 차다는 듯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륵은 이미 출생하셔서 청년으로 성장하셨습니다. 1980년 경신년생이십니다.”

단정적인 용화의 말에 조기자가 즉시 반응했다.

“1920년생인지, 1980년생인지 어떻게 압니까. 20년생이면 지금 90살이 되니까 할 수 없이 80년으로 말을 바꾸었다고 밖에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것도 잘못 생각하신 거지요. 1920년에 모악산 모처에 미륵입상이 세워졌습니다. 20년 경신년은 그것을 말하는 겁니다.”
“불상이 하나 세워진 사실을 말하기 위해 증산이 유훈을 남겼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지는데…….”
“제가 더 이상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더 공부해보시면 단주수명서와 현무경이 일치되는 도수가 나옵니다. 더 이상은 법사님께만 은밀히 전해드리겠습니다. 아니 법사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실지도 모르지요.”

잠시 침묵이 흘렸다. 무거운 침묵을 깬 건 이번에도 조기자였다.

“그런데 용화선생께서 법사님께 천문을 전하는 이유가 대체 뭡니까?”

조기자의 질문에 일행은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상제 말씀에 ‘앞으로 세계가 각 소수민족별로 나라를 세워 지구상의 국가가 삼천국의 나라가 된다’고 하였으며, ‘각 나라에서 수장(首長)들이 소 한 마리씩, 모두 삼천 마리의 소를 잡아 우리나라에 와서 천제를 지낸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소 삼천 마리?”
“수천 년 동안 강대국들에게 설움과 학대를 받아오던 소수민족들을 모두 해원시켜 나라를 세우도록 상제께서 공사 보셨는데, 그에 대한 감사의 사례로 각 나라에서 소를 잡아 하느님께 천제를 올린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장소가 바로 정읍에 있는 제령봉(帝令峰)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건네준 제령봉 서기 사진은 우연이 아니겠지요.”
이때였다. 잠시 떠나있던 차법사가 밝은 표정으로 슬며시 빈자리를 채웠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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