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장편소설 제 37 회
김영수 장편소설 제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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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05-23 12:47
  • 승인 2011.05.23 12:47
  • 호수 890
  • 6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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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일수사견(一水四見)

도수(度數)가 획수(劃數)일까-4

“해석은 ‘칠월 칠석에 태어나 8월에 상제께서 세상을 떠나니 단주수명서 전하는 날은 동지한식 같이 험난한 105년이 지나야 하는구나. 성부, 성자, 성신 즉 유불선 삼인을 함께 수행하라’는 뜻이고, 칠십리(七十里)는 칠화 십토(七火 十土)의 마을로서 인체로 치자면 단전(丹田)과 같은 중요한 자리를 상징합니다. 오로봉이 그런 곳이지요. 정(精)과 기(氣)와 신(神)은 각각 떨어지지 말고 함께 수행하여 단전에다 도를 심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증산이 떠나고 105년 뒤면……2014년을 말합니까?”
“미륵이 세상에 드러나는 해이지요. 그래서 경신년은 1920년이 아니라 1980년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석 하신다…….”

지천태는 자신의 턱을 슬슬 쓰다듬었다.

“물론이지요. 상제님이 짜놓은 도수는 물샐틈없이 치밀하지요.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도 딱 들어맞아요. 그러니 천문이지요.”
“음.”

지천태의 입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깊은 신음소리가 새나왔다. 용화는 개의치 않고 자기 이야기를 끌고나갔다.

“상제께서는 왕후장상의 그릇된 뜻을 품고 동학혁명에 참가하여 희생된 수십만의 동학신명들을 차경석(車京石) 한 사람에게 붙여서 일시에 해원시킨 전례가 있었으며, 또 차경석에게 강령(降靈)을 내리신 기록이 경전에 나옵니다. 전생에서와 마찬가지로 현생에 태어나서도 지리산 빨치산 영혼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영가들을 구명시식을 통하여 해원시켜 천도시키고, 산 사람에게까지 그 혜택을 누리게 하시니 실로 놀랍기만 합니다.”

조기자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 의문은 일행이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이었다.

“그럼 법사님이 미륵이신가요? 단주의 후신 말입니다.”

용화는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해원은 앞으로 벌어질 천지공사의 핵심 키워드입니다. 해원없이는 세계통일은 불가능하니까요. 상제께서 전생에서 차경석에게, 그리고 현생에서 차법사에게 해원시킬 수 있는 영적인 능력을 부여하신 것은 반드시 까닭이 있겠지요.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은 하지만 아직 밝힐 시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잠시 그러나 깊은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법사님께선 경신년 생은 아니지요.”

용화는 그렇게 서둘러 매듭짓고는 자세한 언급을 피했다. 증산의 강령을 받았다면서 미륵은 아니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지천태는 가슴에 무거운 맷돌을 얹은 듯 답답해졌다.

“말 나온 김에 제 생각을 숨김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도수는 글자획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인위적으로 그려진 도수는 도수가 아닐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천명이 도수라고 봅니다. 가령, 탄생지와 생년월일, 이름 수리 같은 것이지요. 저는 용화 선생께서 말씀하신 증산 선생, 차경석, 차법사님의 출생지, 생년월일 관계에 주목했습니다.”

지천태의 치밀한 준비에 좌중은 조용해졌다.

“증산 선생의 본명은 강일순(姜一淳)입니다. 1871년 9월 19일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에서 태어나 신축년(1901) 7월 7일 인도통하십니다. 1909년 음 6월 24일(양력 8월 9일) 39세의 나이로 화천하시구요.”
“…….”
“법사님의 선고(先考)이신 차혁일(車赫一) 총경도 금산사 근방인 전북 김제군 금산면 성계리 출생입니다. 1920(경신)년 음 7월 7일(칠월칠석) 태어나 1958년 음 6월 24일 (양 8월 9일) 39세의 나이로 요절합니다. 이상한 점 못 느끼셨습니까?”

조기자는 갸우뚱했다.

“희한하게 사망 음양력이 같네. 차혁일 총경의 출생지가 금산사와 매우 인접한 성계리 아닙니까? 증산께서 돌아가시면서 금산사 미륵불로 태어난다고 하셨는데……. 차총경은 해방 전후 독립운동과 6·25당시 혁혁한 전공을 세워 풍전등화 같았던 나라를 지키셨던 분인데…….”

묘한 일치에 소름이 돋았다. 지천태는 거침없이 자기주장을 폈다.
“월곡 차경석 선생과 차법사님의 도수도 그렇습니다. 월곡 선생은 1880년 7월 3일 태어나 1936년 윤 음 3월 10일(양력 4월 10일) 돌아가셨지요. 법사님은 1948(정해)년 4월 10일 태어났다고 하셨지요. 월곡의 사망일과 법사님이 태어난 양력 4월 10일이 일치합니다. 물론 차경석(車京石)과 차진길(車辰吉)의 이름 획수가 20수리로 일치하구요. 가계도를 봐도 월곡, 차혁일, 차진길로 이어집니다.”

지천태는 돌부처처럼 표정변화가 없는 용화를 힐끗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증산 선생과 차혁일 총경이 돌아가신 월일과 나이가 같은데, 그건 전에 용화선인께서 해설하셨어요. 차경석(車京石)과 차진길(車辰吉)의 한자 획수도 20수리(數理)로 같다고 하셨지요.”

용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치하는 건 그것뿐 만이 아닙니다. 강일순(姜一淳), 차혁일(車赫一) 이름에 ‘일(一)’자가 같고요, 차혁일의 호적에는 본명이 차갑수(車甲洙)라고 되어있습니다.”

용화는 차법사 가계까지 연구한 지천태에 흠칫 놀랐다. 지천태는 종이 위에 볼펜으로 글자를 써가며 획수를 표시했다.

姜(9), 一(1), 淳(11)=21. 車(7), 甲(5), 洙(9)=21.

“이처럼 ‘姜一淳’과 ‘車甲洙’의 획수가 같습니다. 모두 21획이지요. 용화 선생께서 강조하시는 21수리가 되는 거지요.”

용화는 자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도수를 지천태가 발견하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획수를 다시 세며 사실을 확인했다. 도수가 척척 들어맞는 묘한 설득력에 빨려 들어갔다. 턱의 수염을 쓰다듬는 용화의 얼굴은 굳어져갔다.
“월곡이 증산 선생의 뜻을 이었던 것처럼, 법사님도 군신(軍神)이신 차총경님의 뜻을 열심히 받들고 있는 게 우연이라고 보기엔 범상치 않은 도수입니다.”
“음……다시 말해 증산상제님께서 차총경으로 환생하셨다는 건가요?”
“잘은 모르겠으나 도수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나요?”

증산이 군신으로 환생했다는 발상에 지천태는 어색한 표정이었다. 지천태는 재빨리 천문해석과 연결 지었다.

“그래서 저는 신장공사도와 성장공사도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흰 기러기 백안은 그 뜻을 펴지 못하고 새장에 갇혀 있다. 새장이란 러시아에 국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일제에게 넘겼던 36년간의 일제 통치를 말하며 을유년(1945)에 마감한다. 백안은 증산인데, 증산의 뜻은 38선으로 분단되는 과정에서 활약하는 청조에게 전해져 오랜 동안 고독한 믿음을 지키는 장신궁에서 33수로 완성된다. 장신궁의 주인은 송파나루 이제원에서 21년간 구명시식으로 해원을 하며 인고의 세월을 지내다가 기축년에 105년 만에 상제님의 유서(뜻)을 전달받아 온 세상 사람을 미륵불로 만들라는 상제님의 뜻을 펴게 된다.”
“…….”
“증산의 뜻을 잇는 사람이 두 명 등장하는 게 크게 다른 점입니다. 신장공사도에 백안이 청조에게 뜻을 전하고, 성장공사도의 경신생이 위패가 있는 이제원에 뜻을 전하는 것입니다.”

조기자가 불쑥 또 다른 문제를 들고 나왔다.

“제가 알기론 호적상으론 월곡과 차혁일은 같은 가계가 아니던데요. 적어도 호적상으론 차경석의 자손이 아닙니다.”

그랬다. 분명 월곡 후손들의 호적이나 차혁일 호적엔 서로 다른 출생자로 적혀 있었다. 지천태가 당연하다는 듯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건 시대상황 때문입니다.”
“시대상황?”
“당시엔 일부다처 시대라 나중에 정리된 호적은 사실과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법사님 가계의 사생활이라 제가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지만, 차총경은 월곡의 정실은 아니었습니다. 차총경은 제사에도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차별을 받았고, 다른 분 앞으로 호적이 올라간 것이지요. 당시에는 첩실의 자손으로 호적에 없는 자들이 많았어요. 일제는 이것을 모두 정리하는 작업을 했고, 상속문제와 관련하여 문중에서 다른 자의 호적에 올린 겁니다.”

지천태의 해박한 지식에 다들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진짜 중요한 것은 호적이 아닙니다.”
“그럼 뭐가 중요한가요?”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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