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일수사견(一水四見)

100년 만의 쾌거-2
“민족회의? 그 단체는 UN에 가입되어 있습니까?”
“민족회의 구성원인 남한과 북한은 이미 UN에 가입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국가주권이 아닌, 하나의 민족에 두 개의 국가로 나뉜 남북의 민족주권을 행사하러 온 것입니다.”
행정처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일행이 미리 만든 양식의 접수증에 접수서명을 했다. 100년 동안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한 장의 서류였다.
잠시 후 서울. 차법사의 휴대전화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국제전화 번호가 찍혀 있었다. 김국장의 전화였다.
“법사님, 접수에 성공했습니다!”
“수고했어.”
김국장의 흥분된 목소리와는 달리 차법사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차분했다.
“박대표 바꿔드리겠습니다.”
김국장의 흥분된 목소리가 떨렸다.
“법사님, 접수했습니다! 기적입니다. 100년만의 쾌거입니다! 모두 법사님과 100일 기도를 올리신 분들의 정성 덕입니다. 하늘이 돕지 않았다면 절대 접수할 수 없었을 겁니다. 법사님의 강력한 염력과 기도하신 여러분들의 진지하고 열정적인 기도의 덕택입니다.”
“고생들 하셨어요.”
차법사는 만주 독립군 영가들이 말한 대로 이미 성공을 예감하고 있었지만 막상 현지에서 생생한 감격을 전해 들으니 갑자기 긴장이 풀린 탓인지 피곤이 몰려왔다.
지난 7월 7일부터 13분의 개국 열성조를 모시고 민족혼을 불어넣는 구명시식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동안 가족 중심의 기도를 벗어난 국가와 민족을 향한 기도였다. 구명시식을 올리기 전, 이 기도가 하늘에 닿으면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 생길 것이라는 예언 아닌 예언을 하게 되었다. 차법사로서도 어떤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질지 자못 기대했었다.
큰 일이 있을 적마다 비가 내리더니 역시 이번에도 그 징크스를 깨진 못했다. 묘하게도 6일 동안 헤이그엔 비가 없다가 마지막 떠나는 날에 몰아친 것이었다. 암스테르담 공항을 힘차게 이륙하자 신기한 현상이 벌어졌다. 석양에 비친 비행기가 축하 꽃다발처럼 둥근 무지개에 둘러싸여 있었던 것이다. 마치 하늘이 반기는 듯 했다. 그러나 귀국한 고국에서는 환영일색만은 아니었다.
안국동에 위치한 중국 대사관. 수십 명의 기자들이 둘러싼 가운데, 인천공항에서 막 도착한 헤이그 대표들이 긴 현수막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힘차게 성명서를 읽어 내려갔다.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 간도협약 원천무효 소송 서류를 접수하고 2009년은 민족주권 회복의 원년임을 만방에 선포한다. 지난 9월1일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 민족회의 통일준비정부의 이름으로 청-일간도협약 원천무효 소송 서류를 정식으로 직접 전달 접수했기 때문이다.
1905년 일제는 날조된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국가 주권을 강탈했다. 1909년 9월 4일에 일제가 강탈한 것이 또 하나 있었다. 바로 우리의 ‘민족주권’이다. 청-일 간도협약을 체결하여 단군 선조 이래 우리 민족시원의 땅을 감히 중국에 팔아넘긴 것이다.
민족주권을 상실한 1백 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왜 우리는 무기력하게 방관하고 침묵하고 있었단 말인가?
이제 각성한다. 민족주권을 망각한 까닭이다. 국가 패권에 눈이 멀었던 까닭이다.
8·15 광복을 맞아 국가 주권을 되찾았지만 민족 주권은 그렇지 못했다. 이념대립에 의한 6·25전쟁과 분단으로 또한 중국의 눈치를 보며 간도 반환을 즉시 요구하지 못했다. 단군 조선 이래 한민족은 여러 개의 국가로 분열을 반복하다가, 급기야 민족 시원의 터전까지 빼앗기기에 이르고 만 것이다.
그러나 하늘은 더 이상 방관하지 않았다. 청-일 간도협약 체결 1백년이 되는 3일을 남겨놓고, 국제사법재판소에 간도 협약 무료소송서류가 전격 접수된 것이다.
이 쾌거는 단국선조를 위시한 민족 영령들께서 후손들에게 전하는 준엄한 민족적 명령임을 깨달아야한다.
“때가왔다, 후손들이여. 민족주권을 회복하라!!”
국제사법재판소 접수과정에서 현장의 실무자들조차 믿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도움이 연이어졌다. 1백 년 동안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체념했던 일이 일거에 성사된 사실 자체가 하늘이 돕는다는 의심할 수 없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이번 서류접수는 끝이 아니다. 민족주권을 회복하고 국가를 단위로 하는 민족공동체 연합으로 가는 역사의 첫걸음일 뿐이다. 국가로 흩어진 우리 민족이 하나 되어 간도를 되찾는 날 진정한 민족주권이 완성되는 때이다.
국가의 이름으로, 혹은 애국의 최면으로 강대국이 약소국과 약소민족을 억압하는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세계 모든 민족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아 민족주권의 꽃을 활짝 피우는 날이야말로 지구촌 민족공동체연합국가로서 진정한 세계 평화가 완수되는 날이 아니겠는가.
민족주권의 꽃이 한반도에서 전 세계 처음으로 꽃피우려는 찰나다. 간도협약 무효소송이 그 씨앗이 될 것이다.
민족주권 통일준비 정부의 이름으로 국제사법재판소에 간도협약 원천 무효소송 서류가 정식 접수된 9월 1일. 우리는 이날을 영광스런 ‘민족주권의 날’로 세계만방에 선포한다.
단기4342년(서기2009년) 9월 4일 간도의 날』
김국장은 한 손을 허공에 불끈 뻗치며 마지막 구절을 외쳤다.
“중국은 간도를 즉시 반환하고 그동안의 손해를 배상하라!”
50여명의 환영객들이 일제히 구호를 따라 외쳤다.
그런데 취재하는 기자들은 모두 중소 인터넷 신문 기자들이었다. 이른바 메이저 언론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 메이저 언론사 기자 몇몇은 도착하자마자 투덜거리며 발걸음을 돌렸다.
“민족회의의 실체가 뭐야? 민간인들이 어떻게 국제사법재판소에 소송을 할 수 있어? 이건 사기야.”
“접수증이란 게 우체국에서 접수한 영수증일 거야. 그런 거 가지고 언론플레이하려고.”
“탄원서는 누구나 접수할 수 있대. 그런데 소송 접수는 절대 안 된다고 하더라고.”
중국대사관 3층 창문에서 누군가 팔짱을 끼고 이 장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조용한 경천동지(驚天動地)-1
6층 선원에 네 사람이 보이차 차호를 중앙에 놓고 모여 있었다.
“그래요? 중국 측에서 그렇게 직접적으로 반응을 보였단 말이죠? 소름이 끼치고마.”
조기자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차법사는 태연하게 말했다.
“사실 오늘 아침에 전화 두 통이 더 왔어.”
“형님, 그 두 군데는 어디요?”
“하나는 중화권의 우리 대사관이고, 하나는 국내 모처에서 왔어.”
“뭐랍디까?”
“통쾌하고 매우 잘한 일이지만 조용히 해달라는 거지. 기록은 남게 되었으니 충분히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당장 소송을 못할 바에는 제발 조용히 해달라는 거야. 잠자는 사자를 깨우지 말라는 거야. 아무튼 조기자에겐 일단 특종 준다는 내 약속은 지켰어.”
“알았소, 형님. 그나저나 참 대단하오. 형님은 행동가이지 이론가는 아니요. 말만 앞세우는 다른 유명 인사들과는 차원이 다르잖소. 우리 형님은 바로바로 실천해버리니까. 아니지, 행동으로 말한다는 거이 더 맞겠소.”
용화는 선비처럼 차분하게 웃으며 앞날을 상상했다.
“그럼 이제 간도소송이 본격화되겠군요?”
차법사는 답은 예상과는 달랐다.
“그렇진 않아요. 이제 다른 시작일 뿐이죠.”
“시작이라면…….”
조기자가 재빨리 말을 잘랐다.
“간도재판은 열리지 못할 겁니다.”
“접수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접수는 했죠. 그러나 접수했다고 다 재판하는 건 아닙니다.”
“…….”
국제사법재판소의 법률체계는 우리나라 소송절차와는 사뭇 다르다. 원고가 원한다고 바로 소송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었다. 원고가 소송을 제기하면 재판부가 피고와 상의하여 소송을 받아들일 것인지 심사하는 것이다. 이번 접수는 바로 이 심사과정에서 접수였다.
“영토분쟁은 상대국가인 중국이 받아 줘야 소송이 시작됩니다.”
“물론 중국이 받아줄 리가 없지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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