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장편소설 제 29 회
김영수 장편소설 제 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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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03-29 14:23
  • 승인 2011.03.29 14:23
  • 호수 882
  • 3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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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강증산의 유언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 1인 시위-2

“이준열사 역시 당시 국제법상으론 되지도 않는 특사로 여기에 오셨습니다. 결국 만국평화회의장에 들어가지도 못했죠. 그럼 그것이 실패를 한 겁니까? 하지 말았어야할 행동이었을까요?”

이준열사 박물관장 부부는 잠시 주춤거렸다. 김국장은 분노 섞인 목소리로 호소했다.

“만약 이준열가께서 그런 의거를 하지 않았다면 우리 독립운동의 역사는 얼마나 초라했겠습니까? 실정법은 불법이고 실패했을지 몰라도 역사적으론 얼마나 큰 성공입니까? 접수가 목적이지만 되든 안 되는 도와주십시오. 100년이 되기전에 와서 분명히 반대했다는 기록을 남기게 도와주십시오.”
“여긴 법과 평화의 도시입니다. 의지만 있다고 되는 건 아니지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때였다. 박물관 전화기가 울렸다.

“이곳 동포인데 김국장님을 찾는 전화입니다.”

김국장은 어리둥절했다. 네덜란드에 전혀 연고가 없는데 현지인 전화라니.
알고 보니 작년에 차법사에게 구명시식을 올린 한 교민이었다. 차법사의 열렬한 팬이였던 그녀가 매일 인터넷으로 차법사의 근황을 주시하다가, 네덜란드에 온다는 신문을 읽고 긴급히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법사님이 오신 것으로 생각하고, 제가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지리를 몰라 도보로 이동하던 차였는데, 현지인이 손수 운전까지 하며 기꺼이 발 노릇을 자청하다니. 더욱이 가장 아쉬웠던 통역을 해결할 수 있어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남편은 국제기구에 근무한 경력이 있어 국제사법재판소 소송 문건을 세심하게 검토하여 규격에 맞게 수정까지 해 주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어쩌면 그렇게 콕 집어 적재적소에 도움을 주는 인물이 나타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난제는 제소장 접수였다.

“나라를 위해 좋은 일 하시는데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돕겠습니다만, 접수는 안 될 겁니다. 섭섭하시더라도 솔직히 말씀드려야죠. 아무리 뜻이 좋아도 민간단체는 접수자격이 없어요. UN에 가입한 국가여야만 하거든요.”

만나는 교민마다 격려를 해주었지만 하나같이 불가능하다는 걱정을 앞서 해주었다. 익히 알고 대책을 마련한 터였지만, 막상 굳게 잠긴 국제사법재판소 철문을 보니 두 일행은 더욱 암담하기만 했다.
두 사람은 다시 이준 열사를 생각했다. ‘위법망구’를 펼치고 결의를 다졌다. 매일 3일간 국제사법재판소 정문에서 성명서를 읽고 작은 현수막, 태극기를 펼치고 간도협약 무효와 간도 반환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했다.
국제법을 다루는 냉정한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는 부질없는 짓이었지만, 결연한 각오는 그 어떤 것보다 강했다. 그것은 곳 하늘에 보내는 염원이었다.

하늘의 병풍-1


용화는 다 식은 차 한 잔을 마시고 ‘증산 선생유서’ 막바지 해석에 박차를 가했다.

“‘해와 달, 오성은 동서로 다니니, 동서는 해와 달이 다니는 길인 고로 동서는 두 개의 수도로 나뉜다. 남쪽은 불, 북쪽은 물인 고로 남방은 삼리 화다. 불은 발음상 같은 불인고로 남쪽은 오(午), 병(丙)은 남이니 병오 남에 불의 상이 나타나리라. 어둠을 밝히는 데는 불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불도가 가장 왕성할 때 서양의 금(金)세력이 가라앉느니라. 나무아미타불.’ 여기선 남북이 서울, 평양으로 두 개의 수도로 나누는 천지공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불도란 지금의 불도가 아니라 미륵이 출세하여 만든 새로운 신불도를 말하는 겁니다. 유교 사서삼경의 도는 덕을 빛나게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이고, 지극한 선에 이르는데 있는데, 이를 있는 자(것)는 선이요, 이룩하여 완성하는 자(것)는 성이다. 처음과 끝이 같아야 하고 안과 밖이 서로 길러져야 하며, 그런 연후에야 가히 큰 도라 할 수 있느니라. 1년 360일 점차 수련을 하라. 1년을 1440으로 나누어, 그 일일은 집집마다 장1/4일(자,축,인,시)를 하루로 삼아라. 그리하면 집집마다 누구나 장수할 것이다. 천지에는 무궁한 복, 무궁한 재주가 있으니 하늘은 그 때를 놓치지 않으리. 그러므로 친절한 신명(미륵)은 절기를 분명히 알아보는 이가 주인이 되게 하였느니라.’ 여기엔 평시에 꾸준히 도를 닦으라고 되어 있습니다. 책에 보면 예전엔 도인은 산에 났으나 천지도수가 바뀌면서 민중들 속에 도를 닦는 시대가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도 친히 백성들 속에서 천지공사를 보신 것입니다.”

『갑진년 10월 8일 3일 공사 3인(甲辰年 十月 八日 三日公事 三人)
소만부(小滿符)
천병(天屛)
사(巳)
정해 4월 8일 병오(丁亥 四月 八日 丙午)』

“갑진년(1904년) 수제자 김형렬의 딸 김말순의 만 14세가 되는 해 10월 8일에 세 사람이 함께 공사를 보다. 하늘의 병풍을 쳐서 미륵출세를 가린다. 여기에 도수가 숨어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던 지천태의 눈이 반짝였다.

“출세한 미륵이 정해년 4월 8일 생이란 뜻입니까?”

조기자와 지천태의 눈이 일제히 용화 쪽으로 향했다. 왠지 심드렁하던 차법사도 고개를 돌렸다.

“소만부는 소만절 탄생일인데…… 제가 더 이상은 밝힐 수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도수 대목에서 또 못하겠다니 좌중은 실망하는 빛이 역력했다.

“여기에 미륵에 대한 모든 도수가 요약되어 있지요. 하지만 천기누설입니다. 스스로 알 수 있는 사람만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분명히 하늘의 병풍을 친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지천태는 쓴 입맛을 다셨다.

“연속극 잘 보고 있다가 마지막 회 못 보는 거와 다를 게 없네요.”

조기자는 아예 시비조였다.

“괜스레 변죽만 올리시깁니까?”
“신장공사도에 더 구체적인 미륵 도수가 나와 있지요. 출세할 미륵의 생년월일과 성씨까지 명시해두셨으니까요.”
“그래요? 그럼 이미 미륵이 출세해 있다는 뜻입니까?”

용화는 아무 말 없이 눈을 지그시 감았지만 긍정의 표시였다.

“모든 천지도수는 결국 미륵의 출세를 위한 것이지요. ‘미륵탄생공사서’에 분명 ‘사람을 써서 천지공사를 이룬다’고 되어 있었지요. 유서에는 단주의 명령을 전하는 기러기의 뜻을 받드는 인물이 성장공사도의 장신궁(長信宮)에 있다고 했구요. 그러면 장신궁의 비밀을 잠시 풀어볼까요.”

용화는 이번에는 신장공사도를 펼쳤다. 점점 깊은 늪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신장공사도 우측 서문에는 청조전어 백안공서(靑鳥傳語 白雁貢書)라고 쓰여 있습니다. 청조와 백안이 전하는 소식이란 뜻입니다. 이에 대해선 이미 서두에 을유년 해방공사에서 해설드렸고……. 이제 백안의 미륵탄생공사 차례군요.”

조기자가 조바심을 드러냈다.

“설마 여기서도 천기누설이라면서 스톱하기 없깁니다.”

용화는 빙긋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신장공사도에는 오로봉(五老峰) 안에 장신궁(長信宮)이란 글씨가 쓰여 있고 그 안에 불상이 서 있으며, 그 몸체에 21수리(數理)로 추정되는 21개의 점이 찍혀져 있습니다. 장신궁(長信宮)의 글씨는 33획수, 즉 33수리로 구성되어 있지요. 이것은 33천(天) 도솔천을 의미합니다. 장신궁 안에 서 있는 사람형태의 불상은 도솔천의 주인인 곧 미륵불임을 추정할 수 있지요. 좌우 도합 12개의 갈대가 펼쳐진 이곳은 금산의 금곡 저수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불상이 서 있는 구조물은 여러 가지 수리(數理)로 구성되어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4그루의 소나무와 9개의 가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21로 설계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시천주 주문 21자와도 일치합니다.”
“미륵이 거처한다는 장신궁은 구체적으로 어디를 말합니까?”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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