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강증산의유언
을유년(1945년) 해방공사-1일행은 사랑방에서 듣는 옛날이야기처럼 용화의 실감나는 표정과 입담에 푹 빠져들었다.
“상제님께서 불치병을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린 사례들은 차라리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아마 다른 자리에서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다들 저를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여기 계시는 차법사님도 비풍우를 부리고, 죽은 자의 명을 잇고, 불치병을 고치고, 앞날을 내다보고, 천리 밖의 일을 훤히 들여다보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 않습니까. 법사님을 믿는다면 증산 상제님도 그러한 것이지요.”
조기자는 검은 안경테를 콧등으로 밀어 올렸다. 용화의 눈은 한층 빛나고 있었다.
“신장공사도를 보면 재미있는 도수가 나옵니다. 을유(乙酉)년 해방공사와 남북 분단공사가 달력처럼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여기 도수가 보이십니까?”
조기자와 지천태는 용화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유심히 살폈다.
“글쎄요. 새 두 마리가 입에 뭔가를 물고 날아가는 것밖에는…….”
“우측에 ‘청조전어 백안공서(靑鳥傳語 白雁貢書)’라 쓰여 있지요. 청조와 백안 새 두 마리가 그려져 있는 데 모두 쪽지를 물고 있고, 그 쪽지는 세상에 소식을 전한다는 뜻입니다. 무슨 소식이겠습니까?”
“…….”
“현무경의 모든 표식은 음양이 한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큰 새 ‘청조(靑鳥)’는 양(陽)으로서 일십 천간(天干)을, 작은 새 ‘백안(白雁)’은 음(陰)으로서 십이 지지(地支)를 뜻합니다. 청조의 푸를 청(靑)은 천간에서 갑을(甲乙)로서 봄의 삼팔·목(三八·木)의 고유 색상입니다. 작은 새 ‘백안’은 흰 새 기러기입니다. 12지지의 사구·금(四九·金) 가을 유(酉)지요. 그래서 을유(乙酉)년이 나옵니다. 1945년은 바로 을유년이었습니다.”
하나씩 드러나는 구체적인 숫자가 마냥 신기했다. 용화의 손길에 눈길을 따라가다 보니 보이차가 식어가는 줄 몰랐다.
“앞서 말했듯 청조는 갑을(甲乙)로서 삼팔·목(三八·木)으로 양력 8월, 날개는 7개의 깃털, 꼬리는 8개 깃털, 합이 15입니다. 그래서 15일, 즉 을유년 8월 15일입니다.”
“백안은요?”
“백안은 가을 새로서 음력 7월을 뜻합니다. 꼬리에는 7개의 점이 찍혀 있지요. 음력 7일을 뜻합니다. 백안의 좌우 날개 깃털수를 세어볼까요. 18개에 18개, 더하면 모두 36개입니다. 일제 36년을 말하지요. 을유 1945년 음력7월 7일은 달력에서 확인해보면 알겠지만 양력 8월 14일입니다. 일본은 8월 15일 항복했지만 일본 항복문서 작성일은 하루 전인 14일입니다. 백안이 물고 있는 쪽지가 바로 일본 항복문서입니다. 일본 항복 문서의 글자 수가 815자인데 제가 보여드린 천문의 글자 수를 모두 합하면 815자입니다. 이렇게 치밀하게 음양 천간지지의 이치로 도수공사를 보신 겁니다.”
“허, 참!”
지천태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조기자는 달랐다. 도자기 감정하듯 용화의 한마디 한마디를 검증하려는 자세였다.
“정리하자면, 신장공사도는 을유년 7월 7석 날(양력 8월14일)에 일본이 815자의 항복문서를 작성하고, 15일에 항복선언을 하여 36년 만에 일제강점이 끝나고 조선은 광복을 맞는다는 소식을 도수로 표시한 겁니다.”
“…….”
“상제님께서는 일찍이 1,900년에 조일합방공사를 보셨지요.”
조기자의 질문은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왜 하필 일제로부터 침탈당하는 천지공사를 했습니까? 인류를 구할 정도의 능력이었다면, 일제 침탈을 막아도 시원치 않을 텐데요?”
“다 이유가 있지요.”
“어떤 이윱니까?”
“눈앞의 것만 보는 우리 같은 범인들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이유이지요.”
“뭡니까, 대체 그 이유란 게?”
조기자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가을의 실한 씨앗을 거두기 위해서지요.”
“가을, 씨앗?”
“흔한 말로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거지요.”
조기자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듯 코를 찡그리며 안경테를 들썩거렸다.
“거 참… 더욱 모를 소린데…….”
“교과서에는 일본이 제국주의 침략을 벌여 동양전체를 삼키려는 대동아전쟁을 일으키다가 패망해서 조선이 8·15광복을 맞이한 것으로 적혀 있습니다만…….”
“그런데요?”
“내막은 따로 있지요.”
“내막이라…….”
“당시 제정 러시아는 동진을 계속하여 마침내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도달했습니다. 태평양까지 진출할 수 있는 부동항(不凍港)을 갖게 되었지요. 이로써 러시아는 5대양에 모두 접하는 막강한 제국이 된 겁니다. 당시 상황을 종합해보면 동양이 최강의 발틱 함대를 거느린 러시아의 식민지로 전락되는 건 시간문제였습니다. 이를 안 상제님께서 미국과 영국의 지원 하에 일본이 동양을 지키게 도수를 정하셨습니다. 러시아가 조선을 점령하면 조선족의 씨가 마를 것이고, 중국은 조선을 지킬 능력이 없기에 일본을 택한 겁니다. 일본이 조선을 합병형식으로 지키게 한 것이죠.”
이번엔 지천태가 품고 있던 의문을 털어놓았다.
“굳이 일본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을까요? 조선이 직접 나서서 지키면 되죠.”
“당시 조선은 사대주의에 빠져 정쟁과 대립으로 주체적으로 개화하지 못했고, 국력이 약했기 때문에 굳이 일본을 불러들이게 된 것입니다. 결국 광복이 돼서 일본은 빈 손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그 이야긴 전에 책에서 본 적이 있어요. 객들이 장기를 두고 주인은 구경을 하지만 소가 나가면 판을 거두게 되고 장기가 끝나면 판은 그대로 주인 것이 된다는 이야기.”
“근본적으론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봐도 되지요.”
“결자해지?”
“우주의 일 년으로 치면 상극의 시대가 가고 가을이 해원의 시대가 시작되지요. 해원의 시작을 단주로부터 풀었습니다. 그것이 분열의 시대에서 화합의 세계로 가는 세계통일공사입니다.”
“…….”
조기자와 지천태는 용화의 설명을 못미더워하는 눈치였다. 반면 차법사는 온화한 표정으로 초지일관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모두지 알 수 없는 무표정이었다. 조기자는 증거를 요구했다.
“말씀하신 건 지난 일이고,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일도 표시되어 있습니까? 물샐틈없는 도수라고 하셨으니 미래 일도 정확할 텐데요.”
“물론이지요. 사실 지난 일은 소용이 없지요. 제가 법사님을 찾은 이유도 미래 때문입니다. 몇 년 이내에 다가올 엄청난 후천개벽 때문이지요.”
조기자가 질색을 했다.
“후천개벽이요? 그건 허망한 종말론으로 끝나지 않았습니까. 밀레니엄을 전후해서 지축이 바로 서고 대륙과 해양이 요동친다는 종말론 말입니다.”
“그건 이 현무경과 증산의 유훈을 완전하게 해석하지 못한 사람들의 과오였습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편승한 것이지요. 여기 두 장의 유훈엔 연월일 이름의 도수가 정확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물론 현무경 3장에도 나누어서 숨겨져 있구요.”
“이름이라뇨?”
“후천개벽의 시작과 후천을 이끌 미륵의 출세를 말하는 겁니다.”
“그래요? 그 미륵이 누구죠? 언제 후천개벽이 있답디까?”
“지금 여러분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보세요.”
용화는 보란 듯이 천문을 가리켰지만 좌중은 어리둥절했다. 한자로 빼곡한 글 어디에도 숫자는 보이지 않았다. 용화는 당연하다는 듯 여유 있게 미소까지 지었다.
“천문은 봐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천기누설 되도록 허술하게 설계되어 있지 않아요. 그러니 천문이지요. 하늘의 평풍으로 가려져 있으니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알 길이 없지요. 후천이 언제고 누가 난세를 구할 미륵인지 매우 궁금하실 테지만, 제 입으로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아는 사람만이 알게 되어 있습니다.”
일행은 기운이 빠졌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조기자가 아니었다.
“이 5장은 최근 처음 발견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것을 제가 한 자리에 모은 것입니다. 모두 모으니 비로소 온전한 뜻이 된 것이지요. 세상에 드러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
“이 자리가 천문을 받는 자리이니, 시효가 지난 천지공사 도수는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미륵탄생공사서부터 차례로 풀어보기로 하지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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