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법무장관 경질설의 진위여부를 둘러싸고 청와대의 선택이 주목된다. 대선을 앞두고 법무부장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탓이다. 정치권과 법무부 안팎에서 장관 교체설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파다한 반면, 청와대는 계속해서 ‘부인’하고 있다. 그럼에도, 청와대 일각에서 경질설이 꾸준하게 제기되고 있어 교체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관측에 무게감이 실린다.
김 장관의 경질논란이 이슈화되고 있는 이유는 대선을 앞두고 이른바 4대 권력기관으로 손꼽히는 검찰(법무부), 경찰, 국정원, 국세청 등의 기관장이 ‘친노’(親盧) 코드인사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른 기관의 수장들이 모두 책임 소재가 뒤따를 정도의 구설수에 휘말렸지만, 유독 김 장관만이 경질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코드 맞추기’에 실패한 탓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 일각에선 올해 대선에서 권력기관의 공정성을 우려하고 있다.
김성호 법무장관은 그동안 청와대 기류와 다른 ‘친기업적’ 언행을 보이며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특히, 청와대 사정팀에서 장관의 판공비 사용내역 등을 조사하면서 청와대와의 관계는 더 이상 호전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일각에선 김 장관이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유력주자에 대한 철저한 수사 압력을 받았지만 수용하지 않았다는 후문이 나올 정도다.
검찰 내부 “장관 교체 부정적”
검찰 한 관계자는 “김성호 장관이 청와대하고 보조를 맞추지 않으니까, 경질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그러나, 검찰 내부에선 김 장관 교체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다”고 전했다.
반면, 노 대통령은 자신과 코드를 맞춰온 기관장에 대해서는 상당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이 불거져도 오히려 청와대가 나서 적극 옹호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택순 경찰청장의 경우가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다.
경찰총수인 이 청장은 지난 3월 발생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과 관련, 축소·은폐 수사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검찰 수사결과 경찰 일부 고위층이 이번 사건의 축소수사에 관여했음이 드러났다.
이 청장은 특히, 폭행사건이 불거진 이후 한화그룹 관계자와 접촉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거짓’으로 드러났다.
한나라당 모 의원실에서는 나아가 정권 차원에서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가 이 청장을 두둔하고 나선 대목이 석연치 않다는 것.
한나라당 모 의원실 관계자는 “이 청장은 한화그룹 유시왕 고문과 골프를 친 적이 없다면서 태연하게 거짓말을 한 인물”이라면서 “일각에서 청와대의 입김이 이 청장에게 전달됐을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결국 청와대의 ‘엄호 사격’ 덕분에 검찰 수사 과정에서 상처를 입지 않았다.
이번 사건과 관련, 초기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 핵심 라인이 모두 옷을 벗거나 처벌을 받았지만, 경찰 총수에 대한 비판여론은 청와대가 나서 “경질 사유가 아니다”면서 오히려 보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현직 경찰 관계자들조차 “한화라는 재벌 그룹의 회장이 연루된 사건이 경찰청장에게 보고되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면서 의문을 던지고 있다.
전군표 국세청장도 강원도 출신으론 드물게 국세업무를 총괄하는 수장에 임명됐다. 그렇지만 취임 직후부터 불거진 아들 병역특례 의혹으로 인해 여전히 구설수에 오르내린다. 게다가 서울 동부지검에서 수사하고 있는 병역특례 비리 사건과 관련, 전 청장의 아들이 수사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확산될 조짐이다.
전 청장은 최근 보수 언론인 조선일보에 대해 세무조사를 강행하는 등 참여정부와 코드를 맞춰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세청은 한 때 각 언론사의 대선후보 지지 성향을 분석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 청장 또한 올해 대선이 종료될 때까지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인다.
김만복 국정원장도 최근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TF팀 존재 여부 등 정치개입 의혹이 불거져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잇따라 의혹을 제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 원장체제는 더욱 공고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한나라당 대선주자 관련 자료 중 상당수가 국정원 안팎에서 흘러나왔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한 논란의 핵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김 원장은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내년 총선을 준비하기 위해 부산지부장에 자신의 측근을 임명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진 바 있다. 정치개입 의혹 등 정치적
논란이 심화되고 있지만,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모양새다.
대선 치른 후 내년 총선 겨냥
김 법무장관과 함께 정상명 검찰총장도 오는 11월 임기 만료 후 즉각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사정기관 수장들이 청와대와 코드를 맞춰나가고 있는 부분에 대해 한나라당은 우려감을 피력하고 있다. 한나라당 한 인사는 “큰 틀에서 보면, 사정당국이 모두 노 대통령과 매우 가깝다”며 “우리 스스로가 계속해서 견제를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선 “노무현 대통령이 특정 인사를 당선시킬 수는 없어도, 누군가를 낙마시킬 수 있는 힘은 있다”는 식의 해석을 종종 듣는다. 앞서 언급한 대로 권력기관이 노무현 정권과 코드가 맞다는 게 하나의 원인이 아닐까.
김대현 suv15@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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