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장편소설 제 21 회
김영수 장편소설 제 21 회
  •  기자
  • 입력 2011-01-25 16:48
  • 승인 2011.01.25 16:48
  • 호수 874
  • 3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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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경천동지(驚天動地)

세계는 금전(金戰) 중-3

“그람 우린 어째야 쓰것소? 해결책도 있어야 할 거 아니오?”
“달러에 대항하려는 유로화나 엔화도 험난한 길을 걸을 게야. 결론은 이제는 태평양을 양어장으로 보자는 거야. 한반도의 대변화는 늘 대륙변화의 일부였어. 밀물과 썰물이 교차할 때 고기가 많은 법이야. 위기가 기회야. 지구가 내일 멸망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다고 했잖아. 큰 그림을 그려야지. 38선 통일은 너무 작은 그림이야. 동북아 전체를 아우르는 새로운 세계지도를 그려야지.”
“일리 있는 말이지만, 실감이 안 납니다. 아직 남북통일도 요원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디….”

조기자는 쓴 입맛을 다셨다. 너무도 가늠할 수 없는 정보였고, 쭉 듣고 있자니 북한통이라고 자부하고 있던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통일은 어떤 그림이 될 것 같소?”
“연방제나 연합을 생각해볼 수 있지.”
“연방제? 북한이 주장하는 고려연방제 말이요?”
“그건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하고. 더 큰 연방 말일세.”
“더 큰 연방?”
“연해주, 간도, 몽골, 일본, 러시아까지 아우르는 동아시아 연방 말일세.”

조기자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한동안 멍했다.

“각기 독립된 자치구를 가지면서 경제, 군사적으로 긴밀하게 연동하는 일종의 한민족연방이지. EC처럼 화폐도 통일하고. 이제는 통일이란 말보다 ‘연합’이란 말이 좋을 것 같아. 통일은 꼭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느낌이거든. 천문학적인 통일비용 때문에라도 흡수통일은 불가능한 게 현실 아닌가, 조기자?”
“그런 통일, 아니 연합이 2012년 부터에 일어난다는 거이죠?”
“눈 깜짝할 사이지. 그런데 가만히 있는 다고 되는 게 아니야. 이명박 대통령이 통일 대통령이 되려면 서둘러야지. 인심(人心)이 천심(天心)이라고 했어. 사람 하기에 따라 일자는 늘거나 줄 수 있네. 하지만 대세는 거스르지 못하지.”
“그런데 형님이 빼놓은 게 하나 있소. 8월의 경천동지라고 했는데, 그게 뭐요? 전쟁이라도 일어난다는 뜻이오?”

조기자는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날을 세웠다.

“아, 그랬지라, 경천동지.”

차법사는 차를 마시며 뜸을 들였다. 조기자는 펜을 만지작거리며 차법사의 입만 바라보았다.

“남북한의 운은 상승기이고 일본은 하강기야. 하지만 기회는 준비하는 자에게 있는 법이지. 이를 위해 올해와 내년에 두 가지 기도를 준비하고 있어."

“기도요? 두 가지?”

“지금 하고 있는 개국 열성조와 내년의 대한제국과 6·25기도.”

조기자의 머릿속은 온통 뒤죽박죽이 되었다. 개국 열성조, 대한제국, 6·25 도무지 연결되지 않는 단어들이었다. 조기자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손수건을 꺼내 안경에 낀 부옇게 서린 김을 닦았다.

“한 가지 구체적으로 일러줌세.”

“뭡니까?”

“올 9월 4일부로 간도협약이 딱 100주년이 되네. 우리 땅을 되돌려 놓을 때가 되었지.”

간도협약이란 1909년 9월 이루어진 청나라와 일본간의 밀약이다. 일제는 1905년(광무 9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뒤 청나라와 간도문제에 관한 교섭을 벌여오다가 남만주 철도 부설권과 푸순 탄광 채굴권을 얻는 대가로 한국영토인 간도를 청나라에 넘겨주는 협약을 체결하고 말았다.
조기자는 생각했다. 차법사란 사람 참으로 엉뚱하다. 간도협약이라니. 이런 생각에 조기자의 머릿속이 다시 한 번 엉킨 실타래가 되었다.

“시방 간도를 되돌린다는 말씀이오? 정말 알다가도 모르것소, 형님.”
“허허 그런가. 자세히 설명해줌세. 100년 안에 국제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우리가 스스로 간도협약을 국제적으로 인정하는 꼴이 되지 않는가. 만약 훗날 되찾으려 해도 무관심했던 죄로 엄청난 불이익을 당할 걸세. 그래서 내가 운영하고 있는 후암미래연구소가 올 9월 안에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 간도협약 무효소송을 제기할 걸세. 때가 왔으니 우리도 열심히 쪼아야 하지 않는가.”

차법사는 윤봉길 의사 처형사진을 발굴하고 영친왕 유품을 일본으로부터 찾아와 모여대에 기증한 적이 있었다. 지난해 일본인의 손에 넘어가 있던 신윤복의 맹획의 고사도를 되찾아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신문기사를 조기자도 읽은 바 있었지만, 그런 문화재 반환과 간도협약 무효소송은 차원이 달라도 한참 다른 문제였다.

“그게 가능한 거요? 100년이 지나는 게 안타깝긴 하지만, 중국 눈치 보느라고 국가도 나서지 못하는데 어떻게 일개 민간인이….”
“허허, 두고 보면 알겠지, 뭐.”

조기자의 곤란한 표정에 차법사가 짓궂게 물었다.

“8월에 간도협약 무효소송을 제기하고 경천동지할 일 터진다. 2012년 남북통일이 된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왜 잘못된 거라도 있나?”
“이것이 기사로 나갔는데 만약 실현되지 않는다면 법사님 입장이 매우 난처해질 수 있소. 예언가로서 매장 당할 수도 있다는 뜻이오. 그런 위험을 감수하시겠습니까?”

지금까지 조기자의 표정 중에서 가장 심각한 얼굴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영계로부터 메시지도 있고, 내가 관조해 봐도 그럴 것 같아 전하는 거야. 예언이 맞아도 내 운명이고, 틀려서 엉터리 법사라고 매장 당해도 내 운명 아니겠나. 맞으면 조기자 특종이고, 틀리면 내 위신만 땅에 떨어지니, 이거야말로 조기자가 손해 보지 않는 장사가 아닌가?”

조기자는 고개만 끄덕였다.

“조기자 관심을 끌 만한 일이 하나 더 있지. 기자 복이 있는 사람은 달라. 이것도 특종이라면 특종일 게야.”

조기자는 표시나지 않게 마른 침을 삼키며 몸을 바짝 끌어당겼다.

“얼마 전 20년간 증산을 연구한 용화라는 분이 귀한 문서를 가져왔네. 천문(天文)이라고 하더구만.”
“천문이요? 천자문은 들어봤어도 천문을 처음 듣는디?”
“증산 선생의 현무경과 유서를 천문이라 하네. 그 천문이 도착했어, 얼마 전에.”

차법사는 용화가 가져온 제령봉 서기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건 뭐요?”

조기자는 이리 저리 돌려보며 사진을 세심하게 뜯어보았다.

“빛이 들어간 사진인가?”

차법사는 용화가 한 말을 그대로 전했다.

“그 분 말인 즉, 천문 도수 안에 우리나라의 미래가 설계되어 있고, 이를 이끌 미륵이 출세해 있다고 하네.”

조기자의 기자본색이 꿈틀거렸다. 조기자는 호기심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무관심한 듯 응수했다.

“그라요? 그럼 일종의 증산 비결서네.”

“비결서? 그렇지. 천문을 전해 준 사람이 증산의 마지막 유언 ‘열 석자로 오리라’에 답이 있다는구먼.”

“열 석자 유언?”

“그 사람이 얼마 뒤에 다시 온다고 했으니, 같이 만나보는 건 어떻겠어? 아마도 천문을 직접 해설할 요량인 듯한데…….”

“물론이죠.”

조기자는 벌써부터 흥미진진했다.
몇일 뒤 조기사가 쓴 기사가 신문을 장식했다. ‘차법사, 2012년 한북통일 예언’이란 타이틀에 ‘8월 경천동지할 일 생긴다, 간도소송 제기하러 헤이그에 간다’란 작은 타이틀을 단 기사였다. 모 영자 신문 아시아판에서도 이 내용이 기사화 되었다. 워낙 충격적인 내용이라 겉으론 조용했지만 이 기사들은 많은 사람들이 눈여겨보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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